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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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나에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이미지는 이 책에 나온 다음의 묘사와 상당히 비슷하다.

 

겨울밤에 예루살렘의 건물들은 검정색 배경 앞에 얼어버린 회색의 형상처럼 보인다. 억눌린 폭력을 잉태하고 있는 풍경. 예루살렘은 때로 추상적인 도시가 된다. 돌과 소나무, 그리고 녹슨 쇳덩이들.(p.23)

 

회색빛, 억눌린 폭력, 뭔가 명확하지 않은 추상적인 느낌, 돌, 쇳덩이...이런 단어들이 이스라엘과 겹쳐진다.

 

어느 겨울날 아침 아홉시에 나는 계단을 내려오다가 미끄러졌다. 한 낯선 청년이 내 팔꿈치를 잡아주었다. (p.7)

 

지질학을 공부하는 미카엘과 히브리 문학을 공부하는 한나의 첫 만남은 이렇게 설레이는 우연으로 시작된다. 두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상대방의 모습에 끌리게 되고 서로를 알아갈 새도 없이 바로 결혼을 한다. 미카엘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했던 한나는 결혼과 함께 찾아온 임신과 출산, 그로인해 공부를 중단해야 하는 현실과 만나며 서서히 병들어가기 시작한다.

'하루하루의 음울한 똑같음' 속에서 알 수 없는 슬픔에 젖어 들며 한달치 생활비를 쇼핑으로 써버리는 등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나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미카엘은 다 참아내며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는다. 이런 미카엘의 모습이 한나를 더 견딜 수 없게 만들고 두 사람 사이에는 '냉정한 균형','불편한 타협' 만이 남는다.

 

우리는 이렇게 앉는다. 나는 냉장고 옆에 등을 기대고 밝은 푸른색 직사각형 모양의 부엌 창문을 마주본다. 미카엘의 등은 창을 향하고 있고 그의 눈에는 냉장고 꼭대기의 빈 병들이나 부엌 문, 복도의 일부, 그리고 욕실 문이 비친다.(p.169)

 

마주보고 앉아 있지만 서로 바라보는 곳은 다른 두 사람. 소통하지 못하는 부부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인상깊었다.

하지만 나는 같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한나에게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한나의 내면심리을 좇아가며 읽어야 하는 책이기에 그녀의 감정을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지만 그녀가 몽상속에서 추구하는 세계가 너무 허황되고, 여자가 결혼 후 겪는 상대적 박탈감과 우울증을 감안하더라도 그녀의 변덕과 불안은 그 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런 한나를 다 받아주고 가정과 학업에 최선을 다하는 미카엘이 바보같아 보였다. 현실에 이런 남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작품은 이스라엘 예루살렘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만남과 결혼이라는 현실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 작가 아모스 오즈는 내 문학 속 주인공들은 '현실과 꿈을 조화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며 별을 보다 실족하는 이상주의자들이다'라고 했는데, 이 작품은 바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나는 '냉담한 도시' 이자 '억눌린 폭력을 잉태'하는 도시인 예루살렘에서 사는게 힘들다. 그녀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 '이본 아줄라이'가 되어 자신이 만든 세계에서 그 결핍을 채우려 한다. 그 꿈 속에서 자신은 여왕이자 황제이며 음모에 대항해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하지만 한나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스라엘이며 미카엘의 아내이다.

제목 '나의 미카엘'이 어느 순간 '나의 이스라엘'로 느껴지는건 이상을 추구하는 한나에게 이스라엘과 미카엘은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거부할 수 없는 실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나는 현실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시간을 환기하고 기억에 집착하며 죽음을 두려워한다. 현실에 발 붙이지 못하는 한나에게 시간의 흐름은 견뎌야 하는 고통이다.

이런 한나의 모습은 당시 전쟁으로 암울하고 불안했던 이스라엘의 모습과 겹쳐진다. 예루살렘 도시의 묘사와 한나의 내면묘사가 뒤섞이고 현실과 꿈이 뒤섞이는 이 작품은 그 자체로 한나이기도 하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 '실족한 이상주의자'를 이토록 우울하고 불안하게 당시 이스라엘의 분위기와 연결지어 보여준 아모스 오즈.

쉽게 공감할 순 없었지만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을 균형된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그의 노력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한나와 미카엘의 대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거죠?"

"당신의 질문은 무의미해.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니야. 그냥 살고 있지. 그걸로 끝이야." (p.265)

 

나는 미카엘의 말에 더 수긍이 가지만 단순히 '그냥 산다'고 말하는 건 어딘가 서글픔이 느껴진다. 내 삶에 질문을 던지는 또 한 권의 책이다.

