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도에서 넘어지며 인생을 배웠다 - 넘어져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법
캐런 리날디 지음, 박여진 옮김 / 갤리온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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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을 보았을 때 단순한 자기 계발서라고 생각했다. 저자가 서핑을 시작하며 그 일로 얻게 된 희열과 성취감을 찬미하는 글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 책은 서핑을 하면서 시작하면서 얻게 된 기쁨 또한 말하고 있지만 성취가 아닌 실패하는 법에 대해 말하는 책이였다.  즐겁게 실패하는 법, 어려움에 좀 더 의연하게 상황을 마주하는 법을 저자는 서핑의 경험을 통해 설명해 주는 책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못하는 것이 아닌 잘하는 것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자신의 강점에 집중하고 못하는 것은 과감히 포기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하퍼콜린스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 이론을 뒤집는다. 자신이 원하지만 못하는 활동을 통해 인생에 닥치는 불행을 이겨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파도에서 넘어지며 인생을 배웠다》의 저자이자 하퍼콜린스 편집장인 캐런 디날디는 서퍼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서핑을 결코 잘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서핑을 배운 지 5년만에 첫 파도를 탔고 파도를 잘 타지 못하고 서핑을 하다 응급실에 실려가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저자가 서핑하는 동영상을 온라인에 올린 후 지인이 저자에게 "정말 서핑 잘 못하네요."라고 말할만큼 저자는 서투른 서퍼이다. 하지만 왜 서핑을 계속하는가? 왜 5년 ,10년이 지나도 실력이 늘지 않는 서핑을 계속 하며 독자들에게 못하는 일을 하도록 독려하는가. 


저자는 서핑을 잘 하지 못하지만 그 자체로 즐기는 방법을 터득해간다. 소용이 아닌 하는 행위 자체로 기쁨을 즐기는 것. 그것이 바로 못하는 일을 해 나가는 데 얻는 기쁨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완벽주의, 생산성 있는 삶, 소용있는 삶 속에 매몰되기 쉽다. 우리는 심지어 취미 생활조차도 완벽을 추구하도록 생활해왔다. 하지만 우리가 못하는 일을 순수하게 즐길 때, 완벽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비로소 인생을 즐길 수 있다. 


저자는 때로는 상처입고 늘지 않는 서핑 실력에 화를 내지 않고 그 상황 그대로 받아들인다. 다가오는 파도를 향해 패들링을 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계속 해 나간다.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기보다 자신의 못함을 인정함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태연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은,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계획대로 되지 않거나, 갑자기 닥쳐온 불행 앞에서  우리는 좌절도 하고 때로는 분노한다. 하지만 이 못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힘은 이러한 상황에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해 주는 회복력을 제공해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성공한 화려한 이야기보다 실패한 경험을 더 많이 이야기한다. 노력한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유방암 진단을 받고 몇 차례의 수술을 하게 되는 등 저자의 인생에 여러 역경이 찾아온다. 

저자는 그 때마다 자신이 파도 앞에서 했던 습관을 되풀이한다. 못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했던 경험들은 그 역경의 순간에 힘이 되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결혼 전 배웠던 피아노 수업이 생각났다. 저자에게는 서핑이 못하지만 즐거운 일이였다면 나에게는 피아노가 그 대상이였다. 하지만 저자가 못하는 자신을 용서하고 순수하게 즐기던 반면 나는 잘 늘지 않는 실력에 화가 나서 몇 번이나 나를 자책하곤 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 피아노 선생님이 내게 해준 조언은 저자가 했던 충고와 같았다.


"즐기면서 하지 못하면,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그리고 현경 씨가 부모가 되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게 되요." 


못하는 자신을 인정하고 그냥 해 나가는 일이  시간 낭비처럼 보일 수 있다. 저자 또한 아버지로부터 "대체 무엇 때문에 계속하는 거니?"라는 핀잔까지 받기도 했다. 하지만 못하는 일을 계속 해 나가는 힘은 역경의 때에 보석같이 빛나는 경험이 되어 주었다. 이 책을 읽은 후 나 또한 그만두었던 피아노를 다시 배울지 아니면 못하는 운동을 하게 될까 고민하게 되었다. 아마 여러분도 이 책을 읽는다면 꼭 하고 싶었던 못하는 일을 궁리하게 될 것이다. 


인생은 알아내는 게 아니라 사는 거다. 

꾸준하게 그리고 못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우리는 편한 것을 찾지만 불편한 것과도 분명 마주치게 된다. 

못하는 일을 하면 그 불편함이 아름다운 무언가로 바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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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푸른 눈의 증인 - 폴 코트라이트 회고록
폴 코트라이트 지음, 최용주 옮김, 로빈 모이어 사진 / 한림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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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 항쟁의 푸른 눈의 증인을 생각할 때 우리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떠올린다. 

영화 <택시 운전사>의 실제 모델이자  세계에 전두환 정부의 만행을 폭로했던 위르겐 힌츠펜터씨는 모든 광주인들에게 잊히지 않는 사람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유일한 푸른 눈의 증인인 위르겐 힌츠펜터씨에 뒤이어 또 다른 푸른 눈의 증인들이 광주의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취재기자가 아닌,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 체류 중  자신이 보고 겪고 들었던 5.18의 아픔을 꼭 증언해달라던 광주시민들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또 한 명의 증인  폴 코트라이트니씨는 회고록을 출간했다. 


