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쏟아지는 동남아로 가요
윤정수 글.사진 / 가쎄(GASSE)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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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만 오천원을 지불하고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듯한 느낌이다. 너무 빼곡이 들어찬 글자에 질려서 몇 번이고 들었다 놓았던 책이지만, 페이지를 가득 메운 그 빼곡한 글자 속에는 생생한 체험과 따스한 감동과 잔잔한 유머가 가득하다.

여행 에세이를 읽는 이유에는 사람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곳을 여행하고 싶다'라는 것만큼 정직한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체험이 생생하고 여정이 구체적일수록 읽은 후에 여운이 많이 남는다. 

'별이 쏟아지는 동남아로 가요'는 전직PD인 작가가 동남아 5개국을 여행한 기록이다. 캄보디아, 베트남, 미얀마, 태국, 라오스 여행 이야기가 차례대로 실려있다. 그러나 다섯 개의 나라를 잇는 여정은 연속적이지 않다. 작가는 2년 동안 방콕에 거주하면서 틈틈이 배낭을 둘러매고 주변 나라들을 여기저기 여행했다. 책에 실린 다섯 개 나라의 여행 이야기는 틈틈이 떠난 여행 중 인상 깊었던 경험을 추려낸 것이다. 방콕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방콕의 공기를 오래 마시면 누구나 여행본능이 꿈틀거리게 되어 있는 것을. 작가도 방콕의 정기를 받아 뼛속까지 배어있는 '배낭여행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단락 구분 없이 작고 촘촘한 글씨체를 견디기만 하면 책장은 쉽게 넘어간다. 책은 동남아와의 특별한 인연을 설명하기 위한 구구절절한 사설은 생략하고 단숨에 여행의 순간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책장을 펼치자마자 마음의 준비도 없이 공항을 빠져나와 낯선 나라에 내던져진 것처럼 순식간에 앙코르 유적지의 한 가운데 선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씨엠립을 지나 프놈펜, 씨하눅빌, 바탐방으로 작가의 여정을 따라 나 또한 함께 그 곳을 여행하는 것과 같은 기분 좋은 설렘은 책장을 덮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만큼 여행지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고 주변을 산책하는 과정을 한 두마디로 요약 서술하는 대신 어떤 수단으로 그 곳에 도착했는지, 어느 골목을 어느 쪽으로 돌면 무엇이 보이는지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필요하면 여행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알려준다. 골목 구석구석을 독자와 함께 걷는다는 느낌으로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있어 글을 읽는다기보다 영상을 보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다. 이 정도면 눈이 아플정도로 빽빽한 글자의 압박이 이해가 된다.

또한 작가는 생경한 단어로 멋부리기보다 우리가 흔히 보고 듣는 만화나 영화, CF나 노래의 한 구절을 비유로 들어 느낀 점을 풀어내고 있어  여행지에서 느낀 감상까지도 함께 할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남은 페이지수가 줄어들수록 여행 막바지에 다다른 여행자가 느끼는 아쉬움과 비슷한 종류의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배낭여행자의 기질을 백퍼센트 발휘해, 동남아의 곳곳을 여행한다. 허름한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삼는 것은 기본이고 베트남의 쎄움기사와의 흥정으로 시비를 벌이는가하면 버스 기사와 싸워가며 차비 몇천원을 아끼는 짠돌이 배낭여행자의 근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어린 아이의 해맑은 웃음 앞에서는 기꺼이 호주머니 속의 먼지까지 탈탈 털어 내놓을 정도로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다. 무거운 배낭 속에는 언제나 아이들을 위한 막대 사탕이 들어 있고, 아이를 업은 채 식당 밖을 서성이는 여인을 만나면 주저하지 않고 식당으로 초대한다.

여행기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곳에 사는 '아이들'이 있다. 작가는 앙코르 유적지에서 아이들로부터 기념품을 팔아주고 찍은 사진을 돌려주기 위해 분주하게 오가는 사이 3일 패스의 유효기간이 끝나 버려 중요한 유적지는 구경하지 못한다. 또 라오스 몽족마을 투어중에는 아이들에게 과자 한봉지씩을 사서 안겨주기 위해 투어차량을 그냥 되돌려 보내기도 한다. 특히 '미얀마 왕국의 어린 공주가 민정시찰을 나온 줄 착각'할 정도로 어여쁜 미얀마 아이에게 베푸는 친절은, 그것이 부유한 여행자의 치기가 아닌 편견 없는 인간애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작가는 이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동남아 구석구석을 감싸안는다. 

책은 구체적인 여정과 체험이 실감나게 묘사되고 있을 뿐더러 간단한 투어 정보까지 간간히 실어 놓아 동남아 여행을 앞둔 여행자의 안내서로도 손색이 없다.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생생한 묘사를 통해 자신의 여행 체험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편견 없는 따뜻한 시선과 경어체의 차분한 문체 속에 문득 섞여 나오는 유머로 인해 간간이 웃음지으며 읽을 수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소 조악한 느낌이 드는 편집이다. 단락구분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글자들은 의도했다고 보기에는 독자를 너무 불편하게 만든다. 또 하노이 여행기의 뒷부분에 구찌터널 투어 정보가 실려 있다든가 하노이 여행기에 하노이가 아닌 호이안의 사진이 두 번이나 실려 있다는 점, 태국 빠이 여행기에 똑같은 사진이 두 번 실려 있는 것은 명백히 편집자의 실수임이 느껴진다. 소비자의 주머니를 열게 하기 위해서는 흥미 있는 내용 뿐 아니라 성의 있는 편집과 구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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