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 읽는다는 것 - 각자의 시선으로 같은 책을 읽습니다
안수현 외 지음 / SISO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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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엄마의 꿈방>이라는 카페를 통해 생애 첫 독서모임을 했다. 반비 출판사에서 독서 모임 지원 이벤트에 당첨이 된 후 급조된 이 모임에 회원 분들은 정성스레 책을 읽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넷 카페라는 특수성상 온라인으로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오프라인으로 처음 만나고 인사한 후 나눈 책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아이에게 묻혀 있던 내 삶에 아이 이야기가 아닌 책이야기와 우리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지금은 코로나로 모임이 잠시 중단되었지만 《모여 읽는다는 것》의 표지는 그 때의 나를 되새김질 해 주었고 혹시 나와 비슷한 경험이 아닐까 엿보고 싶은 마음에 읽게 되었다.

《모여 읽는다는 것》에는 네 명의 저자 중 주최자이자 리더인 안수현씨가 <나를 깨우는 독서 모임>의 회원 안수현 씨를 포함한 조선영, 한순범, 김민정씨가 함께 책을 읽고 나누며 일어난 변화를 이야기한 책이다.


먼저 안수현씨의 <나를 꺠우는 독서 모임>의 시작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결혼 후 엄마가 되고 워킹맘이 된 후 방전되어 가는 생활 속에 안수현씨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오롯한 새벽 시간을 이용해 책읽기를 통해 변화가 일어나고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시작된 첫 번째 독서모임은 첫 운영의 미숙함으로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갔다.

그 첫번째의 부족함을 보완하여 만든 두 번째 독서모임, 지금의 《모여 읽는다는 것》의 저자들이 모일 수 있던 계기인 <나를 깨우는 독서 모임>으로 다시 시작하여 이들은 책을 읽고 나누기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까지의 변화를 주로 그려진다.


리더인 안수현씨를 비롯해 모든 회원들이 엄마이다. 나 역시 엄마로 첫 독서 모임에 참가했다. 조선영씨, 한순범씨, 김민정씨 모두 아이가 있고 지친 상태에서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엄마가 되면 모든 주제가 아이로 귀결된다. 정말 힘든 건 엄마인데 엄마의 안부를 묻기보다 아이의 안부만을 묻고 아이 이야기만 한다. 엄마라는 이름은 책임과 부담만 강요된다라는 걸 대부분의 엄마들은 엄마가 되고 난 후 깨닫는다. 아이와 집안일에 매몰되어 마지못해 살아가는 엄마의 하루 속에 나를 잃어감을 알지만 도와주는 이가 없다. 하지만 독서모임은 책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나누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다.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되는 시간. 그 안에서 아이가 아닌 엄마가 위로받고 성장하는 시기이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이 모임을 통해 서로가 성장해간다.


책을 읽는다는 건 바로 책에 나를 대입하는 것이다. 그냥 읽고 멈추는 책은 흰 종이의 텍스트일 뿐이다. 책의 내용을 나에게 대입해보고 이해하고 느끼는 행위이다. <디 아워스>를 읽은 저자 조선영 씨의 시선은 주인공의 시점 변화에 따라 자신의 대입 변화가 매우 흥미롭다.


조선영씨는 이 책을 읽기 전 자신의 아픈 상처를 고백한다.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났던 엄마를 원망했던 그 과거의 시점이 소설 속의 엄마 로라 브라운이 떠난 후 홀로 남겨진 아들 리처드와 자신의 시선이 동일했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로라 브라운이 떠날 수 밖에 없던 상황과 그게 그녀의 최선이었음을 마음으로 이해하면서 그 이해가 조선영씨의 어머니에 대한 용서로 이어진다.


훗날 아들 리처드의 장례식에 노부인 로라 브라운이 나타났을 때,

그녀가 내뱉은 한마디는 그동안 나를 계속 괴롭혔던 상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어요. 누구라도 그 이상은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렇구나, 그것이 엄마의 최선이었구나.'

깨달음으로 마음이 떨려왔다.



