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9
제임스 M. 케인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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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인해 교수형을 당한다 해도 나는 그녀를 가져야만 했다. 

나는 그녀를 가졌다." (p.70)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는 제임스 M. 케인(James M. Cain 1892~1977)이 1934년 발표한 첫 소설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할리우드에서 두 번 영화로 만들어져 역시 성공을 거두었는데, 1981년 만들어진 두 번째 영화에서는 잭 니콜슨이 부랑자 프랭크 역을 맡은 점이 눈에 띈다. 1975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범죄자이자 날건달인 맥머피 역을 맡아 '악마처럼 입을 쫙 벌리고' 웃는 명연기를 하여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가 여기서도 양아치 부랑자 역을 맡았으니 말이다. 그가 맡은 맥머피나 프랭크 역 둘 다 적당히 나쁜 짓도 하면서 되는 대로 사는 그런 양아치 같은 족속들인데, 독자 입장에서 이 두 인물에게 자꾸 마음이 가는 이유는 그들에게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근데 이런 악함과 순수함이라는 상반되는 속성을 잭 니콜슨이 갖고 있으니 정말 매력적인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프랭크 1인칭 시점으로 빈털털이로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던 프랭크가 캘리포니아 도로변에 위치한 식당을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돈도 없으면서 무작정 음식을 주문하고 먹는 그에게 그리스 이민자인 식당 주인 닉은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며 자신의 가게에서 일할 것을 제안한다. 닉의 제안에 망설이던 프랭크는 그 순간 닉의 부인 코라를 보는데, 다음 페이지에서 프랭크는 '주유소에서 바람 빠진 타이어를 고치고 있'(p.12)는 닉의 직원이 된다. (전개가 정말 빠르지 않은가!)

코라는 아이오와 출신 미녀로 돈 때문에 닉과 결혼했을 뿐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하던 차였는데, 프랭크는 이런 코라의 상황을 재빠르게 알아채고 코라를 유혹한다. 두 사람은 닉이 없는 틈을 타 서로를 향해 달려들고 '첫 키스에 피가 뿜어져 나오는'(p.20) 격정적이면서도 기이한 상황이 연출된다. 

이들의 미래 대충 짐작이 가지 않는가?

닉이 없는 틈을 타 밀회를 즐기던 두 사람은 더 이상 이런 생활을 견딜 수 없다며 닉을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어리석은 두 남녀의 사랑이 범죄로 이어져 결국엔 파멸로 치닫는 과정이 간결한 대화와 함축적인 묘사로 빠르게 전개된다. 


이 소설을 두고 케인은 1927년 실제로 뉴욕에서 일어났던 치정 살인 사건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썼다고 밝히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덕적으로는 충분히 끔찍하지만 살인이 사랑 얘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멍청한 남녀가 있고, 그런데 일단 저지른 다음 정신 차리고 보면 어떤 두 사람도 그렇게 끔찍한 비밀을 공유하고는 같은 지구에서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는 얘기야." (p.175 작품해설)


서로를 향한 욕정을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이라 믿고 벌이는 어리석은 범죄들, 신문 기사나 영화, 소설에서 자주 보는 치정 살인의 모습이다.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만 제거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믿음과 자신들의 사랑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이기적인 욕망이 가져다 주는 것은 서로를 향한 지독한 불신과 불안, 그리고 그런 자신들의 초라한 모습 뿐이지 않은가.


마지막 장, 프랭크의 담담한 고백에서 내가 느낀 것은 지독한 허무함이었다. 입술을 깨물어 피를 터트릴 정도로 격정적이었던 욕정은 '나는 그녀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p.169)는 허무한 얘기로 끝나니 말이다. 

욕망과 탐욕에 사로잡힌 두 남녀의 범죄를 통해 공황기 시절 미국의 어두운 현실을 냉철하게 보여준 짧고 강렬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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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2-06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장 순수한 것이 타락하면 가장 나쁜 것이 된다는 라틴어 속담이 떠오릅니다. 순수함과 타락은 동전의 양면인건지...🤔

coolcat329 2023-02-06 19:56   좋아요 1 | URL
오 그런 속담이 있군요. 어린아이 처럼 사리분별 못하고 자신의 본능 만을 좇아서 그런 걸까도 싶습니다. 🤔

새파랑 2023-02-06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목은 많이 들어봤는데 저런 내용이군요. 20페이지만에 저런 전개라니 ㅋ 요즘 트렌드에 맞는 작품인거 같습니다 ^^

coolcat329 2023-02-07 13:04   좋아요 1 | URL
작가가 3만 5천 단어로 압축해서 썼다고 하네요.😚

물감 2023-02-07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종 눈에 들어오던 제목이었는데 이런 내용이었군요.
포스트맨과 벨2번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지네요 ㅎㅎ

coolcat329 2023-02-07 18:18   좋아요 1 | URL
책을 다 읽어도 제목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작품해설에 설명이 나와있더라구요.
실제 사건 속 아내가 남편 죽이기 전에 남편 명의로 5만달러 보험 가입했는데, 우편배달부에게 보험 증서 배달할 때 초인종을 두 번 울리라 했대요. ㅎㅎ
재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