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 우리 안에 스며든 혐오 바이러스
박민영 지음 / 북트리거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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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스며든 혐오 바이러스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박민영

북트리거



눈먼 돈, 장님 코끼리 만지기, 병맛,

벙어리장갑, 귀머거리 3년



평범하게 썼던 관용어이자 속담 가운데 엄청나게 많은 혐오 표현이 있었다는 걸 이 책을 보고 알았다. 나름 넓은 사고와 이타심을 정말 나름대로 지녔다고 생각했던 지난 날들이 굉장히 오만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던 말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혐오 발언이 있었는지 체크해보니 부끄럽기가 이를 데 없었다.


어제도 아들에게 농담반, 진담반 '우리 집에 게임충이 두 마리 있어요, 정말 극혐이에요.' 라고 말했다. 엄마야 늘 재밌게 말을 하기도 하고, 이렇게 말해도 본인은 게임을 끌 생각이 없으므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아들이다. 우스갯소리로 내뱉은 저 말들 가운데 -농담일지라도- 써서는 안되는 단어들이 있다. 솔직히 벌레라는 표현을 붙여서 '-충'이라고 말하는 것이 혐오 발언이라는 걸 이제는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진지충, 급식충, 맘충, 틀딱충 등등 붙이기만 하면 말이 돼 버리고 그 어감에 따라 의미를 이해해 버리는 세상이 왔다. 공통된 하나의 습성을 싸잡아 한 번에 비난하는 잘못된 일반화에서부터 근거 없는 혐오 사상까지 너무나 많다. 말로 인한 상처가 실제 물리적 폭행을 휘두르는 트리거가 될 때까지도 혐오의 말들이 멈추지 않는다. 이제는 쉽게 쓰이고, 널리 쓰인다.


아직도 심각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혹은 문화로 받아들여 버리는 그 그릇된 혐오의 버릇들을 고치기 위해서 이 책은 꼭 널리 읽혀야 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왜 혐오 발언을 쓸까. 그리고 어쩌다가 혐오를 하게 되었을까. 누구나 개인의 생각이라는 것은 존재하고, 모두 같을 리 없다. 반대도 가능하고, 비판도 가능한 세상이다. 그렇지만 혐오는 미워하는 것을 넘어서는 극단적인 생각의 발로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까지 집단을 싸잡아 욕하는가.



혐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위만으로는 부족하다.

혐오에 대한 메타지성이 필요하다.

혐오가 정치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던 논리적 맥락 속에 있으며,

그 역사적 연원은 무엇인지, 그 발생원인은 무엇인지 등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고,

인식이 바뀐다.

p.15



저자 박민영은 혐오를 4개로 나누었다. 세대 혐오, 이웃 혐오, 타자 혐오, 이념 혐오.


세대 혐오 중 가장 처음이 '청소년 혐오'였는데 청소년을 기르는 엄마로서 나도 모르게 내 아들을 '중2병'이라는 거에 가두고 그 시기는 저렇게 미쳐날뛰는 시기니 김정은이 대한민국 중2들 때매 못 쳐들온다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던 엄마였다는 게 너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작가의 글에 반성과 성찰과 더불어 내가 왜 그렇게 가감 없이 혐오적인 생각과 발언을 했는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돼서 좋았다. 작가는 혐오가 어디서 기인했는 줄 알면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안다고 생각한듯하다. 그래서 어쩌다가 사람이 세대별로 나와 다른 세대를 혐오하게 됐는지를 이야기해 준다. 청소년이 급식을 무상으로 지원받는 것은 그 애들이 쓸모없는 아이들이 아니며, 그 부모가 세금으로 그것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므로 '급식충'이라는 말은 전혀 이유 없는 혐오이다. 또, 사회가 부조리해서 생기는 온갖 문제들을 청소년이 질풍노도의 사춘기라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오히려 어떤 세력이 이익을 목적으로 그런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치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또, 여성청소년에 대해 이중으로 혐오해 그것이 자연적으로 여성 혐오로 이어지게 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혐오의 뿌리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어서 읽으면서 여러 번 고개를 주억거렸다.


