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보바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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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베르는 '멋진 장면'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상황들의 정수'에 도달하고자 했다. 상황들의 정수, 모든 인간사의 정수에.

-밀란 쿤데라, <커튼>

 

꼭 읽고 싶었던 플로베르의 이 책을 지난 달에 정말 감탄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거의 두 번을 읽었는데 '오직 스타일의 내적인 힘만으로 저 혼자 지탱되는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한 거의 5년 간의 피나는 노력이 이 책 한 권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마담 보바리>는 1857년에 프랑스에서 출간이 됐는데, 마침 보들레르의 시 <악의 꽃>도 같은 해에 발표되어 프랑스 문학사에 중요한 해라고 한다. 둘다 풍기문란이라는 이유로 기소가 됐는데,부유했던 플로베르는 무죄판결을 받으나 가난한 보들레르는 벌금형과 6편의 작품을 삭제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한 모습이라 하겠다.

 

이 작품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현실과 몽상을 구분하지 못한 한 시골여자의 바람난 이야기이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야기는 주인공 엠마가 아닌 엠마의 남편이 될 샤를르 보바리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학교 동기의 시점으로 묘사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가난한 시골뜨기의 모습으로 동기들의 조롱을 받는데, 특히 그의 무릎 위에 얹어 놓은 모자를 묘사한 장면에서 나는 약간의 충격이랄까, 어떤 잔임함을 느꼈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자는 '어떤 멍청한 사람의 얼굴처럼 그 말없는 추악함이 표현의 깊이를 더해 주고 있는 그런 한심한 물건의 하나였다'(p.12) 라고 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자의 묘사가 8줄에 걸쳐 나오는데, 대여섯 번을 읽어도 그 모양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상관없다. 이 우스꽝스럽고 볼품 없는 모자의 묘사가 샤를르 보바리라는 인물의 성격과 분위기, 앞으로 그가 겪게 될 인생의 굴곡을 전달하는데 얼마나 멋진 역할을 하는지 나는 첫 장부터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샤를르는 엄마가 짝지어 준 돈푼이나 있어보이는 과부와 결혼했다가(나중에 거짓임이 드러남) 그 부인이 죽게 되자 엠마 루오라는 치료하러 갔던 농가의 딸과 재혼하게 된다. 샤를르는 '사랑해 마지않는 그 예쁜 여자를 일생동안 갖게 된 것'에 대해 행복해 하지만, 엠마는 그렇지 않다. 엠마는 '장식해 놓은 꽃들 때문에 교회를 사랑하고, 연애를 이야기하는 가사 때문에 음악을 사랑하고, 정념을 자극하는 맛 때문에 문학을 사랑'하는 그런 여자다. 이런 엠마는 사랑해서 한 결혼인 줄 알았는데 '그 사랑에서 응당 생겨나야 할 행복'이 찾아오지 않음에 당황한다. 책을 통해 자신의 결혼에 대한 꿈을 키워온 엠마는 단조로운 시골 생활과 그저 성실하고 무던한 남편으로는 만족이 안 되는 것이다.

 

"맙소사, 내가 어쩌자고 결혼을 했던가?"(p.70)

 

그녀의 내부에서는 '소리없는 거미와도 같은 권태가 그녀의 마음 구석구석의 그늘 속에 거미줄을 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엠마의 삶을 바꿔놓는 단초가 되는 일이 일어나는데, 어느 후작의 무도회에 초대받은 것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자신이 그동안 책 속에서만 봐왔던 것들-부자들 특유의 안색, 부드러운 거동, 그들사이의 대화들 등-을 직접 보고 왈츠도 추는 등 새로운 세상과 만난다. 

이런 사교계의 화려함을 맛 본 엠마는 자신의 평범하고 무료한 삶을 더이상 견딜 수가 없다. 재미도 없고 직업적으로 야심도 없는 남편은 점점 더 싫어진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어떤 돌발 사건'이 일어나길 기대하며 집안일도 전혀 돌보지 않고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고 급기야 신경병까지 얻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녀의 저속함이 드러나는데 자신의 불만을 부각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일부러 식초를 마셔 야위어 보이게 한 술수를 부린 것. 착한 샤를르는 이런 사실도 모르고 엠마를 위해 이사를 가기로 하고 1부는 신혼생활을 시작했던 토트를 떠나며 끝난다. 떠날 때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루앙에서 80리 떨어져 있는 용빌 라베이. 엠마의 본격적인 욕망이 분출되는 공간이다.

