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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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남자가 기차에 내린다. 개인 박물관 기사 면접을 보기 위해서다. 그를 마중나온 한 소녀가 그를 인도한다. 어느 사전 정보도 없이 구인공고를 낸 채용자를 본 남자는 깜짝 놀란다. 100세라 해도 믿을만큼 굽은 허리와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이 새겨진 한 노인이 못마땅한 눈길로 그를 쳐다본다.

노인에게 어떤 박물관을 생각하고 있는지 묻자 의외의 대답이 들려온다.



내가 찾는 건 그 육체가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가장 생생하고 충실하게 기억하는 물건이야.

그게 없으면 살아온 세월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리는 그 무엇,

죽음의 완결을 영원히 저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이지.


한 사람의 생애를 뚜렷하게 정의할 수 있는 물건. 그 물건이 없이는 그 사람의 생애를 설명할 수 없는 유품을 모아 박물관 전시를 기획하는 노파의 계획은 다소 황당하기만하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말고 유품을 챙겨 올 것을 강조하는 노파의 으름장에 남자는 이 마을에 사망자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노파의 집에는 남자를 마중 나왔던 노파의 양딸 소녀와 부부이자 이 집안의 일을 도맡아 하는 가정부와 정원사가 있다. 소설에서 이들은 모두 이름이 없이 노파, 소녀, 정원사,가정부 역할로만 불리운다. 이 네 명과 박물관 기사인 남자 다섯 명은 박물관 기획을 시작한다.

박물관 건립에 시작하기 전, 노파는 자신의 박물관 설립을 시작하기 전 세 가지 당부사항을 주었다.

"절대로 도중에 그만두면 안 돼. 이것이 세 번째 진리야."

어느 누구도 일을 시작하면서 도중 하차를 기대하지 않는다.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이 말이 후에 어떻게 그의 삶을 얽매이고 결정하게 되는 무서운 암시가 있을 줄 생각하지 못한다.

노파의 양녀인 소녀는 그에게 마을을 구경시켜 주던 중 '침묵의 전도사'를 만나게 된다. 북쪽 수도원에서 일체 말을 하지 않으며 침묵으로 수행하는 전도사들은 말을 할 수 없다. 묵언으로 수행하는 그들은 완전한 침묵 속에서 죽는 걸 이상으로 삼는다.

그는 사람이 죽기 원하지 않지만 인간의 삶은 유한한 법. 죽음은 그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먼저 109세 전직 외과의사가 죽어나가고 그는 소녀와 합세에 불법 귀 축소 수술 전용 메스를 가져온다. 박물관 건립의 계획은 느리지만 진행되고 그는 곧 태어날 조카의 선물을 사기 위해 소녀와 함께 마을의 특산품인 알공예품을 고르던 중 마을에 큰 폭파 사건이 일어난다.

조용한 마을에 폭파 사건이 일어나고 정적이던 마을은 불안에 휩싸인다. 소녀 또한 심한 부상을 당하고 박물관 건립은 다소 느려진다. 폭파 사건의 여파와 함께 유두가 잘려 나간 여성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하며 마을은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인다.

박물관 기사인 그와 소녀는 침묵을 수행하는 수도원에 가는 배를 태워주는 수습 전도사를 만나게 되고 침묵 수행에 관해 자세히 알게 된다. 아직은 수습 중이지만 조금씩 머잖아 자신도 침묵하게 될 거라는 수습 소년은 침묵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전도사들이 추구하는 건 말의 금지가 아니라 침묵이예요. 침묵은 바깥이 아니라 우리 안에 존재하죠."

