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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 - 건축을 시로 만든 예술가 ㅣ 클래식 클라우드 23
신승철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8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914/pimg_7540751262672058.jpg)
현대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발자취를 신승철 교수의 필담으로 만난다! 발간이 거듭되며 탐서가들 사이에서 단연 으뜸으로 자리잡고 있는 클래식클라우드의 스물 세번째 페이지, [르코르뷔지에] 편을 읽었다.
내가 필로티 건축물을 처음 본 게 언제였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일기라도 써놓는 건데! 지금은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건물 형태고 특히 주차대란에 시달리는 빌라들을 볼 때면 필로티가 아닌 것에 괜히 분개할 정도로 익숙한데 아마도 처음 봤을 때는 무척이나 신기했을 것이다. 건물이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무수히 보고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필로티를 설계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모르고 살아왔던 지난날이었는데 어느날 초등학생 딸이 보는 위인전집에서 르코르뷔지에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흥미로웠다. 몇 년전에 읽은 거지만 기억에 남았던 것은 필로티는 물론이고, 인간의 크기에 맞게 가구를 배치하고 싱크대 같은 주방가구를 조절해서 설계한다는 모듈러 방식이 기억에 남았다. 또, 일반적인 성당과 다르게 지어진 롱샹성당과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는데 친구의 집을 갤러리 형태로 만들기위해 계단이 아닌 오르막길의 형태로 복층을 설계한 것을 보고 우아, 우아를 연발했던 기억이 났다. 마지막으로 인도의 도시 찬디가르를 설계한 사람이라는 말에 으잉? 했었다. 어린이 책이므로 업적만 시간의 순서대로 도열돼 있을 뿐 상세한 설명이 없었다. 그렇지만 당시 나는 그 책에 상당히 매료됐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만날 운명이었던 걸까.
르코르뷔지에는 스위스 라쇼드퐁에서 시계 장식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위스는 워낙 시계가 유명하니까 한 나라의 장인정도 될 것 같다. 르코르뷔지에의 본명은 에두아르인데 이 책에서도 거의 본명을 이용해 이야기를 전개하므로 알아두는 게 좋겠다. 에두아르도 아버지를 따라 시계 장식가를 해보려고 하지만 스승 샤를 레플라트니에를 만나면서 건축가가 된다. 역시 인생에 있어서 좋은 스승은 길이되고 진리가 된다.
에두아르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유명 건축물을 돌아본다. 그런데 그는 건축양식만 보는 것이아니라 장식가의 면모를 드러내며 색채, 프레스코, 조각 등 장식디자인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뭐 여기까지만 보면 유럽의 여타 예술가들과 다를바가 없지만 내가 르코르뷔지에를 위대한 예술가라고 여기는 것은 그가 다른 시각을 지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애를 가지고 있던 르코르뷔지에는 편안한 건축가의 삶이 아니라 다소 어려운 길을 택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설계하고자 마음먹기도 했다.
에두아르는 친구랑 동방여행을 계획한다. 독일, 체코 등 동유럽을 지나 이스탄불, 그리스 등을 돌며 건축에 대한 본인의 시각을 넓히고 공법화한다. 파리로 돌아온 그는 여러가지 건축적 업적을 남기는데 이미 유명해졌지만 안주하지 않고 비종교인이면서도 종교적 건축물인 성당과 수도원을 건축하기에 이른다. 돈 벌기 위해 그냥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자세를 겸허히 하며 그가 받은 감동을 재현하는 건축양식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대단히 천재적이고 비범한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패도 있었다. 사보아 건축물은 물이 새서 입주민이 힘들어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유럽 백인 남성답게 이상주의자이기도 해서 기하학 형태와 정돈된 비례를 선호했다고 한다. 자연도 기하학이어야 했다. 그런 시각은 좀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흔히 건축이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르코르뷔지에는 정말 예술가였다. 늘 실용이나 기하학에만 집착했던 그의 단호한 모습이 깨어진 부분이 있었는데 그리스 아토스산에서 드높은 하늘과 작열하는 태양 속에서 청춘의 희열과 고독을 동시에 경험했다고 한다. 그가 흘린 뜨거운 눈물이 종교적 성찰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위대하고 장엄한 것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그의 건축은 예술임과 동시에 시(詩)가 되어가고 있었다.
에두아르는 현대 건축의 시초인 돔이노 건축을 하고, 파리, 부에노스아이레스, 리우데자네이루, 알제 등에서 현대도시들을 건설하기도 했다.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기도 했다. 피카소와 예술적 교류를 나누기도 했는데 갑자기 아는 사람이 나와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 책은 워낙 방대한 것을 다루는만큼 리뷰에 다 적기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책을 덮고 이렇게 생각날 수 있다는 것은 저자의 문장력도 무시 못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재밌게 읽었다. 르코르뷔지에라는 사람을 제대로 소개받은 기분이랄까.
삶 자체가 특별했던 사람 르코르뷔지에. 죽는 것도 평범 할 수가 없다. 태양으로 헤엄쳐 가는 것을 동경했던 에두아르 할아버지는 73세의 나이로 바다에서 익사로 생을 마감한다. 가장 빛나는 것을 향해 끊임없이 헤엄치면서 장엄하게 마지막을 장식한 것이다. 진짜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르코르뷔지에는 지중해에서 예술적 영감으로 다시 태어나고, 지중해 바다에서 생을 마감했다. 원래의 것으로 회귀라고 일컫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게 예술이라면 건축이야말로 생활에 밀접한 가장 친근한 예술이다. 미술이나 조각, 음악과 문학은 인간의 정신을 이롭게 하지만 공간을 창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건축은 인간이 생을 유지하는 필수 조건 중의 하나인 '주'를 담당하면서 인간에게 가장 이로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우리는 현대사회를 살면서 '주(住)' 에게 인간 본연의 감정을 중시 여기는 공간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단 '남의 눈', '평수' , '물질적 가치' 로만 가치를 두고 있지는 않나 싶어 반성하게 됐다.
때론 인류애적인 감성으로, 때로는 미(美)에 대한 경외와 찬양으로, 때론 거부할 수 없는 거룩함과 신성으로 현대건축의 미래를 선도했던 르코르뷔지에를 만나게 돼서 정말 정말 좋았다.
특히 아름다운 사진들과 르코르뷔지에의 말과 사상들을 꼼꼼하게 만날 수 있어서 넘 근사한 경험이었다. 비대면 언택트 사회에 이 책으로 돌아가신 천재 건축가 양반과 제대로 조우할 수 있게 돼서 클래식클라우드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참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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