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 - 인류의 상처, 여성 폭력
일레인 스토키 지음, 양혜원 옮김 / IVP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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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 아동 포르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를 인도 요청했으나 한국 법원에서 이를 거부해 단 18개월만의 형량만을 받고 풀려난 일에 대해 온 국민의 분노가 들끓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연예계 정준영, 최준형의 집단 성폭행 사건, 정치계의 안희정, 박원순 성추행 사건등은 우리 현실의 민낯을 자세히 보여주었다.

살인, 사기 등의 피해자의 후유증도 크지만 젠더 범죄의 경우는 더욱 심한 상처를 남긴다. 사기를 당해도 한 사람의 정체성이 흔들리진 않지만 강간, 성추행 등의 젠더 범죄는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뒤흔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혐오, 젠더 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상처에 비해 너무 가벼운 형량만을 받고 풀려나온다.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은 전세계적으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온갖 젠더 폭력의 민낯을 고발한다. 저자인 일레인 스토키는 철학자이자 신학자로 30년간 정의와 젠더 이슈를 열정적으로 지지해 왔고 기독교 국제 구호 단체인 '티어펀드(Tearfund)dptj 17년간 대표로 일했고 여성 폭력에 대항하기 위한 단체 '리스토어드 (Restored)'를 2010년 남편과 함께 창립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세계 곳곳을 날아가며 만난 젠더 폭력의 피해 현장과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에게 실상을 알리고 앞으로 나아갈 것을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요청한다.

먼저 저자는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여성 범죄들의 현실을 낱낱이 공개한다. 성 감별 낙태와 여성 살해, 여성 성기 훼손, 아동 강제 결혼, 명예 살인, 가정 폭력, 인신매매와 성매매, 강간, 전쟁과 성폭력 등 특히 여성에게 집중된 이 범죄들, 알고는 있지만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되었던 그 현장을 알게 해 준다.

이 폭력 중 성 감별 낙태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지금에서야 아들 선호사상이 많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아들만을 낳기를 요구하는 남아선호사상은 최근까지도 한국에서 존재했다. 가문을 잇고 부모를 봉양할 아들과 달리 딸의 경우 출가외인, 살림밑천 등의 수단으로 격하되며 결혼과 동시에 남의 집 사람이라며 딸이 겪는 고통을 나 몰라라 했다.

아들을 낳기 위해 몇 차례나 임신했지만 딸만 줄줄이 낳는 바람에 그만 낳으라는 의미로 '막딸이'라는 이름은 우리의 웃픈 과거이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이제 아들선호사상이 눈에 띄게 줄었지만 저자가 만난 인도의 현실은 법이 있음에도 암암리에 성 감별 낙태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계 일부와 정치인과 관료의 든든한 관계가 이 불법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곤 했다. 그 결과 남녀 성비가 심각하게 불균등해지며 결혼 할 여자를 구하기 위한 제2의 폭력이 발생하는 악순환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일명 여성 할례라고 일컬어지는 여성 성기 훼손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 아프리카 거주의 경우에 한 해서만이였다. 저자 일레인 스토키는 이민의 자유와 더불어 이제 아프리카, 아시아를 넘어 영국, 프랑스 등 유럽으로 건너 온 이주민들이 암암리에 행하는 성기 훼손 시술에 대한 현실을 이야기한다. 소변이 나올 구멍만을 남겨놓고 덮어 버리는 이 시술이 생명에 위협이 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저자는 이보다 더한 외로움, 수치심의 문제를 말한다. 다른 문화권으로 건너 온 여성들이 보건 의료진 앞에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성기를 내보이며 그들의 시선을 감당해야만 하는 이 수치심은 익히 알고 있던 나 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다.

저자는 이 여성 할례의 원인이 바로 여성 몸의 소유권이 여성 본인에게 아닌 남성들에게 있으며 처녀성 중시하는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아프리카의 전통 사회는 남성의 정절은 별로 요구하지 않으면서

여성의 처녀성은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여자아이의 순결을 강요하고 규제하는 것은

신랑을 제대로 존중하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여성의 순결성을 위해서 성욕을 감소시키고 처녀성을 유지하기 위한 용도로 강제로 행하는 이 음부 봉합술은 비록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지만 이 일이 일어나는 근원에 대해 한국 또한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성생활이 자유롭지만 한국 또한 성교육이 여성들의 몸조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한 번 훼손되면 복구되지 않는 처녀막을 강조하며 절대 순결할 것을 강조했던 한국 사회였다. 이 가르침 속에 강간, 성추행 등으로 당한 여성 피해자들만이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성매매와 인신매매는 따로 구분할 수 없다. 인신매매가 일어나는 곳에는 성매매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이는 바늘과 실의 관계로 함께 보는 게 바람직하다. 저자는 성매매를 합법화한 독일과 네덜란드, 강하게 저지하는 스웨덴의 경우를 예로 들어준다. 성매매를 근절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들이 고용 계약서를 쓰고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독일의 정책이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키게 되는 현실에 나는 호주를 추가하고 싶다.

