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을 입은 여인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박노출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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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처음 책을 접하고 첫인상은 "두껍다"이다. 글자크기가 큰 것도 아닌데 744페이지라는 양을 자랑하는 소설이다. 어떻게 보자면 질도 중요하지만 때때로 비싼 책가격에 비해 너무 얇은 책두께에 실망해오던 소시민 독자들에겐 행복한 일이다. 더군다나 끝까지 읽고 보면 상당한 분량을 읽어왔음에도 그다지 지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의 저자는 현대인이 아니다. 작가 윌리엄 윌키 콜린스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셜록 홈즈를 창조한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 가장 영향을 받은 작가로 꼽을 정도로 인정받은 작가이며 이 소설 <흰옷을 입은 여인>은 출간과 동시에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면서 인기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 때때로 책을 읽다보면 원서로 읽는 것이 아닌 만큼 번역자의 입김인지, 실제 작가의 것인지 모를 어떤 공통된 것을 느끼게 되는 책들이 있다. 뜻으로 보자면 똑같은 내용이라도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단어선택이라든지에서 독자들이 느끼는 어감등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은 작가의 출신국가보다 작가가 글을 쓴 시대에 관한 것이었다. 실제 내게 빅토리아 시대의 작품을 접할 기회란게 얼마나 있었을까를 먼저 생각해야겠지만,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은 작가가 참 착하다는 것이었다. 전체배경묘사라든지, 등장인물과 사건에 대한 설명등이 독자가 읽기에 참 착하게 되어 있다. 그런 느낌 자체가 최근의 독서에서는 새로운 느낌이라서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였고, 또한 등장인물이라든지 사건의 배경등이 당시의 시대상황을 잘 그리고 있어서 내가 모르는 또다른 시대를 알 수 있어서 더욱 좋았던 것 같다.

 

.. 작품이 쓰여진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상당한 시간적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등장인물들의 성격에서 현대와 별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시대상황같은 것도 그것 자체만 두고 본다면 현대와 많이 다르겠지만, 실상 내용에 있어서는 현실도 같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이 오랜 세월동안 재출간되고 드라마, 영화 뮤지컬등으로 만들어져 올 수 있었는가 보다. 책의 결말에 있어서는 약간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그 또한 그 시대상황에 적절한 끝마무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더운 여름에 딴 생각을 하지 않고 한꺼번에 독파할 수 있는 좋은 책을 또 한 권 알게 된 것같아 기쁜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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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자살 클럽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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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자살클럽> 이라는 제목에서 다소 시대적인 흐름을 타려는 것같은 이미지가 풍기기는 하지만, 책의 내용은 부제에 나온 것처럼 '근대조선을 울린 충격적인 자살사건'들을 다룬 책이다. 근대조선이라면 일제강점기의 기간을 들 수 있는데, 당시의 억압된 사회속에서도 근대로 발돋음하려는 여성들과 그들을 억누르는 봉건적인 관습들이 대립하면서 수많은 자살사건들이 있었는가 보다. 책속의 10가지 이야기중 이전부터 알고 있던 것은 윤심덕의 현해탄 투신사건정도였을까. 그 또한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고 있긴 했지만, 그 외 나머지 이야기들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사건들이라 새로웠다.

 

.. 책속의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여성들이다. 가정형편상 화류계로 몰린 여성들도 있고, 부유한 집안덕에 동경유학을 다녀온 여성들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분의 차이라든가 혜택받은 것들이 비교할 수 없을만큼 차이가 나고 있지만, 동경유학을 다녀온 이른바 신여성들이 그만큼 행복했는가 하고 질문을 한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또한, 당시 조선의 조혼풍습으로 일찍 결혼해야하는 시기를 지나버린 신여성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벌써 비슷한 또래의 말이 통하는 남자들은 다 기혼자인 아이러니와 직면하게 된다. 그 남자들 또한 어찌보자면 피해자로 집안에서 시킨 결혼을 하였을 뿐이니, 그 남성들과 신여성들이 연애를 하여 스캔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곤 했던 것이다. 이렇게만 보자면 신여성과 구여성이 대립하는 것같겠지만 실상 그 속을 보면 어느쪽도 일방적인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니라 둘다 어떤 편에서는 피해자이다.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회도 그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도 발전하는 현실도 잘못을 물을 수없는 과도기였던 것이다.

 

..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 피해자들을 자살로 몰고간 이들에게 일괄적으로 면죄부를 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도의가 없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할 때는 꼭 상대를 해치겠다는 의도가 있어서만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약하기 때문에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어떻게 보자면 강하지 못하다는 것 자체가 선과 악 중의 악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의도하지 않은 일들이 생기게 되고 괴로워하는 이들이 생긴다. 그런 여러 생각들을 하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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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프랑스 책방
마르크 레비 지음, 이혜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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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의 그림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책을 받자마자 안쪽 책날개의 일러스트 작가 이름부터 확인했는데, 역시 오영욱씨였다. 약간은 위태위해해보이면서도 보고 있노라면 일견 튼튼해보이기도 하는, 가는 선의 펜으로 그린 건축물이 어쩌면 이 책 <행복한 프랑스 책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건축가로 아들과 함께 런던에 살고 있는 앙투안과 프랑스 파리에서 서점직원으로 일하며 혼자 살고 있는 마티아스, 두 친구이다. 앙투안은 런던의 프랑스인 구역에 책방이 나왔다며 마티아스에게 이주할 것을 권한다. 주저하던 마티아스는 마침 헤어졌던 아내도 딸과 함께 런던에 살고 있어서 어쩌면 재결합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안고 이주를 결심한다. 그러나, 그가 완전히 이사를 온 그 날, 전처가 다시 프랑스로 발령난 사실을 알게 되고...