2부 처음에 펼쳐지는 마을의 묘사는 마치 카메라 렌즈를 따라가면서 보는 것처럼 시각적으로 연이어서 나오는데 매우 인상적이다. 이곳에서 앞으로 엠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런 기대를 하게 한다.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또 위에서 '바람난 여자의 이야기'라고 언급했기에 굳이 세세하게 이야기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의 내용은 그야말로 온갖 추잡하고 진부한 일들이 일어나는 뻔한 통속소설이지만 그것이 플로베르 스타일로 '어떻게' 쓰여졌는지가 중요하며 직접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가 훨씬 큰 작품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여러 상황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오는데 아쉽게도 프랑스어로 느끼는 그 깊이에는 도달하지 못하겠지만 김화영 님의 번역으로도 나는 그 섬세함과 플로베르 문장의 힘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단조로운 종소리, 멀리서 짖어대는 개, 바람이 일으키는 가는 먼지, 병든 구렁이처럼 누워 있는 포도 줄기, 무수한 발을 가진 쥐며느리와 같은 주변 묘사를 통해 보여주는 엠마의 권태는 직접 엠마를 통하지 않고서도 그 무료함이 충분히 전달된다. 남자들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엠마의 자태와 행동, 엠마와 로돌프가 도망치기로 한 전날 밤의 달빛 묘사(빛나는 비늘로 덮인 머리 없는 뱀)는 그 자체로 참 아름다우면서도 엠마의 욕망을 담고 있다.

또한 로돌프와의 사랑에 빠져 도망치기로 한,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한 엠마의 다음과 같은 묘사는 에로틱하면서도 플로베르 특유의 냉정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름답지만 그녀의 사랑은 아름답게 진행되지 않을 것임을 이 문장만으로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목덜미를 덮은 머리칼은 마치 음탕한 분위기의 표현에 능란한 화가가 손질해 놓은 것 같았다. 그 머리털은 간통의 몸부림으로 매일같이 풀어졌다가 묵직한 다발을 이룬 채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려 있는 것이었다.' (p.281)

 

외부묘사로 시작하여 인물의 내면 묘사로 넘어가 자연스럽게 현실로 돌아오는 흐름도 자연스럽고 이는 두번 째 읽을 때 더 잘 느낄 수 있다. 특히 대위법의 선율처럼 흐르는 두 사람의 대화가 여러 상황에서 연출이 되는데,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재미있게 감탄하며 읽은 부분이었다. 두 명 이상의 화자가 서로 딴소리를 하고 있지만 상황 속에서 그 대화는 교묘하게 어우러진다.

 

썸을 타던 서기 레옹이 혼자만의 사랑에 지쳐 떠나고 농사공진회가 열리는데 이 날 엠마는 바람둥이 로돌프의 유혹에 걸려들어 밀회를 갖게 된다. 밀회의 장소는 웃기게도 엠마가 꿈꾸는 낭만적인 장소와는 정반대인 '면사무소 2층'이다. 바깥은 농사공진회 준비로 분주하고 소,돼지 울음소리와 뒤섞여 떠들썩하다. 이곳에서 로돌프가 엠마에게 수작을 걸려는 찰나 공진회의 참사관 연설이 동시에 시작된다. 공진회의 계몽적이면서도 촌스런 미사여구로 가득한 연설과 로돌프와 엠마의 역시 촌스러우면서 진부한 불륜 연애질이 간간이 들리는 소,양들의 울음소리와 뒤섞여 번갈아 가며 나온다.

서로 상관 없는 두 장면을 번갈아 보여줌으로써 양쪽의 어리석음을 풍자, 마치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이 두 집단의 교차 대화는 다음과 같이 더욱 긴박하게 전개된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자기의 손을 빼지 않았다.

<전체 경작 우수상!> 하고 회장이 외쳤다.

