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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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처절함과 비통함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대개가 가난하고 비참하며 외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인생의 밝은 면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La Vie devant Soi)'이 그런 경우이다. '자기 앞의 생'은 모모라는 한 회교도 소년이 바라보는 생의 일면을 그린 소설이다.   

모모가 살고 있는 벨빌은 유태인, 회교도인, 흑인 등 사회적으로 배척받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모모는 매춘부들에게서 태어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유태인인 로자 아줌마의 보살핌 아래 살고 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아파트의 7층에서 아이들을 맡긴 매춘부들이 띄엄띄엄 보내주는 돈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처지다. 로자 아줌마와 어린 모모는 사회 속에서 소외된 처지이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모모는 어린 나이 답지 않게 자신의 처지나 형편을 날카롭게 직시하고 있다. 어려워져가는 경제적 형편, 악화되어가는 로자 아줌마의 병, 냉소적인 인간의 이면까지도 그는 모두 파악한다. 그러나 모모는 그 어떤 상황도 바꿀 힘이 없는 무기력한 어린아이일 뿐이다.  인생에 대해 남다른 통찰력을 가진 모모는 생을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거꾸로 돌아가는 필름을 보며 행복한 환상에 젖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진정한 인생의 의미에 대해 알게되는 것은 로자 아줌마에 의해서다. 부모가 없는 모모에게 로자 아줌마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모모는 병으로 죽어가는 로자 아줌마의 모습을 두려워하고, 슬퍼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조금씩 커간다. 

모모가 발견한 생의 의미는 바로 사랑이다. 죽음을 앞둔 로자 아줌마를 두고 모모가 내린 결정은 그 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식물인체로' 자기 곁에 오래 머물기보다 존엄성을 가지고 편안히 죽기를 원한다. 정말은 그 누구보다도 로자 아줌마가 살기를 바랬을 모모가 생명의 연장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사 앞에서 안락사를 요구하는 장면이 가슴 찡한 것은 모순된 감정 속에서 갈등하고 있을 모모의 심정이 제대로 전해져서일 것이다. 자기자신보다 남을 더욱 생각하는 이타적인 사랑은 결국 모모에게 깊은 상실을 안겨준다. 로자 아줌마가 고통 없이 빨리 죽기를 바라면서 그 자신은 로자 아줌마를 떠나 보낼 수 없었던 어린 모모를 통해 우리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이것이 충격적이면서 슬픈 여운을 남기는 결말도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는 이유이다.  

'자기 앞의 생'은 작품을 둘러싼 후일담이 작품자체만큼 흥미진진하다.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잘 알려진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는 동일인이다. 로맹 가리는 이미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한 번 수상했지만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그 상을 받게 된다. 바로 '자기 앞의 생'을 통해서다. 로맹 가리는 살아 생전에 누구도 에밀 아자르의 진짜 정체를 알지 못하도록 치밀하게 두 얼굴의 작가 생활을 했던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졸지에 우스꽝스러운 입장이 된 것은 잘난 척하는 평론가들이었다. 로맹 가리를 까내리면서 에밀 아자르를 입이 마르게 칭송하는 평론가들을 보고 로맹 가리는 무척이나 통쾌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비로소 선입견 없이 자신의 문학 자체만을 평가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일화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작가의 이름이 작품 판매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하나의 브랜드가 될 정도로 잘 팔리는 작가가 되면 간혹 아주 실망스러운 작품을 내 놓더라도 작가 이름에 묻혀 쉽사리 베스트셀러가 된다. 작가의 이름에 갇혀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는 것은 작가 입장에서도 독자 입장에서도 안타까운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유명 작가가 가명으로 작품을 발표한다면? 안타깝게도 웬 무명작가의 작품을 기꺼이 출간하겠다고 나서는 출판사가 없을 것이다. 순전히 작품 자체만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자기 앞의 생'의 경우처럼 작품 자체만으로 평가 받는 출판 풍토가 조성된다면 우리 문학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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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지음, 김안나 옮김 / 매직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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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라는 단어가 주는 풋풋한 설렘은 이메일이 그 자리를 대체함으로 인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이메일은 편지에 담긴 정성과 순수한 마음까지 대신하지는 못한다. 쓸 내용을 떠올리고 정성스럽게 종이 위에 눌러 쓴 뒤 곱게 접어 봉투에 봉하는 그 모든 과정은 천천히 이루어 진다. 그 순간 동안은 오직 편지를 받을 단 한 사람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된다. 편지에 담긴 그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까지 헤아리며 편지를 읽는 기분은 또 어떠한가. 이렇게 모든 소중한 감정들을 실어 나르는 편지가 점차 구시대의 산물이 되어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편지 한 통이 그리워지는 요즘, 정성들여 쓴 편지를 받은 것 같은 따뜻함을 주는 소설을 만났다.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The Guernsey Literary and Potato Peel Pie Society)'은 168통의 편지가 엮여 이루어진 소설이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에서 부터 삶에 대한 생각, 진지한 고민, 내밀한 사연까지 담고 있는 이 편지들은 수신자와 발신자를 바꾸어가며 각자의 사정을 들려준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편지를 주고받지만 하나의 일관된 사건을 따라가며 줄거리가 진행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읽힌다.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을 배경으로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인간 사이의 유대를 회복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문학과는 거리가 먼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던 건지 아일랜드의 사람들은 우연한 계기로 감자껍질파이클럽이라는 문학회를 급조하게 된다. 얼떨결에 시작된 모임이지만 회원들은 이를 통해 문학의 가치와 진정한 유대에 대해 깨우쳐 간다. 한편 런던에서 차기작을 준비하던 작가 줄리엣은 감자껍질파이클럽에 대해 알게되고 회원들과 편지를 주고받는다. 줄리엣의 소유였던 찰스 램의 '앨리아 수필선집'이 건지 아일랜드에 사는 총각 도시의 손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이들의 교류는 점점 깊어지고, 줄리엣은 마침내 건지 아일랜드로 떠난다.   

