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홍라희 컬렉션 - 강력하고도 내밀한 취향
손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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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인 유한준은 컬렉터의 단계를 애지자(사랑하는 사람), 지지자 (아는 사람), 간지자(볼 줄 아는 사람), 축지자(모으는 사람)으로 나눴다. 그러면서 그 관계를 이렇게 적었다.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러 다니게 되고, 보면 모으게 되니, 그렇게 되면 그저 모으는 사람과 다르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붙이고 싶다. 이건희는 그림 보는 기쁨을 나누고자 한 ‘공지자‘이기도 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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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홍라희 컬렉션 - 강력하고도 내밀한 취향
손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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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조예도 없으면서 미술작품 보는 걸 즐기게 된 건 다 책 때문이다. 재밌게 쓰여진 미술사 책은 읽을 때마다 지적 욕구가 자극도 되고 충족도 된다. 화가의 생애도 재밌고 그림에 얽힌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줄을 그어가면서 공부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미술에 관련된 책을 읽다보니 아는 것이 슬쩍 생긴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비슷한 사조의 그림을 알아보기도 하고 운좋게 누구 작품인지 맞추기도 한다. 하지만 유럽의 작품들을 더 많이 알아본다. 그런 류의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잘 모를 뿐더러 전시회도 잘 안가게 돼서 그야말로 까막눈이었는데 그나마 작년에 [방구석미술관 한국편]을 읽고 나서 국내 화가를 좀 알게 됐고 관심도 생겼다. 그래서 이번 책을 읽는 동안 반가웠다. 아는 사람이 많이 나왔으니까. 그러면서 이건희, 홍라희 컬렉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끼게 됐다.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눈, 그것을 살 수 있는 재력, 모아 놓을 수 있는 장소. 모두 부러운 재산이다. 이미 읽기 전부터, 내가 아는 것 이상일 것이다, 부러움을 넘어 경이로울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예상한 대로였다. 하지만 감동까지 느낄 줄 몰랐다. 나는 이건희, 홍라희 부부에게 반했다. 수장고에 간직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였는지 아는데 대대손손 물려주는 게 아니라 국립 현대 미술관에 기증하고 관련 지자체에 기증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 미술사에 획을 긋는 훌륭한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감상 할 수 있게 되었다. 보통의 생각으로는 안되는 일 같다.



게다가 국내 작가들에게 주력한 것도 놀라웠다. 해외 시장에 나오면 일부러 사들였다. 우리나라 굴지의 미술품을 해외로 반출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흔히 지나칠 수도 있었던 무명의 작가들을 알아보고 발굴하였는데 이건희, 홍라희 뿐만 아니라 국내의 화랑들의 역할도 컸다. 컬렉터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적절한 작품을 연결해 주는 화랑의 역량도 한국 미술사를 보존하는데 큰 공이 있었음을 무시할 수는 없게 됐다. 아무튼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이어지는 이건희, 홍라희 컬렉션에 어떻게 작가들의 작품이 머물게 됐는지, 또 어떻게 기증되었는지와 더불어 화가 개인의 전사와 작품의 가치까지 짚어주는 이 책은 훌륭하다. [방구석 미술관]을 읽으며 알게 된 화가를 제외하고도 많은 국내의 화가들을 만나 볼 수 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국립 현대미술관에 얼른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차일피일 미룸;) 그리고 지나간 특별 전시회를 못보고 지나친 게 너무 아쉽다 ㅠㅠ





다만 이건희, 홍라희 컬렉션에 피카소나 르누아르 같은 유럽 작가들의 작품도 있다는데 그 작품들이 어떻게 소장되게 됐는지의 설명은 빠져 있어서 아쉬웠다. 물론 저자가 직접 인터뷰가 가능한 국내의 작가 (혹은 유족, 지인)들의 사정은 잘 아는데 반해 외국 작품들이 어떻게 유입됐는지 알려진 바가 없어서 그랬을 수는 있겠지만 궁금했는데 다뤄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아무튼 모네, 르누아르, 피카소 등 어린아이들도 알만한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을 삼성가가 소유했었다니, 덕분에 우리나라 미술관에서 소장하게 됐다니 신기하고 감동이다.