 

아! 꼭 하고 싶은 말. 책 뒷표지에 아서 밀러의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라는 추천사가 있는데, 이건 러브 스토리가 절대 아니다. '아름다운 서정시'라는 말도 조금은 부적절하다. 차분한 글이지만 서정시가 주는 아름다움보다는 한나의 불안정한 감정이 지배적이라 우울하고 침체된 문장에 깔리는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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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5-26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솔직하면 안 되는데..... 그래도 가슴에 손을 얹고 얘기하자면, 이 책, 재미 없었습니다. ㅋㅋㅋ

coolcat329 2020-05-26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ㅋㅋ 저도 동감입니다🤣🤣🤣 제가 폴스타프님 글 읽고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사뒀는데 이건 좀 다를거라 기대해 봅니다.
 
새엄마 찬양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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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페루가 배출한 세계적인 작가로 2010년 노벨문학상을 받기까지 했는데, 난 이 작가를 작년에야 알게 되었다. 우연히 중고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사두었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했다.

 

1988년 발표한 이 소설은 페루의 수도 리마의 한 중산층 가정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등장 인물은 주인 리고베르토와 아들 알폰소, 리고베르토와 재혼한 아내 루크레시아, 하녀 후스티니아나이며 이야기는 리고베르토의 저택에서 펼쳐진다.

루크레시아는 아름다운 40세 여인으로 처음에 리고베르토와 재혼할 때 의붓아들인 알폰소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까봐 걱정했지만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생일 축하해요, 새엄마!

돈이 없어서 선물은 준비 못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꼭 일등할게요. 그게 내 선물이 될 거예요. 새엄마는 이 세상에서 최고예요. 가장 예쁜 사람이고요. 나는 매일 밤 새엄마 꿈을 꿔요.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해요! (p.13)

 

자신의 생일날 의붓아들이 손으로 쓴 편지를 받고 아들이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는다. 내가 루크레시아였어도 정말 기뻐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다음부터 이야기는 순수와 욕망, 도덕과 금기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참으로 요사스럽게 전개되니 직접 읽어보시길...

 

온몸을 훑어대는 에로틱한 묘사, 새엄마와 의붓아들의 사랑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소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묘사와 이야기 구성에 저속한 외설이라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더 밝고 건강한 성적 유희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고전명화부터 현대 추상화까지 유명 미술작품들을 이야기 중간중간에 삽입하여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와 연관지어 풀어나감으로써 작품에 풍성함을 더하는 독특한 서술방식이었다. 처음에 나오는 그림부터 나의 시선을 압도, 또 그 그림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요사의 유머와 자연스러운 상상력에 감탄을 하게 된다.

 

루크레시아 남편인 이 리고베르토라는 사람은 또 어떤가!

자신의 육체를 정화하는 그만의 '느리고도 복잡한 작업'이 있으니 이 또한 읽어보시길 바란다.

 

비록 너무 늦게 알게 된 작가이지만 이 분의 다른 작품들도 꼭 읽고 싶다. 일단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를 사두었다. 조만간 읽게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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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5-23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주 좋아라하는 작가랍니다.

저는 <판탈레온>으로 입문했답니다.

초기작인 <녹색의 집>이 좀 재출간
되었으면 싶은데 소식이 없네요.

최근 모 출판사에서 비교적 초기
작품인 <까떼드랄>을 출간해서 쟁여
두긴 했는데 선뜻 손이 가질 않네요.

coolcat329 2020-05-23 13:31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 글 읽어서 좋아하시는거 알고있었는데 판탈레온으로 입문하셨군요! 기대가 더 커지네요😚

Falstaff 2020-05-23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책 읽으셨네요. 이 작품의 후속작이 <레고베르토 씨의 비밀 노트>입니다. 그것도 꽤 흥미롭습니다. 에곤 쉴레의 그림을 좋아하시면 읽으실 만한데, 한 가지 염병할 건, 얇은 책이 두 권으로 되어 있다는 거.... 웬만하면 중고책 사서 읽으셔요.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0-05-23 21:20   좋아요 1 | URL
아! 꼭 읽어 보겠습니다. 폴스타프님 글 읽고 후속작 에서 요 발칙한 알폰소녀석이 루크레시아를 찾아간다는걸 알았네요.중고를 알아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
 
크눌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1
헤르만 헤세 지음, 이노은 옮김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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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이다. 각 이야기는 발표된 시기가 다른데, 책 속 순서대로 <초봄>은 1913년,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은 1908년, <종말>은 1914년에 각기 발표되었고 1915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다시 발표되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크눌프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천성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험한 노동을 하지 않아 아름다운 손을 가졌고, 걸음걸이는 날렵하며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밝음을 가진 인물이다. '직업도 없는 방랑자로서 불법적이고 비천한 존재'(p.15)였으나, 사람들은 크눌프를 보며 자유를 꿈꿀 수 있고 '집을 즐겁고 밝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방문을 감사해한다.

