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 운, 재능, 그리고 한 가지 더 필요한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
브라이언 키팅 지음, 마크 에드워즈 그림, 이한음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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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는 뇌를 믿지 않는다]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확 끌렸다. 나는 과학자적인 삶을 살지는 못하지만 과학자들이 오랜시간 공들여서 세상에 소개하는 학설과 그것이 미친 파장과 발전과정에 대해 알아보는 것을 흥미로워 하는 편이다. 하루 아침에 나오지 않는데도 끝까지 탐구하고 답에 접근해 가는 과정이 문학과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정해진 답이 없지만 계속 증명하려고 애쓰는 것이 철학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물리학상까지 거머쥔 사람들은 말해 무엇할까. 그 오랜 노고에 항상 경의를 표한다. 이 책도 그런 관점에서 너무 읽어보고 싶었다. 특히, 내가 잘 모르는 현대 물리학자들을 알게 되고 그것으로 독서가 확장되는 경험만으로도 이 책은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대감으로 집어 들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좀 달랐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과학자들을 상대로 던지는 질문들이 다 좋았긴 했지만 그들이 어쩌다가 그런 자리에까지 가게 됐는지, 연구를 이어나가면서 힘든 점은 없었는지 구체적인 전사(全史)가 부족했다. 궁금한 게 많았다. 하지만 문장이 너무 좋아서 아쉬움이 줄었다. 반해버렸다.

인터뷰집은 그런 매력이 있다. 사람들에게 가닿은 질문이 내 마음을 흔드는 대답으로 돌아올 때 나는 마치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공감한다. 이 책은 현대인의 불안에 대해서 위로하는 문장들이 많았다. 성과 중심적 세상에서 스트레스 받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어 줄 것 같았다. 쓰레기 시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이었다. 남들 눈에 보잘 것 없는 너만의 시간일지라도 꼭 필요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책이었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이 대단한 사람들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고 들려주었다. 겸손과 감사가 차근차근 차곡차곡 마음에 찼다.

약간의 운과 얼마간의 노력은 어떤 업적을 세우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만 삶의 태도만큼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도 드물다. 지대한 성과를 거뒀다고 해도 삶의 태도가 경박하면 이내 무너지고 말 것이다. 거론된 물리학자 9인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맡은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명예를 얻더라도 겸손한 자세로, 함께한 다른 이에게 공을 돌리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 똑똑한 머리와 돈과 운 뿐만 아니라 이러한 태도도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의 사랑에 힘입어 과거사도 세탁하는 운빨과 얼마간의 실력으로 유명세를 얻었음에도 음주운전과 거짓말로 팬들을 우롱한 어떤 덩치 큰 연예인이 떠올랐다. 그가 이 책을 읽었다면 달라졌을까?


이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 문장은 많지만 마지막 프롤로그에 있던 잊히지 않는 문장이 있다. "열정을 좇지 말고 호기심을 좇아라"는 말. 열정은 솟았다가 사그라들면 의기소침해지지만 호기심은 좇다가 말면 그만이다. 러프하게 살면서 소소하게 찾아나가는 행복은 어떨까? 나는 이런 문장들에서 위로를 받았다. 좋았다.
이 책은 가지고 있다가 누군가 힘들어할 때 위로하는 마음으로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독서 모임 회원들도 그런 의미로 좋더라고 이야기 해줘서 책추천의 불안감이 싹 사라진 느낌이었다. 고마웠다.^^
견디고 견디고 견디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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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노동 - 적게 일해도 되는 사회, 적게 일해야 하는 사회
데니스 뇌르마르크 지음, 손화수 옮김 / 자음과모음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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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노동]이라는 책이 나왔을 때 나는 놀랐다. 우리가 하는 대다수의 일이 사실은 쓸모 없는 일이라니. 제일 놀랐던 것은 회의이다. 우리는 회의를 거쳐서 항상 좋은 결론에 도달하려고 하는데 회의가 가장 쓸모 없는 것이라고 말하니 놀랄 수밖에.
이번에는 그 후속작으로 [진짜 노동]이라는 책이 나왔다. 정반대의 제목에 어리둥절했다. 읽어 보니 전작의연장선상으로 첫 번째 챕터가 가짜 노동을 안 읽어 본 사람을 위하여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었고, 저자는 서문에서 아예 진짜 노동을 읽은 사람은 그 부분을 건너뛰어도 좋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진짜 노동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월급 루팡이라는 말이 있다. 별로 중요한 업무는 하지 않고 시간만 죽이다가 월급을 받아 가는 사람을 말한다. 아마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구나 기분 나빠 할 것이다. 내가 얼마나 많이 일하는데, 내가 얼마나 바쁜데 하면서. 하지만 저자는 그 대부분의 일이 가짜 노동이며, 굉장히 소모적인 일이라 우리를 행복하지 않게 한다고 말한다. 진짜 중요한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여가를 즐기라고 말한다. 그것이 더 행복하고 효율적이라고.