『디 아워스』를 읽기 전의 내가 네 살배기 리처드의 시선에서 엄마를 보았다면

이제는 한 여성으로서 로라 브라운을 보듯 엄마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네 명의 저자들은 책을 통해 일어난 변화를 이야기한다. 초등학교 교사인 한순범씨는 [연금술사]를 읽고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해 굳이 신청하지 않아도 되는 학교 발령을 신청한다. 책과 책들이 서로 별개가 아닌 연결되는 경험을 통해 더 넓은 독서의 세계로 가게 되고 그 모습을 가족들이 인정해주며 가족 블로그로 책 감상을 하게 되는 모습 또한 인상깊다. 초창기부터 함께 시작한 회원이 아닌 중간 합류자인 김민정씨가 비교의식으로 함께 어울리지 못하다가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다시 성장하는 모습 또한 흥미롭다.


《모여 읽는다는 것》에서 저자들이 쓴 책에 대한 각자의 시선이 내가 읽지 않았던 책들이라 솔직히 이 리뷰를 쓰는 게 쉽지 않다. 저자들이 소개한 책을 읽지 않은 현 상황에서 책과 저자의 변화를 느끼기란 다소 한계가 있었다. 저자들이 나눈 책 <디 아워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굿라이프>, <싯다르타>, <데미안> 그 외 책들을 읽고 나서야 이 책에 대한 나의 시선과 더불어 저자들과 책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이 네 분의 저자들과 비공식적인 독서 모임의 회원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과연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 준다. 단지 재미를 읽는 책이 아닌 책의 저자의 의미를 이해하고 서로를 이해한다는 마음으로 각자의 시선으로 읽는다. 정답은 없다. 각자의 상황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읽고 나누며 자신이 몰랐던 시선을 더 알아가며 확장하면 된다. 《모여 읽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성장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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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굵게 일합니다 - 불필요한 것은 걷어내고 본질에 집중하는 7가지 정리 습관
곤도 마리에.스콧 소넨샤인 지음, 이미정 옮김 / 리더스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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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의 개념을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가정 또는 개인용품 정리를 떠올린다. 옷, 책, 악세사리 등을 떠올리는데 멈춘다. 하지만 이 '정리'를 가정, 집을 넘어 '회사' 또는 업무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우리에게 정리가 업무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분명한 변화를 믿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  만약 상사가 내게 말했다면 나는 또 하나의 잔소리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리 컨설턴트의 대가이자 자신의 이름을 딴  '곤마리하다 (to konmari)'라는 동사로 사전에 등재된 곤도 마리에가 말한다면 솔깃할 수 밖에 없다. 정리의 대가 곤도 마리에와 <스트레치>의 저자이자 미국 라이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인 스콧 소넨샤인은 분명히 말한다. "정리를 잘 하면 일도 잘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더욱 의미있어 집니다." 


이 책에는 업무 공간인 물리적인 영역부터 디지털 데이터, 시간, 관계 그리고 회의와 팀 정리까지 업무의 비물리적인 전반적인 영역까지 정리법을 소개해준다. 


곤마리 정리법에서 마리에는 정리를 두 종류의 정리로 정의한다. 


'일상의 정리'는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새로 생긴 물건의 자리를 정해주는 개념으로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정리의 개념이다. 

하지만 곤마리 정리법은 '일상의 정리'가 아닌 '축제의 정리'를 말한다. 자신의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찾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리하는 개념으로 중요한 것, 본질적인 것만을 정리하는 개념이다. 


먼저 저자는 업무공간 정리에 관한 팁을 제공한다. 사무용품, 서류 등 모두 한 곳으로 모아서 카테고리를 나누어 정리하도록 한다. 정리의 기준은 '곤마리 정리법'과 동일하다. 



위의 질문들 가운데 '당신을 정말 설레게 하는 것인가요?'라는 질문은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곤마리 정리법 답게 물리적, 비물리적 영역의 정리법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물론 업무공간은 사적인 영역과 달라 자신이 원한다고 모든 걸 버릴 수는 없다. 보존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동료와 공유해야 하는 문서도 있다. 이런 경우 저자는 '색인 카드' 이용법을 추천한다. 


