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 우리 안에 스며든 혐오 바이러스
박민영 지음 / 북트리거 / 2020년 7월
평점 :

혐오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좁은 개념의 의미를 생각한다. 가령 보수의 태극기부대, 일본의 한국 혐오현상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라고 말한다면? 아마 대부분은 부인할 것이다. 자신은 혐오하지 않는다고. 그건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강하게 말할 것이다. 나 역시 진보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예멘 난민사건 이후로 나의 믿음은 흔들렸다. 그리고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라는 책을 읽고 난 후 나 자신역시 생활 속에 혐오가 길들여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의 저자 박민영씨는 문화평론가로 <경향신문>, <인물과사상>, <교육과사색>등에 글을 기고했고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게, 사회라고요?]를 쓴 인문 작가이다.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는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으로 우리의 생활 속에 숨은 혐오와 그 의미를 되새겨주는 책이다.
혐오란 뜻이 무엇일까? 우선 위키백과의 표현을 들면 어떠한 것을 증오, 불쾌,기피함,싫어함 등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강한 감정 을 뜻한다. 이 표현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나는 그렇게 증오하는 대상이 없는대요?"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당당히 아니오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증오하는 대상이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세대' '이웃' '타자' '이념'의 네 가지 의미로 우리의 생활 속에 혐오가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었는지 설명해준다.
가장 먼저 세대에 대한 혐오는 청소년, 20대, 주부, 노인등의 혐오로 설명된다. 그 중 나에게 가장 익숙한 혐오는 바로 주부 혐오이다. 나라에서 출산을 장려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임신을 두려워한다. 아이를 낳는 순간 이 사회의 혐오 현실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아이 자체가 민폐가 되고 노키즈존까지 생기며 아이들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엄마들은 죄인이 되어야 한다. 전업주부가 되며 돌봄노동으로 자신을 희생하지만 경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시댁과 남편에게 당당하지 못한다. 커서는 아이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며 이리 저리 소외되어 버리는 주부의 현실을 저자는 알려 준다.
청소년 혐오도 다르지 않다. 무상급식 논란이 일 때 복지포플리즘이라고 비난하던 정치권의 공격은 '급식충'이라는 비속어를 만들어냈고 저소득층의 아이들을 더욱 움츠려들게 했다.
'이웃'에 대한 혐오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혐오라면 단연 '여성혐오'라고 말할 수 있다. 자본주의로 사람 자체가 상품이 되어 버린 현재 여성 연예인, 또는 일반 여성의 몸매를 평가하고 폄하하는 미디어들을 보며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요를 누른다. 그 기준 몸매에 맞지 않는 여성들은 자기 관리 부족으로 게으름의 표상으로 취급한다. 왜 그럴까? 저자는 여성을 물건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한 인격은 이유불문하고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여성을 물건을 평가하듯 똑같이 평가한다.

여자에게만 '여배우'라고 칭하고 '여류 작가'라고 칭하는 현상 또한 '남성'을 기본값으로 보는 이 사회의 혐오를 드러낸다. 작가라면 당연히 여자와 남자를 포함하지만 이 사회는 여성은 별도의 의미로 정의한다.
내가 혐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했을 때는 바로 예멘 난민 입국시였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난민 입국에 부정적이였다. 저자는 이 예멘 난민에 대해 한국 정부의 무기력한 방치 그리고 한국인들의 거부 반응을 보여 주며 한국인의 난민 혐오의 현실을 보여준다. 500명의 난민 중에 단 2명만이 난민 인정을 받고 3D 업종에서 힘들게 생활하는 그들을 혐오하는 이유를 저자는 우리가 그들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그 이유가 제주도라는 특수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제주도'라는 이유가 컸다. '효리네 민박'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행을 꿈꾼다. 시간과 자본이 넉넉한 연예인들의 경우 제주도로 내려가 제주와 서울을 오가는 그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의 여유로운 생활을 꿈꾼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요원한 소원이다. 그런데 이 곳에서 열심히 돈을 모아도 제주도의 삶이 어려운 나인데 난민들이 이 제주도에서 산다고 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 불편함이 그들을 환영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제주도 삶을 그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느끼는 거부감은 바로 나 역시 나보다 못한 상황에 있는 그들이 제주도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 안에 숨겨져 있던 혐오였다. 저자는 혐오의 원인을 무제한 경쟁사회라고 말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로 부가 대물림되며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끊겨진 지금, 그 열등감이 혐오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내가 그들을 거부했던 원인을 정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가끔씩 회사 상사들과 이야기하거나 어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의 일에 쉽게 생각하는 그분들의 마음을 느끼곤 한다. "우리 때도 그랬어." "우리 때는 더 힘들었어." 단편적으로 보이는 삶만을 보고 쉽게 말하곤 한다.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는 그 단편을 넘어 맥락을 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의 서사를 제대로 이해하라고 강조한다. 왜 청소년들이 주부들이 여성들이 난민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지 그들에 대한 이해가 먼저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무지가 막연한 두려움을 만들고, 막연한 두려움이 혐오의 토양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안다면 그들이 경쟁 대상이 아닌 하나의 이웃이며 함께 나아가야 할 대상임을 알게 된다.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는 혐오를 멀리 보지 않는다. 바로 우리 안에, 우리의 생활 속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코로나 확진자가 이웃의 시선이 두려워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혐오가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있음을 깨닫는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낳는다.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로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 속에 우리는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을 통해 나 자신을 점검할 수 있었다. 내 안에 숨겨진 혐오를 정면으로 마주볼 수 있었다. 코로나 시대, 꼭 한 번 모두가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