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 - 상처받기 쉬운 당신을 위한, 정여울의 마음 상담소
정여울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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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요즘 우후죽순 출간되는 에세이들을 접하면서 자기의 내면 이야기라기보단 지식 자랑이나 아리송한 감성 보여주기 식일 때가 많아 실망이 잦았다. 심리학 책도 마찬가지. 융이나 아들러를 직접 다룬 내용이거나 내담자의 상황을 알려주며 이론을 정립하는 의사 에세이도 많이 보았고, 보다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것도 읽어보았다. 물론 좋은 책도 많았다. 하지만 작가 개인의 삶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녹아있었는지 묻는다면 대체로 부정적이다.

정여울의 신간 에세이 [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 가 은행나무에서 출간됐다. 얼마 전에 [헤세]를 읽었고, 오래전에 작가의 여행 에세이를 읽어봤던 터라 익숙하긴 했지만 심리 책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읽기 전엔 걱정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원래도 담담한 문체, 작가의 깔끔한 필력 등을 믿었기에 주저 없이 도전했다. 그런데 웬일이야! 예쁜 수첩이 따라왔네^^ (굿즈에 쉽게 빠지는 스타일)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까지 있는 그녀가 어릴 때 감정적 학대를 견디며 살아왔다는 것은 팬인 나에게 약간의 충격이었다. 똑똑한 사람도 불행할 수 있다는 , 아니 어쩌면 더 불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한 때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어도 상당 부분은 차지한다고 부지간에 (그렇지만 상시로)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 사랑받고자 공부에 매달렸다고 한다. 행복하지 않았지만 자기를 증명할 길이 그것 뿐이었다고. 사춘기 접어 들기 전 가장 예민할지도 몰랐던 그 소녀 시절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모멸은 아이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고 한다. 소아우울증을 알았던 그녀가 11세에 극단적인 생각을 했었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스물아홉살이 돼서야 심리학을 공부하게 됐고, 내재된 트라우마와 발현된 스트레스, 가슴 속에 들어찬 울분 등을 마주하게 됐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아는 두가지로 나뉜다. 밖으로 드러나는 자아와 내면의 자아. 밖으로 드러나는 자아는 보통 에고라고 부르는데 정여울 작가는 그 반대 개념을 셀프라고 말한다. 에고는 본래의 자기이자 의식적인 자기다. 사회적이고 계산적이며 비교를 즐긴다. 그러나 셀프는 문명화된 자기로 내면적이고 무의식적이다. 셀프가 성숙해야 상처가 적다. 셀프는 충족되지 않았는데 에고만 가득하면 불행할 수밖에 없고, 페르소나가 연기만 하면서 살아야 한다.

정여울 작가는 성장이라는 개념은 지양하고 내면화라고 부르길 원한다. 성장은 도태를 수반하지만 개성화는 보다 나은 개념이라는 것. '나'를 찾는 노력은 현대인이 늘상 하는 것 중에 하나아닌가.

이 책이 좋은 것은 챕터마다 설명이 쉽고, 사회적 이슈와 더불어 작가 개인의 경험이나 생각도 담백하게 즐길 수 있는데다가 독자도 책에 참여시킨다는 점이다. 독자에게 공간을 마련해주고 '이제 너의 이야기를 써봐.' 라고 말한다.
꼼꼼하고 세밀하게 위로한다.

정여울은 작가답게 언어로 비교하고, 작품으로 이야기한다. 그가 거론하는 모든 작품들이 흥미롭고 적절했다. 읽어본 작품들은 더 와닿았고, 읽지 못한 작품들은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가 인물에 대한 탐구를 참 많이 했구나 싶었고, 작품 속 캐릭터를 심리학적으로 접근하고 분석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트라우마를 이기려면 내적자원을 가져야 한다. 그래도 한때 행복했던 기억들은 나를 죽지않고 여기까지 나오게 해줬다. 그러니 내면아이를 만날 때 행복했던 기억을 끄집어내거나 없다면 새로이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정여울 작가는 그 내적자원이 책이었다고 고백했다. 나는 무엇일까? 지나온 날은 후회되기 마련이다. 그 때 좀 잘할 걸, 그 때 이렇게 했어야 해. (그 때 땅을 샀어야지!ㅎㅎ)