 

속세의 관점에서 보면 크눌프의 삶은 비루하고 한심해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자유와 방랑에는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정직함이 있다.

첫번 째 이야기 <초봄>에서 크눌프는 무두장이 친구의 집을 방문한다. 남편은 성실하고 아내는 사랑스러우며 집안은 따뜻하다. 겉보기엔 이렇게 안온한 가정이지만 친구의 부인은 남편 몰래 크눌프를 유혹한다. '예절바르고 근사한' 크눌프와 비교해 투박해 보이는 남편에게 화가 난다. 이것이 세속적인 인간 세상의 민낯이다. 친구는 크눌프에게 방랑을 멈추고 한 곳에 정착하라고 하지만 어린 아이같이 순수한 크눌프는 이런 세상에서 사는게 힘들었을 것이다. 적당히 더러워야 세상살이가 쉬운 법이니까.

 

두번째 이야기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은 '즐거운 청년시절' 여름 한 때 크눌프와 이곳 저곳을 함께 여행하던 '나'의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행 중 사랑과 우정, 인간의 영혼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몫을 철저히 혼자서 지고 가는 것'이라고 말한 크눌프에게 동의하지 못했던 나는 그가 떠난 후 '고독'이라는 쓰라린 감정을 처음으로 맛보게 된다.

 

그러나 이런 크눌프도 죽기 전에는 자신의 인생에 의문을 갖는다.

자신의 지난 삶에서 그 어떤 의미도 찾지 못하는,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외롭고 비참할것이다.

하지만 헤세는 크눌프를 그렇게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는다.

크눌프는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을 만난다. 그에게 따진다. 왜 프렌치스카가 떠나고 내가 망가졌을때 날 죽게 하지 않았냐고. 밝고 유쾌한 크눌프에게도 못 이룬 사랑은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이었었던 것이다. 그는 아름다웠던 순간들 보다는 오로지 이루지 못한 프란치스카와의 사랑에만 집착하고 괴로워한다. 하느님은 크눌프에게 그가 잊고 있던 아름다운 시간들을 되찾게 해준다. 또한 크눌프가 많은이들을 웃게 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사는 이들에게 잠시나마 자유를 그리워하게 했다는 사실도 일깨워준다.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했었다."(p.134)

 

하느님이 마지막에 묻는다.

 

"모든 것이 제대로 되었느냐?"

"네. 모든 것이 제대로 되었어요."(p.135)

 

하느님의 음성은 어머니처럼 다시 첫사랑 헨리에테처럼, 또 다시 두번째 애인 리자베트의 음성처럼 들려오고 그는 편안하게 죽음을 기다린다.

참으로 따뜻한 결말이다. 하얀 눈위에 누워 드디어 마음의 평안을 얻고 죽음을 기다리는 크눌프의 모습이 그려진다.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의 순간, 이렇게 평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젠 '잠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다면...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고 끝맺으려 한다.

<초봄>에서 크눌프는 재단사 친구에게 성경이야기를 하며 이런 말을 한다.

 

"성경의 여기저기에서 난 꼭 아름다운 그림책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네."(p.37)

 

나야말로 헤세의 이 책을 보며 '아름다운 그림책'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낯선 도시에 와서 외로워하는 하녀를 위해 건너편 창문에서 휘파람을 불어주는 크눌프의 낭만적인 모습, 친구 부인의 유혹을 피해 몰래 집을 빠져나가는 재밌는 장면, 젊은 시절 함께 방랑하던 친구와 교회묘지에 누워 이야기 나누는 모습 그리고 수북이 쌓인 눈 위에서 평온히 눈 감는 마지막 모습까지 장면 장면이 따뜻한 그림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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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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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헝가리 작가 서보 머그더(1917~2007)의 책이다. 1987년 발표된 이 작품은 그녀를 세계적으로 알렸고 2003년 프랑스 페미나 상, 2015년 미국에 출간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작가인 '나'와 가정부 사이의 20여년에 걸친 이야기라는 것만 알고 읽기 시작, 첫 장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에메렌츠를 죽인 것은 나였다. 그녀를 죽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구원하고자 했다는 말도, 여기서는 그 사실 관계를 바꿀 수 없다.'(p.10)

 

