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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평점 :
예전에... 내가 중학생 때였나, 고등학생이었을 때, 학교에서 숙제를 내준 적이 있었는데, 살고 있는 곳의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장소나 물건 등을 조사해 가는 것이었다. 그 때는 인터넷이 보편화된 때가 아니었기에, 백과사전을 찾아보거나 아니면 주변 어른들에게 물어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때 친구 한명이 자신의 집 근처에 ‘삼전도비’라는 것이 있다고 했다. 나중에 삼전도비에 대해 조사한 후 알게 된 것이 치욕적인 역사의 한자락과 소현세자에 대해서였다. 그 때, 소현 세자를 알게 되었다.
작년이었나? <탐나는도다>라는 드라마에 ‘미친 왕’ 이야기가 나왔다. 똑똑한 아들을 견제하고, 의심하는 미친 왕. 그 왕은 인조였다. 청에 오랜 세월 볼모로 잡혀있었기 때문에 문물에 밝고 새로운 것에 열린 마음이었던 세자. 그 세자가 바로 소현이었다.
이렇게 두 번이나 소현 세자와 만났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만이었다. 더 이상의 역사적 사실도, 소현 세자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0년. 덕혜 옹주를 비롯하여 잘 조명되지 않았던 역사적 인물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중 한명이 ‘소현 세자’였다. <소현>이라는 책으로 나역시 그에게 주목할 수 밖에 없어졌다.
소현 세자에 관한 소설을 읽고 나니 이처럼 굴곡많은 인생을 살아낸 사람도 없겠구나, 싶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소현 세자는 패자였던 것인가. 하지만 예를 중시하는 동방 예의 지국 조선에서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 수 밖에 없다.
어찌 아비를 해할 수 있을까.
야만의 나라에 있는 동안 본 것이 아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아비를 해하고 아비된 자가 역시나 같은 태도로 아들과 손자를 해하는 천인공노할 일들 뿐이었는데, 그런 일들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던 세자가 어찌 스스로 똑같은 일을 벌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야만의 나라에 무릎 꿇어야했던 굴욕을, 그 수치심을 이기지 못했던 아비는 그의 마음을 몰랐다. 많은 부분을 열린채, 그저 읽는 이의 상상에 맡겨 놓았지만, 소현의 짧은 생 앞에, 청에서가 아니고 조선에 돌아와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이 하였던 그의 생을 볼 때 그다지 많은 상상이 필요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잘못된 시대에 태어났을 뿐이라 하기엔 소현이 적국에서 보낸 시간동안 보여주는 고뇌가 너무 깊었다.
조선은 멀었고, 임금은 적에게 굴복한 패국의 왕이었다. 그들이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 오직 세자가 일어서는 날이었다. (p232)
만약 소현이 일어서는 날이 있었다면, 역사의 기록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