하지만 지나온 모든 날들을 견뎌낸 자는 어려운 상징계에 들어와 어른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다. 때론 어른도 상처받는다. 아무렇지 않게 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가슴 속 어딘가에 깊이 상처받은 채 외면된 내면 아이가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마침내 괜찮아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에세이를 반드시 읽어보길 추천한다. 내면아이를 성인자아가 입양하지 못하면, 성인이 계속 상상계에만 빠져있다면 온갖 중독과 공포를 경험하면서 당당하게 외출하기가 어려워진다. 사회로의 진출이 막힌다.

나는 이 책이 굉장히 책임감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이 읽고, 잃어버린 '나'를 발견하는 값진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 좋았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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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산문선 열린책들 세계문학 256
조지 오웰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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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완전히 의식하면서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통일하려고 시도한

첫 번째 책이다.

p.17



조지오웰 산문선Selected Essays

조지오웰허진 옮김열린책들


조지오웰 산문집이라니 ! 처음에 너무 놀랐다. 소설가들이 글쓰는 거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늘 소설만 접했던터라 그의 에세이가 있다는 말에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는 읽길 잘했다. 에세이도 빨려 들어가는 구만 그려! 그의 필력은 매력을 넘어서 마력을 지녔다. 문장 하나하나가 장면과 결합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진짜로 너무 재밌었다.

[동물농장]을 읽었지만 이런 사실을 조사없이 읽었기 때문에 전혀 몰랐다. 이번 기회에 나는 조지오웰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됐다. 문학은 접했지만 그의 일상을 접할 일이 없었던 터라 상당히 충격을 받기도 했다.

당시 인도는 영국의 가장 큰 식민지였기 때문에 조지오웰은 공무를 보러 간 아버지 덕분에 인도에서 출생했다. 어머니와 영국으로 돌아와 명문학교에서 수학했고, 미얀마로 건너가 인도 제국주의 경찰이 되었다.

에세이의 앞부분은 작가가 제국주의 경찰로 복무하던 시절에 있었던 일화와 느낌을 담담한 필치로 서술 돼 있다. 그는 무심코 일어나는 약자에 대한 학대를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어쩔 수 없이 가해의 방향에서 실행에 옮기는 폭력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를테면, 버마인을 대하는 태도라든가, 코끼리를 총으로 쏘는 장면들은 그가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는 있지만 실제로 실천할 수는 없는 아이러니가 담겨있다. 그러나 그는 진솔하게 썼으며 자기를 변명한다든가 합리화시키려고 굴지 않았다.


할 일도 주지 않고 무식한 사람을 온종일 가두는 것은

정말 멍청하고 잔인한 짓이다.

이는 개를 술통에 매어 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기 안에 위안거리를 가지고 있는 유식한 사람만이

감금을 견딜 수 있다.

p.58


또,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랑자 숙소에 가서 살기도 하고 강제노동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그곳에서 보고 듣은 것의 모든 묘사가 참담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러면서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았는데 특히 유럽인들이 아시아인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상세히 적어두고 비난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도 크게 다르지 않음이 시사돼 자아성찰적 요소도 배제하지 않았다. 독자는 조지오웰의 이런 다양성을 통해 '인간 조지오웰' 에 대해 깊이 느끼고 반응할 것이다.


실제로 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어떻든

그 둘이 똑같다는 말만큼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비밀경찰과 문학 검열, 징집 노동이 존재하는 군사화된 대륙 국가는

빈민가와 실업, 파업과 정당 정치가 존재하는 느슨한 민주주의 해양 국가와

개념자체가 전혀 다르다.

p.292


사회주의자 답게 가난과 노동에 대한 개인의 시각을 주관적으로 잘 기술해 두었는데 거의 논문에 가까웠다. 얼마나 많은 고민이 담겨있는지 알 수 있었다. 또, 작가답게 잘쓴 문장에 대한 본인의 견지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모색해 두었다. 문장에 대한 그의 생각만 따로 빼서 책을 만들어도 후배 작가지망생에게는 아주 도움이 될 것 같다. 글쓰기 강의해주는 조지오웰이라니!!