「가령, 아까 댁에 갔을 때......」

<수상자, 캥캉프와의 비제 씨.>

「이렇게 같이 있게 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상금 칠십 프랑!>

「저는 백 번도 더 되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뒤를 따라와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퇴비 상>

「그리고 이대로 오늘밤도, 내일도, 그리고 또다른 날에도, 아니 한평생 여기에 있고만 싶습니다!」

<아르괴이유의 카롱 씨에게 금메달!>

(중략)

「아아, 고맙습니다! 저를 뿌리치시지 않는군요! 마음이 너그러우십니다. 제가 당신 것임을 알아주시는군요! 당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세요. 가만히 응시할 수 있도록요!」(p.216,,217)

 

이렇게 긴박하게 한줄씩 교차되는 대화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플로베르는 다음과 같이 기가막히게 표현하면서 한 템포 쉬어간다.

 

창문으로 불어온 바람에 테이블 커버에 주름이 일었다. 그리고 저 아래 광장에서는 농촌 아낙네들의 큰 머릿수건이 파닥거리는 흰 나비의 날개처럼 쳐들렸다.(p.218)

 

불륜 현장과 떠들석한 농촌공진회라는 우스꽝스럽지만 나름 진지한 두 세상이 이 한줄기 바람으로 인해 잠시 한 점에서 만나는 듯한 이 묘사에 나는 책읽기를 잠시 멈추었고 이 음악 선율같은 플로베르의 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다가 다시 시작하는 다음 말!

 

<깻묵 활용 부문 상> 하고 회장은 계속했다.(p.218)

 

난 이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박장대소했고, '비료상','장기 임대차 부문 상' 등 계속 나열되는 상들의 호명 속에서 엠마와 로돌프는 서로의 손을 잡은채 마주보고 있으니 얼마나 웃긴가!

 

이 작품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데 엠마의 욕망을 둘러싸고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나온다는 점이다. 사실주의 소설답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인물들인데, 특히 약사 오메가 두드러진다. 오메는 과거 의사 행세를 하다가 감옥에 갈 뻔한 인물로 자신의 이런 약점을 보호하기 위해 의사인 샤를르에게 굉장히 호의적이며 친절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전형적인 비겁한 인물이다. 또한 여기저기서 얻은 잡다한 지식들로 어딜가나 잘난척이고 오지랖이 넓다. 스스로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적인 인물이라 생각하나 그의 지식은 방대할 뿐 얕고 정확하지도 않다. 계몽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답게 종교에 반대, 사사건건 신부와 대립하나 속물 부루주아일 뿐이다. 이 작품은 오메의 이야기로 끝나는데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며 끝난다. 이는 결국에 살아남는 자들은 오메와 같은 부류임을 플로베르는 꿰뚫어 보고 있던 것이다.

 

또 다른 눈에 띄는 인물은 유행품가게 주인이자 고리대금업자인 뢰르가 있다. 엠마는 사랑의 아픔으로 자살한게 아니라 무절제한 소비로 많은 빚을 지고 요즘 식으로 그걸 돌려막다가 갚을 방법이 없자 자살한 것이다. 이런 엠마를 파멸에 이르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뢰르이다. 조금씩 엠마의 허영심을 부추겨 물건을 사게했던 그는 레옹과 그녀의 불륜을 목격한 뒤로 노골적인 협박을 하면서 그녀를 점점 빚의 수렁으로 빠지게 하는 냉혹한 인간이다.

이런 인물들의 성공은 보바리 부부의 몰락과 대비되어 더욱 냉정하게 보여진다.

 

결국 엠마는 비소를 입에 털어 넣고 고통스럽게 죽는다. 그녀가 죽는 장면, 비소가 온몸에 퍼지며 고통에 몸부림 치는 엠마의 모습은 참으로 끔찍하다. 고통에 신음하다 그녀는 죽기 전 추악한 장님이 부르는 불륜을 조롱하는 노래를 듣는다. 그녀는 시체처럼 벌떡 일어나 웃다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고 죽는다.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p.470) 이 문장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질퍽했던 삶은 끝난다.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은 극적인 낭만을 온몸으로 갈망한 그녀이지만 그 죽음은 이토록 추하고 어떠한 종교적 위안도 안 느껴진다.

