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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산문선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56
조지 오웰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9월
평점 :
[동물 농장]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완전히 의식하면서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통일하려고 시도한
첫 번째 책이다.
p.17
조지오웰 산문선Selected Essays
조지오웰/ 허진 옮김/ 열린책들
조지오웰 산문집이라니 ! 처음에 너무 놀랐다. 소설가들이 글쓰는 거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늘 소설만 접했던터라 그의 에세이가 있다는 말에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는 읽길 잘했다. 에세이도 빨려 들어가는 구만 그려! 그의 필력은 매력을 넘어서 마력을 지녔다. 문장 하나하나가 장면과 결합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진짜로 너무 재밌었다.
[동물농장]을 읽었지만 이런 사실을 조사없이 읽었기 때문에 전혀 몰랐다. 이번 기회에 나는 조지오웰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됐다. 문학은 접했지만 그의 일상을 접할 일이 없었던 터라 상당히 충격을 받기도 했다.
당시 인도는 영국의 가장 큰 식민지였기 때문에 조지오웰은 공무를 보러 간 아버지 덕분에 인도에서 출생했다. 어머니와 영국으로 돌아와 명문학교에서 수학했고, 미얀마로 건너가 인도 제국주의 경찰이 되었다.
에세이의 앞부분은 작가가 제국주의 경찰로 복무하던 시절에 있었던 일화와 느낌을 담담한 필치로 서술 돼 있다. 그는 무심코 일어나는 약자에 대한 학대를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어쩔 수 없이 가해의 방향에서 실행에 옮기는 폭력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를테면, 버마인을 대하는 태도라든가, 코끼리를 총으로 쏘는 장면들은 그가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는 있지만 실제로 실천할 수는 없는 아이러니가 담겨있다. 그러나 그는 진솔하게 썼으며 자기를 변명한다든가 합리화시키려고 굴지 않았다.
할 일도 주지 않고 무식한 사람을 온종일 가두는 것은
정말 멍청하고 잔인한 짓이다.
이는 개를 술통에 매어 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기 안에 위안거리를 가지고 있는 유식한 사람만이
감금을 견딜 수 있다.
p.58
또,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랑자 숙소에 가서 살기도 하고 강제노동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그곳에서 보고 듣은 것의 모든 묘사가 참담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러면서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았는데 특히 유럽인들이 아시아인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상세히 적어두고 비난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도 크게 다르지 않음이 시사돼 자아성찰적 요소도 배제하지 않았다. 독자는 조지오웰의 이런 다양성을 통해 '인간 조지오웰' 에 대해 깊이 느끼고 반응할 것이다.
실제로 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어떻든
그 둘이 똑같다는 말만큼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비밀경찰과 문학 검열, 징집 노동이 존재하는 군사화된 대륙 국가는
빈민가와 실업, 파업과 정당 정치가 존재하는 느슨한 민주주의 해양 국가와
개념자체가 전혀 다르다.
p.292
사회주의자 답게 가난과 노동에 대한 개인의 시각을 주관적으로 잘 기술해 두었는데 거의 논문에 가까웠다. 얼마나 많은 고민이 담겨있는지 알 수 있었다. 또, 작가답게 잘쓴 문장에 대한 본인의 견지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모색해 두었다. 문장에 대한 그의 생각만 따로 빼서 책을 만들어도 후배 작가지망생에게는 아주 도움이 될 것 같다. 글쓰기 강의해주는 조지오웰이라니!!
명료한 언어의 가장 큰 적은 부정직함이다.
실제 목표와 겉으로 내세운 목쵸가 다른 사람은
먹물을 내뿜는 오징어처럼
긴 단어와 낡아 빠진 숙어에
거의 본능적으로 의존한다.
p.183
다독했는지 본인이 사랑하는 작품들에 대해 말하는 부분도 인상깊었다. (아는 작가 나올 땐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본인이 바라보는 사물이나 동물에 대해 농담처럼 던진 단상들도 재밌었고, 겪은 일을 일기처럼 풀어놓았을 때는 시대상도 잘 엿보이고, 작가에게도 부쩍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의 글은 솔직하고 정직했다. 날 것은 자연 그대로, 쓸쓸하면 쓸쓸한대로, 비참함은 또 그것대로.
영국의 지배 계층은 전통이 있었고,
필요하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제1계명이라고
가르치는 퍼블릭 스쿨에 다녔다.
영국의 지배 계층은 동포를 약탈하면서도
스스로 진정한 애국자로 '느껴야' 했다.
따라서 그들의 탈출구는 하나밖에 없었으니,
바로 멍청함이었다.
p.223
행여 독서를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주저말고 선택하시길. 시대를 빛낸 작가 , 조지오웰을 더 잘 들여다보고 그의 사유에 감동할 기회를 붙잡는 값진 계절이 될 것이라 의심치 않으니. 소장가치 높은 책이다. 특히 내 글을 쓰고 싶은 작가 지망생은 주저없이 픽하시길 강추!
생각이 언어를 오염시킨다면
언어 역시 생각을 오염시킬 수 있다.
-조지오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