명료한 언어의 가장 큰 적은 부정직함이다.

실제 목표와 겉으로 내세운 목쵸가 다른 사람은

먹물을 내뿜는 오징어처럼

긴 단어와 낡아 빠진 숙어에

거의 본능적으로 의존한다.

p.183


다독했는지 본인이 사랑하는 작품들에 대해 말하는 부분도 인상깊었다. (아는 작가 나올 땐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본인이 바라보는 사물이나 동물에 대해 농담처럼 던진 단상들도 재밌었고, 겪은 일을 일기처럼 풀어놓았을 때는 시대상도 잘 엿보이고, 작가에게도 부쩍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의 글은 솔직하고 정직했다. 날 것은 자연 그대로, 쓸쓸하면 쓸쓸한대로, 비참함은 또 그것대로.


영국의 지배 계층은 전통이 있었고,

필요하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제1계명이라고

가르치는 퍼블릭 스쿨에 다녔다.

영국의 지배 계층은 동포를 약탈하면서도

스스로 진정한 애국자로 '느껴야' 했다.

따라서 그들의 탈출구는 하나밖에 없었으니,

바로 멍청함이었다.

p.223


행여 독서를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주저말고 선택하시길. 시대를 빛낸 작가 , 조지오웰을 더 잘 들여다보고 그의 사유에 감동할 기회를 붙잡는 값진 계절이 될 것이라 의심치 않으니. 소장가치 높은 책이다. 특히 내 글을 쓰고 싶은 작가 지망생은 주저없이 픽하시길 강추!


생각이 언어를 오염시킨다면

언어 역시 생각을 오염시킬 수 있다.

-조지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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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미술 365
김영숙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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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프지 않아요.

나는 고장난 것 뿐이에요.

그러나 나는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살아있는 게 행복해요.

-프리다 칼로


프리다칼로를 원래 좋아한다. 몇 년전이었을까? 우연히 그녀의 일기를 읽고나서 완전히 입덕했다. 그 처연했던 삶과 사랑과 작품들이 부족한 나의 미학적 조예에 오브제처럼 박혔다. 그때부터 나는 미술을 좋아하게 됐다. 그리지는 못하지만 화가의 일생을 공부하는 것도, 그림을 여러각도로 보는 것도, 해석해 놓은 것을 따라 다시 감상하는 것도 좋아져버렸다. 하지만 가끔 미술사 책이나 예술 에세이를 읽거나 그보다 더 가끔 전시회를 가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었다. 그런데 왠일! 원한다면 매일 미술작품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작품뿐만 아니라 화가의 일생, 세계사, 스캔들까지도!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1 페이지 미술 365김영숙비에이블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이다. 이유는 매일 미술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어도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문학과 음악을 뗄 수 없듯이 미술과 문학도 뗄 수 없다. 수 많은 화가들이 문학 작품을 오마주했다. 또, 미술과 종교는 또 불가분의 관계다. 유럽의 중세 미술은 크리스트교를 빼놓고 논할 수가 없다. 고대미술도 마찬가지다. 그것들도 신화나 샤머니즘과 다르게 생각하기 어렵다. 또, 미술을 말할 때는 자연스럽게 역사적 흐름대로 이야기한다. 미술은 도처에 있다. 그러기에 미술을 등한시 하고서 독서를 완료했다고 말하긴 어렵겠다. 이것이 내가 미술사 책이나 미술에세이를 읽는 이유다.

자주 찾아본다고 해도 외우지는 않기 때문에 나는 이책이 반가웠다. 매일 한바닥 씩이야 못 읽을쏘냐.

