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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해즈빈
아사히나 아스카 지음, 오유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 '해즈빈(has been)'이란 말 아냐? ”
“ 현재 완료형 말이니? ”
“ 그래. 역시 도쿄대학 출신답군. 평소에는 조용하다가 중요한 순간에 크게 한 건 올리는 사람을 해즈빈이라고 한다더라. 미스터 해즈빈(Mr. has been). 과거에는 한 이름 날리던 사람. 그리고 이젠 한물간 사람. ”
우울한 해즈빈의 해즈빈은 그런 의미였다. 과거엔 한 이름 날리던 사람. 하지만 한물 가서 잊혀진 사람.. 아무것도 아닌게 되버린 사람..
옛날 학원 친구 구마자와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고 리리코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자신과 닮은 듯.. 그녀의 모습에서 그런 걸 느꼈다는 그의 이야기를, 그녀는 살짝 무시했다. 그녀는 도쿄대학을 나와 외국계 기업에 최우수 성적으로 입사했다가 결혼 때문에 사표를 낸 사람이고, 남편은 변호사이고, 시부모님의 도움이긴 하지만, 동네에서 둘이 살기엔 좀 넓은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도’ 잘 나가고 있는거다.
그런 자신의 현재를 그는 알 수 있을까? 단지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해 헬로워크에 다닐 뿐인데.. 구마자와, 그와는 분명 입장이 다른데...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다. 자신에게 뭔가가 빠져 있다는 걸.. 그래서.. 무언가를 계속 찾고 있다는 걸.. 그러나 그 ‘무엇’이 무엇인지 그녀는 알 수 없다는 걸..
외면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가족 때문도 아닌, 아이를 원하는 남편 때문도 아닌, 페미니스트가 되어 자신을 무조건 이해해주는 시어머니 때문도 아닌,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씌우고 있던 완벽함의 틀을, 그것 때문에 우울하고, 그것 때문에 답답한 그런 틀을 벗어나기까지의 리리코의 이야기가 있다.
마지막...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모습에서 그동안 그녀를 속박하고 괴롭히고 있는 건 그녀 자신이었음을 깨달은 그녀가 서 있다. 깨달음을 통해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그녀가 있다. 리리코는 분명 어른이지만 생각이 성숙되지 못한 어른이었다. 그것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녀는 분명 성장해 있었다. 그녀는 점점 변해가게 되겠지...
얇은 책이어서..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해 읽다보면 빠른 시간 안에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딱 꼬집어 낼 수 없는.. 뭔가 부족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작품이 ‘신인 문학상’을 받았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어진다. 신인상이란게 무언가.. 앞으로의 미래를 보고, 앞으로 뻗어나갈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 아니던가. 이제 출발선에서 조금 벗어난 작가의 미래에 의미를 두겠다는 말이다. 부족함없이 채워진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