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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은 젊은 날의 방황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 그대로 아름답지만 가슴아픈 성장소설이다. 인터넷 연재 형식으로 발표되었고, 작가 자신의 청춘의 기록들을 서슴없이 써 내려가고 있다는 점 때문에 서사적 짜임 자체는 그리 안정적이지 않다. 그러나 소설 속에 녹아 있는 인물의 갈등과 방황의 흔적들은 오랫동안 깊은 울림을 준다.
어려서부터 내면과 행동이 달라 오해를 사곤했던 유준은 고교시절 우연히 가입한 등산부에서 인호, 상진, 정수 등 여러 친구들과 만남을 갖는다. 유준은 이들과 더불어 책을 읽고 깊은 속내를 나누며 글을 쓰면서 학창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그는 교복, 시험, 학생들의 자유를 박탈하는 모든 제도에 대한 반기를 들고 결국 스스로 학교를 떠난다. 제도교육으로부터 이탈한 후 그는 자신이 생각해 온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실행한다. 준은 산 속에서의 삶, 무전여행, 소설 창작, 떠돌이 노동자로서의 삶 등 직접 부딪혀 체험한 모든 것들에서 학교교육이 절대 제공할 수 없는 삶의 진리를 발견해 간다.
유준의 방황은 학교제도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한다. 그에게 있어 제도는 바람직한 삶을 살아가도록 고안된 것이라기보다 수많은 선택 앞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사람들을 잡아주기 위한 보호막일 뿐이다. 그 보호막 안에서 길들여진 학생들은 순종적이고 획일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는 갈등이 일시적으로 사그러들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 보호막 안에 안주하려 한다. 아마 그 보호막을 찢고 수많은 선택이 기다리는 험난한 사회 속으로 뛰어들 용기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준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표현해나가기 위해 용기있게 자퇴를 선언한다.
우리 사회는 제도권으로부터 일탈한 사람들에게 너무나 쉽게 낙오자라는 낙인을 찍어버린다. 한없이 많은 생각들로 가득 차 있는 인간의 내면을 제3자가 이해하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소설에서 준의 행동은 명백한 일탈로 치부되고 있으며, 그는 그를 향한 모든 냉소적인 시선을 견뎌내야 했다. 작가는 유준의 삶을 옹호하면서, 제도 안에 안착하여 무난히 학교를 졸업하고 훌륭한 직업을 갖는 것이 진정한 삶의 가치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그러나 분명 제도권 안에 정착한 상진, 영길 같은 인물에게도 그들만의 고민과 갈등이 있다. 학교제도라는 것이 근원적인 방황을 잠재우고 성공적인 삶으로 이끄는 안전한 울타리이기만 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결국 자신의 가치를 발견해내는데는 어떤 제도적 장치도 본질적으로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작가가 주인공인 유준 뿐 아니라 다른 인물들의 목소리를 교차시켜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 시기의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자기 내면에 대한 갈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갈등을 잠재울 해결의 열쇠를 가진 것은 자기자신 뿐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엄밀히 말해서 유준이 살았던 시대는 분명히 오늘날과 소통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1960년대 젊은이들과 오늘날 젊은이들은 관심사도 다르고 감수성의 깊이도 다르다. 때문에 오늘날 젊은이들이 유준의 길고 긴 방황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 근원은 다를지언정 내면의 갈등은 어느 시대의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탐색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본질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개밥바라기별'은 이러한 인간 본연의 특징을 바탕으로 청춘의 특권을 찬양하며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기 위한 결단의 계기를 제공한다.
'개밥바라기별'은 작가 황석영의 문학세계의 저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소설적인 각색이 조금도 없지는 않겠지만, 주인공 유준의 삶은 작가의 이력과 대체로 일치한다. 황석영은 그의 소설을 통해 사회 속에서의 개인의 문제를 꾸준히 그려왔다. 그의 작품들에는 어김없이 한국 사회의 시대적인 아픔이 깔려 있다. '개밥바라기별'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어두운 곳에 모여앉아 이용악이나 정지용 같은 월북 시인의 시를 읊조린다든가,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참여한다든가 하는 모습에서 사회적인 관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작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전국을 떠도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삶을 직접 체험한 것이 1970년대 황석영 소설들의 큰 바탕이 되었음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 사회와 개인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모색 등 황석영이 추구해온 소설적 가치는 그의 치열하고 아픈 이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