물론 나는 빨리 소개하는 글을 쓰고 싶기도 했고, 뒷 내용도 궁금해 일반적 책읽기처럼 단숨에 읽어버렸지만 책 읽기 싫어하는 청소년이나 별로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어른들에게도 부담없이 하루 한쪽씩 권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의 구성은 아주 좋다. 일반적인 미술 백과처럼 화가 이름 순으로 구성되거나 미술사책처럼 시대순으로 나열된 게 아니다. 월요일은 작품들을 중심으로, 화요일은 미술사를 설명하면서, 수요일은 화가를 말해주고, 목요일엔 장르나 기법들을 소개하면서 미술을 경험하게 하는 특이한 방식을 지녔다.

금요일에는 세계사적으로 미술을 풀어내고, 토요일은 누구나 재밌어하는 스캔들로, 일요일은 신화나 종교적으로 풀어낸 미술을 담아두었다. 얼마나 연구를 많이 했을까 싶어 찾아보니 원래 미술 쪽 명저를 많이 집필하신 분이었다. 어쩐지! 이 정도로 깔끔하게 구성을 할 정도면 어지간한 조예로는 어림도 없겠다 싶다. 덕분에 나는 좋은 책을 만났으니 다행이고 행복하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프리다칼로를 좋아한다. 멕시코의 유명 여류화가로 그녀 역시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일테지만 무엇보다 화가의 일생 자체가 고난의 행군이었고, 장르나 기법 면에서도 상당히 특별했으므로 많은 분야에 노미네이트 되어서 팬으로서 뿌듯했다. 짧은 일생이었지만 많은 작품을 남긴만큼 여러가지 의미로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단테는 [신곡]을 쓴 작가인줄만 알았더니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라는 화가가 있었다니. 그 역시 유명인인데 나는 처음알았다. (미술에세이 더 읽어야겠다 ㅠ) 그는 작가 단테 알리기에리를 존경한 아버지 로세티에 의해 이런 이름이 지어진 것이었다. 이름에 대한 부담감이 심했을 것 같다. 그의 일생도 보아하니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다.

장르 및 기법은 목요일 파트다. 52개의 파트를 읽고나면 미술기법적 조예가 좀 더 생길테다. 그렇다면 다음에 가게 되는 회화 전시회에서 좀 더 발전된 감상포인트를 지닐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읽었다.

특별히 도메니코 기를란다요가 그린 <최후의 만찬> (1486)이 기억에 남는데 다빈치의 그림과는 사뭇다른 구성을 지녔다. 예수님 앞에 가롯유다가 앉아있으며 다른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체리가 있다. (그림의 상징성은 책으로 확인하시라ㅎㅎ) 오 신기했다. 역시 뭐든지 알수록 보이는 법이다.

얼마 전에 [페르메이르] (아르테) 를 읽었는데 그의 그림은 대단히 사실적인 그림인데 그 기법이 '카메라 오브스쿠라' 라는 기법이라고 한다. 오 그런 전문용어는 몰랐는데 알고보니 신기했다. 암실에서 구멍을 뚫어 빛이 들어오게 하듯이 하는 기법이라니 .. 이름 붙인 게 더 놀랍지만 이렇게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기억에 남는 기법 다 말하려면 내용이 너무 길어지니 궁금하신 분들은 책으로 확인하시길 바란다.

앞에서 이야기 했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는 비운의 화가지만 스캔들의 주인이기도 했다. 342일째 되는 토요일에 독자는 그의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삼각관계의 주인공이었으며 심지어 세컨드였다. ㅎㅎㅎ

사진기가 발달하기 전에 사람들은 그림을 정밀하게 보고 그리기도 했지만 다소 이럴것이다 라며 상상해서 그렸다. 테오도르 제리코가 그린 <앱섬 더비 경마장> 의 말은 유명하다. 그림에서는 말이 네 다리를 가로로 쫙 펴고 공중부양 하듯이 뛰고 있지만 이 그림은 잘못 그린 그림이다. 왜냐하면 곧 사진기가 발달하게 되는데 사진을 찍은 결과 말의 다리는 절대로 저렇게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ㅎㅎㅎ 아! 사진기가 좀 더 뒤에 나왔더라면^^

이 밖에도 재밌는 이야기가 쏙쏙 많이 숨어있다. 참 괜찮은 책이다.