인생에 있어 중요한 사건은 때때로 사소한 일을 계기로 일어난다. 줄리엣의 손을 떠난 책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면서 그들의 인연이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교류가 깊고 끈끈한 유대로 이어지는 과정을 정감있게 그려낸다. 우연히 만들어진 문학회는 서먹했던 이웃들을 하나로 묶어 주고, 우연히 도시의 손에 들어간 한 권의 책은 줄리엣과 건지 아일랜드에 사는 순박한 사람들을 이어주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마음을 열어 타인을 받아들이는 소설 속 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평생에 걸쳐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의 존재가 무척이나 절실해 진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책에 대한, 문학에 대한 헌사다.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고 서점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건지 아일랜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주머니에 넣어다닐 수 있는 한 권의 책이 더없이 소중하게 취급된다. 책들이 넘쳐나고 있어 더러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오늘날과는 대조적이다. 또 문학회의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펼쳐지는 이야기인 만큼 소설에는 세익스피어, 찰스 램, 브론테 자매, 제인 오스틴, 오스카 와일드 등 다양한 다양한 유럽의 문호들이 오르내린다. 이들은 소설속 인물들의 삶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딱딱한 설명조로 그려지기보다 자연스럽게 소설 속에 녹아 있다. 특히 오스카 와일드에 관련된 일화는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유쾌하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건지 아일랜드는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지만 아픈 상흔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진출을 노리던 독일군에게 점령되어 5년 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전쟁의 외압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곳이다. 소설에는 전쟁 당시 건지 아일랜드 사람들의 알려지지 않은 비참한 삶이 간간이 드러난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로 인해 아픔의 역사는 무작정 어둡게 그려지지만은 않는다.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은 삶에 대한 긍정이자 문학에 대한 오마주이며 고통스러운 역사에 대한 따뜻한 위로이다. 이 책은 무엇이든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아주 희귀한 소설일지도 모른다. 고전에서나 볼 수 있었던 1940년대 영국의 세태나 풍속들은 잊혀져가는 소중한 가치들을 일깨우고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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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 Naruto 43
기시모토 마사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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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만화를 즐겨 보는 이유는 뻔한 메시지를 뻔하지 않게 풀어가는 방식 때문이다.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촘촘이 얽혀 있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들을 실타래를 풀듯이 한올 한올 풀어내는 맛이 소년만화의 진정한 매력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 과정이 긴박하면서 흥미진진하기 때문에 끊이지 않고 독자를 매료시키는 힘이 있다. '나루토'는 그러한 소년만화의 전형이다.

