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봄 바람이 제대로 들지도 못하고
추워 웅크리고 있다 오늘은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근처 무등산으로 향했다
함께 하는 인문학 모임 회원들을 부추켜
길 위의 인문학이라 쓰고 한 달에 한 번씩 바람 맞으러 가자고 한 날이다
높이 올라가지 말고 평지의 온화함을 만끽하자고
동적골산책길 따라 휘적휘적 다녀왔다
새인봉 앞에서 멈춰!!
불어오는 봄바람의 끝은 아직 찬기가 남아있었지만
내리쬐는 햇빛은 찬란했고 나중에는 따깝기까지 했다
까맣게 그을릴 얼굴을 상상하면서 까르르 웃고
수다떨면서 길가의 무심코 지나치면 보이지 않을 작은 꽃들에도 시선을 주고 이름을 물어보다가도
굳이 이름을 알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 하루였다
우리가 그 이름을 알던 모르든지간에 꽃들은 여전히 존재할것이고 계절이 지나면서 지고 피고를 반복할 텐데
우리의 관심이 그들에게는 그다지 필요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그대로 두는것이 더 좋을 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손이 닿는 순간 그 때부터 파괴의 시작이니 말이다
한 두시간의 산책후 점심을 먹고 한 잔 커피를 마시면서
담 달을 기약한다
어디로 갈까?
물이 올때
- 허은실-
풀벌레들 숨을 참는다
물이 부푼다
달이 큰 숨을 부러 놓는다
눈썹까지 차오르는 웅얼거림
물은 흘릴 듯 고요하다
울렁이는 물금따라 고둥들 기어 오를 때
새들은 저녁으로 가나
남겨진 날개를 따라가는 구름 지워지고
물은 나를 데려 어디로 가려는가
물이 물을 들이는 저녁의 멀미
물이 나를 삼킨다
자다 깬 아이들은 운다
이런 종류의 멀미를 기억한다
지상의 소리를 먼 곳으로 가고
나무들 제 속의 어둠을 마당에 흘릴때
불린 듯 마루에 나와 앉아 울던
물금이 처음 생긴 저녁
물금을 새로
그으며 어린 고둥을 기르는 것은
자신의 수위를 견디는 일
숭어가 솟는 저녁이다
골목에서 사람들은 제 이름을 살다 가고
꼬리를 늘어뜨린 짐승들은 서성인다
하현의 발꿈치
맨발이 시리다
물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