내가 죽였다는 고백이 너무 갑자기 튀어나와 놀람과 동시에, '왜 죽였을까? 도대체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궁금증이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한 동력이었다.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화자인 '나'는 전업 작가로 전향하면서 집안일을 도와줄 가사도우미가 필요하다. 마침 친구가 한 명의 여성을 추천하는데 그녀가 바로 '에메렌츠'이다. 친구는 추천을 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돈은 중요하지 않고 그녀가 우리를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나는 에메렌츠와의 첫 만남에서 역시 범상치 않음을 느낀다. 고용주인 내가 갑(甲)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가 이것저것 따져보며 갑의 위치에 있다. 마침내 그녀의 시험에 합격한 나는 그녀를 고용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에메렌츠는 보통 가정부와는 다르다. 급료는 본인이 일해본 후 결정하며, 근무시간도 들쑥날쑥해서 하루 종일 보이지 않다가 밤 늦게 나타나 새벽까지 청소를 하기도 하고 폭설이 내려 계속 눈을 쓸어야 할 때는 며칠씩 집에 나타나지 않다가 눈이 그치면 와서 밀린 일들을 한다. 하지만 결과는 늘 완벽하고 내가 요구하는 것 이상을 해낸다. 그녀는 '노동에서 기쁨을 느꼈고, 노동을 즐겼으며, 일이 없는 시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다. 잠도 누워서 자지 않고 '연인들의 의자'라 불리는 작은 소파에서 선잠을 자는게 전부다.

한편 아픈 이웃에게 영양식을 갖다 주고  길을 잃고 헤매는 동물들의 주인을 찾아주며 눈이 오면 거의 모든 집 앞의 눈을 쓰는 등 동네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지역 사람들 모두 이런 그녀를 좋아하고 경찰도 그녀를 신뢰한다.

 

그러나 에메렌츠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한다. 근무 시간 외에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건 용납하지 않는다. 사람들과도 일상적인 이야기 외에는 나누지 않는다. 무표정한 얼굴, 월급 외에 별도의 사례는 거절, 칭찬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엔 일만하는 그녀가 두려웠던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행동으로 인해 그녀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등 혼란스럽다.

 

어느 날 남편의 수술로 심란한 나에게 에메렌츠가 따뜻한 와인을 건네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세 살도 되기 전 돌아가신 아버지, 전쟁이 일어나자 입대한 새아버지도 전사, 너무나 사랑하던 쌍둥이 동생이 그녀가 보는 앞에서 번개에 맞아 검은 숯덩이로 변한 일,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우물에 몸을 던지는 등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끔찍한 일들을 겪은 에메렌츠.

'나'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이야기해준 그녀와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지만 다음날 다시 냉담한 태도의 그녀의 모습에 상처를 받는다.

 

이런 식으로 그녀와 '나'는 20여년이란 세월을 함께 하면서 크고 작은 일들을 겪는다. 에메렌츠가 자신의 특별한 손님을 '나'의 집에서 대접하려다 그 손님이 약속을 취소하자 엄청난 욕설과 분노로 절규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길거리에 버려진 귀가 부러진 강아지 조각상을 집에 들여놨다가 한바탕 난리도 나고, 친구 폴레트의 자살에 에메렌츠가 도움을 준 일 등을 겪으며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 그녀의 감춰진 삶을 조금씩 알게되고 그만큼 감정적으로 가까워진다. 그 가운데 그녀가 왜 침대에 누워 자지 못하는지, 그녀가 한 때 약혼도 했었지만 제빵사였던 그 약혼자는 과꽃혁명 때 몸이 갈기갈기 찢겨 죽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에메렌츠 마음의 문은 조금씩 열리는 반면 실제 그녀가 사는 집 문은 그 누구에게도 -단 한 번의 경찰 수사만 빼고 - 열리지 않고 늘 굳게 닫혀 있다. 그 누구도 그녀의 집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러다 딱 한 번 '나'에게 그 문이 열린다. 왜 나에게는 자신의 집을 보여줬을까. 그녀의 금지된 세계를 본다는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크리스마스 전날 나는 에메렌츠가 눈을 쓸고 있는 것을 본다. 나는 그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TV를 줬고 그녀가 그 선물을 받아들여 너무나 기뻤다. 근데 그녀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와서 눈을 쓸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마치 하늘이 우리 얼굴에 그 선물을 내던지기라도 한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 쉬지 않고 일하는 그녀를 보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나와 남편. 그러나 나는 그 장면을 애써 외면하며 크리스마스의 따뜻함과 달콤함 속으로 빠져든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길 청소에 온 힘을 쏟은 에메렌츠는 심한 독감에 걸린다. 그러나 이제 그만 쉬라는 나의 말에 그렇게 돕고 싶으면 당신 집이나 잘 건사하라고, 눈이 쏟아지는 동안 자신은 눈쓸기를 멈출 수 없다고 한다.

반면 때마침 나는 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서 빛을 보게 된다. 사진촬영, 인터뷰, 거기다 에메렌츠가 없기에 늘어난 집안일을 하느라 매우 분주하다. 병이 깊어진 에메렌츠는 더이상 길에서 보이지 않는다. 집안에 틀어박혀 의사는 커녕 자신에겐 '휴식만이 필요할 뿐'이라며 그 누구의 방문도 원하지 않는다. 에메렌츠가 너무나 걱정된 나는 그녀를 돌보기 위해 여러가지 제안을 하지만 그녀는 한결같이 자기를 가만히 놔두라며 누구든지 들어오는 사람은 손도끼로 죽을 수 있다며 나를 공포에 떨게 한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점점 절정으로 향하고 두문불출하는 에메렌츠를 더는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에서, 그녀를 집에서 나오게 해 병원에 보내려는 '작전'이 계획된다.