저자의 생각 중에 놀라웠던 것 중에 하나는 인센티브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이었다. 지식과 혁신이 관련된 직업들이 보상이 약속되면 오히려 품질이 떨어지고 성과의 다른 급여나 성과 계약들이 오히려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보상이 있어서 하면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위해 내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에 더 큰 보상을 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 유능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해를 끼치는 거라고 말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어려운일일수록 보상이 많으면 더 열심히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역효과라니 그런 시각이 신선하고 신기했다.

또, 어떤 이의 역할은 무엇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별로 생산적이지 않고 돈이든 재정이든 낭비되고 있다고 말한다. 펜데믹으로 멈춰있었어도 회사가 돌아가는데 지장없었다면 그 자리는 포스트팬데믹에도 없어도 되는 업무였던 것이다. 그런 자리를 없애는 게 정직성이겠지. 특히 상사의 허영심은 진짜 노동을 위해 사라져야 한다. 사실 직장인은 스스로가 좀 더 효율적으로 노동력을 배치할 수 있게 투쟁해야 한다. 휴가 중에 와 있는 이메일 정도는 삭제 할 수 있는 능력?? ㅎㅎ

저자는 직원 모두의 정직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적게 일해도 되는데 많이 일해야 하는 것처럼, 아니 그러고 있는 것처럼 굴지 말라고 한다. 정직성이 없어지면 결국 일의 능률을 올리는 것이나 협업에도 방해가 되어 가짜노동이 판을 치게 되는 것이다.

나도 사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평소에는 다른 일로 힘을 낭비하다가 중요한 일을 닥쳐서 히는 습관 때문에 자책의 말로 바쁘다고 투덜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직장인이 아니라서 이 책의 내용을 완전히 적용 할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 노동자의 퇴근 시간 단축을 위해서라도 이 책은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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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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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중의 작가라는 비비언고닉의 신작을 티저북으로 받았다. 아마도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일 것 같은데 다 읽은 지금 본 내용이 너무너무 궁금하다.
요즘 나도 고전을 비자발적으로 ‘다시 읽기’하고 있는데 이 책도 작가가 ‘다시 읽기’ 한 책에 대한 내용이래서 기대가 크다. 어떤 책이든 처음 읽을 때와 후에 읽는 간극에 더 많은 경험과 생각의 변화가 쌓이므로 당시의 상태와 공기에 따라 감각 자체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닉은 ‘새로운 감수성’으로 작품에 접근한 것 같다. 본 내용을 읽어봐야 알겠지만 서문만 보고도 고닉이 ‘내밀한 벗’이라고 부르는 그의 인생책을 빨리 알아보고 싶다. 고닉은 독서의 이유를 ‘삶의 압력을 느끼기 위함’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왜 책을 읽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인물을 만나는 게 짜릿해서 라고 종종 말하는데 ’제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기운들에 얽매이고 휘둘리는 주인공을 보려고 읽는다‘ 라고 말하는 고닉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그런 주인공을 통해 나 역시 간접 성장함을 느낀 적이 한 두번이 아님을 상기했다.
아직 완독은 못했지만 [사나운 애착]읽으면서 줄치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았는데 이 책은 서문만 읽고도 아예 내가 썼으면 좋았겠다는 문장이 거의 다였다. 아마 본문을 읽고도 그렇겠지? +_+

🔖위대한 문학은 통합된 실존이라는 업적이 아니라 그 위업을 향해 발버둥 치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각인된 분투의 기록이다.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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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한승혜 외 지음 / 문예출판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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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영 교수님 강연을 듣고 검색하다가 알게 된 책인데 고전을 많이 활용하는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샀다. 어떤 고전은 읽을 때 여성혐오나 폄하가 너무 심해서 그만 읽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 불편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내가 너무 뾰족한 걸까, 그럼 읽지 마! 라는 말에 따라야 하는 걸까?

