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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책 친구들에게 자주 추천받는 작가 중에 하나인 “폴 오스터(Paul Auster)”는 그의 대표작이라는 <뉴욕 3부작>과 <달의 궁전>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지난 2011년 3월에 알라딘 신간평가단 소설 부문 선정 책인 <보이지 않는(원제 Invisible/열린책들/2011년 1월)>으로 만나본 적이 있었다. 추천을 많이 받았었던 터라 기대감에 읽었는데 기승전결이 명확하지 않은 서사 구조, 대화 부분과 서술을 구별하기 힘든 형식, 근친간의 사랑 장면 등 내 취향과는 잘 맞지 않는 작품이었지만 묘한 여운이 느껴졌던 책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한 권 만으로는 호불호를 평가할 수 가 없어서 서평에도 이 책 한 권만으로 온전히 평가하긴 힘들어 그에 대한 평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고 적었었다. 그런데 2년 여 만에 다음으로 미뤘던 평가를 하게 될 기회가 생겼다. <선셋 파크(원제 Sunset Park / 열린책들 / 2013년 3월)>이 바로 그 소설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알라딘 신간평가단 소설 부문 선정 책으로 만나게 되었으니 신간평단으로서 참 묘한 인연이다. 시기적으로 2년이라는 터울은 있지만 한 작가가 두 번이나 신간평가단 책으로 선정된 것을 보면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를 온전히 평가할 수 있을까? 기대감과 부담감을 함께 느끼면서 책 표지를 열었다.

 

버려진 집을 청소하고 수리해서 구매 희망자들에게 보여줄 사진을 찍는 일 - 그런 작업을 폐가 처리라고 부른다 - 을 하고 있는 스물 여덟 살 청년 “마일스 헬러”는 여섯 달 전 5월 중순 어느 토요일 늦은 오후, 공원에서 순전히 우연으로 자신과 같은 책을 읽고 있는 열 일곱 살 소녀 “필라 산체스”를 만난다. 소녀가 아직 미성년자이긴 했지만 둘은 사랑을 했고, 결국 함께 살림을 차리게 된다. 소녀도 2년 전 차 사고로 부모가 돌아가시는 불운한 환경이었지만 청년 또한 결코 순탄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 그는 단순한 Em내기 폐가 처리 노동자가 아니라 명문 고등학교를 나오고 유수의 대학을 3년간이나 다닌 똑똑하고 유능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의붓 형과의 다툼이 우연치 않게 형의 죽음으로 이어져 그 죄책감에 집을 뛰쳐나와 7년 동안 미국 여기저기를 방황하며 닥치는 대로 삶을 살아오다가 드디어 소녀를 만나 정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소녀와 얽힌 어떤 사건으로 다시 플로리다를 떠나게 되고, 방황 중에도 연락을 주고 받았던 고등학교 친구 “빙 네이선”의 도움으로 7년 전 떠나온 고향인 뉴욕으로 돌아온다. 뉴욕 외곽 지역인 “선셋 파크”의 구석진 곳에 위치한 버려진 전물에 함께 모여 살게 된 빙과 “엘런”, “앨리스”, 그리고 마일스. 모두 간단치 않은 사연과 아픔을 간직한채 기묘한 동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책은 이렇게 선셋 파크에 모여 살게 된 네 청춘들의 각자의 사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면서 각자의 상처와 아픔을 조금씩 치유해나가는 이야기이다. 오스터의 작품들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오스터의 작품들은 대개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실로 시작하는 경우가 만나고 하는데 이 책 또한 상실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작품들과 동일한 경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미국의 금융 위기 이후인 시점 - 정확하게 몇 년도라는 지칭은 없지만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마일스의 직업이 빚 때문에 주인이 도망간 버려진 집을 청소하는 일인지라 이를 통해 미뤄 짐작해볼 수 있다 - 을 다루고 있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실과 함께 미국 전역에 드리워진 경제적인 상실감 또한 주요 테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뻔한 스토리라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과거의 상처 때문에 현재를 괴로워하지만 조금씩 상처를 치유해나가면서 실낱 같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는 그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뻔함”을 폴 오스터는 자신만의 필치와 스토리텔링으로 뻔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아니 오히려 약간은 감동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새로운 이야기로 창조해냈다. 단 두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폴 오스터의 색깔이 어떤 것인지 인지해낼 수 있을 정도로 자신만의 “틀” - 단어로 정의하자면 “상실”과 “치유”, 두 단어로 할 수 있겠다. 그의 작품들을 계속 읽어온 독자들이나 출판사는 여기에 “환상”이라는 단어도 추가하는 데 “환상”의 이미지를 느껴보기에는 두 권의 소설로는 너무 적은 것 같다 - 을 완성해낸 작가인 셈이다. 이처럼 폴 오스터 만의 완성된 주제의식과 스토리라인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그의 작품들을 계속 찾아 읽게 될 테고 그래서 그가 탄탄한 독자층을 거느리는 “성공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어떨까? 서두에 언급한 폴 오스터에 대한 평가를 이제는 내릴 시점인 것 같다. 그의 문체나 스토리 설정, 전개와 결말은 충분히 흥미롭고 재미가 느껴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흥미와 재미도 책에 몰입할 정도로 큰 것은 아니며, 가슴 먹먹해지는 감동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평범함은 넘어섰지만 그렇다고 비범하다고는 할 수 없는, 평범과 비범의 중간 수준의 소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고 갖게 된 폴 오스터에 대한 느낌이다. <보이지 않는>과 <선셋 파크>, 단 두 권 만으로 이런 평가를 하기에는 너무 성급하고, 그리고 많은 분들이 극찬한 <뉴욕 3부작>을 읽고 나서는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다음 권을 읽고 평가를 내려보겠다는 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금 시점에서는 이런 평가 밖에 내릴 수 없을 것 같다.

 

폴 오스터, 나에게는 아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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