호주 또한 성매매가 합법화한 나라이다. 내가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있을 시 한국에서 성매매 단속이 강화되며 많은 성매매 여성들이 호주로 건너왔다. 그 때 당시 농촌의 부족인력을 보충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워킹홀러들을 대상으로 농장에서 3개월 일한 후 증명 서류를 제출하면 1년을 연장할 수 있었다. 정부의 정책은 농촌 인력 보충이었지만 그 1년 추가 연장을 위한 서류는 성매매 종사자들에게 돈을 주고 사고 파는 행위로 변질되었다.

성매매 종사자들은 합법이 아닌 불법으로 체류할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의 권리는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저자가 설명한 독일과 네덜란드의 예와 내가 호주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은 성매매 합법화는 결코 그들의 권리에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고 당당히 일하게 하기보다는 이 성매매가 얼마나 여성을 착취하며 대상화하는 것인지를 알게 하는 노력이 없는 한 이 악순환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명예살인, 성 감별 낙태, 아동 결혼 등의 경우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 집중되지만 강간은 전세계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폭력이다. 한국에서도 하루에 강간 사건이 발생하며 미국, 유럽 등에도 강간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에서 저자는 강간을 대하는 대처 방법이 전세계를 막론하고 모두 대동소이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제기한다. 강간의 가해자인 남성들을 조심시키기 보다 피해자인 여성들에 대한 몸단속을 강조한다.


이는 캐나다의 한 경찰관이 "여성들은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창녀처럼 옷을 입지 말아야 합니다."한 발언은 한국과 다를 바가 없어 더욱 놀랍다. 교회 또한 다르지 않다. 내가 속했던 교회에서는 남성도 문제지만 짧은 치마를 입어서 남성을 자극하지 말라는 식의 가르침을 주었고 항상 일찍 다녀라 넓은 길로 다녀라며 여성만을 단속했다. 하지만 아들에게 몸조심을 시키는 부모나 교역자는 없었다.



이는 남성은 성욕에 약한 인간이라며 그들의 강간 행위를 어쩔 수 없는 행위라며 정당화시켜주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시각에 약하니 어쩔 수 없이 여성이 조심하라며 여성에게 짧은 치마 입지 마라 술 취하지 말라며 강조한다. 예전에 한 프로그램에서 강간 피해자가 블라인드 인터뷰를 한 장면을 보았다. 자신이 더럽다는 생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를 해도 힘들다는 그녀를 보며 남자 진행자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딸에게 조심하라고만 하는데 정작 필요한 건 아들 교육입니다.

여러분의 아들에게 조심할 것을 교육시켜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여성에게 책임을 묻게 되는 이 교육이 또 다른 피해자들을 더욱 움츠리게 만드는 행위임을 우리는 자각해야 한다.

기술이 발달하고 교육열은 높아져 가지만 왜 젠더 폭력은 끊이지 않는 것일까. 저자는 이 젠더 폭력의 원인을 진화록적 이론에서, 권력과 가부장제 사회 구조에서, 그리고 종교인 이슬람교와 기독교 등에서 원인을 분석해 나간다.

특히 아직까지 가부장제의 그늘이 사회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이 사회에서 가부장제의 폐해가 종교의 비호 아래 이 사회에서 굳건히 설 수 있었음을 말한다. 특히 이슬람은 물론이고 성경 텍스트 자체로만 이해하는 교역자들로 인해 기독교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젠더 이슈를 저자는 텍스트가 아닌 맥락과 서사로 제대로 이해할 것을 강조한다.

여성 신도들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남성 목사와 남성 장로가 지배하는 한국 교회, 비록 주님을 섬긴다지만 남성이 지배하는 기독교에서 젠더 이슈를 대하는 태도가 세상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은 놀랍지 않다. 이는 이슬람 페미니스트 아미나 와두드가 '여성의 참여가 없으면 샤리아는 철저하게 가부장적이다라고' 주장한 부분과 결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젠더 폭력이 없어지기 위해서는 철저한 법의 이행과 정치권의 의지 그리고 문화적 태도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성을 대하는 사건에 여성을 이해할 수 있는 여성의 참여가 부족하다는 현실이다. 남성 기득권이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여성을 대하는 법률만큼은 여성이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최근 있었던 낙태 합법화가 그토록 논란이 되었던 이유도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현실과 의사는 무시되고 일부 남성 기득권에 의해 강제로 소유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 또한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사회에 알리고 여성이 참여하는 법률과 함께 병행되어야 이 젠더 폭력으로부터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에서 저자는 변화가 느린 현실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하지만 이 제목 그대로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느리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멈추지 않는다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비록 더디지만 씨앗은 열매를 맺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연대와 노력이 함께 한다면 이 열매가 활짝 만개해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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