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6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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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를 생각하면 두 가지가 생각난다.


'어린 왕자'와 '비행기'.


그는 21세에 공군에 입대해 조종사 훈련을 받으나 2년 후 사고를 당해 두개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제대한다. 그래도 비행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가족과 갈등을 겪다 결국 항공우편회사에 취직해 우편기를 몰게 된다. 1931년에 발표해 큰 성공과 함께 '페미나 상'을 수상한 <야간비행>은 그의 이런 비행사였던 경험을 토대로 쓰여진 소설이다.  


<야간비행>의 배경은 193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밤에 우편기를 조종하는 비행사들과 그 뒤에서 항공우편 업무와 조종사들을 관리하는 책임자 리비에르의 이야기이다.

당시 밤에 비행을 한다는 것은 '시속 이백 킬로미터로 뇌우와 안개 그리고 밤이 감추고 있는 여러 물리적인 난관 속'에서 싸우는 것을 의미했다. 낮에는 비행기가 속도 경쟁에서 배나 기차를 월등히 앞섰지만 밤만 되면 기차나 선박에 뒤쳐졌기 때문에 항공산업은 위험한 야간비행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야간비행>은 '전 항공 노선을 총관하는 책임자' 리비에르와 조종사 파비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파타고니아, 칠레, 파라과이를 출발한 세 대의 우편기가 각각 남쪽, 서쪽, 북쪽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해 돌아오고'(p.21) 있고, 책임자 리비에르는 이 우편기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이 세 대의 비행기가 실어 온 우편물들을 모아 유럽행 우편기에 실어 자정에 유럽으로 출발시키는 임무를 맡고 있다. 


리비에르는 '사람이란 빚기 전의 밀랍덩이에 불과'하기에, '이 재료에 영혼을 불어 넣고 의지를 창출'하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직원들을 엄격하게 다스려 자기 자신을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의무이자 책임이며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의지의 약화는 곧 실수를 유발'하기에 비행 정비사부터 감독관, 조종사에 이르기까지 그는 엄격하게 통제하고 관리한다.


나는 정당한가 부당한가나는 알 수 없다내가 엄격하게 굴면 사고는 줄어든다책임이란 개인에게 있지 않다그것은 모든 이에게 적용되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적용되지 못하는 막연한 힘과 같다내가 정말 정당하게 군다면야간비행은 매번 죽음의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p.57)


그러나 리비에르도 인간이기에 20년간 비행 정비에 몸담아 온 로블레의 실수 앞에서 갈등한다. 자식들을 생각해서 한 번만 봐달라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이 한 번더 기회를 준다면 그가 얼마나 기뻐할지를 그려보기도 한다. 자신의 혹독함에 지쳐가기는 리비에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가 몸담고 있는 곳은 일반적인 회사가 아니다. 작은 실수는 생명을 위협하고 비행 산업을 쇠퇴시킬수도 있다. 그는 '우연이라 할지라도 잘못의 매개자를 발견했을 때 눈감아주는 것은 범죄'라고 생각한다. 그는 결국 로블레를 정비 업무에서 해고시키고 잡역부로 보낸다.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를 달랜다.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한다. 내가 맞서는 것은 그들이 아니다. 그들로 인해 생겨난 것들과 맞서는 것이다......' (p.61)


한편 파타고니아에서 우편물을 싣고 오는 조종사 파비앵은 뇌우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소용돌이, 격렬한 요동, '시커먼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어둠 속에 포위된 파비앵은 "여기가 어디죠?"라는 무선사의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다. 사방이 캄캄한데 어딘지 어떻게 알겠는가...

한 시간 사십 분 후면 기름도 떨어지는 절박한 상황에서 그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어쨌든 이 짙은 어둠 속에서 모든 게 해결될'거라는 사실 뿐이다. 죽거나 살거나...


나는 비인간적일 정도로 확고한 신념의 리비에르도 인상적이었지만, 남아메리카 대륙 상공의 어둠 속에 갇혀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파비앵의 모습이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왔다. 아마도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읽었던거 같다. 