디지털 데이터 정리의 경우 스마트폰 정리법이 매우 흥미롭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각종 소셜미디어 앱에서 울리는 알람은 우리의 업무를 수시로 방해한다. 특히 이 책에 소개된  스마트폰 존재 자체만으로도 과제 수행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실험결과는 더욱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온갖 소셜미디어 앱으로 가득차고 이 관계로 발달한 인맥 네트워크는 관계 정리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본질에 충실하지 못하고 이 기술 도구에 끌려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업무의 모든 영역을 정리하면서 묻는 질문은 모두 똑같다.

 

정말 필요한 사람 또는 물건인가?”

설레게 하는 사람 또는 물건인가?”

 

이 질문들을 마주하게 되면 많은 것들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본질이 보인다. 무엇보다 지저분한 책상 자료와 사람들에 치우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놓치게 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저자의 정리법대로 자신의 삶에 불필요한 부분을 걷어내고 본질에 충실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이 정리를 통해 자신과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책을 정리할 때도 책의 종류를 통해 자신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관계 정리법에서는 광대한 인맥 관계보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업무 공간 또는 업무 활동은 공유하는 공간이므로 정리법에 제약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상황에서 무조건 순응하기보다 개인이 바꿀 수 있는 부분에 대한 팁을 제공해 조금씩 바꿔보도록 제안한다.

 

저자는 일상의 정리가 아닌 축제의 정리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만 남기는 이 축제의 정리는 결국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첫 걸음이다. 다른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쏟기보다 삶을 단순화하며 중요한 것에만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물론 업무 방식까지의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직장에서의 일이 무기력하다고 생각되는 직장인들, 자신이 상황에 끌려간다고 생각될 때 곤마리 정리법을 강력히 추천한다. 정리를 통해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해보자. 그 대화 속에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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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 우리 안에 스며든 혐오 바이러스
박민영 지음 / 북트리거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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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좁은 개념의 의미를 생각한다. 가령 보수의 태극기부대, 일본의 한국 혐오현상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라고 말한다면? 아마 대부분은 부인할 것이다. 자신은 혐오하지 않는다고. 그건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강하게 말할 것이다. 나 역시 진보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예멘 난민사건 이후로 나의 믿음은 흔들렸다. 그리고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라는 책을 읽고 난 후 나 자신역시 생활 속에 혐오가 길들여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의 저자 박민영씨는 문화평론가로 <경향신문>, <인물과사상>, <교육과사색>등에 글을 기고했고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게, 사회라고요?]를 쓴 인문 작가이다.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는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으로 우리의 생활 속에 숨은 혐오와 그 의미를 되새겨주는 책이다.

혐오란 뜻이 무엇일까? 우선 위키백과의 표현을 들면 어떠한 것을 증오, 불쾌,기피함,싫어함 등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강한 감정 을 뜻한다. 이 표현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나는 그렇게 증오하는 대상이 없는대요?"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당당히 아니오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증오하는 대상이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세대' '이웃' '타자' '이념'의 네 가지 의미로 우리의 생활 속에 혐오가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었는지 설명해준다.

가장 먼저 세대에 대한 혐오는 청소년, 20대, 주부, 노인등의 혐오로 설명된다. 그 중 나에게 가장 익숙한 혐오는 바로 주부 혐오이다. 나라에서 출산을 장려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임신을 두려워한다. 아이를 낳는 순간 이 사회의 혐오 현실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아이 자체가 민폐가 되고 노키즈존까지 생기며 아이들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엄마들은 죄인이 되어야 한다. 전업주부가 되며 돌봄노동으로 자신을 희생하지만 경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시댁과 남편에게 당당하지 못한다. 커서는 아이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며 이리 저리 소외되어 버리는 주부의 현실을 저자는 알려 준다.

