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도 - 그림으로 읽는 『구운몽』 키워드 한국문화 3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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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생각하고 있던 [구운몽]과는 달라 당황스러움이 크다.

도대체 나의 기억이란 것은 어찌 이리도 불완전하단 말인가! 하기사 나의 기억이란 것도 그리 얕은 지식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래도 이렇게나 다른 것에 어쩔줄 모르고 있을 뿐이다. 내가 알고 있기로 [구운몽]은 서포 김만중이 작가로, 어머니를 위한 효심이 나타나 있는 소설이다. 여기까지는 얼추 맞다. 소설을 쓴 이유가 잠 못드는 어머니를 위해 그가 옆에서 이야기를 지어 들려드린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유배를 가 멀리 떨어져 있던 김만중이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지어 보낸 소설이란다.

“ 그러나 [구운몽]을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더욱이 조금 안다는 사람 중에서 그 고전적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더욱 적다. ”

라는 책 속의 말이 나를 꼭 집어 말하는 것 같아 부끄러움마저 생긴다. 더한 부끄러움은 내가 [구운몽]의 정확한 내용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분명 학교에서 배웠을텐데 ‘양소유’며 ‘팔선녀’라는 등장인물조차 알지 못했을뿐더러 ‘ 한 호색한이 여덟 여자를 만나 세상의 부귀 영화를 배불리 누리다가 말년에 이르러 그것이 모두 헛된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시시한‘ 내용’. 이런 줄거리를 보고도 아, 이런 내용이었어? 하고 새삼 놀라기까지 했다. ‘국사’가 선택이 아닌 필수였을 때 학생이었던 내가 이렇게 우리나라 문화에 대해 무지한게 너무 미안하기만 했다.

 

그래서 어쩌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서포 김만중이 작가’란 사실 외에, 모든 기억을 아예 지우고 [구운몽도]를 통해, [구운몽]에 대해, 소설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구운몽도]에 대해 새롭게 알아간다고, 배워간다고 여기기로 했다.

소설 [구운몽]은 분명 흥미롭고, 그 시절에 쓰여진 것이라 믿겨지지 않을만큼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그것을 그림으로 그린 [구운몽도] 또한 소설에 뒤지지 않을만큼 현란한 색채와 자세한 묘사, 자유로운 상상력 등으로 흥미를 갖게 만든다.

<구운몽도>는 소설 <구운몽>을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살짝 살짝 변화를 주어 오히려, 어떤 장면일지, 어떤 상황인지 ‘상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보는 이에게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소설의 내용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음짓게 만드는 매력도 있다.

“ <구운몽도>의 개성은 자유로움이다. 어디에 얽매이지 않는 활달함과 분방함이 <구운몽도>의 정신이며, <구운몽>의 정신이기도 하다. <구운몽>에서는 누구도 억지로, 강제로 일을 이루는 법이 없다. ”

궁궐의 임금부터 시골의 기생까지, 최상충부터 최하층까지 모든 계층의 사랑을 받았다는 <구운몽>. 현대에 이르러 외설 소설이니, 음란 소설이니 하며 그 의미를 훼손하는 사람이 있지만, 단지 그것에만 머물러 있는 소설이었다면 어떻게 대다수의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 내용을 뛰어 넘어 다방면의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요소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구운몽도]라는 그림을 통해 [구운몽]의 가치를 새롭게 해석하고 그 의미를 찾는다. 그 과정을 함께 하는 즐거움이 컸다. 직접 구운몽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하는 마약과 같은 “ ” 환상과 낭만이 가득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그 소설 속에 나도 푹 빠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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