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용 (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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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로 '나비' 혹은 '나방'이라는 의미를 가진 '파피용(Papillon)'은 태양 에너지로 항해하는 거대한 우주 범선의 이름을 가리킨다. 인류에게 더 이상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어 미지의 행성을 개척하고자 기나 긴 여행을 떠나는 14만 4천 명을 태운 우주 범선이다. 그들이 가고자 하는 행성은 넉넉잡아 이천년을 가야 닿을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그들은 과학의 힘을 빌어, 이 거대한 우주 범선 안에 중력을 작용시키고 생태계를 조성하여 이천년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을 만든다. 그리고 그들이 환멸을 느껴 떠나왔던 지구의 수많은 관습과 폐단들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그들만의 룰을 만들어 새로운 공동체를 조성해 나간다. 지구를 떠난 순간부터 그들은 그들만의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어 더 이상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해 버린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꿈꾸게 된다.

이러한 기발한 생각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여러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으로부터 출발한다. 소설에는 기막힌 프로젝트에 대한 발상이라든지, 그 전개 과정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만큼 자연스럽게 기술되어 있다. 소설 속에서 실행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는 너무나 어마어마한 것이기 때문에,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는 인물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잠시도 책장 넘기는 것을 멈출 수 없게 된다.

소설의 과학적인 기술방법은 간혹 과학적 지식이 풍부한 독자에 의해 비판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허구인 문학의 영역에서는 과학적 가설에 대한 설득적인 증거를 요구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과학기술에는 한계가 있지만,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다.

'파피용'의 대단한 점은 단순히 과학적 상식에서 출발하여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거대한 모험을 상상해냈다는 것 자체에 있지 않다. 베르베르는 (그의 다른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공상과학소설의 전형적인 플롯을 답습하지는 않는다. 그 시작은 과학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철학, 심리, 사회적인 문제와 같은 인류의 깊이 있는 부분 까지 들추어 낸다. 인간 근원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파피용'호에 탑승한 14만 4천명은 새로운 제도를 만들며 타락한 지구와 다른 이상적인 사회를 꿈꾼다. 그러나 아무리 철저한 계획과 연구를 거친 과학의 힘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은 바로 인간이었다. 이들은 과학의 힘을 빌어 완벽한 자연환경을 조성하였으나, 인간 간의 유대와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사회환경까지는 통제하지 못한다. 바로 인간이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못한 탓이다. 인간이 지구에서 이룩한 모든 것을 잊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결국 인류 역사의 오류들을 반복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소설은 또 공상과학의 세계에서 인간에 대한 진지한 탐구로 나아가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전작에 비해 스케일이 훨씬 커진 '파피용'에는 인류의 세계관에 대한 패러다임마저 뒤바꾸어 버리는 어마어마한 결말까지 기다리고 있다. 이 결말은 일차적으로 신에대한 부정, 과학에 대한 긍정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파피용호 안에서 인류의 야만적인 역사를 반복해서 보여준 인간들이 진정으로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류의 시작지점에서 다시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작가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과학의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무한한 상상력, 빠르고 흥미진진한 전개 속에서 놓치기 쉬운 메시지를 베르나르는 언제나 깊숙이 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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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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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떠나보내는 일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예민하고 부서지기 쉬운 17세의 소녀에게는 세상을 통째로 잃는 깊은 상실일 것이다.

'꽃피는 고래'는 열일곱 니은이가 자기 앞에 놓인 가장 큰 상실을 극복하고 어른이 되어 가는 성장담이다. 소설은 부모를 잃은 상실감과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초조함, 두 가지 숙제를 한꺼번에 떠안고 있는 소녀의 복잡한 내면을 천천히 보여준다. 돌연한 부모의 죽음으로 홀로 남게된 니은은 아버지의 고향인 처용포로 내려와서 지내게 된다. 한 때 고래잡이가 번성했었고 고래 한 마리를 통해 삶의 희노애락을 모두 겪어왔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처용포. 처용과 황옥의 신화만큼이나 기이한 분위기를 간직한 처용포에서 겨우 숨을 쉴 수 있게 되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슬픔은 꽤 오랫동안 니은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소중한 것을 잃거나 깊은 좌절을 겪어 보았던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변해버린 것 같은 기분을. 니은에게 집은 더이상 안락한 공간이 될 수 없고, 남자친구도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한다. 가장 친한 친구와 주고받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적인 대화도 폐부를 찌르는 독설처럼 느껴진다. 타인과의 소통은 부모가 있던 때와 없어져 버린 지금의 삶이 명백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깨닫게 할 뿐이다.

