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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 인형의 집 - 마법 같은 작은 세상
해리 데이비스 지음, 공경희 옮김, 제이 폴 사진 / 윌북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시절, 문고판 책 속에 있던 위인전은 위대한 삶을 살다간 사람들의 용기와 정의로움, 끈기, 노력 등의 의미와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내게 알려 주었다. 책 속의 위인들을 통해 앞으로 살아가야할 인생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기도 했다. 세종대왕, 이순신, 오성과 한음, 강감찬, 퀴리 부인, 나이팅게일...... 위대한 그들의 삶에 어린 시절에는 동경으로, 존경의 마음으로 다가설 수 있었다.
하지만 성장을 하고 난 후 생각해 보면 위인들의 삶은 뭔가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그들은 먼 과거 속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은 과거형이었다. 그리고 왠지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다가설 수 없이 먼, 그런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랄까.
그런 때 책에서 지금 내 옆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지고, 딱딱하게 굳어 박제가 된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현재, 지금 내 옆에 있는 듯한 사람. 그 중 한 분이 바로 타샤 튜더님이셨다. 타샤 할머니~ 하고 친숙하게 부를 수 있는 분이시다. 내게 무언가 배울 점을 찾아내도록 강요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삶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분. 나는 그녀처럼 살고 싶었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 ~처럼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다.
재작년, 타샤 할머니가 우리의 곁을 떠났다. 솔직히 타샤 할머니를 알게 된지 1-2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많이 애석하고, 슬프고, 안타깝기만 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아직 타샤 할머니가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그분의 자리가 아직도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감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삶을 책을 통해, 영상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셨던 타샤 할머니의 정신이 우리 곁에 아직 살아 숨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샤 할머니의 삶에 관해서는 그동안 출간된 에세이 <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타샤 튜더, 나의 정원> <타샤의 그림 인생> <타샤의 크리스마스> <타샤의 식탁>를 통해 많이 접해 왔다. 그녀의 노력이, 그녀의 인생이 책 속에 담겨 있었다.
<타샤 튜더, 인형의 집> 책이 집에 도착했을 때, 그분의 숨결이, 그분의 자취가, 그분의 삶이 영화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책에는 그동안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던 삶의 방향이 담겨 있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이 퍼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나에게 다시 처음 타샤 할머니를 만났을 때, 그 때의 생각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엠마의 양철 구이통은 타샤의 것과 똑같은 모양으로 실제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p24)
타샤의 집 부엌에 있던 것을 본떠서 그대로 만든 미니어처 씽크대는 타샤의 시동생 로렌 맥크리디가 만들었다. 개수대 밑에 있는 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펌프질을 하면 실제로 물이 나온다. (p28)
타샤의 팬이기도 한 유리 공예 장인이 섬세한 크리스탈 샹들리에를 만들어주었다. (p62)
타샤의 며느리인 마저리 튜더가 공들여 만든 미니어처 의자는 타샤의 실제 의자만큼이나 편안해 보인다. (p78)
책에서 나는 타샤 할머니를 아끼는 많은 사람의 애정을 보았다. 타샤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음을 느꼈다. 모르던 사실은 아니었지만, <인형의 집>을 만들 때,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더욱 그랬다. 타샤 할머니를 쏙 빼닮은 엠마와 남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새디어스, 그들이 사는 인형의 집에는 타샤 할머니의 집의 축소판인양, 정성과 노력이 담긴 물품들이 가득했다.
누구나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타샤 할머니의 <인형의 집>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는데, 만일 나에게도 그런 제의가 들어왔다면 나역시 같은 마음으로 미니어처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누구에게나 이렇게 대가없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받았던 타샤 할머니의 삶이 내게 알려주는 건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싶다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정원의 꽃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동물들에게, 자신의 주변의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었기에, 진심어린 마음을 베풀었기에, 다시 돌아온 사랑을 누릴 자격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인형의 집>에는 타샤 할머니의 지난 삶이 농축되어 있을 뿐 아니라, 타샤 할머니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는 증거가 되어준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이 책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지금 나는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한 고비를 넘고 있다. 이러한 때에 타샤 할머니의 책을 읽으며 먼 인생길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진지하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 지금 내가 생각하는 인생, 앞으로 살아가고픈 인생, 그리고 타샤 할머니의 나이가 되었을 때 되돌아보게 될 인생까지. 머리 아프고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타샤 할머니의 생 앞에서는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없다.
그녀의 인생이 내게 절대로 인생에서 쉬운 것이란 없으며, 열심히 노력하고, 베푸는 태도만이 먼 훗날 되돌아봤을 때 후회없는 인생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