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네스
페터 슈탐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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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스>는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만 같은 소설이다. 한때 감정의 파고가 격하게 몰아쳤을 것이 분명한 사랑의 기억을 작가는 매몰찰 만큼 짧고 건조한 문장으로 들려준다. 어찌나 건조한 지 당장이라도 바스라질 것처럼 위태위태하다. 각 문장들 사이의 여백도 확연하다. 주인공 ‘나’가 겪은 짧고 실제 이야기와 ‘소설 속 소설’ 틈새도 매력적이다. 건조한 문장으로 쓴 짧은 이야기, <아그네스>는 그런 소설이다.

<아그네스>는 다듬고 다듬어 완성된 작품임이 분명하다. 모래성에 꼽힌 나뭇가지가 쓰러지지 않도록 모래를 덜어내는 게임의 승자가 일궈낸 위태로운 순간을 보며 새어나오는 탄식 같은 작품. 작가는 이 짧은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문장을 덜어냈을까? 읽기는 쉽지만 쓰기는 쉽지 않았을 것.

놀랍고 대범한 문장만큼이나 이야기의 결말도 강렬하다. 불길함이 현실화되는 순간, 그들이 관계의 종말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맺는 순간 헛헛한 감동이 스며든다. 이렇게 끝날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럼에도 <아그네스>가 생각만큼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은 아그네스를 사랑하는 주인공 ‘나’의 캐릭터 때문이다. 

주인공 '나'는 참으로 못났다. 아그네스를 사랑하지만, 사랑이 낳은 결과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가정을 이루는 것,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것, 정착해야만 하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그는 치열한 삶의 언저리를 서성일 뿐 선뜻 발을 내디딜 배짱이 없는 남자이다. 그것은 도중에 포기해버린 소설 원고들로 가득한 서랍과 같은 인생이다.

반면 아그네스는 이런 남자를 종용하여 소설을 완성하도록 만드는 뮤즈와 같은 존재이다. 게다가 남자의 아이를 잉태하고, 남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상에 내보내려고 한다. 엄마가 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인공 ‘나’가 한심해 보이는 것은 그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도, 현실 속에서도 ‘나’같은 남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아그네스>는 좋은 소설이다. 하지만 기대만큼 큰 감동을 주지 못했던 것은 이런 탓이다. 나이를 들먹이자면, 십년 전 이 작품을 읽었다면 꽤나 공감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금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난 십년 동안 내 안에 잠재한 그런 한심함이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것이 한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짧디 짧은 소설에 긴 이야기를 붙이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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