'나루토' 전체를 관통하는 큰 줄거리는 닌자의 세계에서 열등생으로 낙인 찍힌 주인공 나루토가 훌륭한 닌자로 인정받게 되는 과정이다. 비록 말썽꾼으로 단단히 미운털이 박힌 나루토이지만 그에게는 소중한 사람을 지킨다는 목표가 있고, 그것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있다. 마을사람들에게 외면받기만 하던 나루토는 피나는 노력 끝에 마침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게 되고,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적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해나간다. 목표를 향해 가는 첫 걸음은 미숙하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마침내 정상에 도달한다는 흔하다면 흔한 그런 이야기이다. 즉 '나루토'에는 노력, 성장, 승리, 유대감 등 소년만화의 공식을 이루는 요소들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러나 '나루토'는 이를 제외하고도 무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닌자마을이라는 독창적인 세계관,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 인물들간의 다양한 갈등 요소들이 이야기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닌자'라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영역을 끌고 왔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작가에 의해 창조된 기발한 세계 속으로 푹 빠져드는 재미가 있다. 다양한 인물들과 각종 술법이 난무하는데다 매 화마다 다양한 전투와 전략들을 선보이면서 스펙타클한 액션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러나 '나루토'의 진정한 매력은 이런 박진감 넘치는 장면 하나하나를 짜임새 있게 배치한 스토리 텔링의 힘에 있다. 단행본 43권까지 진행된 지금 되돌아보면 단 한 장면도 필요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앞서 깔아놓은 포석을 치밀하게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소년만화의 공식성을 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뒷 이야기를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여러 사실들에 대해서는 연구글마저 쏟아져 나올 정도니 '나루토'만의 방대한 스케일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만화 속에서 사용되는 술법들은 더욱 규모가 커졌고, 주인공을 위협하는 세력은 더욱 강해졌다. 소중한 사람을 지킨다는 애초의 소박한 목표는 닌자 세계의 평화를 되찾는다는 거창한 목표가 되어버린 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커진 스케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박진감 넘친다.

나루토와 더불어 서브 주인공격인 사스케를 둘러싼 가장 큰 의혹의 일부가 밝혀지면서 '나루토'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명랑 쾌활할 것만 같던 소년만화 속에 비극적이고 처절한 슬픔이 가미되면서 점점 클라이막스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아직 드러나야 할 비밀도 많고, 해소되어야 할 갈등도 많이 있지만 결코 실망스럽지 않은 결말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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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요정 2009-06-20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이런 쇼킹한 반전과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 이런흐름에 액션이 터져주니~ 멋있음... 이번권이 제일 재미있었던거같네요^^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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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토론토에서 종교학과 동물학을 공부하는 한 남자가 있다. 종교와 동물, 어울리지 않는 두 학문을 전공으로 선택한 인도인. 자존심이 강하고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이 아리송한 인물이 '파이 이야기'의 주인공 피신 몰리토 파텔이다. 리차드 파커를 그리워하고 그를 떠올릴 때마다 슬픔에 잠기는 이 남자에게는 대체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영어 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상 중에서 가장 권위적인 것으로 알려진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요란한 타이틀이 붙은 '파이 이야기'의 시작은 상당히 불친절하다. 시점과 시공간이 마구 뒤섞여 있고 , 특정한 대상에 대한 설명이 장황해지는가 하면 반대로 장면이 너무나 짧게 묘사되기도 한다. 이런 기법상의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도무지 피신 몰리토 파텔이라는 인물에 대해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는 점도 큰 장애로 다가온다. 이런저런 이유에서 우리는 많은 물음표를 안은 채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 

'피신(Picine)'은 '수영장'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이다. 발음도 의미도 황당한 이 단어를 이름으로 갖게 된 인도 소년은 여차저차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파이(Pi)'라고 불리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그 뜻을 마침내 관철시킨다. 이름에 얽힌 이러한 에피소드에서도 드러나는대로 그는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바꿀만한 능력의 소유자임은 분명하다. '파이 이야기'는 뜻밖의 운명에 휩쓸리는 이 독특한 소년의 모험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이다.