기업에서 왜이리 그림을 열심히 모았을까? 솔직히 돈세탁 같은 다소 어두운 이유인줄 알았다. 이 책을 읽고 완전히 오해가 풀렸다. 이병철, 이건희 회장이 가진 작품에의 순수한 사랑과 좋은 작품을 많은 사람이 감상할 수 있게 보존하려는 소망까지 더해져 한국 미술사의 산실이 되었다. 홍라희의 감각과 추진력까지 더해져 한국 미술계의 보고가 된 삼성가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이건희,홍라희 컬렉션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이나 일찍 작고한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해 놓는 바람에 그들의 이야기가 알려지고 재조명 받을 수 있게 만든 혁혁한 공이 있다. 그걸 또 상세히 알게 해 준 이 책에게도 고맙다.



책이 두껍지만 술술 잘 읽혔다. 왠만큼 읽다가 이런 책이구나, 덮기도 하는데 이 책은 꼼꼼하게 다 읽었다. 처음 알게된 작가들도 있어서 지평이 넓어진 기분이고 가서 실제로 보고 싶다는 또하나의 소망이 생겨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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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책 - 사람과 사람 사이를 헤엄치는
정철 지음 / 김영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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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가는 것.누군가 다가올 때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가는 것. 가지않으면 오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목마름은 물이 아니라 발이 치유 한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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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책 - 사람과 사람 사이를 헤엄치는
정철 지음 / 김영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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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명료한 동사책은 그 어떤 수식이나 은유없이 진짜 동사를 소개하는 책이다. 문법책이냐고? 아니, 사람 사는 이야기다. 자기 이야기인듯 내 이야기인듯 지능적으로 엮은 우리의 이야기다. 하나의 동사로 열어젖힌 포문일지 몰라도 사람냄새 풀풀 나는 삶의 이야기엔 동사 이상의 것이 있다. 지은이가 제시한 동사는 60개! 그 동사 하나 덜컥 던져놓고 자기만의 소회와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늘어놓는다. 천생 카피라이터라 그런지 창의적인 문장도 술술이고 유머러스한 표현도 약방의 감초처럼 찰떡이다. 가족에 대해, 특히 부모님에 대해 정의하는 구간은 여러모로 와 닿았고 계절이나 관계를 말하는 방식도 좋았다.



저자는 스스로 만든 단어도 하나 끼워 넣었다. “사람하다”라는 동사를 만들고 용감하게 정의도 내려버린다. 비슷한 생각을 나도 한 적 있었는데 한발 늦었다 ㅎㅎ 역시 글은 일단 쓰고보는 거다!



방송에도 나온 적 있는 유명 카피라이터라는데 나는 광고 쪽으로는 잘 몰라서 처음 알게 됐다. 하지만 그의 굵직했던 카피들은 기억하고 있다. 이제보니 처음부터 ‘사람하던’ 사람이었나보다. 역시는 역시다.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을 끝으로 감상 마무리.
“인생은 가는 것.누군가 다가올 때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가는 것. 가지않으면 오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목마름은 물이 아니라 발이 치유 한다.”
p.192

젊은이도 아저씨 아줌마도 읽어보길 추천! 우리 모두에겐 우리만의 동사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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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한 B컷 문학동네 청소년 64
이금이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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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책을 읽은 게 10년 안팎이어서 그 전부터 유명했던 작가들의 책은 안 본 게 많다. 이금이 작가님의 동화는 거의 읽은 적이 없고 처음 접한 게 청소년 소설부터였는데 나는 그 소설을 어른이 읽는 소설로 읽었고, 역사 소설로 생각했다. 이름은 [알로하, 나의 엄마들]! 그 후로 기회 닿는대로 읽었다. 이 책도 신간이 나오자마자 읽었다. 그리고 대체로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는다. 그러니까 재밌다는 이야기.

