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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한 남자가 기차에 내린다. 개인 박물관 기사 면접을 보기 위해서다. 그를 마중나온 한 소녀가 그를 인도한다. 어느 사전 정보도 없이 구인공고를 낸 채용자를 본 남자는 깜짝 놀란다. 100세라 해도 믿을만큼 굽은 허리와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이 새겨진 한 노인이 못마땅한 눈길로 그를 쳐다본다.
노인에게 어떤 박물관을 생각하고 있는지 묻자 의외의 대답이 들려온다.
내가 찾는 건 그 육체가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가장 생생하고 충실하게 기억하는 물건이야.
그게 없으면 살아온 세월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리는 그 무엇,
죽음의 완결을 영원히 저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이지.
한 사람의 생애를 뚜렷하게 정의할 수 있는 물건. 그 물건이 없이는 그 사람의 생애를 설명할 수 없는 유품을 모아 박물관 전시를 기획하는 노파의 계획은 다소 황당하기만하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말고 유품을 챙겨 올 것을 강조하는 노파의 으름장에 남자는 이 마을에 사망자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노파의 집에는 남자를 마중 나왔던 노파의 양딸 소녀와 부부이자 이 집안의 일을 도맡아 하는 가정부와 정원사가 있다. 소설에서 이들은 모두 이름이 없이 노파, 소녀, 정원사,가정부 역할로만 불리운다. 이 네 명과 박물관 기사인 남자 다섯 명은 박물관 기획을 시작한다.
박물관 건립에 시작하기 전, 노파는 자신의 박물관 설립을 시작하기 전 세 가지 당부사항을 주었다.
"절대로 도중에 그만두면 안 돼. 이것이 세 번째 진리야."
어느 누구도 일을 시작하면서 도중 하차를 기대하지 않는다.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이 말이 후에 어떻게 그의 삶을 얽매이고 결정하게 되는 무서운 암시가 있을 줄 생각하지 못한다.
노파의 양녀인 소녀는 그에게 마을을 구경시켜 주던 중 '침묵의 전도사'를 만나게 된다. 북쪽 수도원에서 일체 말을 하지 않으며 침묵으로 수행하는 전도사들은 말을 할 수 없다. 묵언으로 수행하는 그들은 완전한 침묵 속에서 죽는 걸 이상으로 삼는다.
그는 사람이 죽기 원하지 않지만 인간의 삶은 유한한 법. 죽음은 그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먼저 109세 전직 외과의사가 죽어나가고 그는 소녀와 합세에 불법 귀 축소 수술 전용 메스를 가져온다. 박물관 건립의 계획은 느리지만 진행되고 그는 곧 태어날 조카의 선물을 사기 위해 소녀와 함께 마을의 특산품인 알공예품을 고르던 중 마을에 큰 폭파 사건이 일어난다.
조용한 마을에 폭파 사건이 일어나고 정적이던 마을은 불안에 휩싸인다. 소녀 또한 심한 부상을 당하고 박물관 건립은 다소 느려진다. 폭파 사건의 여파와 함께 유두가 잘려 나간 여성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하며 마을은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인다.
박물관 기사인 그와 소녀는 침묵을 수행하는 수도원에 가는 배를 태워주는 수습 전도사를 만나게 되고 침묵 수행에 관해 자세히 알게 된다. 아직은 수습 중이지만 조금씩 머잖아 자신도 침묵하게 될 거라는 수습 소년은 침묵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전도사들이 추구하는 건 말의 금지가 아니라 침묵이예요. 침묵은 바깥이 아니라 우리 안에 존재하죠."
신비의 세계로 여겨졌던 침묵의 수도원이 노파가 살고 있는 대저택과의 관계가 연쇄 살인 사건과 맞물려가며 연관 관계가 드러난다. 조금씩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하게 되는 소년 전도사처럼 박물관 기사인 그 역시 대저택의 침묵의 세계로 끌려가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을 때였다. 마지막 진실을 그가 알게 될 때, 그 역시 일종의 침묵을 수행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침묵박물관》 소설은 자신의 생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를 강하게 묻는다. 109세의 외과의사에게는 그가 불법적으로 수술을 자행해 온 메스 도구라는 부끄러운 유품이 있었다. 69세 무명 여류화가의 유품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물감을 먹으며 버텨야 했던 유품이 있었다. 주인공에게는 어머니의 유품인 책 <안네의 일기>가, 한 여성 점원에게는 마른 헝겊 등의 물건에서 그들의 생애가 보인다. 과연 나의 유품이라면 어떤 물건이 나의 생애를 대표해줄까?
사람들은 침묵 전도사의 일을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결국 우리 모두가 침묵의 길로 가는 것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아무리 울어봐야 다가오는 겨울을 피할 수 없듯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우리의 삶은 결국 침묵하는 물건으로 그 사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박물관 이름인 <침묵박물관>이 무엇보다 더 어울리는 듯하다.
강하진 않지만 미세한 감정의 여운을 부족한 내 글로 표현할 수 없어 아쉽다. 나는 이 소설을 노파의 말로 매듭짓고자 한다. 비록 하찮은 유품 하나라도 그 사람의 생에 일어난 일들은 가치가 있다는 말이라는 것 아닐까.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고. 모든 생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유품은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의 생을 기억하고 추모하듯이.
우리의 신상에 일어나는 일 가운데
쓸모없는 건 하나도 없어.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고, 그리고 가치가 있어.
유품 하나하나가 그렇듯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