다만 한페이지에 그림과 설명을 함께 넣어야 하므로 그림이 굉장히 작게 들어가 있어서 아쉬웠다. 궁금한 그림은 일일일이 검색해서 확대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지면에 그림을 크게 넣을 수 없는 책이라서 그런 것이므로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다행히 언제나 검색할 수 있으니 다행아닌가!

짧지만 재밌다. 유용하다. 그리고 더 알고 싶다. 이 책이 메인 텍스트가 되지만 서브로 독서의 지평을 더더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실용서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정말 완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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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집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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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집래티샤 콜롱바니임미경 옮김밝은세상

[세갈래 길]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래티샤 콜롱바니의 신작 [여자들의 집]을 읽었다. 뜻모를 슬픔이 차올라서 그저 읽어내려갔다.

전국적으로 밀어닥친 끝없는 주택난의 가장 비참한 희생자들이

바로 여자들이었다.

그들이 빈곤의 제일선에서 총알받이가 되었다.

p.183

책의 내용은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집을 잃은 여성들의 쉼터인 '여성 궁전' 에서 일어난 내용을 담았다. 집을 잃었다는 개념은 단순히 거주지를 잃었다는 의미가 아닌 것을 새삼 깨달으며 너무 슬픈 가운데서도 내가 이렇게 거주의 자유가 포박당하지 않은 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래티샤 콜롱바니는 프랑스에 실제로 존재하는 구호단체 '여성 궁전' 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썼고, 이야기를 전개 하기 위해서 두가지 방법을 차용했다.

하나는 변호사 출신 작가 솔렌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여성궁전의 설립자인 블랑슈의 이야기를 교차 편성해 두었다. 다만 솔렌은 현재를 살고, 블랑슈는 1920년대에 이미 50대를 넘겼으므로 과거의 사람이다.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작가는 여러가지 재능을 가진 자 답게 영리하게 시간을 100년의 시간 속을 사는 두 인물을 교차편성해 놓음으로 이 소설의 매력을 배가 시켰다.

내가 원하는 일, 그래, 그런 일을 해야 해.

마흔 살이나 되었지만 솔렌은

스스로를 잘 안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p.82

솔렌은 의뢰인의 투신자살을 목격하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병세가 호전돼 퇴원했지만 변호사는 다시 되기 싫고 어릴때부터 좋아하던 글쓰는 일을 해보고 싶어한다. 그런 그에게 글쓰기 봉사활동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것은 여성 빈민의 보호소인 '여성 궁전' 에서 대필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솔렌은 유년시절에 부모에게 좋은 딸이 되고자 공부했을 뿐 세상에 대한 별다른 감흥 없이 살아오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차츰 변한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고, 평범이라고 불렀던 것들이 흔들리는 경험을 겪으며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 그들의 빈곤이 나에게 옮아올까하여 전전긍긍하던 솔렌, 그래도 거지에게 적선은 해야 마음이 편했떤 솔렌이 이제 여성 궁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과 춤을 추고 눈물을 흘려주었다. 그들의 귀가 되고, 손이 되고 있었다. 궁전이외의 빈곤한 거지에게도 마음을 주고 있는 자기를 발견했다. 진정한 나눔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가난은 친숙한 무엇이 되어있었다. '취약성' 은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빈타, 비비안, 크베타나의 모습으로 구체화 되었다.

p.261

우리는 '빈민 구호!' 라고 생각하면 무엇부터 해야할지 모른다. TV를 틀면 나오는 빈민구호 프로그램을 보면서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고, 막상 도와주려고 해도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나마 기부라도 한다면 좀 더 마음이 따뜻하다고 생각한다. 기부도 안하면서 문제가 터지면 내가 그럴줄 알았다고 빈정거리든지, 기부한다고 다 불쌍한 사람 돕는거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비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일찍이 어떻게 도울지, 누구를 도울지 알고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빈민 구호에 힘쓴 사람이 있다. 바로 블랑슈! 그리고 든든한 조력자 알뱅, 그녀의 남편이다.