청소년 혐오도 다르지 않다. 무상급식 논란이 일 때 복지포플리즘이라고 비난하던 정치권의 공격은 '급식충'이라는 비속어를 만들어냈고 저소득층의 아이들을 더욱 움츠려들게 했다.

'이웃'에 대한 혐오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혐오라면 단연 '여성혐오'라고 말할 수 있다. 자본주의로 사람 자체가 상품이 되어 버린 현재 여성 연예인, 또는 일반 여성의 몸매를 평가하고 폄하하는 미디어들을 보며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요를 누른다. 그 기준 몸매에 맞지 않는 여성들은 자기 관리 부족으로 게으름의 표상으로 취급한다. 왜 그럴까? 저자는 여성을 물건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한 인격은 이유불문하고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여성을 물건을 평가하듯 똑같이 평가한다.


여자에게만 '여배우'라고 칭하고 '여류 작가'라고 칭하는 현상 또한 '남성'을 기본값으로 보는 이 사회의 혐오를 드러낸다. 작가라면 당연히 여자와 남자를 포함하지만 이 사회는 여성은 별도의 의미로 정의한다.

내가 혐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했을 때는 바로 예멘 난민 입국시였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난민 입국에 부정적이였다. 저자는 이 예멘 난민에 대해 한국 정부의 무기력한 방치 그리고 한국인들의 거부 반응을 보여 주며 한국인의 난민 혐오의 현실을 보여준다. 500명의 난민 중에 단 2명만이 난민 인정을 받고 3D 업종에서 힘들게 생활하는 그들을 혐오하는 이유를 저자는 우리가 그들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그 이유가 제주도라는 특수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제주도'라는 이유가 컸다. '효리네 민박'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행을 꿈꾼다. 시간과 자본이 넉넉한 연예인들의 경우 제주도로 내려가 제주와 서울을 오가는 그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의 여유로운 생활을 꿈꾼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요원한 소원이다. 그런데 이 곳에서 열심히 돈을 모아도 제주도의 삶이 어려운 나인데 난민들이 이 제주도에서 산다고 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 불편함이 그들을 환영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제주도 삶을 그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느끼는 거부감은 바로 나 역시 나보다 못한 상황에 있는 그들이 제주도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 안에 숨겨져 있던 혐오였다. 저자는 혐오의 원인을 무제한 경쟁사회라고 말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로 부가 대물림되며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끊겨진 지금, 그 열등감이 혐오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내가 그들을 거부했던 원인을 정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가끔씩 회사 상사들과 이야기하거나 어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의 일에 쉽게 생각하는 그분들의 마음을 느끼곤 한다. "우리 때도 그랬어." "우리 때는 더 힘들었어." 단편적으로 보이는 삶만을 보고 쉽게 말하곤 한다.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는 그 단편을 넘어 맥락을 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의 서사를 제대로 이해하라고 강조한다. 왜 청소년들이 주부들이 여성들이 난민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지 그들에 대한 이해가 먼저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무지가 막연한 두려움을 만들고, 막연한 두려움이 혐오의 토양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안다면 그들이 경쟁 대상이 아닌 하나의 이웃이며 함께 나아가야 할 대상임을 알게 된다.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는 혐오를 멀리 보지 않는다. 바로 우리 안에, 우리의 생활 속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코로나 확진자가 이웃의 시선이 두려워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혐오가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있음을 깨닫는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낳는다.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로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 속에 우리는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을 통해 나 자신을 점검할 수 있었다. 내 안에 숨겨진 혐오를 정면으로 마주볼 수 있었다. 코로나 시대, 꼭 한 번 모두가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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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 - 인류의 상처, 여성 폭력
일레인 스토키 지음, 양혜원 옮김 / IVP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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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 아동 포르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를 인도 요청했으나 한국 법원에서 이를 거부해 단 18개월만의 형량만을 받고 풀려난 일에 대해 온 국민의 분노가 들끓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연예계 정준영, 최준형의 집단 성폭행 사건, 정치계의 안희정, 박원순 성추행 사건등은 우리 현실의 민낯을 자세히 보여주었다.

