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뒤락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9
애니타 브루크너 지음, 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텔 뒤락 Hotel du Lac>은 애니타 브루크너(Anita Brookner 1928~2016)가 1984년 네 번째 발표한 소설로 '18세기 소설의 전범'이라는 심사평과 함께 작가에게 부커상을 안겨 준 작품이다. 발표한 그 해에만 5만부 이상이 판매 되었고, 1986년에는 BBC 드라마로도 제작,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호텔 뒤락>의 주인공은 로맨스 소설 작가 이디스 호프이다. 나이는 서른 아홉, 미혼으로 사람들은 그녀가 버지니아 울프를 닮았다고 한다. 작가로서 나름 성공한 그녀는 집도 있고 납세 의무도 잘 지키며 요리도 꽤 잘한다. 원고는 늘 마감일이 되기 전에 보내주고 책이 잘 팔려도 어떤 권리도 주장하지 않는 '신뢰할 만한 성품'을 지닌 조용하고 착실한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20세기 초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던 '자기만의 방'과 일정 수입이 있는 그런 여성이다. 


그런데 이런 그녀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디스는 죄도 뉘우치고 머리도 식힐 겸 제네바 호숫가에 자리 잡은 '호텔 뒤락'으로 친구들에 의해 떠밀리다시피 해서 오게 된다. 

성수기가 지난 구 월의 끝자락,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한 호텔에서 이디스는 몇 명의 여인들을 만나게 된다.

사별한 남편이 남긴 돈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며 주위의 관심을 끌려는 퓨지 부인, 엄마인 퓨지 부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딸 제니퍼, 거식증에 걸려 집안의 고귀한 혈통을 잇지 못해 남편에 의해 강제로 호텔로 보내진 모니카, 못된 며느리 눈치보느라 자신의 아름다운 저택에서 살지 못해 호텔을 전전하는 보뇌이유 백작부인.

이디스는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이 여인들을 보며 때로는 부러움의 시선으로 때로는 동정심, 저속함, 경멸의 감정을 느끼며 그들 안에 내재한 각기 다른 결핍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불안정한 삶 속에서 어떤 길을 선택을 해야하는지 고민하는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이디스는 나름 성공한 작가로서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여성이다. 그러나 부모의 불화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가정적인 사람'과 함께 하는 안정된 결혼 생활을 갈망한다.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 다른 어떤 힘이 있어도 사랑 없이는 생각할 수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글을 쓸 수도 없고 심지어 꿈도 꿀 수 없어요. (...) 내가 생각하는 완전한 행복이란 저녁이면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올 걸 알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온종일 햇볕 따가운 정원에 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쓰는 거예요. 매일 저녁 그 사람이 올 거라고요." (p.114,115)]


그녀의 소설에서는 '내성적이고 잘난 체하지 않는 여자가 남자 주인공을 차지'한다. '반면에 그런 여자들을 경멸하며 남자 주인공과 격정적인 연애를 했던 유혹녀는 사랑의 난투에서 좌절하고 물러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내성적인 여자를 소설 속에 등장시켜 이상적인 남자와 사랑이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사랑은 그녀의 현실에서는 찾아오지 않는다. 현실은 유부남과의 밀회가 전부일 뿐, 그녀의 삶은 행복하지 않다.


이디스는 어떤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호텔 뒤락에 오게 되었을까? 호텔에서 만난 다양한 사연의 여성들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안정된 결혼은 그녀의 삶을 불행으로부터 구원해 줄 유일한 방법일까? 

'결코 단 한 번도 내 것이 되어본 적이 없었던, 그럼에도 내가 그렇게 원했던 유일한 삶'(p.212)을 위하여 이디스가 선택한 길은 무엇일까?


호텔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몇몇의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며 어려운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 

작가의 우아한 문체가 좋았고, 별 내용이 없는 듯한 이야기가 묘하게도 재미있었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꿈꾸는 우리는 모두 '이디스'가 아닐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2-01-15 08: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 들어본 작가입니다 ㅜㅜ
주인공이 이디스 여서 이디스 워튼이 떠오르네요.주인공 이름을 이디스 울프로 했더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게다가 문학동네꺼니까~!!

coolcat329 2022-01-15 10:07   좋아요 3 | URL
저도 처음 들어본 작가에요. 이디스 울프도 어울리네요. ㅎ

레삭매냐 2022-01-15 09: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디스 호프가 무슨 잘못을 저질
렀는지 알려면 책을 닐거야...

문득 사서 읽다만 피터 니콜스의
<록스 호텔> 생각이 나네요.
전혀 1도 상관 없는 -

coolcat329 2022-01-15 10:06   좋아요 2 | URL
네 ㅋ 근데 호텔 들어간 책들만 모아 놔도 재밌을거같네요~

scott 2022-01-25 16: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묘하게 재밌다니
이 책 찜! ㅎㅎ
부커상 수상작들 중 은근히 숨겨져 있지만 좋은 작품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ㅅ^

coolcat329 2022-01-25 19:46   좋아요 2 | URL
네~저는 부커상이 퓰리처보다 더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