신비의 세계로 여겨졌던 침묵의 수도원이 노파가 살고 있는 대저택과의 관계가 연쇄 살인 사건과 맞물려가며 연관 관계가 드러난다. 조금씩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하게 되는 소년 전도사처럼 박물관 기사인 그 역시 대저택의 침묵의 세계로 끌려가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을 때였다. 마지막 진실을 그가 알게 될 때, 그 역시 일종의 침묵을 수행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침묵박물관》 소설은 자신의 생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를 강하게 묻는다. 109세의 외과의사에게는 그가 불법적으로 수술을 자행해 온 메스 도구라는 부끄러운 유품이 있었다. 69세 무명 여류화가의 유품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물감을 먹으며 버텨야 했던 유품이 있었다. 주인공에게는 어머니의 유품인 책 <안네의 일기>가, 한 여성 점원에게는 마른 헝겊 등의 물건에서 그들의 생애가 보인다. 과연 나의 유품이라면 어떤 물건이 나의 생애를 대표해줄까?

사람들은 침묵 전도사의 일을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결국 우리 모두가 침묵의 길로 가는 것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아무리 울어봐야 다가오는 겨울을 피할 수 없듯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우리의 삶은 결국 침묵하는 물건으로 그 사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박물관 이름인 <침묵박물관>이 무엇보다 더 어울리는 듯하다.

강하진 않지만 미세한 감정의 여운을 부족한 내 글로 표현할 수 없어 아쉽다. 나는 이 소설을 노파의 말로 매듭짓고자 한다. 비록 하찮은 유품 하나라도 그 사람의 생에 일어난 일들은 가치가 있다는 말이라는 것 아닐까.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고. 모든 생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유품은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의 생을 기억하고 추모하듯이.


우리의 신상에 일어나는 일 가운데

쓸모없는 건 하나도 없어.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고, 그리고 가치가 있어.

유품 하나하나가 그렇듯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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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인 그녀들의 책 읽기
손문숙 지음 / 힘찬북스(HCbooks)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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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책을 읽고 난 후의 감동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 나에게 좋은 말동무는 동생이다. 나만큼 책을 좋아하는 동생을 만나면 우리는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한다. 내가 좋았던 책에 대해 동생이 공감하면 기분이 좋지만 동생이 기대보다 떨어진다고 말할 때는 의기소침해진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책은 최고의 이야기상대이다.

『지극히 사적인 그녀들의 책읽기』는 현직 공무원인 저자 손문숙씨가 독서토론을 하며 읽은 책에 대한 소회를 남긴 글모음이다. 책을 느끼고 생각하며 반추하는 읽기를 통해 자신이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글이다.

총 27권의 읽기에 대한 소회가 담겨 있는 이 글은 인간, 죽음, 여성 그리고 사회 네 파트로 구분지어 읽기를 이야기한다.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책장에 꽂혀있지만 읽지 못하고 있는 책을 미리 읽는 즐거움도 있다.

그 중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알게 되어 구매한 [필경사 바틀비]가 눈에 띈다. 저자 손문숙씨는 이 책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김용균 군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이익창출로 인한 위험의 외주화.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어린 청춘들이 죽어가지만 아직까지 변변한 규제 하나 못 마련하고 있는 이 현실을 자본주의를 거부하며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바틀비의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시대가 지나도 형태만 바뀔 뿐 없어지지 않는 불평등, 형태만 변주된 채로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이 현실을 저자는 자본주의로 인한 인간 소외로 담담히 소개해준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영화로 본 아들의 반응 또한 흥미롭다. 남자로서 여자의 입장을 서 보지 않고 김지영의 입장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현실을 보며 저자는 두터운 벽을 느낀다. 나 또한 남편에게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보자고 이야기했을 때 "82년생 김철수"가 나오면 그 때 보겠다며 일축해버린 남편이 떠올라 씁쓸해졌다. 페미니즘이 단지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이론이 아닌 남녀노소 모두를 아우르는 이론이며 이를 알고 이해하는 움직임이 없이 거절해버리는 남성에 대한 안타까움을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통해 이야기한다.

동생은 책을 읽는 이유가 바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세지고 완강해지는 자신을 다스리고 다른 생각들을 배우고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동생의 말을 떠올렸다. 저자 또한 평범한 공무원이지만 독서토론을 하고 읽고 나누며 세상을 깨우쳐간다. 책을 통해 세상을 보고 페미니즘을 보고 코로나 시대를 보며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를 사유한다. 그 사유는 글쓰기로 이어지고 오십에 작가가 되기 위한 삶을 위해 정진한다. 읽고 쓰는 사람으로 자신을 재정의해간다. 읽기를 통해 삶의 폭이 넓어지고 글을 쓰는 저자의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을 반성해간다.