살인, 사기 등의 피해자의 후유증도 크지만 젠더 범죄의 경우는 더욱 심한 상처를 남긴다. 사기를 당해도 한 사람의 정체성이 흔들리진 않지만 강간, 성추행 등의 젠더 범죄는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뒤흔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혐오, 젠더 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상처에 비해 너무 가벼운 형량만을 받고 풀려나온다.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은 전세계적으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온갖 젠더 폭력의 민낯을 고발한다. 저자인 일레인 스토키는 철학자이자 신학자로 30년간 정의와 젠더 이슈를 열정적으로 지지해 왔고 기독교 국제 구호 단체인 '티어펀드(Tearfund)dptj 17년간 대표로 일했고 여성 폭력에 대항하기 위한 단체 '리스토어드 (Restored)'를 2010년 남편과 함께 창립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세계 곳곳을 날아가며 만난 젠더 폭력의 피해 현장과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에게 실상을 알리고 앞으로 나아갈 것을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요청한다.

먼저 저자는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여성 범죄들의 현실을 낱낱이 공개한다. 성 감별 낙태와 여성 살해, 여성 성기 훼손, 아동 강제 결혼, 명예 살인, 가정 폭력, 인신매매와 성매매, 강간, 전쟁과 성폭력 등 특히 여성에게 집중된 이 범죄들, 알고는 있지만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되었던 그 현장을 알게 해 준다.

이 폭력 중 성 감별 낙태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지금에서야 아들 선호사상이 많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아들만을 낳기를 요구하는 남아선호사상은 최근까지도 한국에서 존재했다. 가문을 잇고 부모를 봉양할 아들과 달리 딸의 경우 출가외인, 살림밑천 등의 수단으로 격하되며 결혼과 동시에 남의 집 사람이라며 딸이 겪는 고통을 나 몰라라 했다.

아들을 낳기 위해 몇 차례나 임신했지만 딸만 줄줄이 낳는 바람에 그만 낳으라는 의미로 '막딸이'라는 이름은 우리의 웃픈 과거이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이제 아들선호사상이 눈에 띄게 줄었지만 저자가 만난 인도의 현실은 법이 있음에도 암암리에 성 감별 낙태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계 일부와 정치인과 관료의 든든한 관계가 이 불법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곤 했다. 그 결과 남녀 성비가 심각하게 불균등해지며 결혼 할 여자를 구하기 위한 제2의 폭력이 발생하는 악순환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일명 여성 할례라고 일컬어지는 여성 성기 훼손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 아프리카 거주의 경우에 한 해서만이였다. 저자 일레인 스토키는 이민의 자유와 더불어 이제 아프리카, 아시아를 넘어 영국, 프랑스 등 유럽으로 건너 온 이주민들이 암암리에 행하는 성기 훼손 시술에 대한 현실을 이야기한다. 소변이 나올 구멍만을 남겨놓고 덮어 버리는 이 시술이 생명에 위협이 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저자는 이보다 더한 외로움, 수치심의 문제를 말한다. 다른 문화권으로 건너 온 여성들이 보건 의료진 앞에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성기를 내보이며 그들의 시선을 감당해야만 하는 이 수치심은 익히 알고 있던 나 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다.

저자는 이 여성 할례의 원인이 바로 여성 몸의 소유권이 여성 본인에게 아닌 남성들에게 있으며 처녀성 중시하는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아프리카의 전통 사회는 남성의 정절은 별로 요구하지 않으면서

여성의 처녀성은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여자아이의 순결을 강요하고 규제하는 것은

신랑을 제대로 존중하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여성의 순결성을 위해서 성욕을 감소시키고 처녀성을 유지하기 위한 용도로 강제로 행하는 이 음부 봉합술은 비록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지만 이 일이 일어나는 근원에 대해 한국 또한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성생활이 자유롭지만 한국 또한 성교육이 여성들의 몸조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한 번 훼손되면 복구되지 않는 처녀막을 강조하며 절대 순결할 것을 강조했던 한국 사회였다. 이 가르침 속에 강간, 성추행 등으로 당한 여성 피해자들만이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성매매와 인신매매는 따로 구분할 수 없다. 인신매매가 일어나는 곳에는 성매매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이는 바늘과 실의 관계로 함께 보는 게 바람직하다. 저자는 성매매를 합법화한 독일과 네덜란드, 강하게 저지하는 스웨덴의 경우를 예로 들어준다. 성매매를 근절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들이 고용 계약서를 쓰고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독일의 정책이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키게 되는 현실에 나는 호주를 추가하고 싶다.