니은에게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처용포는 이미 신화가 사라져 버린 곳이지만 신화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빠의 유년의 공간이자 꿈이었던 처용포에는 오래된 신화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장포수 할아버지가 있다. 그는 포경이 금지된 이후에도 고래잡이 배를 보존하며 다시 한 번 바다 한 가운데서 고래가 꽃을 피우는 것을 보기를 소원한다. 처용포에는 또 가족을 잃은 슬픔을 타인의 상처를 보듬어 안는 것으로 치유해 가는 왕고래집 할머니가 있다. 장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집 할머니의 삶은 보이지 않게 니은의 아픔을 조금씩 달래준다. 장포수 할아버지의 고래배를 타고 넓은 세계를 접하게 된 니은은 마침내 처용포를 떠나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친한 친구 나무의 사촌언니와, 영호 언니를 만나 그들의 자유로운 삶의 모습을 보게 된 니은은 부모 없이 살아가야 하는 삶에 조금씩 용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남겨진 자신보다 자기를 남겨두고 떠나간 부모의 마음이 더욱 아팠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정도로 아픔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외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 점차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혼자서 살아갈 용기를 얻게되는 모든 과정이 처용포의 변화 과정과 교차되며 드러난다. 처용포는 고래잡이가 생의 전부였던 사람들의 기억을 화석처럼 저장해 관광상품화하고, 처용포의 신화를 옛 것으로 묻어버린다. 신화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 슬픔의 세계에서 성장의 세계로 내려온 니은의 내면을 보여주듯이 이 모든 변화에 대해 니은은 담담하다. 그러나 니은의 부모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 처럼, 처용을 닮은 장포수 할아버지가 '신화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을 본다. 사라진 부모와 장포수 할아버지, 신화 속의 처용을 일치시키면서 니은은 비로소 '이별'이라는 것의 속성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예고 없는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이 한 걸음 성장해나가는 것임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깨달음의 과정은 매순간 어떤 계기에 의해 점차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결말에 가까워 올 수록 깨달음이 급속도로 빨리 전개되는 듯 보인다. 니은이 갑자기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해 지나치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너무 쉽게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단조로운 성장담에 신화와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끌어들인 섬세한 필력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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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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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우선 재미있어야 한다. 아무리 근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해도 독자에게 읽히지 않은 소설은 가치가 없다. 그러나 독자를 의식해 재미에 너무 치중한다면, 흥미 위주의 통속소설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문제는 재미와 가치의 간극을 잘 조율해야 된다는 점인데,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작가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가 아닐까 싶다.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는 작품의 가치를 너무 사회적, 역사적 문제의식에만 한정시키는 경향에서 벗어나, 그 가치를 현대의 젊은이들의 일상 깊숙이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큰 공감을 얻고 있다. 물론 소설의 미덕이라할 수 있는 재미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오은수는 이 시대의 30대 도시 여성들의 삶을 대변해 주는 인물이다. 평범한 학창시절을 거쳐, 사회와 적당히 타협한 결과 적당한 직장에 취직하여 지금쯤은 몇몇 후배를 거느린 베테랑 사원이 되어버린 그런 나이의 여성의 전형이다. 직장과 우정, 연애와 결혼 따위가 가장 큰 관심사이며, 이따금 가족 간에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에서 갈등을 겪기도 하는 그런 평범한 삶이지만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우리는 오은수의 삶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스타벅스의 카페모카를 좋아하고, 주기적으로 친구들과 모여서 노닥거리며 스트레스를 푸는가 하면, 가끔씩 큰 마음 먹고 예쁜 블라우스를 사기도 하며, 멋있는 결혼식을 상상하기도 하는 등 소소한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직장 상사의 부당함에 멋지게 항의하지 못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소시민적인 모습까지도 말이다. 드라마 속에 줄곧 등장하는 똑 부러지게 일 잘 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우리는 인생의 매순간마다 깨닫고 있지 않은가.