소설은 공간의 이동에 따라 크게 3부로 나뉘어 진다. 1부는 토론토에서의 현재와 폰디체리에서의 과거를 번갈아 보여준다. 오늘날 그를 있게 한 과거의 여러 삽화들을 나열하면서 현재의 파이의 모습을 곁들이는 식이다. 수수께끼같은 파이의 인물됨은 인도의 폰디체리에서 보냈던 유년의 경험에 크게 영향받는다. 그의 유년을 지배하는 두 가지는 바로 동물과 신이다. 동물원을 경영하는 집안의 아들로서 파이는 동물들의 생태에 대해 남다른 식견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동물들에 관한 묘사는 사실적이라기보다 철학적이면서 유머러스하게 진행된다. 그의 별난 성격은 이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또한 파이는 신에 대한 절실한 믿음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의 계기로 삼는다. 문제는 그것이 하나의 종교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 종교계의 수장들을 대번에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신에 대한 파이의 독특한 관점은 실소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렇게 1부는 파이라는 특별한 인물을 그려내는데 온통 지면을 할애한다.
     
작품의 진정한 묘미는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벌어지는 2부의 모험담이라 할 수 있다. 2부에서는 호랑이와 함께 227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하게 되는 파이의 기막힌 운명이 숨가쁘게 그려진다.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표류된 파이에게는 한 배에 올라탄 호랑이와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있는 신이 운명처럼 함께하고 있다. 1부의 다양한 포석들은 2부에 와서야 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결국 동물과 신은 파이의 운명 속에서 꾸준히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언어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단조로운 수평선과 끝없이 푸르기만한 바다를 생동감 넘치는 역동적인 생태계로 탈바꿈시킨다. 작가의 손 끝에서 태평양과 구명보트는 파이의 치열한 생존공간으로 거듭난다. 작가는 파이가 겪는 바다 한 가운데서의 일상을(그런 일상이란 것이 있겠느냐만은) 너무나 그럴싸하게 묘사하면서 망망대해에 떠 있는 좁은 구명보트 위에서 기껏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질까하는 우려를 간단하게 잠재운다.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사실인 듯 꾸며내는 일, 소설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이런 작업을 얀 마텔은 정말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

'파이 이야기'는 액자 구조를 아주 잘 활용하고 있다. 이 소설을 액자구조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롤로그 격인 '작가노트'까지 소설의 내부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소설가인 '나'가 파이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게된 경위를 설명하는 것이 '바깥 이야기'라면 우리는 이를 통해 파이의 모험담을 그린 '안 이야기'를 더욱 사실처럼 믿게 된다. 그러나 '파이 이야기'에서 바깥이야기는 신뢰성을 이끌어내는 장치라기보다 오히려 무엇이 진실인지 헛갈리게 만드는 특이한 기능을 한다. 3부에서 파이는 또 하나의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며 2부의 흥미진진했던 모험담이 거짓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파이가 털어 놓는 두 가지 이야기 중 무엇이 진실인지는 파이 자신만이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진실은 해피엔딩이라고 믿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을 사랑하고, 동물을 좋아하며,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파이의 모습을 앞에서 이미 봐 왔기 때문이다. 

'파이 이야기'는 우선 매우 흥미진진하다. 내용은 독창적이며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철학적이고 심오하다. 독특한 유머와 성찰이 어우러지는가하면 진한 감동과 잔잔한 슬픔이 밀려오기도 한다. 숨가쁜 전개, 뛰어난 언어의 연금술,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가벼운 반전의 묘미까지 골고루 갖췄다.
소설을 읽고 나면 분명해지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인간은 놀라울 정도로 환경에 적응을 잘 한다는 것과 희망만큼 위대한 삶의 조건은 없다는 것. 목숨을 위협하는 진퇴양난의 곤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파이의 노력에서는 감동을 넘어 위대함마저 느껴진다. 인간이란 비록 극한의 상황에 처해 있지 않더라도 얼마나 좌절하기 쉬운 존재인가. 그러나 인간에게는 절망에 맞서 싸울 힘이 있기 때문에 삶이 더욱 숭고한 것이다. '파이 이야기'는 희망이 있다면 어떤 삶이라도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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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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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은 젊은 날의 방황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 그대로 아름답지만 가슴아픈 성장소설이다. 인터넷 연재 형식으로 발표되었고, 작가 자신의 청춘의 기록들을 서슴없이 써 내려가고 있다는 점 때문에 서사적 짜임 자체는 그리 안정적이지 않다. 그러나 소설 속에 녹아 있는 인물의 갈등과 방황의 흔적들은 오랫동안 깊은 울림을 준다. 