불편은 한데 뭐가 어떻게 왜 불편한지 정확히 모르는 작품들도 있다. 어느틈에 나도 모르게, 그 시대엔 어쩔 수 없었어, 지금은 다르잖아 하기도 한다. 그래도 될까?

이러한 물음에 있어 몇 가지 답을 준 게 바로 이 책이다. 명작이어서, 누구나 인생책으로 꼽아서, 수능에 나와서 혹은 삶의 지표를 주기 때문에 소소한 차별쯤은 시대상이라고 치부해도 되는 걸까? 물론 아니다. 그러다보면 명작의 시대가 아닌 지금 벌어지는 차별과 반목들을 , 특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쉽게 '그럴 수도 있지'의 자리에 서야 하는 몇 가지 행태들을 그저 두고 봐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어디를 정확하게 꼬집어야 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젖가슴으로 시작해서 젖가슴으로 끝나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학적 가치를 배제 할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고민이 됐다.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소개하면서 나는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 그때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을 만났다. 어디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것을 알아내고 짚어내는 게 현대 사회에서 왜 중요한지, 여성 독자로서 어떤 담론을 끌어와야 하는지 좀 더 생각이 깊어졌다. 불편하다고 읽기를 주저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이 도움이 많이 됐다.

다다음번 모임은 [위대한 개츠비]다. 이미 수없이 읽은 작품이다. 그렇지만 다시 읽기 하기로 한다.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목차에 개츠비가 등장하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개츠비가 사랑하는 데이지를 보면서, 개츠비의 순애보에만 초점을 맞췄던 내가 먼저 카프카식 도끼날을 맞은 후에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야겠다. 이미 [그리스인 조르바]를 하면서 이 책을 추천해 두었다. 회원들이 읽고 오면 좋겠다. ^^

고전을 읽을 때 나는 반드시 '또 읽기'를 권한다. 독서에는 반드시 공기가 있다. 어느 시대 어떤 시간, 어떤 계절에 어떤 마음과 어떤 피로도로 읽는지에 따라 공기의 밀도와 색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또 읽기'는 중요한 독서법이다. 하지만 이젠 '다시 읽기'를 추천해야겠다. 아무 생각없이 서사나 묘사에 취해 즐겁게만 읽었던 작품들을 다른 시각으로 다시 읽어야 한다. 약자에 대한 시선, 여성에 대한 정의, 차별과 병폐와 폭력을 눈감던 규범들을 찾아서 다시 읽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책이 선구자적이라고 생각한다. 곁에 두고 때마다 자세히 들여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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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곰
메리언 엥겔 지음, 최재원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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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부터 흥미진진했던 책. 메리언 엥겔이라는 사람은 잘 몰랐지만 충격적 울림이라고 후기를 남겼다는 마거릿 애트우드는 알았고, 1대 메리언 엥겔상 수상자 앨리스 먼로도 잘 알았다. 그 밖에 우리나라 작가들도 강력추천했다기에 안 읽을 이유는 없었다. 기회도 좋았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읽고 나서는 몰랐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솔직히 너무 충격적이었다. 혹자는 그것은 사랑이다,고 말했는데 그게 사랑이라고? 싶었다. 글을 읽고 난 후에도 어떠한 서정과 여성주의적 시각과 아름다운 서사, 그 어느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냥 지저분한 욕정이고, 삐뚤어진 자기애였다. 자연과의 합일 뭐 이런 것도 아니고, 사회에서 염증을 느낀 주인공의 자기 위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까놓고 말하면 그냥 엄격한 수간이었다. -_-;;게다가 불륜도 서슴없이....;;;

이것이 자유에의 갈망인가? 이것이 사랑의 다른 모습인가? 사랑의 유형은 저마다 다르니 절대로 잣대를 들이대지 마라? 아니 동물에게도 그래요? 물어봤어요?? 사람이 함부로 그래도 된다고 동물도 동의했나요?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숲속 강가의 오두막, 그 옆에 눈부시게 쏟아지는 대자연 정도만 느끼고 돌아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백번 양보해 그가 지난 사랑 혹은 사람들에게 너무 상처 입었고, 그래서 아팠고 속상했고 외로웠다 하더라도 나에겐 그 어떤 것도 진솔한 사랑의 이름으로 들이댈 수 없었고 주인공이 남자였고, 여자곰이었다면 그래도 우리가 이것을 사랑이라고 할지, 그것을 문학이라고 생각하고 읽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작가님이 돌아가셔서 못 물어봄 ㅠ)

내가 아직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리언 엥겔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고, 초역이라고 하니 다른 작품도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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