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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인생 뭐 있어?’ 란 말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하지만 이번엔 툭툭 털고 일어날 힘을 실어주기보다는, 이런 인생도 있어... 그래도 이 사람들은 살아가.. 하고 왠지 소심한 위로를 하는 듯 하다.
이 책을 소개해준 친구는 “ 엄청 우울해 ” 라고 이 책을 평해주었다. 읽으면서 그녀가 한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엄청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이 보여주는 삶은 이제껏 오쿠다 히데오가 보여주었던 유쾌함과는 거리가 멀고 제목처럼 ‘최악’으로 치닫는다. 뭐 하나 되는 일도 없으면서, 일은 꼬이기만 하고, 꼬인 일을 풀고자 하면 오히려 더욱 엉망진창이 되곤 하니 그들의 뒤를 쫓아가는 관찰자로서도 같이 답답해져 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인물들만 골랐을까 싶다. ‘최악’의 인생을 보여주겠다고 작정한 듯, 40대의 가장도, 남들이 보기엔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는 은행원도, 불안불안한 인생을 사는 20대 건달도, 거기에 주변 인물인 오타 부부, 다카나시, 이와이, 메구미 등등 까지도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듯한 사람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최악의 상황에 맞춰, 최악의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된 사람마저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버리는 듯 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소심하고, 남의 말에 제대로된 반박조차 못하며, 분위기에 따라 휩쓸려버리고, 판단력이 조금 부족하고, 자신을 불쌍하다고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언제나 잘못된 선택을 내리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하.. 지.. 만.. 세상은 분명 이런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나역시 그렇게 살고 있다.
미도리가 본대로 잔심부름을 해주는 비서까지 부려가며 전용숙소에 묵는 대장격인 임원들이 있는가 하면, 산장 아래 벌판에서 수백개의 오렌지색 텐트가 무당벌레들처럼 빽빽이 들어차고, 그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는 장기의 말인 졸(卒)에 해당되는 행원들이 있는 것처럼 피라미드의 맨 아래 부분을 차지하는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많이 있다. 그게 나일수도, 너일수도 있으며, 함께 살고있는 우리 모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사는 모습이, 그들이 처한 상황이 최악일지 몰라도, 그들 자신들은 최악이 아니다. 그저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 일뿐.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가장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꾀를 부릴 줄도 모른다. 아니 부린다고 해도 남들이 훤히 꿰뚫어 볼 수 있는 얕은 수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항상 몸에 배어 있다.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나쁜 것이지, 이용당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지인데,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이 책의 마지막까지 그들의 인생은 잘 풀릴 줄 모른다. 사건이 해결되긴 하지만, 통쾌하지도 않고, 오히려 뭐 이런 인생이 다 있나 싶다. 오쿠다 히데오 식의 깔끔하고 유쾌한 결말을... 이 책에서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작가는 이런 인생도 있다는 걸 작정하고 끝까지 우울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새롭다. 막판까지 밀어붙이는 이야기에 푹 빠져 헤어나오기 힘들기도 하다. 그리고 씁쓸하게 위로해야한다.
인생 뭐 있어? 갈때까지 가봐야 아는거지.. 그런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