어려서부터 내면과 행동이 달라 오해를 사곤했던 유준은 고교시절 우연히 가입한 등산부에서 인호, 상진, 정수 등 여러 친구들과 만남을 갖는다. 유준은 이들과 더불어 책을 읽고 깊은 속내를 나누며 글을 쓰면서 학창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그는 교복, 시험, 학생들의 자유를 박탈하는 모든 제도에 대한 반기를 들고 결국 스스로 학교를 떠난다. 제도교육으로부터 이탈한 후 그는 자신이 생각해 온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실행한다. 준은 산 속에서의 삶, 무전여행, 소설 창작, 떠돌이 노동자로서의 삶 등 직접 부딪혀 체험한 모든 것들에서 학교교육이 절대 제공할 수 없는 삶의 진리를 발견해 간다.

유준의 방황은 학교제도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한다. 그에게 있어 제도는 바람직한 삶을 살아가도록 고안된 것이라기보다 수많은 선택 앞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사람들을 잡아주기 위한 보호막일 뿐이다. 그 보호막 안에서 길들여진 학생들은 순종적이고 획일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는 갈등이 일시적으로 사그러들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 보호막 안에 안주하려 한다. 아마 그 보호막을 찢고 수많은 선택이 기다리는 험난한 사회 속으로 뛰어들 용기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준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표현해나가기 위해 용기있게 자퇴를 선언한다.

우리 사회는 제도권으로부터 일탈한 사람들에게 너무나 쉽게 낙오자라는 낙인을 찍어버린다. 한없이 많은 생각들로 가득 차 있는 인간의 내면을 제3자가 이해하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소설에서 준의 행동은 명백한 일탈로 치부되고 있으며, 그는 그를 향한 모든 냉소적인 시선을 견뎌내야 했다. 작가는 유준의 삶을 옹호하면서, 제도 안에 안착하여 무난히 학교를 졸업하고 훌륭한 직업을 갖는 것이 진정한 삶의 가치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그러나 분명 제도권 안에 정착한 상진, 영길 같은 인물에게도 그들만의 고민과 갈등이 있다. 학교제도라는 것이 근원적인 방황을 잠재우고 성공적인 삶으로 이끄는 안전한 울타리이기만 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결국 자신의 가치를 발견해내는데는 어떤 제도적 장치도 본질적으로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작가가 주인공인 유준 뿐 아니라 다른 인물들의 목소리를 교차시켜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 시기의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자기 내면에 대한 갈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갈등을 잠재울 해결의 열쇠를 가진 것은 자기자신 뿐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엄밀히 말해서 유준이 살았던 시대는 분명히 오늘날과 소통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1960년대 젊은이들과 오늘날 젊은이들은 관심사도 다르고 감수성의 깊이도 다르다. 때문에 오늘날 젊은이들이 유준의 길고 긴 방황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 근원은 다를지언정 내면의 갈등은 어느 시대의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탐색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본질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개밥바라기별'은 이러한 인간 본연의 특징을 바탕으로 청춘의 특권을 찬양하며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기 위한 결단의 계기를 제공한다.

'개밥바라기별'은 작가 황석영의 문학세계의 저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소설적인 각색이 조금도 없지는 않겠지만, 주인공 유준의 삶은 작가의 이력과 대체로 일치한다. 황석영은 그의 소설을 통해 사회 속에서의 개인의 문제를 꾸준히 그려왔다. 그의 작품들에는 어김없이 한국 사회의 시대적인 아픔이 깔려 있다. '개밥바라기별'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어두운 곳에 모여앉아 이용악이나 정지용 같은 월북 시인의 시를 읊조린다든가,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참여한다든가 하는 모습에서 사회적인 관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작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전국을 떠도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삶을 직접 체험한 것이 1970년대 황석영 소설들의 큰 바탕이 되었음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 사회와 개인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모색 등 황석영이 추구해온 소설적 가치는 그의 치열하고 아픈 이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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