살면서 가장 화가 나는 혐오 발언 중에 하나는 '맘충'이라는 말이었다. 어떻게 보면 거의 가장 먼저 나온 혐오 발언이 아닌가 싶다. 내가 엄마여서 아마 더 와닿는 발언이겠지만 나는 그것이 그저 일부 몰지각한 엄마들 때문에 빚어진 말인 줄만 알았다. 물론 그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청소년의 반대자로서, 소비주의의 포로로서, 기업에 착취당하고 남편에게 무시당하는 존재로서 발현된 혐오가 기혼 여성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모든 문제 상황이 단 하나의 원인으로만 비롯되지는 않는구나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깨달은 바가 크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노인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왜 우리나라는 노인들이 폐지를 주울까. 왜 노인은 역정을 잘 내고 늘 굶주리고, 빈한할까. 왜 노인은 기피 대상이 되었는지 그 뿌리가 어딘지 세세하게 알려주는 '노인 혐오' 파트도 읽어볼만했다. 언젠가 우리 모두는 늙는다. 나는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 아무리 다짐해도 사회 구조가 해결되지 않으면 나도 여전히 소리만 지르는 노인이 될 것이다. 청년들이 노인들에게 갖는 엄청난 부담과 피해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조목조목 따져주는 작가에게 고맙기까지 했다.


'이웃' 혐오 장에서는 누구나 자유로울 수 없는 혐오의 시선을 담았다. 가장 어려운 파트는 장애인 혐오였다. 동성애 혐오와 세월호 혐오는 안하면 그만인데 장애인 혐오는 아주 뿌리박힌 고정관념을 깨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장애인 시설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시설을 만드는 데 드는 엄청난 비용을 걱정한다. 장애인 시설을 만드는데 비용이 드는 이유는 새로 만들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비장애인이 기준이었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편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들었다. 살다가 리모델링을 하려면 돈이 더 많이 드는 법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만들고 시작했더라면 따로 비용이 들지 않을 것이 아닌가. 생각이 전환 이자 그것이 사실이다. 무조건 더 많은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 것 때문에 부차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장애인 혐오의 발판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반대로, 장애를 이유로 삼아서도 안된다고 말한다. 요즘 살인사건이나 아동학대 사건이 나오면 무조건 조현병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진짜 조현병을 앓는 사람은 무조건 혐오하고 본다. 완벽한 차별을 양산하는 잘못된 언론 플레이도 멈춰야 한다.


알지 못하고 지은 죄는 엄청나다. 세월호 혐오 파트를 보면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고, 심지어 원한 적도 없는데 정치와 결탁한 언론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 역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이웃'을 혐오하다 장(場)에 '피해자' 혐오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성폭행 피해자 혐오는 말도 못 할 지경이다.


내가 이 책을 다 설명할 수가 없다. 분명한 사실은 모두가 읽어야 하는 좋은 책이란 점이다. 이 책을 반 정도 읽었을 때 정치색이 너무 강하지 않나 생각했다. 어느 날 모임에서 내가 이 책을 이야기했을 때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술에 술 탄 듯 알 수 없는 정치색을 지닌 사람보다는 한 가지 소신을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밀어붙이는 사람이 훨씬 낫다고. 듣고 보니 그렇다. 그리고 저자의 생각을 수용하고 말고는 독자의 판단이다. 다만, 이 저자가 오랜 시간을 들여 조사하고, 연구한 모든 것이 이 사회의 지독한 혐오 사상을 조금은 느슨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았던 챕터는 '정치혐오'였다. 솔직히 말하면 정치 얘기 안 좋아한다. 투표할 때 찍는 '당' 은 있지만 돌아가는 현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런데 저 파트를 읽고 왜 정치를 혐오하게 됐는지, 왜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지 알게 되었다. 여러 가지로 많이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나의 이 깨달음이 혐오로 젖어가는 이 사회에도 스며들어서 이제 인간이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데올로기 생산에 있어서

가장 책임이 무거운 사람은

아무래도 지식인 계층일 것이다.

뜻있는 지식인들의 분발이 필요하다.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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