블랑슈의 헌신은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것이었다.

그 헌신에 회의나 망설임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빈곤과 고통에 맞서 수행하는 전투에서

일신의 궁핍과 주위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p.51

가톨릭이 주를 이루던 1920년대 유럽사회에서 구세군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던 여자 블랑슈는 우연히 거리의 부랑자 산모를 마주쳤다. 그녀는 아기를 낳았지만 갈 곳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어린 아기도 마찬가지. 블랑슈는 가진 돈 모두를 털어 숙박시설을 빌려 그 여자를 쉬게 한다. 그러나 일시적인 도움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프랑스에 크지만 비어있는 주거 건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보여준 약속의 땅 같은 건물이었다. 블랑슈는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곳을 여성부랑자를 위한 공간으로 삼기로 한다.

내가 이 글을 쓰기 며칠 전에 본 기사가 있다. 제주에 사는 한 아기엄마가 낳은지 삼일 된 아기를 중고판매 어플에다가 20만원에 판다고 올린 것이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고, 엄마는 연행되었다. 손가락질하고 욕을 했지만 오죽하면 여북하랴는 말이 떠올랐다. 가난은 인간성을 아주 쉽게 증발시켜버린다.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환경 역시 마련돼야 한다. 주거가 흔들리면 삶의 모든 것이 흔들려 사회가 무너지고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사실을 블랑슈는 알았다. 그래서 모금을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점점 병으로 쇠약해져 가고 있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이 '여성 궁전' 이 바로 그 블랑슈의 헌신으로 지어진 곳이었다. 블랑슈는 이제 큰 과업을 달성하고 떠났다. 그 자리에는 필요한 여성들이 둥지를 틀 수 있게 되었다. 2020년을 살면서 부랑자는 여전히 있지만 그래도 100여년전에 한 여성이 했던 헌신이 수백명의 여성들을 쉴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여성 궁전에 살고 있는 여성들은 비단 가난해서만 오는 것은 아니었다. 배우지 못해서도 오고, 남편으로부터의 학대를 피해서도 왔다. 솔렌이 가장 먼저 마음을 열게 된 빈타는 아프리카 사람으로 딸만 데리고 국경을 넘었다. 아직도 자행되는 여아 할례를 딸에게 되물려줄 수 없어서였다. (리뷰를 적는데도 너무 슬퍼 눈물이 났다.) 지구상에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니. 전족도, 순장도 인권유린이라며 폐지된 문화인데 왜 아직도 이런 구습과 악습이 자행되는가. 겨우 네살짜리 어린 딸에게 그런 엄청난 일을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종교이고 관습이라는 역겨운 이름으로 행해지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아무튼 그래서 빈타는 도망와서 이 곳에 있지만 두고 온 아들에게 너무 미안했던 빈타는 솔렌에게 편지를 부탁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러 가면서 최신식 노트북을 떡하니 들고 갔던 솔렌은 무너진다. 그녀는 울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솔렌의 아들에게 여덟장이라는 긴 편지를 수기로 작성해서 가지고 간다.

나는 아마 솔렌 같은 사람일 것이다. 도울줄은 안다. 어지간한 도덕심과 공명심도 있다. 하지만 헌신을 결정함에 있어 대단히 밍기적거리는 편이다. 자꾸만 합리화하고 귀찮아한다. 빈자를 볼 때 솔렌과 블랑슈가 얼마나 다른지 본문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나는 이런 대조의 기법이 너무 흥미로웠고, 콜롱바니가 정말 필력과 구성력이 좋다고 생각하였다. 개인적으로 [세갈래길] 보다 더더 좋았다)

여러분은어떤 생각을 가지고 빈민을 대하는가.