『지극히 사적인 그녀들의 책읽기』는 무엇을 만드는가. 나는 읽기는 '삶'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우리의 삶은 달라져야하고 달라진다. 나의 고정관념이 깨지고 나의 삶이 달라진다. 책을 읽기 전과 후의 삶이 같을 수 없다. 그 모습을 저자는 글을 통해 보여준다.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나름 읽는다고 하는데 과연 나의 삶은 달라져있는가. 나의 읽기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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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 1
스티븐 킹.피터 스트라우브 지음, 김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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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은 설명이 필요없는 추리소설의 대가이다. 스티븐 킹과 또 다른 추리작가 피터 스트라우브가 만나 펴낸 소설 『부적』이 황금가지에서 새로운 옷을 입고 재출간되었다. 세 권의 소설이 두 권의 두툼한 시리즈로 탄생한 이 소설은 톰 소여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영감을 얻어 쓰여진 이야기다.

스티븐 킹은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피터 스트라우브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다. 스티븐 킹 못지않게 다수의 상을 수상한 피터 스트라우브는 호러계의 고전 중의 한 명이라고 한다.

『부적』은 소년 잭 소여가 아픈 엄마와 함께 도망치듯 쫓겨나간 후 펼쳐진 이야기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동업자인 모건을 피해 도망쳐 온 잭은 비록 어린 나이지만 엄마의 병세가 생각보다 위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호텔에서 엄마와 함께 생활하던 중 아버지의 동업자였던 모건의 전화를 몰래 엿듣게 되고 모건이 어머니에게 잭을 생각하라며 자신의 계획에 동참할 것을 회유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던 잭은 스피디 파커라는 노인에게 이 세상이 아닌 또 하나의 세상 '테러토리'가 있음을 알려주며 엄마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세상 '테러토리'로 모험을 떠나 부적을 찾아와야만 한다고 알려준다.


내 말을 들어 보렴.

너는 부적을 손에 쥐게 될 거야. 방랑자 잭.

그것은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아,

마치 크리스털 공처럼 생겼단다.

방랑자 잭, 우리의 방랑자 잭,

캘리포니아로 가서 그것을 가져오렴.

하지만 그것은 책임이자 십자가란다.

잭, 그것을 떨어뜨리는 순간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단다.


부적이 뭔지도 모른채 엄마를 살리겠다는 절박감에 잭은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모험을 시작한다.

소설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진 이 소설은 1장에서는 잭이 모험을 떠나기 전의 모습과 본격적인 모험이 펼쳐지는 2부로 나뉜다. 사실 1부는 잭의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이라서 다소 읽기가 지루했다. 하지만 잭이 모험을 떠나기로 결정한 1부 마지막과 모험이 시작되기 전 잭의 위험을 예고하는 악의 축인 아빠의 동업자인 모건의 이야기가 막간극으로 그려지며 이야기는 급물살을 탄다. 어렴풋이 짐작했던 악의 실체가 막간극에서 실체를 드러내며 앞으로 잭의 모험이 결코 쉽지 않음을 예고한 후 본격적인 잭의 모험으로 인도한다.

잭의 모험은 스피디 할아버지가 준 주스로 현실과 다른 세상 '테러토리'를 공간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흥미롭다. 전혀 다른 세상을 이동하며 시작되는 모험은 결코 순탄치 않다. 자신을 뒤쫓는 모건의 계략이 시작되고 공간 이동한 후 미성년자로서 술집에서 착취노동과 폭력을 당하는 등 잭은 모든 걸 순순히 감당해야 한다. 어린 나이에 겪어야 하는 외로움과 공포가 모험과 함께 버물러지며 모험은 흥미를 자아낸다.

