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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ㅣ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영국 여류작가 “세라 워터스(Sarah Waters)”의 “빅토리안 로맨스”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라는 <끌림(원제 Affinity / 열린 책들/ 2012년 4월)>은 제목이 “끌림”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여성 작가 - 내가 남자인 탓인지 아니면 중년에 접어들어 감수성이 많이 메말랐는지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정선에 제대로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인데다가 그 시대상과 사회, 문화적 배경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부족한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거기에 약간은 부담스러운 동성애(레즈비언)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성적 소수자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그들의 사랑과 감정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을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 있을 것이다. 맞는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신론(無神論)”이 아니라 “불가지론(不可知論)”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보니 그들의 사랑을 지지하거나 공감하고 있진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부담될 수 밖에 없는 소재이다. 그간의 경험으로 보면 처음부터 이렇게 주저하게 되는 책들은 결국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몇 번의 망설임 끝에 표지를 펼쳐든 이 책, 읽는 내내 책에 몰입하지 못해 몇 번을 덮었다가 다시 읽은, 결국 줄거리만 쫓아 겨우 읽어낸 꽤나 애를 먹었던 그런 책이 되고 말았다.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가 절정기에 이르렀던 1874년 사랑했던 아버지의 죽음과 연인의 변심으로 인한 상실감에 우울증에 시달렸던 상류층 집안의 숙녀 “마거릿 프라이어”는 아빠의 지인이었던 “밀뱅크” 교도소 책임자인 “실리토” 씨의 권유로 교도소를 방문하게 된다. 여자 죄수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녀들을 교화(敎化)하고 자신의 우울증도 치료하기 위해서다. 소지품을 조심하고, 감옥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어떤 것도 말해서는 안 되며, 감옥에 있는 여자와 그 어떤 약속도 안된다는 경고를 듣고 여죄수들이 수감된 감옥 건물 안으로 들어선 마거릿은 죄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망설임과 두려움으로 시작된 대화가 계속되면서 마거릿은 자신이 비록 밖에서는 상류층 집안의 숙녀로 대우받고 있지만 이곳 밀뱅크 감옥에 수감 중인 저 죄수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아빠의 죽음에 충격 받아 몰핀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후 어머니의 혹독한 감시 하에 살고 있는 자신 또한 어쩌면 감옥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신비로운 매력의 한 여인을 만난다. 바로 자신이 영매(靈媒)라고 주장하는 “셀리나 도스”가 바로 그녀였다. 한해 전인 1873년, 셀리나는 자신이 불러들인 영혼인 “피터 퀵”이 의뢰인인 “브링크” 부인의 아들을 심하게 다루었고 그 광경을 목격한 부인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죽자 사기죄와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 수감된 것이었다. 초혼(招魂)할 수 있다는 셀리나의 말에 반신반의하던 마거릿은 셀리나의 물건들이 자신의 방에서 발견되고, 자신의 마음을 속속들이 맞추는 셀리나의 능력에 충격을 받으며 더욱더 그녀에게 매료되어 간다. 아버지의 죽음과 연인과의 이별에 상처를 받은 마거릿, 미신 취급당하며 사회에 외면당한 셀리나, 두 여자의 위험하면서도 치명적인 사랑이 그렇게 시작된다.
책은 두 주인공인 마거릿과 셀리나의 일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두 여자의 내밀한 속마음을 훔쳐 보는 듯한 은밀한 재미를 준다. 또한 불가사의한 존재라 할 수 있는 영매 셀리나의 일기 속에 감춰진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은 마지막까지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마지막 결말의 반전 또한 꽤나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작가의 빅토리안 로맨스 3부작 중 첫 작품인 <핑거스미스>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이 영화를 본 독자들이 “반전영화 수작”, “슬픈 반전 영화” 라고 평하는 것을 보면 이 작가, 미스터리적 이야기 전개와 반전에도 일가견이 있는 작가로 느껴진다. 프롤로그에서 셀리나가 구속되는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중간에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 잊었는데, 결국 그 사건에 반전이 숨어 있다니 꽤나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처럼 신비롭고 미스터리적인 구성, 그리고 여느 추리소설 못지 않는 반전 등 책 재미로만 놓고 보면 꽤나 수작이라고 할 수 있는 데, 난 이 책에 쉽게 집중을 하지 못했다. 서두에서 우려했던 거리낌들을 여지없이 느꼈기 때문이다. 두 주인공들의 일기를 교차 편집하여 그들의 심리를 여성작가 특유의 세밀하고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지만 쉽게 몰입되지가 않았고, 책 속 곳곳에 등장하는 동성애 코드 - 빅토리안 로맨스 3부작 중 다른 작품들은 꽤나 수위가 높았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직접적인 행위보다는 심리적인 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 들도 그렇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다 보니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지루하기까지 느껴져 줄거리와 큰 상관없는 사건이나 심리 묘사는 생략한 채 대화 위주로만 읽고 말았다. 여기에 요즈음 큰 활자(活字)에 성긴 간격의 편집에 익숙했던 탓 인지 30줄에 가까운 빽빽한 줄 간격으로 페이지 하나 가득 넘치는 작은 글자들에 눈이 쉽게 피로해진 것도, 그리고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대한 부담감 또한 몰입을 방해했던 원인 중 하나였다고 하겠다.
결국 이 책, 결국은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고 그러기에 이 책에 대한 평가 또한 유보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별점 후하기로 소문(?)난 내가 세 개 밖에 주지 않는 것도 이 책이 가치가 없고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올곧이 공감하지 못했다는 개인적인 투정 쯤으로 생각하면 맞을 것 같다. 혹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 글 보다는 책의 재미와 감동을 올곧이 느끼신, 제목처럼 이 책의 “끌림”의 요소들을 제대로 발견하신 다른 독자분들의 리뷰를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나도 기회가 된다면 다른 분들의 글들을 꼼꼼히 읽어보고 좀 더 느긋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핑거 스미스>를 책과 영화로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