 

이런 플로베르의 소설 속 인물을 향한 냉정함은 엠마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녀가 죽은 뒤 남편 샤를르도 벤치에 앉아 슬픔에 잠겨 죽는데,  이런 샤를르를 플로베르는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그를 해부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p.503) 

샤를르는 소설 전반에 걸쳐서 그 존재감이 희미한 사람이다. 무도회에 가서도 마차안에서도 밥 먹고 나서도 바로 잠이 들고 어떤 장소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이다. 살아있을 때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죽어서도 아무것도 아니라니...거기다 죽은 장소도 엠마가 로돌프와 밀회를 즐기던 '덩굴시렁 밑의 벤치'라니...

 

어디 이뿐인가...아무 죄 없는 딸 베르트는 또 어떠한가.

2부 12장에는 일 끝나고 돌아온 샤를르가 자고 있는 딸을 보며 딸의 미래를 상상하는 장면이 있다. (엠마는 옆 침대에서 로돌프와의 야반도주를 상상하며 자는 척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딸을 훌륭하게 키울 수 있을지, 좋은 학교에 보내 교육도 시키고 확고한 직업을 가진 착실한 청년을 배우자로 맞아들이는 딸의 행복한 미래를 상상한다. 그러나 샤를르의 죽음 후 그녀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가!

 

모든 것을 다 팔고 나니까 십이 프랑 칠십오 상팀이 남아 어린 보바리 양이 할머니한테로 가는 여비로 쓰였다. 노부인도 그 해에 죽었다. 루오 노인은 중풍에 걸렸기 때문에 어떤 친척 아주머니가 아이를 맡았다. 그녀는 가난해서 생활비를 벌도록 베르트를 방직공장에 보내서 일을 시키고 있다. (p.503)

 

그 어린 것을 방직공장이라니...플로베르의 펜은 참으로 가차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고 사기치며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인간들 속에서 엠마같은 사람은 그 자체로 봤을 때 얼마나 어리석은가. 엠마는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욕망한 것이 아니라 책 속에 나오는 여자들의 삶을 욕망했고 현실이 얼마나 치열하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여자였다. 현실의 나를 인정하지 않고 더 멋진 다른 세상 속의 나를 꿈꾸면서 그것이 실현되지 못할 때는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에 대한 헛된 환상을 꿈꾼다. 더 나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은 절대 멈추지 않고 자신의 삶을 파멸로 이끌 뿐이다.

 

'보바리즘' 1892년 프랑스 철학자 쥘 드 고티에가 <보바리즘, 플로베르 작품 속의 심리학>에서 한 말로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성향'을 뜻한다.

나 또한 한 때 이 보바리즘의 노예였던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잡지 속의 멋진 집, 명품가방, 고급화장품 그런 곳에 살고 명품으로 치장한 아름다운 여인들을 보며 나의 모습을 거기에 대입시키고 그런 삶을 살게 해줄 배우자를 꿈꿨던 어리석고 부끄러운 20~30대가 있었다.

나는 <마담 보바리>를 읽으며 나의 지워버리고 싶은 불평불만으로 점철된 그 시절을 많이 떠올렸다.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부추긴다. 명품을 갖게 된 순간의 그 기쁨은 정말 한 달도 안간다. 또 다시 내 안에서 다른 욕망이 솟아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속물 중 하나가 되어갈 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정말 위대한 것은 이런 깨달음 보다는 작품 자체가 가지는 예술성에 있을 것이다.

플로베르는 내용보다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하는가에 집중한 작가였고, 하나의 완벽한 스타일을 갖추기 위해 단어 하나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집요하게 전체와의 조화를 생각한 작가였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음악의 다양한 선율을 많이 떠올렸다. 자잘한 여러개의 선율이 각자 재잘되다가 다시 합쳐지고 또 다시 굵은 두개의 선율로 나뉘어 큰소리를 내다가 다시 만나는 그런 느낌, 이 느낌이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앞으로도 꼭 다시 한 번 더 읽어 볼 생각이다. 불독같은 외모에 사창가를 수없이 드나들었다지만 나는 플로베르에게 이 책으로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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