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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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는 건 그 육체가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가장 생생하고 충실하게

기억하는 물건이야.

p.47



섬세한 문체로 각광받는 오가와 요코의 신작 [침묵 박물관]이 작가정신에서 나왔다. 처음 접하는 작품이라서 작가는 잘 몰랐다. 그렇지만 읽으면서 문장 하나하나가 섬세하고 유려하다고 생각했는데 작가가 그런 문체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하니 좀 더 이해가 됐다. 작가정신에서는 표지도 예쁘게 그렸지만 책날개에 친절하게 작가 설명을 해 놓았다. 일본소설이지만 일본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지의 산간지방 이야기 인 것처럼 느껴졌는데 나혼자만의 생각일까? 몽환적이고 신비롭기 이를데 없다. 게다가 침묵박물관이라니?


주인공 '나'는 박물관 설계를 의뢰받고 한 마을로 간다. 의뢰인 노파는 굉장히 날카로우면서도 깐깐하며 괴팍한 성격을 가졌다. 노파는 죽은 자의 물건을 취득해 보관하고 있다. 보관상태는 형편없었고, 그 목록과 수집과정은 더욱 기괴했다. 죽은 자나 유족이 허락한 적도 없는 은밀한 물건을 훔쳐오는 것. 그 과정에서 거짓말은 필수였다. 이건 정말 사기와 도둑질 아닌가? 나는 그녀의 뻔뻔함과 안하무인, 막무가내 식의 화법에 기가 질리고 말았다. 뭐야, 이게?


 그런데 희한하게도 '나'는 그의 의뢰를 받아들인다. 어쩌면 신비롭고 아름다운 소녀 때문일까. 노파의 의붓딸인 소녀는 노파를 따르면서도 '나' 를 도와 박물관에 넣을 물건 관리는 물론, 수집, 도열을 맡는다. 외과의사가 죽으면 그의 집도실에 몰래 숨어들어 그가 부정하게 부를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왔던 귀 자르는 메스를 훔쳐오고, 화가가 죽으면 그녀가 죽기 전까지 먹었다는 물감을 가지고 온다. 물론 유족들 모르게. 결국 '나'는 주머니칼까지 쓰면서 절도에 합류한다.


 '나'는 10살 차이나는 형이 있다. 원문에서도 존대어를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형에게 존댓말로 자꾸 편지를 쓰니 좀 어색했다. 나이차이가 많이나서 그럴 수도 있고. 암튼 그 형을 굉장히 좋아한다. 형이 결혼해서 아기를 낳자 그 아기에게 줄 선물을 고르러 가기도 한다. 그런데 선물을 고르다가 갑자기 의문의 폭발이 일어났고 '나'는 고막이 파열되는데서 그쳤지만 소녀는 온몸에 유리가 박혔고, 그 마을의 유명인(?)인 침묵 전도사가 죽는다. '나'는 습관처럼 침묵 전도사의 물건을 훔쳐온다. 역시 박물관 소장용이다.


 처음에 제목을 보고 엄청 기대했더랬다. 내가 박물관을 좋아하니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지나간 시간을 붙잡아 한 곳에 모아두고 후대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 너무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책에서 살짝 내비친 것처럼 물건 입장에서 봤을 때는 시간이 되면 풍화되듯 사라져버리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인간들은 소독을 하고, 건조를 시키고, 유약을 바르고, 빛을 차단해서라도 그것들을 보관하고 싶어한다. 절대로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박제하고 싶어한다. 나는 그것이 생물이 아니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죽은 자의 물건을 훔쳐오는 것은 반대다. 심지어 고인의 눈을 벌려서 의안(義眼)을 빼오는 것을 어째서 정당한 행위라고 보는가.


박물관에 존재하는 물건들은 보통은 역사적 사료가 될만한 것들이다. 물론 범인들의 물건도 얼마든지 역사가 될 수 있다. 개인의 모든 시간은 역사다. 하지만 훔쳐서 취득한 것은 별개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서 수집해야만 모든 사람들에게 가치있는 물건을 선보일 수 있다는 박물관의 의의가 설립된다. 노파도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 충분히 수집할 수 있었을텐데 그가 원하는 물건이 상당히 비이성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마도 절도라는 방법을 취득했을 것이다. 이것들에 대해 로망을 부여해 미화시켜놓은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비판적이다. 일본소설의 클리셰인가.


 독특한 설정이긴 했다. 마을 사람들의 유품을 모아 전시한다는 것. 그것이 영리의 목적도 과시의 목적도 아니지만 오랜세월이 지나 후손들이 봤을 때 좋아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도 '의안(義眼)' 은 아닌 듯)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마을에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젊은 여자가 살해당한 후 유두부분이 도려내진 채 유기되는 엽기적인 살인사건이다. '나'는 유품을 수집하러 피해자의 집이나 가게에 가지만 이렇다할 유품을 수집하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태도다. 그는 피해자를 잘 드러낼 수 있는 물건이 바로 유두라며 그것을 갖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한다. 나는 그 부분에서 구역질이 나왔다. 노파가 가지고 있던 광적인 수집욕이 '나'에게도 전가되는 시점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그 전에는 노파의 서슬에 놀라서 도둑질까지 했다면, 이번에는 광적인 수집욕에 선뜻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강요도 아닌 본인의 선택이다.


결말을 더 설상가상이다. 지속되는 사건에 범인을 발견하게 된 '나' !! 그러나 박물관을 세울 욕심을 지닌 모든 일들이 연쇄살인쯤은 헤프닝이라고 여기는 말도 안되는 사건들 속에 봉착한다. 결국 '나'는 박물관을 선택한다.


이 기괴하고 기묘한 이야기들이 독자에게 주는 바는 무엇인가. 일본소설이 아무리 독특하고 , 발상이 엽기적일 때가 많다고는 하나 생명 자체를 이토록 경시해도 되나?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해 산 자를 죽여도 되나? 제물도 아니고 이게 무슨 경우지? 그리고 침묵 전도사들의 역할은 또 뭐지? 거기에 털어놓으면 절대적 비밀이 된다는 허무맹랑한 의식들은 어디에서 오는거지? 대단히 궁금하였다. 왜 하필 알공예품일까, '나' 의 형은 또 왜 그렇게 됐을까? 폭탄은 또 누가 설치한 걸까? 개연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작품이다. 메타포라면 별도의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독자마다 이해와 공감의 진폭이 다르므로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보길 권한다. 작가의 문장력은 가독성을 증가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같은 독자를 위해서 소설가의 변이나, 역자의 말 정도가 들어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다 읽고 난 뒤에 더 무서운 소설 [침묵 박물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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