 

책을 다 읽고 다시 한 번 훑어 보면서 에메렌츠가 '나'를 처음 만나 했던 이 말에 나의 눈이 오래 머물렀다.

 

"누구의 것이든 더러운 속옷은 빨지 않아요."(p.15)

 

서양 속담에 "Don't wash your dirty linen in public."이란 말이 있다. 직역하면 남들 앞에서 더러운 속옷을 빨지 말라는 뜻으로 여기서 'dirty linen'은 개인의 내밀한 곳, 밝히지 말아야 할 치부를 뜻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비밀이 있다. 그것이 타인에게 다 드러났을 때 인간은 수치심을 느낀다.

에메렌츠는 남의 집안일을 하는 가정부이지만 늘 '격식을 갖춘 복장'을 하고 있다.

늘 머릿수건을 쓰고 '검은 소매가 긴 고운 천으로 만든 옷'에 '끈 달린 에나멜 가죽신'을 신는다. 식탁에서 손님들을 접대할 때도 그 모습은 매우 품격있다.

반 인텔리주의자로서 교육받길 거부하고 평생을 노동을 하며 살아왔지만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존엄을 목숨처럼 지켜왔다. 처음에는 이 말이 자존심이 강한 가사도우미의 단순한 말이라 생각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이 말이 얼마나 그녀의 가치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는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치부가 있고 그것은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그녀의 가치관을 말이다.

 

에메렌츠의 삶은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의 연속이었다. 평생을 육체노동을 하며 정직하게 살았고 주변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줌에 있어서도 그들의 가장 소중한 부분은 지켜주고자 했던 그녀는 내가 소설에서 만난 인물 중 가장 품격있는 인물이다.

 

에메렌츠가 평생을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그녀의 문이 그토록 오랫동안 닫혀져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녀를 죽게 놔둘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 책 속의 화자처럼 책을 읽는 '나'도 참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당신은 사랑할 줄 모르지요. 나는, 그런데도 어쩌면 당신이 그것을 알 것이라 생각했어요."(p.339)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소통하며 믿는다는건 무엇인지,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결코 쉽게 답할 수 없는 그 어떤 메시지를 이 책은 에메렌츠라는 강렬한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서늘하게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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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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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베르는 '멋진 장면'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상황들의 정수'에 도달하고자 했다. 상황들의 정수, 모든 인간사의 정수에.

-밀란 쿤데라, <커튼>

 

꼭 읽고 싶었던 플로베르의 이 책을 지난 달에 정말 감탄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거의 두 번을 읽었는데 '오직 스타일의 내적인 힘만으로 저 혼자 지탱되는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한 거의 5년 간의 피나는 노력이 이 책 한 권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마담 보바리>는 1857년에 프랑스에서 출간이 됐는데, 마침 보들레르의 시 <악의 꽃>도 같은 해에 발표되어 프랑스 문학사에 중요한 해라고 한다. 둘다 풍기문란이라는 이유로 기소가 됐는데,부유했던 플로베르는 무죄판결을 받으나 가난한 보들레르는 벌금형과 6편의 작품을 삭제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한 모습이라 하겠다.

 

이 작품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현실과 몽상을 구분하지 못한 한 시골여자의 바람난 이야기이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야기는 주인공 엠마가 아닌 엠마의 남편이 될 샤를르 보바리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학교 동기의 시점으로 묘사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가난한 시골뜨기의 모습으로 동기들의 조롱을 받는데, 특히 그의 무릎 위에 얹어 놓은 모자를 묘사한 장면에서 나는 약간의 충격이랄까, 어떤 잔임함을 느꼈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자는 '어떤 멍청한 사람의 얼굴처럼 그 말없는 추악함이 표현의 깊이를 더해 주고 있는 그런 한심한 물건의 하나였다'(p.12) 라고 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자의 묘사가 8줄에 걸쳐 나오는데, 대여섯 번을 읽어도 그 모양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상관없다. 이 우스꽝스럽고 볼품 없는 모자의 묘사가 샤를르 보바리라는 인물의 성격과 분위기, 앞으로 그가 겪게 될 인생의 굴곡을 전달하는데 얼마나 멋진 역할을 하는지 나는 첫 장부터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샤를르는 엄마가 짝지어 준 돈푼이나 있어보이는 과부와 결혼했다가(나중에 거짓임이 드러남) 그 부인이 죽게 되자 엠마 루오라는 치료하러 갔던 농가의 딸과 재혼하게 된다. 샤를르는 '사랑해 마지않는 그 예쁜 여자를 일생동안 갖게 된 것'에 대해 행복해 하지만, 엠마는 그렇지 않다. 엠마는 '장식해 놓은 꽃들 때문에 교회를 사랑하고, 연애를 이야기하는 가사 때문에 음악을 사랑하고, 정념을 자극하는 맛 때문에 문학을 사랑'하는 그런 여자다. 이런 엠마는 사랑해서 한 결혼인 줄 알았는데 '그 사랑에서 응당 생겨나야 할 행복'이 찾아오지 않음에 당황한다. 책을 통해 자신의 결혼에 대한 꿈을 키워온 엠마는 단조로운 시골 생활과 그저 성실하고 무던한 남편으로는 만족이 안 되는 것이다.