통신도 두절된 상태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사방이 다 막혀 자신이 조종하는 비행기가 육지 위를 날고 있는지, 바다 위를 날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 막막한 상황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암흑과 돌풍을 오직 홀로 상대해야 하는 파비앵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얼마나 두렵고 외로울까...땅 위에서 앞이 안보여도 두려운데, 태풍이 집어삼키는 캄캄한 밤하늘에서 하늘과 땅이 분간이 안가는 상황이라니...너무나 끔찍했다.

파비앵은 사력을 다 하지만 핸들을 잡은 손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생각은 점점 어둠 속으로 자신을 놓아버리려고 한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운을 시험해 보고 싶다. 


'외적인 숙명이란 없다. 그러나 내적인 숙명은 있다. 인간에게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 여러 실수들이 현기증처럼 우리를 엄습한다.' (p.93)


외적인 것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파비앵의 이 비장한 다짐은 곧 행동으로 이어진다.

빛...빛에 너무나 굶주린 나머지, 그는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빛을 향해 올라간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남편의 연착이 걱정된 파비앵 부인도 왔다가고, 기다리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동요가 일어난다. 

리비에르는 파비앵 부인이 다녀간 후 생각한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그토록 가슴 아파하는건 죽음 그 자체보다는 그들이 남기고 간 사소한 물건들과 그들의 일상 행동들이 점점 그 의미를 잃어가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행위나 사물들이 소용없어지면서 사랑하는 사람도 그렇게 떠나가는 것임을...리비에르는 파비앵 부인에게 깊은 연민의 정을 느낀다. 


그는 파비앵의 실종으로 일처리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직원들을 보며 '산 자의 업무가 지연'되는 이런 현실이야 말로 '죽음, 이런 게 바로 죽음이다!' 라고 생각한다.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것은 '바다 위에 떠 있는 고장난 돛배'와 같으며, 사람이 죽으면 그와 관련된 행동과 물건들도 그 의미를 잃듯이 우리 삶의 죽음이란 아무 것도 안함으로써 의미를 잃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섬들에 대한 얘기를 듣고 배를 만들었던 옛날 소도시들을 생각했다. 거기에 희망을 싣기 위해, 자신들의 희망이 바다 위에서 돛을 활짝 펼치는 것을 보기 위해, 그들은 배를 만들었을 것이다. (...) 어쩌면 목적은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동은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만든 배를 통해 계속 살아가게 되리라.' (p.107,108)


리비에르는 평상시처럼 전보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여기저기 지시를 내린다. 야간비행은 중단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 일을 다시 해야하고, 이렇게 하는 것만이 '자신의 신념에 대한 복수이자 증명'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에 자신이 겪은 패배가 '어쩌면 진정한 승리에 한발 다가서는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리비에르는 우리의 삶을 나아가게 하는 것은 어떤 목표가 아니라 '행동'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이보게, 로비노, 인생에 해결책이란 없어. 앞으로 나아가는 힘뿐. 그 힘을 만들어내면 해결책은 뒤따라온다네." (p.103)


그는 인간은 목숨보다 값진 무언가를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개인의 희생은 값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목적이 모든 것에 우선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규칙을 지킬 것을 조종사와 정비사들에게 강조하며, 그 규칙을 지키지 못했을 시에는 가차없이 책임을 묻는다.


뇌우가 심할 듯 하니 기항지에서 자고 가는게 어떻겠냐는 무선사의 제안에 파비앵은 "계속 갑시다."라며 일축한다. 시간엄수는 리비에르의 원칙 중 하나이다. '어떤 이유로든 출발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무조건 벌을' 받는 시스템은 모든 기항지에서 비행기들이 정시 출발을 하도록 긴장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고 실제로 성공하기도 한다. 

파비앵은 리비에르 입장에서 보면 매우 모범적인 조종사로 원칙을 지켰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땠는가...

만약 리비에르가 시간엄수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조종사의 안전이라고, 인간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조종사들을 가르쳤다면, 파비앵도 무선사의 제안을 한번 더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또한 리비에르는 날씨가 좋았는데도 되돌아온 조종사를 추궁한다. 조종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엔진도 심하게 진동, 설상가상으로 소용돌이를 만나 두려웠다고 고백한다. 

