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권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 - 진시황과 이사 - 고독한 권력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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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일 “삼국지”가 신문에 연재되던 당시 연재 글과 함께 실렸던 삽화가 참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삼국지야 워낙 다양한 작가들 작품을 많이 읽어서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연재물 상단의 한컷 한컷 삽화는 몇몇 삼국지 책에서 소개하는 중국풍의 그림들과는 전혀 다른, 마치 예전 대학시절 흔히 보았던 운동권 걸개 그림처럼 거칠고 굵은 선, 흑백명암 처리, 판화로 찍어낸 듯한 느낌이 참 독특했었다. 그 당시에 삽화를 그린 작가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해보니 한국 신문연재 사상 최연소인 신예 삽화가인 “김태권”이란 작가였다. 물론 홍보글이긴 하겠지만 기자도 “검고 강렬한 필치로 동서양의 다양한 장식적 요소를 활용해 세련된 화면”이 가히 충격적이라고 설명하고 있어 내 느낌이 맞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 작가는 이 책과 같은 삽화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은 작품들이 여러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다른 작품들의 그림은 접해보지 못했지만 이름만큼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에 남는 작가였는데 - 그의 강렬한 그림만큼 “태권”이라는 이름또한 쉽게 기억되는 강렬한 이름이다 - , 그 삽화가가 최근 자신의 이름을 단 그림 역사책을 출간했다. 역시 삼국지의 시대를 아우르는 중국 고대 제국 “한(漢)”의 역사를 그린 “김태권의 한(漢)나라 이야기”(비아북, 2010년 4월)“이다. 

 작가는 왜 한나라 이야기를 그리게 되었을까? 작가는 머리말에서 “서양 문명에서 로마 제국에 해당하는 것이 동아시아에서는 ‘한나라’”라며 동아시아를 이해하는 첫걸음으로 “한나라”를 선택했으며, 작가 개인적으로는 “남다른 의지를 가진 사람이 그 의지 덕에 출세를 하고 또 바로 의지 탓에 파멸하는 비극”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사기>와 <한서>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라고 이 책을 쓴 이유를 이야기한다. 전 10권으로 출간될 예정이라는 “한나라이야기” 첫 권인 이 책은 여러 작가들의 소설 “초한지”의 도입부처럼 “아버지(仲父)”라고까지 불렀던 여불위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주변에 여불위의 사람들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진시황이 법가의 “이사”를 만나는 장면(B.C. 238년)부터 시작하여 진시황 사후 “호해”가 이사의 도움의 통일제국 “진”의 2대 황제로 오르고 진승과 오광의 난이 일어나는 장면(B.C.200년)까지 사마천의 <사기> 중 ‘진시황 본기’와 ‘이사열전’을 뼈대로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림은 역시 장정일의 삼국지에서의 삽화처럼 굵고 거칠면서도 시원시원한 그의 특징이 여실히 들어나며 머리관, 옷 문양 등은 그동안 중국 영화나 만화 등에서 본 익숙한 형태의 그런 옷들이 아니라 각종 고분이나 문헌을 참조하여 그 당시의 복식을 철저히 고증한 것이 눈에 띄인다. 특이한 점은 인물들의 얼굴은 하얀색 머리와 눈동자, 오독한 콧날, 쌍커풀 진 눈등 다소 서양적으로 묘사된 점인데 복식과 마차, 수레, 용 등 전통적인 중국 동물문양 등 동양식 그림들과 안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독특한 그림체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예전 삼국지 삽화를 그릴 때도 “서양으로 건너간 상상력을 다시 동양의 소설 삽화로 활용하는 방식”이라던 화가 클림프, 비어즐리의 그림을 참조했다고 한 인터뷰 기사를 읽었었는데 이처럼 동서양 이미지가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그림체가 작가만의 독특한 개성이라 여겨진다. 

 그동안 소설들이 극적인 재미를 위해 여불위를 진시황의 아버지로 묘사하거나 이사를 친구 “한비자”도 죽여 버리고 자신의 정치생명과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진시황의 유언을 조작하여 둘째아들 “호해”를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하는 간악한 모사꾼으로 묘사하는 반면, 이 책에서는 비교적 원전인 사기의 기록에 충실히 따르면서 이사를 옛날 정치만 들먹이는 수구세력을 타파하고 “법”과 “체제”를 통치이념으로 국가 기반을 닦은 “법가사상”에 철두철미한 정치가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아방궁”, “만리장성” 등으로 전쟁과 살인을 좋아한 폭군으로 여겨왔던 진시황을 하루에 처리할 문서의 무게를 목표랑으로 삼아 매일 밤늦게까지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성실히 일을 하고, 주요 정책도 독단이 아니라 토론을 거쳐 결정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실시해 권력의 안정을 꾀하고 “법치”를 강조했던 군주로 재평가하는 장면은 인상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각 장 말미에는 "<사기>를 읽다" 라는 코너를 두어 앞에서 언급한 소설 속 극적 장치들에 대하여 원전 사기를 통해 부정확한 정보나 오류를 바로 바로잡고 원전에서도 의심스러운 부분은 작가의 견해를 곁들어 재해석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진시황의 대표적인 실정(失政)인 “분서갱유”중 “갱유(坑儒)”는 사실은 막대한 돈을 드리고도 불사의 명약을 찾아오지도 못하고 황제가 “일벌레”라고 비난하는 방술사들과 체제 비판세력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실제로 유가 지식인들은 몇몇 정도에 지나지 않은, 너무 유학자들 입장에 치우친 표현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진시황이 죽고 난 직후 조고와 이사가 남몰래 밀담을 주고 받으면서 음모를 꾸몄다는 이야기는 밀담이 백년 후 사마천의 <사기>에 고스란히 나오게 된 점을 의심스러워 하며 2천 2백 년 동안 풀리지 않는 수수계기로 남은, 고대사 최대의 미스터리라고 이야기한다. 독특한 그림체와 재밌는 역사해설이 장점인 이 책은 만화 책이라기 보다는 그림 역사 책으로서 청소년들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읽어도 좋을 만큼 쉽고 재미있다. 특히 시리즈 중 9권과 10권으로 나올 “삼국지”부문은 삼국지의 삽화와는 다른 그의 그림과 해석이 그려질 것으로 기대가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천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 시대에 강력한 “법치”를 전가의 보도마냥 휘둘러대는 현 시대가 오버랩되는 것은 나만의 과도한 해석일까? 정권을 비판하는 각종 집회나 문화행사를 온갖 법을 들어 불법으로 몰아 법정에 세우기에 바쁘고, 자유로운 소통의 공간조차 법으로 틀어막고자 시도하고, 합법이라는 미명하에 방송과 공공기관을 자신의 사람들로 채우고, 여야간 합의에 의해 입법화한 법조차도 국익과 국가의 미래를 들먹이며 뜯어고치고자 하는 그들을 보면서 “법치”가 능력이나 권력에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적용되기보다는 단지 권력자의 강력한 통치 수단만 여겨질 때 얼마나 위험한지를 제발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천년 전의 사례를 제발 그들이 귀담아 듣기를 바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참 씁쓸하면서도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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