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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소스의 철학
마시모 도나 지음, 김희정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철학과 술, 이 두 가지가 참 잘 어울리는 궁합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은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 1편을 보고 나서이다. 영화 장면 중 김두한의 여인이었던 “화자”(방은희)에게 두꺼운 안경을 쓰고 유약한 남편이 술이 취해 찾아오고 화자가 남편에게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의 철학 - 솔직히 그때는 이 세 명이 철학자인지도 제대로 몰랐었다 - 우리의 근대를 망치고 있다고 쏘아 붙이는 장면이 나온다. “고뇌하는 지식인(철학자)과 술”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레 받아져서 철학자들과 술은 절대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지금까지 생각해왔다. 그런데 마시모 도나의 “디오니소스의 철학(시그마북스, 2010년 3월)”을 보면 모든 철학자들이 술을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 책은 수많은 철학자의 저술과 사상을 통해 “철학”과 “술”의 오랜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책머리에서 “필연적인 무절제를 동반하는 술, 그 술의 즐거움에 건전하게 빠져드는 현상은 순수하게 철학적인 체험 속에서 고찰해볼 만한 주제”이며 “술이라는 담론이 그 장벽을 넘어서고, 협소한 인간 이성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도록 도울 것”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인식과 결합된 술이 그 너머의 철학의 세계”로 갈 수 밖에 없다고 강조하면서 우리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수많은 철학자들, 즉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철학자들로부터 몽테뉴, 칸트, 피히테 등의 근세 철학자들과 미셀 푸코, 이름도 생소한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같은 현대 철학자들까지 총 망라하여 그들이 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들의 삶과 저술, 사상들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그저 이름 한번 정도 들어봤을 정도로 철학에 깊은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솔직히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책이었다. 그래도 인상깊었던 몇몇 철학자들이 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이야기해본다.
 

 먼저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 철학자였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소개해보자. 둘은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졌던 두 사람은 역시 술에서도 전혀 상반된 견해를 나타낸다. 플라톤이 술은 숨겨진 “진리의 빛”으로 이끄는 존재로 생각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술을 마시고 하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에 불과하며, 술에 흠뻑 취한 자는 '이성적인 사고를 전혀 시도할 수 없으며', 술에 취한 상태에서는 '어쨌든 나쁜 생각으로 기운다'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그가 술에 대해 제기했다는 의문은 몇 천년이 지난 지금 읽어봐도 재미있는데, 
 

"술은 뜨거운 성질인데 술을 마신 자는 냉기를 느끼는가? 그리고 늑막염과 그에 유사한 병에 쉽게 걸리는가? 어째서 약간 희석된 술을 마신 자는 진한 술을 마신 사람보다 머리가 무겁게 느껴지는 것일까? 뜨거운 기운을 가진 아이들은 술을 즐기지 않는데, 어째서 시아파 사람들과 용맹한 남자들은 술을 찾는가? 그들 역시 뜨거운 열기를 내뿜지 않던가? 왜 술에 취한 상태에서는 짠맛과 물의 나쁜 맛을 더 잘 느끼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덜 느끼는가? 어째서 완전히 술에 취한 자는 그 주변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술기운이 돌면 멀리 있는 사물들이 잘 보이지 않는가? 왜 취한 자는 이따금 하나의 사물이 여러 개로 보이는가?"
 

라는 의문은 딱 우리가 술에 만취해서 겪게 되는 그 상황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술에 안취하게 마시는 방법으로 위에 떠 있는 독한 술을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큰 컵을 사용하고 알코올을 증발시키기 위해 술을 끓여 마시라고 충고하기도 했다는 데 이 점 또한 재미있다. 
 

 그 외에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은 자기 가치관과 사상에 입각해 술을 예찬하기도 하고 또는 술을 부정하기도 하는 등 모두가 술을 좋아하던 것만은 아니었다고 책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모두 다 소개할 수 없고  그저 내 멋대로 몇몇 철학자들의 생각을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읽어본다면,
 

Q: 여성들은 왜 남성보다 덜 취할까?
A: 칸트의 말을 빌자면 “왜냐하면 여성들은 자신의 본성을 쉽게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자제의 필요성"을 알기 때문에 술에 취하지 않으며 술 마시는 일은 남성들의 전형적인 악습이다. 여성들은 품위에 있어서는 남성을 능가하며 남성은 '무분별하다'. 그렇기 때문에 술의 악습에 더 잘 빠진다.

Q: 최근 술 취하고 저지르는 범죄를 감형하는 판결이 나왔는데 과연 이는 합당할까?               A: 몽테뉴는 술 취함은 '몰상식하고 난폭한 악행'으로서 그 안에는 정신적인 면이 없으며 관대함도 없으며 '다른 이들에게 해를 덜 끼치고 덜 위험하다 할지라도 시민사회를 보다 직접적으로 송두리째 동요시키며 분별하고 경박스러운 음주는 그 자체가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피히테는 '분노 또는 취기로 자신의 이성을 컨트롤하지 못한 범법자는 고의적으로 사악한 의지를 가지고 저지른 죄악‘이며 이는 오히려 가중사유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정신을 감당하지 못할 때까지 취하는 것이 습관화된 자는 동물로 변하는 것을 정식으로 허락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회 안에서 이성적인 존재로 살 수 있는 단계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음주에 대한 처벌을 아주 단호하게 하여야 한다고 한다. 미셀 푸코는 광기에 의해 타락된 의지는 '순수한 상태일 수 없으며, 비이성적인 일탈 행위는 결정적으로 사악한 의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배척되어야 하고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이야기한다. 

Q: 젊은이들이 흥청망청 취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쇼펜하우어는 윤리의 중요한 규율은 '삼가하고 조절하는 것', 즉 '우리의 욕망에 제한을 두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하면서, 알코올의 혼미상태는 젊은 시절 순전히 환각적인 자신의 즐거움을 찾는 무의식과 어리석음에 대한 하나의 표식일 뿐이고 청춘이 웃음을 잃고 '의기소침한' 시기, 하지만 지혜로움을 갖추었을 때에, 비로소 보다 참되고 각성된 시각으로 세상에 대해 그리고 모든 존재에 대해 너그러움을 유지하기 위해 술이 필요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위에서 소개한 몇몇 철학자들이 술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책에서는 술에 대해 관대하고 찬미하는 철학자들을 더 많이 소개하고 있으니 말이다.
 

작가 또한 술에 대한 일방적인 찬미나 또는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취함과 절제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며 “동일성의 원칙은 취함이 적절하고 참되게 표출되었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적절한 절제 속에서 이뤄지는 취함이 신들의 넥타라고까지 불리웠던 술의 진정한 가치를 이끌어낸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에게는 참 어려운 책이었지만 그래도 궁금했던 “철학과 술”의 관계에 대해서 공부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이 책에 나오는 철학자들의 멋들어진 술에 대한 해석을 이야기할라치면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면박을 당하기 일수일 것 같다. 결국은 세상 사는 이야기하면서 두서없이 횡설수설 늘어놓는 “개똥철학”이나 늘어놓게 될 것 같다.  술에 대한 진지하고 철학적인 해석이 애시당초 불가능한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눈크 에스트 비벤둠 (Nunc est bibendum, 자 한잔 합시다!)" 라는 이 책의 마지막 문구처럼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한 잔 하는 것이 그 어떤 철학적 해석보다도 더 값질 것이다.

이런이런 술에 대해 잔뜩 늘어놓으니 오늘 저녁 술 한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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