리비에르는 그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그를 단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비에르의 생각대로라면 그 조종사는 앞이 안보이고 소용돌이를 만나도 두려움을 극복하고 계속 비행을 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리비에르가 추구하는 자기초월이며 인간은 그런 극복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리비에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내 안에서 여러가지 의문과 생각들이 떠올랐다.

규칙은 어느 한 집단을 통제하고 잘 유지되게 할 수도 있지만 그 규칙이 인간의 목숨까지 걸고 지켜져야 하는 상황에 나는 동감할 수 없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어느 정도 남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그 책임감이 절대적으로 강요되어 개인이 전체가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한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다면 그것은 비극일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파비앵의 마지막은 숭고하고 아름답게 그려졌지만 그것은 작가의 생각일 것이다. 파비앵은 살고 싶어했다. 파비앵 부인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리비에르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갔다. 비행 우편산업이 이런 개인들의 삶에 고통을 주면서까지 유지되어야 하는지...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이런 수많은 희생을 통해 지금 비행산업은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 이런 희생이 비행산업 뿐이겠는가...다수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 사이에서 어디 쯤이 모두를 위해 좋은 지점일까...

이런 생각은 늘 답이 없이 머리만 복잡한 상태에서 끝난다. 


비록 리비에르라는 인물에 내가 깊이 공감은 못했지만, 그가 자신이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책임자로서 감정을 배제하고 냉철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끊임없이 묻고 갈등하며 행동으로 나아가는 모습 속에는 자신의 일과 동료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없는 그는 외로운 인간이다. 오직 밤하늘만이 그의 친구이며, 그는 죽어서도 밤하늘에서 계속 살아가게 되리라...


생텍쥐페리는 '야간비행'이라는 낯설면서도 낭만적인 이야기를 서정적인 문장으로 아름답게 묘사했다. 특히 섬뜩한 신비를 품고 있는 밤하늘과 그 까마득한 밤하늘을 홀로 비행하는 조종사의 모습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 순간도 내 머리 속을 떠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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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3-17 13: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도까지 그리시다니 ㅋ 저는 읽어본게 어린왕자랑 야간비행 밖에 없는데~ 글보니까 야간비행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기억이 가물가물^^

coolcat329 2021-03-18 10:44   좋아요 2 | URL
이 책 읽어보셨군요. 저도 어린 왕자랑 이 책만 읽어봤는데, 내용보다도 밤하늘 비행 묘사가 참 아름답고 신비로워 인상깊었어요. 마치 제가 비행하는 것처럼요~
오늘도 책 읽는 좋은 하루 되셔요~

scott 2021-03-18 16: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어린 왕자보다 이책 야간 비행 정말 정말 좋아해요 프랑스에 생텍쥐베리 에게 편지나 엽서 보내는 그런것도 있어요 마치 산타 할배에게 편지 쓰듯 ㅋㅋㅋ 지금은 유로화 되어 사라졌지만 프랑스 종이돈50프랑에 생텍쥐베리가 탔던 비행기와 지도 그려진 돈 소중히 간직하고 있음 ^.^

coolcat329 2021-03-18 16:31   좋아요 2 | URL
우와~ 50프랑 찾아보니 진짜 생텍쥐페리네요~또 하나 알게되었습니다.😊 정말 소중한 돈이네요.

레삭매냐 2021-03-19 13: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살면서 파타고니아에 언젠가
한 번은 가보고 싶다 뭐 그런 생각
을 해봤습니다.

아옌데 대통령 묘를 찾아 헌화하
고 싶구요.

coolcat329 2021-03-21 09:33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저는 파타고니아 옷 상표만 알았지 어딘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

scott 2021-04-09 15: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야간비행으로
이달의 당선작이 되심
축하 합니다. ^ㅎ^

coolcat329 2021-04-09 16:54   좋아요 1 | URL
아니 어떻게 이렇게 저보다 먼저 아시죠? 저는 알림이 왔는데 뭐가 당선된건지도 모르겠는데요.

감사합니다. 스콧님은 참 세심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