100년전 블랑슈의 행동과 100년 후 솔렌의 생각은 별반 다르지않다. 그러나 블랑슈는 행동했고, 솔렌은 행동하지 않았다. 블랑슈는 저 말 뒤에 좌절하다가 우연히 신문에서 그 주거단지를 발견하고 머릿속에 재빨리 여성 빈민이 살 곳을 그린다. 그리고 실천한다. 그러나 솔렌은 자기의 책임을 공동체의 책임으로 환원해버린채 등을 돌린다. 고작 몇 푼 던져 준 것은 자기의 마음이 편하길 위해서일 뿐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다보니 생각이 너무 많아졌다. 나의 자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결말은 아직 읽지 못한 독자를 위해서 남겨둔다. 처음부터 끝까지 움직였던 여자 블랑슈, 처음에는 미온했지만 결국 적극적으로 헌신을 가담하게 된 솔렌. 어느쪽이어도 좋으니 우리도 생각해보면 좋겠다.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세월을 뛰어넘는 여성들의 연대를 다룬 작품, 정말 꼭 한 번 읽어봤으면 하는 작품 [여자들의 집]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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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내가 찾는 건 그 육체가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가장 생생하고 충실하게

기억하는 물건이야.

p.47



섬세한 문체로 각광받는 오가와 요코의 신작 [침묵 박물관]이 작가정신에서 나왔다. 처음 접하는 작품이라서 작가는 잘 몰랐다. 그렇지만 읽으면서 문장 하나하나가 섬세하고 유려하다고 생각했는데 작가가 그런 문체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하니 좀 더 이해가 됐다. 작가정신에서는 표지도 예쁘게 그렸지만 책날개에 친절하게 작가 설명을 해 놓았다. 일본소설이지만 일본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지의 산간지방 이야기 인 것처럼 느껴졌는데 나혼자만의 생각일까? 몽환적이고 신비롭기 이를데 없다. 게다가 침묵박물관이라니?


주인공 '나'는 박물관 설계를 의뢰받고 한 마을로 간다. 의뢰인 노파는 굉장히 날카로우면서도 깐깐하며 괴팍한 성격을 가졌다. 노파는 죽은 자의 물건을 취득해 보관하고 있다. 보관상태는 형편없었고, 그 목록과 수집과정은 더욱 기괴했다. 죽은 자나 유족이 허락한 적도 없는 은밀한 물건을 훔쳐오는 것. 그 과정에서 거짓말은 필수였다. 이건 정말 사기와 도둑질 아닌가? 나는 그녀의 뻔뻔함과 안하무인, 막무가내 식의 화법에 기가 질리고 말았다. 뭐야, 이게?


 그런데 희한하게도 '나'는 그의 의뢰를 받아들인다. 어쩌면 신비롭고 아름다운 소녀 때문일까. 노파의 의붓딸인 소녀는 노파를 따르면서도 '나' 를 도와 박물관에 넣을 물건 관리는 물론, 수집, 도열을 맡는다. 외과의사가 죽으면 그의 집도실에 몰래 숨어들어 그가 부정하게 부를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왔던 귀 자르는 메스를 훔쳐오고, 화가가 죽으면 그녀가 죽기 전까지 먹었다는 물감을 가지고 온다. 물론 유족들 모르게. 결국 '나'는 주머니칼까지 쓰면서 절도에 합류한다.


 '나'는 10살 차이나는 형이 있다. 원문에서도 존대어를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형에게 존댓말로 자꾸 편지를 쓰니 좀 어색했다. 나이차이가 많이나서 그럴 수도 있고. 암튼 그 형을 굉장히 좋아한다. 형이 결혼해서 아기를 낳자 그 아기에게 줄 선물을 고르러 가기도 한다. 그런데 선물을 고르다가 갑자기 의문의 폭발이 일어났고 '나'는 고막이 파열되는데서 그쳤지만 소녀는 온몸에 유리가 박혔고, 그 마을의 유명인(?)인 침묵 전도사가 죽는다. '나'는 습관처럼 침묵 전도사의 물건을 훔쳐온다. 역시 박물관 소장용이다.