 

"맙소사, 내가 어쩌자고 결혼을 했던가?"(p.70)

 

그녀의 내부에서는 '소리없는 거미와도 같은 권태가 그녀의 마음 구석구석의 그늘 속에 거미줄을 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엠마의 삶을 바꿔놓는 단초가 되는 일이 일어나는데, 어느 후작의 무도회에 초대받은 것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자신이 그동안 책 속에서만 봐왔던 것들-부자들 특유의 안색, 부드러운 거동, 그들사이의 대화들 등-을 직접 보고 왈츠도 추는 등 새로운 세상과 만난다. 

이런 사교계의 화려함을 맛 본 엠마는 자신의 평범하고 무료한 삶을 더이상 견딜 수가 없다. 재미도 없고 직업적으로 야심도 없는 남편은 점점 더 싫어진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어떤 돌발 사건'이 일어나길 기대하며 집안일도 전혀 돌보지 않고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고 급기야 신경병까지 얻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녀의 저속함이 드러나는데 자신의 불만을 부각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일부러 식초를 마셔 야위어 보이게 한 술수를 부린 것. 착한 샤를르는 이런 사실도 모르고 엠마를 위해 이사를 가기로 하고 1부는 신혼생활을 시작했던 토트를 떠나며 끝난다. 떠날 때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루앙에서 80리 떨어져 있는 용빌 라베이. 엠마의 본격적인 욕망이 분출되는 공간이다.

2부 처음에 펼쳐지는 마을의 묘사는 마치 카메라 렌즈를 따라가면서 보는 것처럼 시각적으로 연이어서 나오는데 매우 인상적이다. 이곳에서 앞으로 엠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런 기대를 하게 한다.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또 위에서 '바람난 여자의 이야기'라고 언급했기에 굳이 세세하게 이야기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의 내용은 그야말로 온갖 추잡하고 진부한 일들이 일어나는 뻔한 통속소설이지만 그것이 플로베르 스타일로 '어떻게' 쓰여졌는지가 중요하며 직접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가 훨씬 큰 작품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여러 상황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오는데 아쉽게도 프랑스어로 느끼는 그 깊이에는 도달하지 못하겠지만 김화영 님의 번역으로도 나는 그 섬세함과 플로베르 문장의 힘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단조로운 종소리, 멀리서 짖어대는 개, 바람이 일으키는 가는 먼지, 병든 구렁이처럼 누워 있는 포도 줄기, 무수한 발을 가진 쥐며느리와 같은 주변 묘사를 통해 보여주는 엠마의 권태는 직접 엠마를 통하지 않고서도 그 무료함이 충분히 전달된다. 남자들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엠마의 자태와 행동, 엠마와 로돌프가 도망치기로 한 전날 밤의 달빛 묘사(빛나는 비늘로 덮인 머리 없는 뱀)는 그 자체로 참 아름다우면서도 엠마의 욕망을 담고 있다.

또한 로돌프와의 사랑에 빠져 도망치기로 한,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한 엠마의 다음과 같은 묘사는 에로틱하면서도 플로베르 특유의 냉정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름답지만 그녀의 사랑은 아름답게 진행되지 않을 것임을 이 문장만으로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목덜미를 덮은 머리칼은 마치 음탕한 분위기의 표현에 능란한 화가가 손질해 놓은 것 같았다. 그 머리털은 간통의 몸부림으로 매일같이 풀어졌다가 묵직한 다발을 이룬 채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려 있는 것이었다.' (p.281)

 

외부묘사로 시작하여 인물의 내면 묘사로 넘어가 자연스럽게 현실로 돌아오는 흐름도 자연스럽고 이는 두번 째 읽을 때 더 잘 느낄 수 있다. 특히 대위법의 선율처럼 흐르는 두 사람의 대화가 여러 상황에서 연출이 되는데,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재미있게 감탄하며 읽은 부분이었다. 두 명 이상의 화자가 서로 딴소리를 하고 있지만 상황 속에서 그 대화는 교묘하게 어우러진다.