같은 반 인기남 서빈으로부터 유튜브 편집 제의를 받은 중학생 선우. 인정받는 기분과 더불어 한편 당 주어지는 문상 2만원은 달콤하기 이를데 없었다. 서빈의 무리는 서빈 포함 네 명이고 한 명이 유독 정적(?)이긴 했지만 대체로 잘 어울리는 기분이어서 선우는 공들여 편집을 한다. 날것의 그대로를 넣자니 '모범생 인싸' 분위기 서빈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자를 건 자르느라 시간을 많이 뺏기고 있던 선우에게 첫사랑 미호에게 연락이 온다.

코로나로 대한민국 중학생들은 모두 정상 수업이 중지된 상태. 그래도 줌으로 수업이 진행되는데 새롭게 같은 반이 된 정후가 까만 화면만 띄울 뿐 나타나지 않는다. 예비 반장이 된 선우는 평소에 쌀쌀맞은 정후였지만 괜히 마음이 쓰여 문자를 넣는다. 그리고 정후 엄마가 전화를 걸어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다.

우리 모두는 편집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잘라지고 섞이고 미화된 화면들을 진실이라고 믿으며 산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거짓 교사가 만연한 시대. 우리는 그것을 편집이라고 부른다. 편집을 못하면 촌스럽고 편집을 안하면 무식한 것처럼 구는 그런 세상에 산다. 나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거짓광고를 만들고 있고 잘만 만들면 돈이 된다는 허황된 생각에서 각색하고 포장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이금이 작가는 '편집'이라는 단어에 고민한 나머지 이런 재밌는 소설을 또 써내었다. (이 시점에 박수쳐도 될까)

선우의 선택은 옳았다. 선우 아버지의 선택도 옳았다. 떳떳하기 위해 증거를 내밀었다. 남들은 바보 같다고 한다. 눈 한번 질끈 감으면 될 것을 뭐하러 일을 키우냐고 한다. 하지만 선우 아빠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내 가족에게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아버지를 닮아 선우도 움직인다. 어쩌면 선우가 편집을 했기 때문에 정후는 죽지 않아도 됐을지 모르겠다.

폭력은 쉽게 청소년을 죽음으로 몬다. 부모의 학대도 그렇고 학교 폭력도 마찬가지다. 억압과 체벌 속에서 아이들은 또래를 괴롭히는 것으로 희열을 느낀다. 정후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자기를 그었다. 선우가 B컷을 잘라내지 않고 지워버렸다면, 선우가 그것을 묵인했더라면, 선우가 돈을 좇았더라면 정후는 죽고 없을 것 같다.

현실과 편집된 세계 사이에는 누더기 차림의 신데렐라와 마법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신데렐라의 차이만큼이나 거리가 있었다.

p.103

이 책이 놀라운 이유 중에 하나는 학교폭력만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부모, 공부로 억압하는 부모, 부정을 모른 체 하는 어른, 코로나 이야기, 퀴어 문제까지도 발 담그고 있기 때문이다. 충분히 많은 이야기가 퍼져 나갈 수 있는 소설이었다. 너무 빨리 끝나서 아쉬울 정도로.

그리고 선우가 한 물음에 나도 봉착한다.

'나는 정말 몰랐을까?'

선우의 용기가 부러운만큼 좋아요를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부러워요를 멈출까? ㅎㅎㅎ

재밌게 잘 읽었다. 어른들도 읽어봤음 좋겠다. 함부로 잘라내고 거짓으로 뭉쳐 놓은 15초짜리 동영상으로 하루를 채우는 청소년들은 꼭꼭 읽었으면 좋겠다. (우리집 애들부터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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