 처음에 제목을 보고 엄청 기대했더랬다. 내가 박물관을 좋아하니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지나간 시간을 붙잡아 한 곳에 모아두고 후대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 너무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책에서 살짝 내비친 것처럼 물건 입장에서 봤을 때는 시간이 되면 풍화되듯 사라져버리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인간들은 소독을 하고, 건조를 시키고, 유약을 바르고, 빛을 차단해서라도 그것들을 보관하고 싶어한다. 절대로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박제하고 싶어한다. 나는 그것이 생물이 아니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죽은 자의 물건을 훔쳐오는 것은 반대다. 심지어 고인의 눈을 벌려서 의안(義眼)을 빼오는 것을 어째서 정당한 행위라고 보는가.


박물관에 존재하는 물건들은 보통은 역사적 사료가 될만한 것들이다. 물론 범인들의 물건도 얼마든지 역사가 될 수 있다. 개인의 모든 시간은 역사다. 하지만 훔쳐서 취득한 것은 별개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서 수집해야만 모든 사람들에게 가치있는 물건을 선보일 수 있다는 박물관의 의의가 설립된다. 노파도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 충분히 수집할 수 있었을텐데 그가 원하는 물건이 상당히 비이성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마도 절도라는 방법을 취득했을 것이다. 이것들에 대해 로망을 부여해 미화시켜놓은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비판적이다. 일본소설의 클리셰인가.


 독특한 설정이긴 했다. 마을 사람들의 유품을 모아 전시한다는 것. 그것이 영리의 목적도 과시의 목적도 아니지만 오랜세월이 지나 후손들이 봤을 때 좋아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도 '의안(義眼)' 은 아닌 듯)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마을에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젊은 여자가 살해당한 후 유두부분이 도려내진 채 유기되는 엽기적인 살인사건이다. '나'는 유품을 수집하러 피해자의 집이나 가게에 가지만 이렇다할 유품을 수집하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태도다. 그는 피해자를 잘 드러낼 수 있는 물건이 바로 유두라며 그것을 갖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한다. 나는 그 부분에서 구역질이 나왔다. 노파가 가지고 있던 광적인 수집욕이 '나'에게도 전가되는 시점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그 전에는 노파의 서슬에 놀라서 도둑질까지 했다면, 이번에는 광적인 수집욕에 선뜻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강요도 아닌 본인의 선택이다.


결말을 더 설상가상이다. 지속되는 사건에 범인을 발견하게 된 '나' !! 그러나 박물관을 세울 욕심을 지닌 모든 일들이 연쇄살인쯤은 헤프닝이라고 여기는 말도 안되는 사건들 속에 봉착한다. 결국 '나'는 박물관을 선택한다.


이 기괴하고 기묘한 이야기들이 독자에게 주는 바는 무엇인가. 일본소설이 아무리 독특하고 , 발상이 엽기적일 때가 많다고는 하나 생명 자체를 이토록 경시해도 되나?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해 산 자를 죽여도 되나? 제물도 아니고 이게 무슨 경우지? 그리고 침묵 전도사들의 역할은 또 뭐지? 거기에 털어놓으면 절대적 비밀이 된다는 허무맹랑한 의식들은 어디에서 오는거지? 대단히 궁금하였다. 왜 하필 알공예품일까, '나' 의 형은 또 왜 그렇게 됐을까? 폭탄은 또 누가 설치한 걸까? 개연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작품이다. 메타포라면 별도의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독자마다 이해와 공감의 진폭이 다르므로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보길 권한다. 작가의 문장력은 가독성을 증가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같은 독자를 위해서 소설가의 변이나, 역자의 말 정도가 들어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다 읽고 난 뒤에 더 무서운 소설 [침묵 박물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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