물론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다섯 번째 성형 수술을 감행한다던가, 맞선본 지 이 주 만에 결혼을 결심하고 결혼직후 이혼한다던가, 결혼을 앞둔 약혼자가 남의 이름을 빌어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던가 하는 일이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평범한 삶이란 것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또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은 없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도시인의 풍속과 세태를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대인들이 '흥부전'을 통해 조선 후기의 풍속을 살피고, '천변풍경'을 통해 일제시대 청계천 주변의 하층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듯이, 먼 미래의 독자들이 2000년대의 풍속을 알기 위해서 펼쳐 볼만한 소설이다. 그만큼  2000년대 도시의 트렌드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커피,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 메신저 대화, 결혼 풍습 등이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그려진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와 많이 닮았다. 직장, 가족, 친구 등 주변인들에 대한 위트 넘치는 촌평, 돌연히 찾아온 사랑에 대한 단상, 우연히 목격한 엄마의 비밀까지. 그러나 그 정체성은 로맨스 소설이라기보다 성장소설에 가깝다. 사랑의 성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사랑을 통해 변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일들을 겪고 난 후 은수는 사춘기를 심하게 앓은 소녀처럼 훌쩍 자라 있는 모습을 보인다.

한국문단의 특성 중의 하나가 통속소설과 이른바 '작품'으로 치부되는 본격소설간의 경계가 너무나도 분명하다는 것이다. 소설에는 반드시 굵직하고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어야만 예술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일종의 문화귀족주의 탓에 정작 독서를 외면하는 사람들만 늘어나고 있다.  21세기 들어 새롭게 창조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문화가 '통속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문단에서 외면될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변화까지도 반영하는 것이 오히려 문학의 역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도시 젊은이들의 일상을 가볍게 풀어내며 젊은층에게 공감을 주는  소설들은 소설의 겉멋을 한꺼풀 벗겨낸다는 점에서 한국 문단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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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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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공간을 문학의 영역까지 확장해도 제3세계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볼 기회란 그리 많지 않다. 기껏해야 가난, 내전, 외세의 침입, 유아사망 등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이 붙는 신문의 국제면을 통해서 우리는 그들의 삶을 짐작이나 할 뿐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작가가 고국의 아픈 역사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좀처럼 접하기 힘든 중동 지역이란 생소한 배경 덕분에 이 소설에서 이국취미를 느끼기는 쉽지만, 소설은 두 인물의 기구한 삶에서 드러나는 인간 보편의 사랑과 휴머니즘에 더욱 초점을 두고 있다.
 

소설은 두 주인공 마리암과 라일라의 삶을 아프가니스탄의 굴곡진 근현대사 속에서 바라보고 있다.
마리암은 태생부터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속에서 혼자 싸워야 했다. 그녀는 사생아라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헤라트 외곽의 외진 마을에서 외롭게 자라왔다. 모든 사랑을 퍼부었던 아버지로부터 배신을 당한 채 헤라트에서 카불로 시집을 온 뒤로 마리암의 삶에는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한편, 라일라는 지식인 부모의 밑에서 부족함 없이 살아왔으나, 지하드에 참여했던 두 오빠가 전사한 뒤 변해버린 어머니로 인해 많은 내적 갈등을 겪는다. 그러는 중에  그녀는 다정한 아버지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꿉친구 타리크로 인해 위안을 받는다. 그러나 타리크가 내전으로인해 피폐해진 카불을 뒤로 하고 떠나고, 폭격을 맞아 부모가 죽자 라일라의 삶은 급격하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마리암과 라일라가 같은 집에서 살며,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을 가지고 고된 삶을 견뎌내는 과정은 굳이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적 배경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애절하게 다가온다. 작가가 격변하는 역사를 말하기 위해 인물에 생명을 불어 넣은 것이 아니라, 두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처절한 근대사를 곁들여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리암의 희생은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얼마나 크고 숭고한 지를 보여준다. 우정과 모성을 비롯해, 무엇에 대한 애착을 준 적도 받은 적도 없었던 마리암에게 그 모든 것을 채워주었던 라일라를 위해 마리암은 숭고한 희생을 결심한다. 죽음을 앞둔 그녀의 말에서처럼 마리암에게 있어서는 누군가를 위해서 그렇게 죽는 것이 썩 나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리암의 삶은 죽음 뒤에 오히려 완성되어진다. 소설은 라일라의 뱃속에 자라나는 새로운 생명을 통해 마리암의 삶은 계속될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끝을 맺는다. 불합리한 운명에 맞서 싸우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할 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숭고한 것임을 작가는 두 여성을 통해 말하고 있다.