호주 또한 성매매가 합법화한 나라이다. 내가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있을 시 한국에서 성매매 단속이 강화되며 많은 성매매 여성들이 호주로 건너왔다. 그 때 당시 농촌의 부족인력을 보충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워킹홀러들을 대상으로 농장에서 3개월 일한 후 증명 서류를 제출하면 1년을 연장할 수 있었다. 정부의 정책은 농촌 인력 보충이었지만 그 1년 추가 연장을 위한 서류는 성매매 종사자들에게 돈을 주고 사고 파는 행위로 변질되었다.

성매매 종사자들은 합법이 아닌 불법으로 체류할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의 권리는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저자가 설명한 독일과 네덜란드의 예와 내가 호주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은 성매매 합법화는 결코 그들의 권리에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고 당당히 일하게 하기보다는 이 성매매가 얼마나 여성을 착취하며 대상화하는 것인지를 알게 하는 노력이 없는 한 이 악순환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명예살인, 성 감별 낙태, 아동 결혼 등의 경우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 집중되지만 강간은 전세계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폭력이다. 한국에서도 하루에 강간 사건이 발생하며 미국, 유럽 등에도 강간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에서 저자는 강간을 대하는 대처 방법이 전세계를 막론하고 모두 대동소이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제기한다. 강간의 가해자인 남성들을 조심시키기 보다 피해자인 여성들에 대한 몸단속을 강조한다.


이는 캐나다의 한 경찰관이 "여성들은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창녀처럼 옷을 입지 말아야 합니다."한 발언은 한국과 다를 바가 없어 더욱 놀랍다. 교회 또한 다르지 않다. 내가 속했던 교회에서는 남성도 문제지만 짧은 치마를 입어서 남성을 자극하지 말라는 식의 가르침을 주었고 항상 일찍 다녀라 넓은 길로 다녀라며 여성만을 단속했다. 하지만 아들에게 몸조심을 시키는 부모나 교역자는 없었다.



이는 남성은 성욕에 약한 인간이라며 그들의 강간 행위를 어쩔 수 없는 행위라며 정당화시켜주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시각에 약하니 어쩔 수 없이 여성이 조심하라며 여성에게 짧은 치마 입지 마라 술 취하지 말라며 강조한다. 예전에 한 프로그램에서 강간 피해자가 블라인드 인터뷰를 한 장면을 보았다. 자신이 더럽다는 생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를 해도 힘들다는 그녀를 보며 남자 진행자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딸에게 조심하라고만 하는데 정작 필요한 건 아들 교육입니다.

여러분의 아들에게 조심할 것을 교육시켜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여성에게 책임을 묻게 되는 이 교육이 또 다른 피해자들을 더욱 움츠리게 만드는 행위임을 우리는 자각해야 한다.

기술이 발달하고 교육열은 높아져 가지만 왜 젠더 폭력은 끊이지 않는 것일까. 저자는 이 젠더 폭력의 원인을 진화록적 이론에서, 권력과 가부장제 사회 구조에서, 그리고 종교인 이슬람교와 기독교 등에서 원인을 분석해 나간다.

특히 아직까지 가부장제의 그늘이 사회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이 사회에서 가부장제의 폐해가 종교의 비호 아래 이 사회에서 굳건히 설 수 있었음을 말한다. 특히 이슬람은 물론이고 성경 텍스트 자체로만 이해하는 교역자들로 인해 기독교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젠더 이슈를 저자는 텍스트가 아닌 맥락과 서사로 제대로 이해할 것을 강조한다.

