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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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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그 날 이후’ 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핵이 폭발할 때, 그리고 그 이후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한 영상으로 보여주는 그런 영화였다. 버섯구름이 솟아오르고, 방사능에 노출된 사람들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허한 눈동자가 기억에 있다. 원시로 돌아간 듯, 식욕이나 성욕과 같은, 가장 기초적인 욕구만 남은 사람들...

그런 공허해 보이던 사람들보다 더 기억에 남았던 건, 지금과 같이 총천연색의 풍경이 아니라, 약간의 붉은 듯 한가지 색의,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린 단조로운, 공허한 풍경이었다. 사막도 그보다는 다양한 활력과 생동감을 지녔으리라..

하~ 하고 숨이 막혔다 겨우 내뱉는 듯한 한숨을 쏟아내게 하던 그 풍경은.. 보는 나에게 공포심마저 들게 만들었다.

‘The Road' 는 딱 그 기억을 일깨우게 하는 소설이었다.

읽는 내내......

회색빛 재 때문에 숨이 막히고, 도대체 누가 적인지, 어떤 상황인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고 답답했다. 눈마저도 제 색깔을 갖지 못하는 그 살벌한 풍경은 영화와 마찬가지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남자와 소년은 누구일까?

대체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그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또다른 ‘그들’은 누구일까?

쫓기는 상황에, 항시 다급해 보이기만 하는 그들의 행적을 뒤따르면서도 궁금증이 생겨난다.

그들은 불을 운반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남쪽의 해변, 바닷가 쪽이다.

알 수 있는 것은 극히 한정되고,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알려줄 의향도 없어 보인다.

궁금증에 대한 뚜렷한 해답이 없기에, 황량한 풍경과 건조한 문체에 서서히 잠식당해버린다. 

p242 남자는 자신이 아무런 근거없이 희망을 걸고 있음을 알았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더 어두워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곳은 더 밝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한없이 절망적인 상태에서도 품었던 남자의 희망은 번번이 거절당한다. 식량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곳엔 굶주린 사람들이 가득했고, 남쪽으로 가면, 해변으로 가면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도착한 그곳엔 파란색이 아닌 걸어온 길과 별다를게 없는 잿빛 바다가 있을 뿐이었다. 

절절한 부성애라느니, 마지막에 희망을 볼 수 있다던 다른 이의 이야기는 상관없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도 난 여전히 암울했고, 희망을 찾을 수 없어 불안하기만 했다. 남자의, 소년의, 아니 모든 살아남은 이의 어두운 감정이 온전히 그대로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사람을 달뜨게 만든 책이 아니라, 이렇게 체념, 불안, 공포 와 같은 뭔가 저 아래쪽에 깔려 있는 바닥의 감정들을 일깨우는 그런 책이었다.

아무것도 없고, 그저 도망치고,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내게 주는 것은 무기력함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내 마음을 점점 채워가는 건 공포심이었다. 어느 한순간 깨닫게 되는, 자연이...... 따사롭고 친근하기만 했던 자연이 지진이나, 화산 폭발, 거센 폭풍우, 거대한 쓰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한없이 작게만 느껴지는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이었다.

바닥까지 치달은 이 감정을 추스르려면, 이 감정에서 벗어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도할 뿐이다. 내 앞에 이러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는 말기를... 그저 소설 속에만 존재하기를...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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