소설은 두 여자가 한 집에 살게 되기까지 그들 각각의 삶을 긴 호흡으로 그려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초점을 달리하여 두 여성의 삶을 교차시켜 보여줌으로써 초반의 두 여자의 과거는 전혀 어우러지지 않을 듯 별개로 그려지고 있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각각의 삽화는 마리암이 죽은 후 그녀가 과거에 지워내지 못한 회한들을 라일라를 통해 해소케 함으로써 하나의 서사구조 안에 정착한다. 아버지의 진실한 사랑의 증거로서 마리암이 갈구했던 만화영화 피노키오가 라일라의 눈에 재생되는 순간 이 서사적 장치는 완성되는 것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풍부한 서사가 있어 쉽게 읽히는 이야기지만 가볍지만은 않다. 아프가니스탄의 비참한 근현대사와 그 속에서 살아야했던 아프간 국민들의 삶이 너무도 가혹하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침공, 내전, 탈레반 집권에 이르기까지 평화로울 틈이 전혀 없는 곳에서, 지하드란 명목으로 전쟁에 참여한 젊은이들은 속속 죽어 나가고, 아무런 잘못 없는 약한 어린이와 여성들은 도심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탄환에 무자비하게 희생되어간다. 살아남기 위해 고국을 등진 사람들 또한 파키스탄의 빈민촌에서 가난과 전염병에 대항해 싸워야한다. 무엇이 이들의 삶을 이토록이나 고달프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을까.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으로부터 그리 오래 떨어진 시간이 아니다. 거의 동시대에 지구 한쪽에서는 생존을 위한 절박한 외침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지금 우리 삶과의 괴리감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무거워질 것이다.

소설에 묘사된 여성들의 삶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유교적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에서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인 아프간의 여권. 실상 라시드와 같이 마초적인 악역을 맡은 남자주인공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다른 국가의 소설 속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그러나 라시드의 만행이 정당화되는 사회, 부당한 폭력에 항의조차 할 수 없는 사회 속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폭력을 피해 달아나려 해도 남성을 동반하지 않은 여성은 외출조차 금지되어 있고, 폭력에 맞서 대항해 보았자 정당방위조차 인정되지 않는 철저히 고립된 곳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은 무엇을 통해 행복을 느낄까. 이는 차라리 여권에 대한 문제라기 보다 인권에 대한 문제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다. 문화 상대주의를 고려하더라도 용납되지 않을 인권에 대한 폭력이 어쩌면 아프간 여성들에게는 전쟁보다 더 두려운 것이 아닐까. 수많은 마리암과 라일라들이 부르카 밑에 슬픈 얼굴을 감추고 있을 아프간의 거리가 21세기에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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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쏟아지는 동남아로 가요
윤정수 글.사진 / 가쎄(GASSE)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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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만 오천원을 지불하고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듯한 느낌이다. 너무 빼곡이 들어찬 글자에 질려서 몇 번이고 들었다 놓았던 책이지만, 페이지를 가득 메운 그 빼곡한 글자 속에는 생생한 체험과 따스한 감동과 잔잔한 유머가 가득하다.

여행 에세이를 읽는 이유에는 사람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곳을 여행하고 싶다'라는 것만큼 정직한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체험이 생생하고 여정이 구체적일수록 읽은 후에 여운이 많이 남는다. 