 

.. 이 책은 참 다양한 면에서 재미있는 책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의 뛰어난 글솜씨도 재미있고, 런던의 건축가들이 일하는 것도 볼 수 있다. 그리고, 한 나라의 안에서 다른 도시로 이사하는 것도 참으로 복잡한 일인데 다른 나라로 이주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어떻게 보자면 또 어렵게만 생각할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거기다 동성애자도 아닌 두 남성이 한 집에서 살고자하는 이야기에 대한 주위의 반응도 참 재미있다. 또, 그 일을 둘러싼 두사람의 반응이며 태도도 무척 상반적이라 구체적인 인물을 설정하지 않고 글을 썼다간 꽤 엉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읽고 있노라면 왠지 바로 이웃에 사는 부산스러운 친구들을 옆에서 보는 것같은 따뜻한 기분이 드는 책이다.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들라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 가족, 사랑, 일, 친구, 돈, 취미.. 사람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답이 나올 것 같다. 그 중에서 1순위에는 들지 못하더라도 누구에게나 꽤 상위에 링크될 것만 같은 것이 친구가 아닐까 싶다. 생각도 다르고, 표현방식도 다르고, 때로는 서로를 생각하는 정도도 달라서 손해보는 것같은 기분이 드는 때가 있더라도 좋은 친구는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앙투안과 마티아스같은 친구들이 있으면 긴 인생길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직 읽지 못한 작가의 전작들에 나온 인물이 책속에 등장했다고 하니 이 책의 주인공들도 작가의 다음 작품에 카메오로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도 작은 기대로 남을 것같아 즐거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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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 랩소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소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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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에게 있어 최악의 상황이란 어떤 것일까? 자신을 지지해줄 가족도, 생계를 이어갈 수단도, 인생에 대한 믿음도 없는 상황이면 최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유괴랩소디>는 그런 최악에 가까운 상황에 처한 주인공 다테 히데요시의 이야기이다. 몇 번이나 교도소를 들락거린 전과자이면서 그런 자신을 거둬서 돌봐주던 회사 사장을 때리고 회사차까지 훔친데다 갖고 있는 돈은 모두 도박으로 날리다니, 도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는데 사실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자부하면서 매일 일하는 평범한 사람도 자칫 잘못하면 다테 히데요시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는 건 드물지 않은 이야기같기도 해서 현실감이 드는 이야기이다. 

 

.. 결국 이런저런 상황으로 절망에 빠진 그는 자살을 결심하는데, 그 과정이 뭐라고 해야 할까.. 삶을 포기해야하는데 포기 못하는 미련이랄지가 그대로 드러나서 웃을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참 우습다. 그런데, 오라는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는데다 경찰에 쫓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여러가지 자살법을 연구하던 이데요시가 미적거리다 마지막 선택을 하려는 순간에 나타난 부잣집 아들 덴스케로 인해 목표가 생긴다. 궁지에 몰리다 못해 덴스케를 유괴하여 돈을 받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교도소에서 만났던 감방동기에게 주워들은 유괴방법에 대해 떠올리며 나름대로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는데, 재수없는 다테 히데요시. 그가 유괴한 아이는 근방에선 누구나 아는 야쿠자 두목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유괴는 참으로 심각한 범죄이고 더군다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유괴는 용서의 여지가 없는 큰 죄이다. 그럼에도 이 <유괴랩소디>를 보면서 웃을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오기와라 히로시는 그동안 여러편의 소설을 통해 현실감 있으면서도 어느 한구석엔 따뜻한 인간미를 간직한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사회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글을 써왔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주인공인 다테 히데요시조차 유괴범이긴 하지만, 외롭게 자라던 덴스케에겐 즐거운 여행기억을 안겨주고 있다. 참으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맞는 경우인 것 같아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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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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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역시 이사카 코타로 라고 말하고 싶다. 이전에 읽은 그의 일련의 작품들과 비슷한 느낌인데, 그래도 흥미진진한건 여전하다. 뭔가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덩어리도 만들줄 알고, 정말 이렇게 감정을 자극하는 작가도 드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 <골든슬럼버>의 서평에 대한 예가 아닐꺼라고 생각하지만, 얼마전 읽은 <엔더의 전쟁>이라는 책의 저자 서문이 문득 생각나 옮겨본다.

 

......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가? 누군가의 현란한 언어에 감탄하기 위해서? 난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읽는 것은 우리가 '다른 형태의 사실'에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공동체에 대한 특별한 진실, 그리고 가장 특별하며 유일한 진실인 우리 자신의 이야기, 소설은 현실에 존재했던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에 언제라도 우리 스스로의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 저자 서문에서

 

그렇다. 왜 소설을,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을 읽는가를 생각해보면 저 글이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사실'이 아닐지는 몰라도 '다른 형태의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언제라도 우리 스스로의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도리어 그런 흐릿한 가능성에 더욱 흥분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 책으로 돌아가자면 솔직히 마지막엔 좀 아쉬웠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는 몰라도, 그래도 소설이니까 좀더 통쾌하게 해결해 줬었으면 하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거대공권력에는 이기지 못하는걸까. 그 점이 약간 아쉽다. 그의 앞에 남은 기나긴 생은 어찌 해야 좋을까. 아. 참으로 아쉽다. 그리고 그의 후일담이 못견디게 궁금하다. 그가 그렇게 지하로 사라지지 않기를. 세상에서 이름이 지워진 자로 남은 그가 활약하는 새로운 세계를 그려주기를 바라는 소시민의 안타까운 희망이 허망하게 지워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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