모험과 함께 잭의 과거 속에서 의문을 갖고 있던 주변 어른들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와 동업자 모건 사이에서 이야기

했던 '테러토리'를 떠올리며 이 소설은 과거와 잭의 모험이 하나씩 연계되어 잭은 모건이 어떤 악을 품고 있는지를 드러내게 된다. 잭이 실체를 알아감에 따라 아저씨 모건의 추적 또한 집요해진다.

『부적』은 또한 그 당시의 미국 사회상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잭은 자신에게 테러토리의 존재를 알려준 흑인 할아버지 스피디 파커와 친하다는 이유로 호텔의 종업원에게서 조롱을 받는다. 지금보다 더한 과거에 미국의 인종차별이 만연했음을 종업원의 모습에서 우리는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잭이 술집에서 일하던 오틀리에의 황량한 모습과 술집에서 비춰진 미국의 모든 깜둥이와 유대인을 이란으로 보내 버려! 와 같은 문구 이주민들의 직업등을 통해 이방인들에 대한 대우가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현실에서 다시 테러토리로 공간 이동하며 계속되는 잭의 모험은 스릴러와 판타지를 함께 품어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5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이지만 잭의 모험은 늑대인간 '울프'를 만나며 또 다른 전개가 시작됨을 예고하며 끝난다. 1권의 모험만으로도 긴장감을 자아내는 잭의 이야기가 2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케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1권을 읽으면 2권을 안 읽을 수 없게 만든다는 것. 1권만으로 결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예측할 수 없다. 빨리 2권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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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 일, 육아, 교육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유
파울 페르하에허 지음, 이승욱 외 옮김 / 반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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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라는 물음은 마흔을 통과하며 나를 지배하는 물음이다. 주변에서 나이값을 하라는 둥, 나이에 맞지 않게 미성숙한 나의 모습은 나를 좌절하게 만든다. 이 책의 제목은 내 질문과 일치했고 그 답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내 물음에 답하는 책이 아니였다. 이 책은 내 개인적인 답보다는 이 사회의 구조에서 답을 찾아가는 책이였다. 우리가 어른이 되지 못하게 만드는 이 사회의 원인을 "잘못된 권위"라고 말하며 올바른 권위가 필요함을 말하는 책이다.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의 저자 파울 페르하에허는 임상 심리학자로 한국에서는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 가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저자는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만성화된 번아웃, 육아의 질 저하, 갈수록 후퇴하는 정치 등 왜 기술은 발전하지만 삶은 개선되지 않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 답을 바로 우리 안에 잘못된 권위가 있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책의 내용은 내게 다소 어려웠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고심했지만 부모로서 저자가 진단한 <집단으로서의 부모>의 내용을 위주로 이 책을 말하고자 한다.

저자는 정치, 여성, 가정, 육아 등 각 키워드에 맞추어 현상을 설명해간다. 그 중 부모의 입장으로서 읽는 저자의 내용은 처음부터 나의 예상을 뒤집는다. 먼저 저자는 아동심리학자들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교육시스템을 꼬집는다. 먼저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본다면 가장 유명한 오은영 박사가 있다. 많은 육아 프로그램에서 부모가 할 수 없었던 아이의 행동 교정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오은영 박사와의 상담은 몇 달 후에나 가능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저자는 이 현상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바로 부모가 아이의 문제를 임상학자에게 넘겨버리는 현상이 바로 잘못된 권위라고 강조한다.

심리학자들은 과학의 이름으로 새로운 권위자가 된다.

학교와 교사는 물론 부모까지도 자신들의 권위를 순순히 넘겨준다.


임상심리학자인 저자의 이런 말은 상당한 놀라움을 안겨준다. 나 역시 첫째 아이의 심리 치료를 병행하며 상담을 받고 있는 과정에서 더욱 의아했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이 잘못 되었다고? 저자는 나의 놀라움에 더 한 발 앞서간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아예 또는 거의 요구하지 않는 일명 '칭찬 육아'는 사실 육아라고 할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육아 방식은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트리고 아이가 나중에 커서 더 큰 문제를 겪을 확률을 높인다.