'별이 쏟아지는 동남아로 가요'는 전직PD인 작가가 동남아 5개국을 여행한 기록이다. 캄보디아, 베트남, 미얀마, 태국, 라오스 여행 이야기가 차례대로 실려있다. 그러나 다섯 개의 나라를 잇는 여정은 연속적이지 않다. 작가는 2년 동안 방콕에 거주하면서 틈틈이 배낭을 둘러매고 주변 나라들을 여기저기 여행했다. 책에 실린 다섯 개 나라의 여행 이야기는 틈틈이 떠난 여행 중 인상 깊었던 경험을 추려낸 것이다. 방콕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방콕의 공기를 오래 마시면 누구나 여행본능이 꿈틀거리게 되어 있는 것을. 작가도 방콕의 정기를 받아 뼛속까지 배어있는 '배낭여행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단락 구분 없이 작고 촘촘한 글씨체를 견디기만 하면 책장은 쉽게 넘어간다. 책은 동남아와의 특별한 인연을 설명하기 위한 구구절절한 사설은 생략하고 단숨에 여행의 순간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책장을 펼치자마자 마음의 준비도 없이 공항을 빠져나와 낯선 나라에 내던져진 것처럼 순식간에 앙코르 유적지의 한 가운데 선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씨엠립을 지나 프놈펜, 씨하눅빌, 바탐방으로 작가의 여정을 따라 나 또한 함께 그 곳을 여행하는 것과 같은 기분 좋은 설렘은 책장을 덮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만큼 여행지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고 주변을 산책하는 과정을 한 두마디로 요약 서술하는 대신 어떤 수단으로 그 곳에 도착했는지, 어느 골목을 어느 쪽으로 돌면 무엇이 보이는지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필요하면 여행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알려준다. 골목 구석구석을 독자와 함께 걷는다는 느낌으로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있어 글을 읽는다기보다 영상을 보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다. 이 정도면 눈이 아플정도로 빽빽한 글자의 압박이 이해가 된다.

또한 작가는 생경한 단어로 멋부리기보다 우리가 흔히 보고 듣는 만화나 영화, CF나 노래의 한 구절을 비유로 들어 느낀 점을 풀어내고 있어  여행지에서 느낀 감상까지도 함께 할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남은 페이지수가 줄어들수록 여행 막바지에 다다른 여행자가 느끼는 아쉬움과 비슷한 종류의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배낭여행자의 기질을 백퍼센트 발휘해, 동남아의 곳곳을 여행한다. 허름한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삼는 것은 기본이고 베트남의 쎄움기사와의 흥정으로 시비를 벌이는가하면 버스 기사와 싸워가며 차비 몇천원을 아끼는 짠돌이 배낭여행자의 근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어린 아이의 해맑은 웃음 앞에서는 기꺼이 호주머니 속의 먼지까지 탈탈 털어 내놓을 정도로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다. 무거운 배낭 속에는 언제나 아이들을 위한 막대 사탕이 들어 있고, 아이를 업은 채 식당 밖을 서성이는 여인을 만나면 주저하지 않고 식당으로 초대한다.

여행기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곳에 사는 '아이들'이 있다. 작가는 앙코르 유적지에서 아이들로부터 기념품을 팔아주고 찍은 사진을 돌려주기 위해 분주하게 오가는 사이 3일 패스의 유효기간이 끝나 버려 중요한 유적지는 구경하지 못한다. 또 라오스 몽족마을 투어중에는 아이들에게 과자 한봉지씩을 사서 안겨주기 위해 투어차량을 그냥 되돌려 보내기도 한다. 특히 '미얀마 왕국의 어린 공주가 민정시찰을 나온 줄 착각'할 정도로 어여쁜 미얀마 아이에게 베푸는 친절은, 그것이 부유한 여행자의 치기가 아닌 편견 없는 인간애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작가는 이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동남아 구석구석을 감싸안는다. 

책은 구체적인 여정과 체험이 실감나게 묘사되고 있을 뿐더러 간단한 투어 정보까지 간간히 실어 놓아 동남아 여행을 앞둔 여행자의 안내서로도 손색이 없다.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생생한 묘사를 통해 자신의 여행 체험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편견 없는 따뜻한 시선과 경어체의 차분한 문체 속에 문득 섞여 나오는 유머로 인해 간간이 웃음지으며 읽을 수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소 조악한 느낌이 드는 편집이다. 단락구분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글자들은 의도했다고 보기에는 독자를 너무 불편하게 만든다. 또 하노이 여행기의 뒷부분에 구찌터널 투어 정보가 실려 있다든가 하노이 여행기에 하노이가 아닌 호이안의 사진이 두 번이나 실려 있다는 점, 태국 빠이 여행기에 똑같은 사진이 두 번 실려 있는 것은 명백히 편집자의 실수임이 느껴진다. 소비자의 주머니를 열게 하기 위해서는 흥미 있는 내용 뿐 아니라 성의 있는 편집과 구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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