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팀 오브라이언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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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작가 팀 오브라이언(Tim O'Brien 1946 ~ ) 의 자전적 소설로 총 22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22편의 이야기는 각기 독립된 이야기이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어 연작 소설의 성격을 가진다. 팀 오브라이언은 1979년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 <카차토를 쫓아서>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여 이미 작가로서 실력을 인정 받았으나, 1990년 발표한 이 소설로 다시 한번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퓰리처상 소설 부분 결선과 미국 도서비평가협회 후보에 오르면서 명실상부한 전쟁 문학 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사십 대 중년의 소설가가 된 팀 오브라이언은 이십여 년 전 참전했던 베트남 전쟁을 회상하며 '이야기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p.259)는 믿음으로 죽은 이들을 이야기 속에서 다시 살려낸다. 전쟁 속 군인들의 일상과 전쟁이 그들의 삶에 남긴 것들을 이야기로 보여줌으로써 모든 이에게 따뜻한 위로와 치유의 손길을 보내는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자극적인 전쟁 장면이 아닌 매일 함께 행군하고 식사하며 짓궂은 농담으로 전장의 긴장을 풀려고 했던 군인들의 일상, 그런 일상 속에서 갑자기 날아온 총알과 포탄, 교묘하게 매설된 지뢰에 방금 웃고 농담하던 동료가 사라지는 일, 그 후에 모두의 마음에 피어나는 견딜 수 없는 죄책감과 후회를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문체로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22편의 이야기는 알파 부대원들 개인의 이야기부터 화자(팀 오브라이언)의 내밀한 고백(징집을 피해 캐나다로 도피하려던 일, 자신이 죽인 베트남 청년, 첫사랑 린다의 죽음)등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진실한 전쟁 이야기는 일어난 일과 일어난 것 같은 일을 구분하기 어렵다'(p.91)는 화자의 말처럼 무엇이 사실이고 허구인지 알 수 없지만, 작가가 실제로 겪은 경험을 자기 연민과 과장 없이 서술하고 있어 나는 모든 이야기가 다 사실처럼 느껴졌다. 


화자는 자신의 글쓰기는 '일종의 다시겪기'(p.49)라고 말한다. 이야기는 사라진 그 무언가를 거기에 다시 있게 만들 수 있기에 '이야기의 진실(story-truth)이 왜 때로 실제의 진실(happening-truth)보다 더 진실한지 당신이 알았으면 좋겠다'(p.210)고 말한다. 이것은 속임수가 아니라 '형식'이고, 때로는 허구가 사실보다 더 진실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22편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야 독자는 비로소 앞의 이야기 속 인물과 상황이 이해가 가는데 이것이야 말로 이야기의 힘이 아닌가 싶다. 

이야기의 힘을 믿고 그것을 통해 '죽은 이를 계속 살아 있게' 만드는 작가의 노력이 이 책을 더욱 의미있게 만든다. 


[마흔세 살, 전쟁은 반평생 전의 일이 되었으나 기억하는 일은 아직도 그것을 현재로 만든다. 그리고 기억하는 일은 가끔씩 이야기로 이어져 그것을 영원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야기는 지난날을 미래와 이어주려고 존재한다. 이야기는 당신이 있었던 자리에서 당신이 있는 자리로 어떻게 다다랐는지 기억나지 않는 이슥한 시간을 위해 존재한다. 이야기는 기억이 지워진, 이야기 말고는 기억할 게 없는 영원의 시간을 위해 존재한다.(p.55 '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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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2-23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팀 오브라이언 현존 하는 작가중에 최애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이분의 카차토를 찾아서도 강추!^^

coolcat329 2022-12-23 11:02   좋아요 1 | URL
네~카차토 중고로 나오면 사려구요 😅
스콧님도 좋아하시는군요.

새파랑 2022-12-23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별 다섯개는 일단 장바구니로 ㅋ 22편이나 되는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군요~!!

coolcat329 2022-12-23 12:56   좋아요 1 | URL
앗 저를 믿어주시고~~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