육아란 아이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내가 상담선생님과 이야기하며 가장 많이 받았던 대답은 바로 '칭찬'을 해 달라는 것이였다.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아이에게 끊임없이 칭찬을 해 주라는 말을 강조했다. 하지만 저자는 칭찬이 아닌 올바른 훈육의 부재야말로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야기시킬 수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부모 또는 심리학자에게 치중된 피라미드 권위를 수평적 권위로 바꾸어 나갈 것을 제안한다.

저자가 수평적 권위를 강조하며 저자는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속담을 인용한다. 바로 위로 치중된 권위를 부모와 선생님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심리학자등 집단으로서 육아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나의 어릴 적 경험이 떠올랐다. 부모님은 어린시절 내가 완전한 왼손잡이였다고 말씀하셨다. 부모님이 나를 윗집 어른께 맡겼을 때 나의 왼손잡이를 보시고 오른손잡이 교육을 시켜주셨다고 알려주셨다. 물론 왼손잡이가 잘못이라기보다 자신의 아이마냥 가르치고 돌보아주셨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온전히 부모에게만 치중된 육아로 이러한 집단으로서의 육아는 기대하기 힘들다. 저자는 집단, 모두 함께 의논하고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수평적 권위가 주어질 때 아이들이 바로 설 수 있음을 강조한다.

수평적 권위는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가부장적 권위또한 남자에게만 치중된 일방적인 권위가 많은 고통을 발생시켰다. 회사에서도 피라밋형 구조는 불투명성, 불공정의 문제를 야기했다. 하지만 수평적 권위를 확보함으로 투명성과 양방소통이 개선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한 쪽으로만 치우친 권위는 책임을 서로 떠넘기게 하고 번아웃, 외로움의 원인이 되었다.

피라밋형에서 수평적인 위치에서 올바른 권위를 확립할 것을 주장하는 저자의 글은 이 사회에서 특히 정치와 육아적인 부분에서 공감을 주게 한다. 대통령과 국회, 법원등에 치중된 구조에서 함께 나아가는 숙의 민주주의와 집단으로 아이를 돌보는 구조가 이루어진다면 지금처럼 무기력한 사회를 막을 수 있는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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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즈만이 희망이다 - 디스토피아 시대, 우리에게 던지는 어떤 위로
신영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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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큰 이슈는 단연코 의료계의 파업이었다. 의료의 공공성 확대, 의사 정원 확대등에 대한 정부 정책을 저지하기 위함이었다. 의료진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코로나 팬데믹 시대, 의료인들의 파업은 치료를 제 때 받지 못해 환자의 죽음을 야기했다. 이 현실에 국민들은 분노했으나 그들은 강경했다. 이 파업에 의대 교수들이 의대생들을 부추겼고 결국 승리했다. 하지만 그들의 승리 속에 가장 상처받은 건 바로 환자들이였다. 사람을 살리는 학문을 배우는 그들은 그들 때문에 죽은 환자의 생명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코로나시대, 이 바이러스는 우리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이웃 혐오, 코로나 전염병 환자 혐오가 들끓었다. 무엇보다 취약층에 대한 소외가 극도로 치솟았다. 장기화가 되감에 따라 이 현상은 더 심화됐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신영진 교수는 《퓨즈만이 희망이다》를 통해 풀어나간다.

《퓨즈만이 희망이다》는 한양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신영진 교수가 한겨레 신문에서 쓴 칼럼을 엮어 출간한 산문집이다. 성찰, 책임, 자본, 건강, 평화, 경계, 싸움, 희망 여떫 가지 키워드로 쓴 이 책은 이명박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한국과 세계의 의료 정책을 돌아보며 이 때야말로 서로를 향한 연대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책이다.

바이러스는 우리 몸과 사회의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간다. 3월 4일 오전 현재 사망자 32명 중 7명이 폐쇄병동의 환자였고, 나머지도 대부분 가난하고 병든 외로운 노인이었다. 그들 모두는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으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이들이다. 이들의 존재는 죽어서야 겨우 신문의 몇 줄을 차지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가짜가 아닌 진짜 메시아가 이 땅에 온다면 바이러스처럼 그/그녀도 제일 먼저 그들을 찾을 것이다.