 

썸을 타던 서기 레옹이 혼자만의 사랑에 지쳐 떠나고 농사공진회가 열리는데 이 날 엠마는 바람둥이 로돌프의 유혹에 걸려들어 밀회를 갖게 된다. 밀회의 장소는 웃기게도 엠마가 꿈꾸는 낭만적인 장소와는 정반대인 '면사무소 2층'이다. 바깥은 농사공진회 준비로 분주하고 소,돼지 울음소리와 뒤섞여 떠들썩하다. 이곳에서 로돌프가 엠마에게 수작을 걸려는 찰나 공진회의 참사관 연설이 동시에 시작된다. 공진회의 계몽적이면서도 촌스런 미사여구로 가득한 연설과 로돌프와 엠마의 역시 촌스러우면서 진부한 불륜 연애질이 간간이 들리는 소,양들의 울음소리와 뒤섞여 번갈아 가며 나온다.

서로 상관 없는 두 장면을 번갈아 보여줌으로써 양쪽의 어리석음을 풍자, 마치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이 두 집단의 교차 대화는 다음과 같이 더욱 긴박하게 전개된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자기의 손을 빼지 않았다.

<전체 경작 우수상!> 하고 회장이 외쳤다.

「가령, 아까 댁에 갔을 때......」

<수상자, 캥캉프와의 비제 씨.>

「이렇게 같이 있게 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상금 칠십 프랑!>

「저는 백 번도 더 되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뒤를 따라와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퇴비 상>

「그리고 이대로 오늘밤도, 내일도, 그리고 또다른 날에도, 아니 한평생 여기에 있고만 싶습니다!」

<아르괴이유의 카롱 씨에게 금메달!>

(중략)

「아아, 고맙습니다! 저를 뿌리치시지 않는군요! 마음이 너그러우십니다. 제가 당신 것임을 알아주시는군요! 당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세요. 가만히 응시할 수 있도록요!」(p.216,,217)

 

이렇게 긴박하게 한줄씩 교차되는 대화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플로베르는 다음과 같이 기가막히게 표현하면서 한 템포 쉬어간다.

 

창문으로 불어온 바람에 테이블 커버에 주름이 일었다. 그리고 저 아래 광장에서는 농촌 아낙네들의 큰 머릿수건이 파닥거리는 흰 나비의 날개처럼 쳐들렸다.(p.218)

 

불륜 현장과 떠들석한 농촌공진회라는 우스꽝스럽지만 나름 진지한 두 세상이 이 한줄기 바람으로 인해 잠시 한 점에서 만나는 듯한 이 묘사에 나는 책읽기를 잠시 멈추었고 이 음악 선율같은 플로베르의 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다가 다시 시작하는 다음 말!

 

<깻묵 활용 부문 상> 하고 회장은 계속했다.(p.218)

 

난 이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박장대소했고, '비료상','장기 임대차 부문 상' 등 계속 나열되는 상들의 호명 속에서 엠마와 로돌프는 서로의 손을 잡은채 마주보고 있으니 얼마나 웃긴가!

 

이 작품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데 엠마의 욕망을 둘러싸고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나온다는 점이다. 사실주의 소설답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인물들인데, 특히 약사 오메가 두드러진다. 오메는 과거 의사 행세를 하다가 감옥에 갈 뻔한 인물로 자신의 이런 약점을 보호하기 위해 의사인 샤를르에게 굉장히 호의적이며 친절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전형적인 비겁한 인물이다. 또한 여기저기서 얻은 잡다한 지식들로 어딜가나 잘난척이고 오지랖이 넓다. 스스로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적인 인물이라 생각하나 그의 지식은 방대할 뿐 얕고 정확하지도 않다. 계몽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답게 종교에 반대, 사사건건 신부와 대립하나 속물 부루주아일 뿐이다. 이 작품은 오메의 이야기로 끝나는데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며 끝난다. 이는 결국에 살아남는 자들은 오메와 같은 부류임을 플로베르는 꿰뚫어 보고 있던 것이다.

 

또 다른 눈에 띄는 인물은 유행품가게 주인이자 고리대금업자인 뢰르가 있다. 엠마는 사랑의 아픔으로 자살한게 아니라 무절제한 소비로 많은 빚을 지고 요즘 식으로 그걸 돌려막다가 갚을 방법이 없자 자살한 것이다. 이런 엠마를 파멸에 이르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뢰르이다. 조금씩 엠마의 허영심을 부추겨 물건을 사게했던 그는 레옹과 그녀의 불륜을 목격한 뒤로 노골적인 협박을 하면서 그녀를 점점 빚의 수렁으로 빠지게 하는 냉혹한 인간이다.

이런 인물들의 성공은 보바리 부부의 몰락과 대비되어 더욱 냉정하게 보여진다.

