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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평점 :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마가렛 애트우드의 <증언들>과 함께 2019년 부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흑인 최초의 부커상 수상이기에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저자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1959년 영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백인들 사이에서 유일한 흑인으로 지내며 '1982년 연극학교를 졸업하지만 흑인 여성이라는 한계로 연극 활동에 제약이 따르자 직접 흑인 여성 극단을 창립하고 흑인 페미니즘 문화 운동을 벌였다.'(p.630 역자해설)
작가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역사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해왔는데, 이 소설은 고국을 떠나 영국에 정착한 흑인 여성들의 삶을 다각도로 보여줌으로써, 주류에서 밀려나 있던 영국 흑인여성의 삶을 자연스러운 형식으로 그린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함께 공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무지와 편견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 소설에는 총 12명의 흑인 여성이 등장한다. 10대부터 90대 노인까지 각각 다른 시대와 환경에서 살아온 12명 흑인 여성의 삶을 한 챕터 씩 레즈비언 연극 연출가 앰마를 시작으로 다채롭게 보여준다. 12명의 여성은 혈연과 지연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한 다리 건너 연결되어 있기도 하며,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이기도 하지만 결국엔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친구, 동료로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어 재미있다.
'자신을 따돌리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 꿈을 향해 도전하는 여성, 상처 속에서도 주류로 진입하기 위해 앞만 보고 나아가는 여성,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주 노동자로 열심히 사는 여성,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여성, 과거의 실수를 인정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게 위해 열심히 사는 여성,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지만 당당히 자신의 얼굴을 드는 여성 등 사연이 없는 인생이 없다. 그러나 이들은 주체성을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여성들이다.
12명 개인의 역사이지만 이들의 삶은 전체 흑인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큰 그림으로도 다가온다.
각기 다른 12개의 이야기를 연결해가며 숨가쁘게 읽다보면 어느새 에필로그에 다다르는데, 12개의 이야기로 산만해졌던 마음이 결국 하나로 모아져 가슴 적시는 감동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