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즈만이 희망이다 - 디스토피아 시대, 우리에게 던지는 어떤 위로
신영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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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큰 이슈는 단연코 의료계의 파업이었다. 의료의 공공성 확대, 의사 정원 확대등에 대한 정부 정책을 저지하기 위함이었다. 의료진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코로나 팬데믹 시대, 의료인들의 파업은 치료를 제 때 받지 못해 환자의 죽음을 야기했다. 이 현실에 국민들은 분노했으나 그들은 강경했다. 이 파업에 의대 교수들이 의대생들을 부추겼고 결국 승리했다. 하지만 그들의 승리 속에 가장 상처받은 건 바로 환자들이였다. 사람을 살리는 학문을 배우는 그들은 그들 때문에 죽은 환자의 생명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코로나시대, 이 바이러스는 우리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이웃 혐오, 코로나 전염병 환자 혐오가 들끓었다. 무엇보다 취약층에 대한 소외가 극도로 치솟았다. 장기화가 되감에 따라 이 현상은 더 심화됐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신영진 교수는 《퓨즈만이 희망이다》를 통해 풀어나간다.

《퓨즈만이 희망이다》는 한양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신영진 교수가 한겨레 신문에서 쓴 칼럼을 엮어 출간한 산문집이다. 성찰, 책임, 자본, 건강, 평화, 경계, 싸움, 희망 여떫 가지 키워드로 쓴 이 책은 이명박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한국과 세계의 의료 정책을 돌아보며 이 때야말로 서로를 향한 연대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책이다.

바이러스는 우리 몸과 사회의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간다. 3월 4일 오전 현재 사망자 32명 중 7명이 폐쇄병동의 환자였고, 나머지도 대부분 가난하고 병든 외로운 노인이었다. 그들 모두는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으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이들이다. 이들의 존재는 죽어서야 겨우 신문의 몇 줄을 차지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가짜가 아닌 진짜 메시아가 이 땅에 온다면 바이러스처럼 그/그녀도 제일 먼저 그들을 찾을 것이다.

환자는 가해자가 아니다. 가해자는 따로 있다.

전염병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미국의 대통령이자 억대 부자인 트럼프와 영국 수상까지 감염되는 등 모든 이들에게 침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회는 전염병 환자들에 대한 연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너 때문에 내가 피해보았다라는 피해자의식만이 있을 뿐이다. 완치되었다한들 직장에서의 복귀는 힘들어지고 이웃들은 환자들을 피한다. 나부터 살고 보자는 위기의식은 문을 닫게 했고 우리 사회의 취약층인 외로운 노인들이 쓸쓸히 죽어가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 또한 뉴스 한 토막에 나오는 사망자 수치로만 확인될 뿐 사람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죽음에 무감각해지고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이웃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지금, 우리는 그동안 연결하고 있던 연결 고리마저 끊어내고 있다.

전 지구적 빈곤과 건강 불평등 속에서 한국 사회의 역할, 그리고 가난한 이들이 만들어내는 희망의 메시지 등을 발굴해 내고 이를 구체적인 작업으로 이어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그 과정은 "함께 건강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건강할 수 없다"는 정신을 그 중심에 두는 작업이다.

코로나는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부터 공격했다. 가난은 모든 바이러스에 취약하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에 '건강불평등'을 강조한다. 금연도 부유한 사람들의 성공률이 더 높고 의료서비스 또한 비교할 수 없다. 보건소는 최소한의 자원으로 운영되고 민간자본이 투입된 의료서비스는 부자들에게만 관대하다. 가난한 이들은 의료 사각 지대에서 홀로 고통받고 있다. 저자는 이 '건강불평등' 격차가 줄어들기 위해서는 전사회적 연대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환자 개개인의 생명도 중요하지만 먼저 이 사회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내야 모두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말한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법정이자에 허덕인다. 철탑 고공농성 노동자들은 아직도 농성중이다. 또한 최근 학교 정규직 선생님들은 자택 근무 등 복지 편의를 받는데 비해 기간제 선생님들은 매일 출근하며 불합리한 처사를 받는다. 이 사회가 과연 건강할 수 있을까? 나만 건강할 수 없다. 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래야 내가 아프지 않을 수 있다. 연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저자는 이 시대, 질병의 치료보다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건전한 사회 시스템 확립을 외치며 이에 역행하는 시대의 아픔을 토로한다. 갈수록 수많은 아픈 이들을 양산하는 이 사회 구조가 사회의 밑바닥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더욱 공격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정치 논리에 의해 가장 먼저 중단되어버린 북한 아이들의 예방접종, 민간자본에 잠식되어가는 공공서비스, 코로나 바이러스의 가장 큰 타겟인 빈곤층 노인들... 그들을 바라보며 저자는 강하게 외친다. 바이러스가 문제가 아니다. 백신 개발이 정답이 아니다. 바로 이 사회가, 우리의 이기심이 문제다. 그리고 말한다. 이 사회의 모습에 역행하는 길만이 바로 이 건강불평등과 사회시스템을 살릴 수 있는 길임을 말한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과부하가 걸리는 순간 가장 먼저 망가지는 부품은 퓨즈이고, 점증하는 사회불평등과 '강등된 인류(약자)'의 고난이라는 요소로 구성된 폭발성 혼합물이 현 세기에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라 확신했다. 이런 약자들이야말로 현재의 모순을 가장 농축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존재이기에 그들에게 답을 물어야 한다.

백신과 같은 치료법보다는 약자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한다. 약자들을 품어줄 수 있는 사회만이 희망이다. 더 이상 아픈 이들이 생겨나지 않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 소외되고 아픈 이들과 함께 하는 사회만이 정답이고 희망이다.

《퓨즈만이 희망이다》를 읽으며 의료계 파업 행태 속에서 이토록 약자들을 위하는 극소수의 의료진이 있다는 사실에 씁쓸하면서도 감사했다. 우리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치료제가 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문제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문제는 아픈 이를 양산하는 사회와 우리의 이기심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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