여성 신도들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남성 목사와 남성 장로가 지배하는 한국 교회, 비록 주님을 섬긴다지만 남성이 지배하는 기독교에서 젠더 이슈를 대하는 태도가 세상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은 놀랍지 않다. 이는 이슬람 페미니스트 아미나 와두드가 '여성의 참여가 없으면 샤리아는 철저하게 가부장적이다라고' 주장한 부분과 결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젠더 폭력이 없어지기 위해서는 철저한 법의 이행과 정치권의 의지 그리고 문화적 태도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성을 대하는 사건에 여성을 이해할 수 있는 여성의 참여가 부족하다는 현실이다. 남성 기득권이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여성을 대하는 법률만큼은 여성이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최근 있었던 낙태 합법화가 그토록 논란이 되었던 이유도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현실과 의사는 무시되고 일부 남성 기득권에 의해 강제로 소유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 또한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사회에 알리고 여성이 참여하는 법률과 함께 병행되어야 이 젠더 폭력으로부터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에서 저자는 변화가 느린 현실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하지만 이 제목 그대로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느리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멈추지 않는다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비록 더디지만 씨앗은 열매를 맺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연대와 노력이 함께 한다면 이 열매가 활짝 만개해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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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투성이 연인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0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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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건 '삶'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있는 한 끝까지 견뎌내야 하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지만 죽지 못해 꾸역꾸역 살아가는 인생. 살아가는 동안 인생은 점점 차가워진다. 뜨거웠던 혈기가 점차 식어가고 마지막 싸늘한 시신이 되기까지 우리는 차가워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인생의 차가운 면들을 가장 깊게 들여다보는 소설가라면 나는 감히 2018년 작고한 故 정미경 작가를 말하고 싶다. 담담한 듯 그리면서도 인생의 어두운 면까지 어떤 감정의 개입없이 그 사실 날 것 그대로의 면을 보여주는 정미경 작가야말로 우리에게 인생의 면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제는 더 이상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없지만 그야말로 작가의 세계를 보여주는 소설집인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 총서'로 재단장해 출간되었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표제작인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비롯해 <호텔 유로, 1203>, <성스러운 봄>, <비소 여인>, <나릿빛 사진의 추억>,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등 여섯 편의 단편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제작인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남편이자 소설가인 김주현 작가의 사망 후 딸과 함께 살아가는 유선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남편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남편을 잃고 난 후 계속되는 유선에 초점을 맞춘다. 도서관 사서와 과외로 살아가는 유선에게 한 출판사 대표가 알려지지 않은 남편의 유작을 출간하고 싶다며 제의한다.

마지못해 남편의 컴퓨터를 살펴보던 유선은 남편이 일기 형식으로 쓴 문서를 발견한다.


나의 어디가 좋아?

모르겠어.

말해 줘.

모든 게 좋아. 너의 모든 것.

그렇게 많이?


남편의 죽음의 원인조차 알 수 없었던 유선이었기에 다른 여자와의 대화가 담긴 이 글은 유선의 영혼을 좀먹는다.

알 수 없는 원인의 가려움이 그녀를 잠식하며 이 글을 생각할수록 가려움의 증세는 더욱 심해진다. 최근 스트레스를 심하게 겪은 일이 있냐는 의사의 반응에 유선은 강하고 단호하게 그런 일은 없다고 대답한다.

소설은 유선이 결국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남편의 글에 잠식된 듯하다. 그 잠식된 듯한 삶에서도 유선은 과외를 이뤄나가고 자신과 함께 홀로 남겨진 딸을 챙기고 사서와 과외 일을 해 나간다. 미칠 것 같은 마음과 반대로 그녀의 표면은 언제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작가의 서늘함이 가장 강하게 발현되는 때는 유선이 출판사 대표에게 전화해 남편이 남겨 놓은 어떤 글도 없다고 통화하는 마지막에서이다.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그 글을 없던 것으로 정의하고 죽은 남편을 향해 사람들에게 당신은 끝까지 나의 연인으로 남아있으라는 그녀의 말은 이 모든 걸 감당하고 살아가겠다는 그녀의 다짐으로 들린다.