 

결국 엠마는 비소를 입에 털어 넣고 고통스럽게 죽는다. 그녀가 죽는 장면, 비소가 온몸에 퍼지며 고통에 몸부림 치는 엠마의 모습은 참으로 끔찍하다. 고통에 신음하다 그녀는 죽기 전 추악한 장님이 부르는 불륜을 조롱하는 노래를 듣는다. 그녀는 시체처럼 벌떡 일어나 웃다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고 죽는다.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p.470) 이 문장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질퍽했던 삶은 끝난다.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은 극적인 낭만을 온몸으로 갈망한 그녀이지만 그 죽음은 이토록 추하고 어떠한 종교적 위안도 안 느껴진다.

 

이런 플로베르의 소설 속 인물을 향한 냉정함은 엠마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녀가 죽은 뒤 남편 샤를르도 벤치에 앉아 슬픔에 잠겨 죽는데,  이런 샤를르를 플로베르는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그를 해부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p.503) 

샤를르는 소설 전반에 걸쳐서 그 존재감이 희미한 사람이다. 무도회에 가서도 마차안에서도 밥 먹고 나서도 바로 잠이 들고 어떤 장소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이다. 살아있을 때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죽어서도 아무것도 아니라니...거기다 죽은 장소도 엠마가 로돌프와 밀회를 즐기던 '덩굴시렁 밑의 벤치'라니...

 

어디 이뿐인가...아무 죄 없는 딸 베르트는 또 어떠한가.

2부 12장에는 일 끝나고 돌아온 샤를르가 자고 있는 딸을 보며 딸의 미래를 상상하는 장면이 있다. (엠마는 옆 침대에서 로돌프와의 야반도주를 상상하며 자는 척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딸을 훌륭하게 키울 수 있을지, 좋은 학교에 보내 교육도 시키고 확고한 직업을 가진 착실한 청년을 배우자로 맞아들이는 딸의 행복한 미래를 상상한다. 그러나 샤를르의 죽음 후 그녀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가!

 

모든 것을 다 팔고 나니까 십이 프랑 칠십오 상팀이 남아 어린 보바리 양이 할머니한테로 가는 여비로 쓰였다. 노부인도 그 해에 죽었다. 루오 노인은 중풍에 걸렸기 때문에 어떤 친척 아주머니가 아이를 맡았다. 그녀는 가난해서 생활비를 벌도록 베르트를 방직공장에 보내서 일을 시키고 있다. (p.503)

 

그 어린 것을 방직공장이라니...플로베르의 펜은 참으로 가차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고 사기치며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인간들 속에서 엠마같은 사람은 그 자체로 봤을 때 얼마나 어리석은가. 엠마는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욕망한 것이 아니라 책 속에 나오는 여자들의 삶을 욕망했고 현실이 얼마나 치열하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여자였다. 현실의 나를 인정하지 않고 더 멋진 다른 세상 속의 나를 꿈꾸면서 그것이 실현되지 못할 때는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에 대한 헛된 환상을 꿈꾼다. 더 나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은 절대 멈추지 않고 자신의 삶을 파멸로 이끌 뿐이다.

 

'보바리즘' 1892년 프랑스 철학자 쥘 드 고티에가 <보바리즘, 플로베르 작품 속의 심리학>에서 한 말로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성향'을 뜻한다.

나 또한 한 때 이 보바리즘의 노예였던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잡지 속의 멋진 집, 명품가방, 고급화장품 그런 곳에 살고 명품으로 치장한 아름다운 여인들을 보며 나의 모습을 거기에 대입시키고 그런 삶을 살게 해줄 배우자를 꿈꿨던 어리석고 부끄러운 20~30대가 있었다.

나는 <마담 보바리>를 읽으며 나의 지워버리고 싶은 불평불만으로 점철된 그 시절을 많이 떠올렸다.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부추긴다. 명품을 갖게 된 순간의 그 기쁨은 정말 한 달도 안간다. 또 다시 내 안에서 다른 욕망이 솟아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속물 중 하나가 되어갈 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정말 위대한 것은 이런 깨달음 보다는 작품 자체가 가지는 예술성에 있을 것이다.

플로베르는 내용보다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하는가에 집중한 작가였고, 하나의 완벽한 스타일을 갖추기 위해 단어 하나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집요하게 전체와의 조화를 생각한 작가였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음악의 다양한 선율을 많이 떠올렸다. 자잘한 여러개의 선율이 각자 재잘되다가 다시 합쳐지고 또 다시 굵은 두개의 선율로 나뉘어 큰소리를 내다가 다시 만나는 그런 느낌, 이 느낌이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앞으로도 꼭 다시 한 번 더 읽어 볼 생각이다. 불독같은 외모에 사창가를 수없이 드나들었다지만 나는 플로베르에게 이 책으로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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