환자는 가해자가 아니다. 가해자는 따로 있다.

전염병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미국의 대통령이자 억대 부자인 트럼프와 영국 수상까지 감염되는 등 모든 이들에게 침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회는 전염병 환자들에 대한 연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너 때문에 내가 피해보았다라는 피해자의식만이 있을 뿐이다. 완치되었다한들 직장에서의 복귀는 힘들어지고 이웃들은 환자들을 피한다. 나부터 살고 보자는 위기의식은 문을 닫게 했고 우리 사회의 취약층인 외로운 노인들이 쓸쓸히 죽어가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 또한 뉴스 한 토막에 나오는 사망자 수치로만 확인될 뿐 사람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죽음에 무감각해지고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이웃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지금, 우리는 그동안 연결하고 있던 연결 고리마저 끊어내고 있다.

전 지구적 빈곤과 건강 불평등 속에서 한국 사회의 역할, 그리고 가난한 이들이 만들어내는 희망의 메시지 등을 발굴해 내고 이를 구체적인 작업으로 이어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그 과정은 "함께 건강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건강할 수 없다"는 정신을 그 중심에 두는 작업이다.

코로나는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부터 공격했다. 가난은 모든 바이러스에 취약하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에 '건강불평등'을 강조한다. 금연도 부유한 사람들의 성공률이 더 높고 의료서비스 또한 비교할 수 없다. 보건소는 최소한의 자원으로 운영되고 민간자본이 투입된 의료서비스는 부자들에게만 관대하다. 가난한 이들은 의료 사각 지대에서 홀로 고통받고 있다. 저자는 이 '건강불평등' 격차가 줄어들기 위해서는 전사회적 연대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환자 개개인의 생명도 중요하지만 먼저 이 사회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내야 모두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말한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법정이자에 허덕인다. 철탑 고공농성 노동자들은 아직도 농성중이다. 또한 최근 학교 정규직 선생님들은 자택 근무 등 복지 편의를 받는데 비해 기간제 선생님들은 매일 출근하며 불합리한 처사를 받는다. 이 사회가 과연 건강할 수 있을까? 나만 건강할 수 없다. 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래야 내가 아프지 않을 수 있다. 연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저자는 이 시대, 질병의 치료보다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건전한 사회 시스템 확립을 외치며 이에 역행하는 시대의 아픔을 토로한다. 갈수록 수많은 아픈 이들을 양산하는 이 사회 구조가 사회의 밑바닥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더욱 공격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정치 논리에 의해 가장 먼저 중단되어버린 북한 아이들의 예방접종, 민간자본에 잠식되어가는 공공서비스, 코로나 바이러스의 가장 큰 타겟인 빈곤층 노인들... 그들을 바라보며 저자는 강하게 외친다. 바이러스가 문제가 아니다. 백신 개발이 정답이 아니다. 바로 이 사회가, 우리의 이기심이 문제다. 그리고 말한다. 이 사회의 모습에 역행하는 길만이 바로 이 건강불평등과 사회시스템을 살릴 수 있는 길임을 말한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과부하가 걸리는 순간 가장 먼저 망가지는 부품은 퓨즈이고, 점증하는 사회불평등과 '강등된 인류(약자)'의 고난이라는 요소로 구성된 폭발성 혼합물이 현 세기에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라 확신했다. 이런 약자들이야말로 현재의 모순을 가장 농축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존재이기에 그들에게 답을 물어야 한다.

백신과 같은 치료법보다는 약자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한다. 약자들을 품어줄 수 있는 사회만이 희망이다. 더 이상 아픈 이들이 생겨나지 않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 소외되고 아픈 이들과 함께 하는 사회만이 정답이고 희망이다.

《퓨즈만이 희망이다》를 읽으며 의료계 파업 행태 속에서 이토록 약자들을 위하는 극소수의 의료진이 있다는 사실에 씁쓸하면서도 감사했다. 우리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치료제가 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문제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문제는 아픈 이를 양산하는 사회와 우리의 이기심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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