당신은 내 속에서, 언제까지나, 마지막 보여 주었던 그 모습처럼,

나의 피투성이 연인으로 남아 있어야 해.

지나고 보니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게 인생이고

어떤 일도 견뎌 내는 게 인간이더라.


여섯 편의 단편 중 인생의 고통에 대해 가장 서늘한 작품은 <성스러운 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불치병에 걸린 딸의 병원비로 두 개의 보험설계사 일을 하며 동분서주하는 나는 대학교 시절 교양수업을 들었던 은사의 차 사고에 대한 보험금 청구 처리를 하기 위해 연구실을 방문한다.

보험금을 지급받기 위해 자신을 방어하는 교수와 피해자의 실수로 몰아가며 지급하지 않으려고 교수를 극한의 상황에 몰아치는 이 상황은 주인공이 딸의 병원비를 추궁하는 의사의 무미건조함과 어떻게든 딸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빚을 지며 살아가다 결국 딸의 병원비를 포기하며 죽음에 내몰리게 된 딸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자신이 보험설계사로서 대학 은사를 궁지로 몰아가고 은사의 숨겨진 비밀을 들춰내며 고통으로 내몰릴수록 주인공 나가 애써 묻어두고 있던 자신의 고통 또한 선명해진다. 애써 고통을 감당해냈지만 남는 건 아이를 포기했다는 아내의 냉소와 침묵 그리고 생활고 속에 고통을 느낄 수조차 없었던 나의 고통을 통해 인생의 잔인함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치부를 들켜버린 은사, 돈 때문에 아이의 치료를 중단한 나, 고통의 무게는 다르지만 끝까지 그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라는 사실이 끝내 주인공을 울게 한다.


희망은 있는 겁니까?

이건, 질문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저희도 보호자에게 물어보아야 하지만,

이게 질문이 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질문이란,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어딘가에서 대답을 찾을 수 있는 걸 말하겠지요.

이럴 땐 의사나 보호자나 질문이 아닐 딜레마에 부딪치는 거죠.

끝내 답을 찾을 수 없는.


인생에서 질문조차 될 수 없는 고통. 어떤 답도 있을 수 없다는 게 고통이 주는 극한점이 아닐까.

그 정답 없는 삶 속에서 매번 극단의 선택을 해야 하며 감당해야 하는 인생. 고통을 감당해냈건만 끝내 돌아온 건 또 다른 고통 뿐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삶이 완벽하다는 걸 가장 늦게 깨달았을 때는 생명을 포기한 마지막 순간이었다.

딸의 카테터를 뽑아 버린 순간 깨닫게 되는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 인생은 끝까지 고통을 안겨준다.


이 단편집에서의 인물들은 모두 힘든 상황을 살아간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를 뒤로 하고 자신에게 명품백을 사주기 위해 호텔로 향하는 나, 삶에 대한 적의와 냉소로 가득찬 연인 윤이 주위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 비소 연인, 떠들썩하고 인정 많은 동네이지만 끝내 치정살인으로 귀결되고 부유한 연인 윤조를 포기하지 못하는 나 등등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가 이 소설에서 그려진다. 놀랍다면 이들에게 동정이라기보다는 삶이란 이런 것이다라며 담담하게 말하는 저자의 내러티브가 이야기 속에 스며드는 듯하다.


고통을 마주하고 고통을 껴안고 살아가는 삶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소설 속에 나의 모습을 투시해본다. 나의 고통과 내 삶의 무게를 대조해본다. 동네 뒷골목의 사람들을 향한 그대로의 모습을 찍으며 행복해하던 승우가 끝내 포기하고 인생의 화려한 모습 결혼식의 사진사로 남기로 했다는 승우의 결심처럼 우리의 인생 또한 행복했던 때를 복기하며 그 때로 돌아가고자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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