《5.18 푸른 눈의 증인》의 저자 폴 코트라이트니씨는 1980년 5.18 민주화항쟁 당시 나주의 나병환자시설인 호혜원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나병환자들을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받게 해 주는 일을 하는 저자는 두 명의 환자들의 안과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야만 했다. 한국말도 서툴어 의사 소통을 위해 늘 사전을 가방에 들고 다니는 저자는 병원행을 위해 광주를 경유해야만 했다. 


그에게 비친 광주의 풍경은 그가 알던 곳이 아니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20대 청년을 구타하며 짓밟는 군인의 만행, 그리고 우체국에서 갑자기 일어난 최루탄 폭격에 놀라 도망가는 그를 붙잡고 한 할머니는 부탁을 한다. 


우리는 여기를 알릴 방법이 없어. 

자네는 봤지? 

자네가 본 것을 다른 나라 사람에게 꼭 알려주게. 


이제까지 출간된 많은 5.18 민주화항쟁 책들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또는 문인들의 시선에서 쓰여진 책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관찰자, 특히 한국말에 서툰 외국인의 입장에서 쓰여진 회고록이라 다른 관련 서적에 비해 이 항쟁의 원인보다 객관적인 상황에 집중한다. '전두환', '김대중 석방' '독재 타도'등의 편파적인 단어 속에 저자는 자신이 본 이 끔찍한 현실과 정치적인 표현을 금하는 평화봉사단원의 입장 속에 갈등한다. 조직의 규칙을 준수하고 침묵을 지킬 것인지, 이 부당한 상황에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것인지 어렵기만 하다. 


《5.18 푸른 눈의 증인》의 저자는 초반 자신이 평화봉사단의 규칙을 어길까봐 갈등하는 만큼 이 항쟁에 한 발 멀찍이 떨어선 입장을 취한다. 저자의 입장만큼 초반에는 상황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치를 취하려는 태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악랄해져가는 군사정권의 만행 속에 더 이상 관찰자, 구경꾼이 될 수 없다고 결심한 저자는 구경꾼에서 증인이 되기를 자처하며 또다시 서울로 가기로 결심하는 위험한 모험을 감행한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나주 보건소에서 열심히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이 정권의 만행에 어이 없는 웃음을 지어보인 보건소 직원의 웃음을 오해한 저자의 울분에서 그의 감정의 변화는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웃음이 나오세요? 

나는 당신 나라 국민인 할머니와 어린이가 죽는 것을 봤어요. 

살해되는 것을요. 

군인들이 수백 명의 사람들을 죽였다고요!


비록 한국 내부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외국인의 시선에서 쓰여진 광주의 모습이지만 저자가 그리는 그 모습만으로도 이 5.18 민주항쟁의 아픔은 충분히 느껴진다. 때로는 건조한 듯한 말투에서, 때로는 공포와 격분에 찬 저자의 글에서 느껴지는 그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도 군사정권에서 가한 만행은 읽는 이를 분노케 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이 진실을 세계에 알려달라고 부탁한 할머니와 나주 보건소장의 요청을 40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밝힌 저자가 야속하기만 하다. 물론 저자에게 이 진실이 또 하나의 공포이고 트라우마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10년 전이라도 아니 20년 전이라도 더 먼저 진실을 밝혀 주었다면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 정당한 심판을 받을 수 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깊게 남는다. 


또 한 번의 5.18 기념일이 지났고 전두환은 다시 법정 위에 섰다. 

또 한 번의 광주시민들의 아픔이 되새김질되고 전두환은 다시 뻔뻔하게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5.18을 검색하면서 저자 포 코트라이트와  이 민주항쟁을 함께 한 외국인이 한국에 자신이 헬기 사격을 봤노라고 증언하겠노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저자부터 또 다른 푸른 눈의 증인들이 법의 온전한 심판을 요구하며 진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증인들의 목소리에 법원은 답해야 한다. 이 한국정치는 답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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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황가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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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때 한국은 일본 식민지로 위안부, 강제 징용, 마루타 등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어 왔다. 그리고 이 일본에 의해 유린되어온 수많은 피해자분들은 돌아가실 때까지 그들의 만행을 잊지 못한다. 잔혹한 만행으로 인한 후유증은 그분들 인생 마지막까지 괴롭혀왔고 그 후유증과 고통은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이다.

독일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유대인에게는 아마 가장 큰 후유증을 남긴 고통을 묻는다면 단연코 홀로코스터일 것이다. 그 지옥보다 더한 홀로코스터에서의 약몽은 아직도 생존자들을 괴롭게 한다.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는 이 홀로코스터가 유대인들에게 무슨 의미인지 진지하게 묻는 소설이다.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는 맨부커 수상 작가로 유명한 이스라엘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의 대표작이다. 보통 홀로코스터에 관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피해자 입장에서 쓰여진 소설이 많지만 저자는 관찰자 시선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아홉 살 모미크는 죽은 줄 알았던 안센 할아버지가 등장하며 부모님과 안센 할아버지 그리고 다른 어른들이 암묵 속에 말하지 않는 짐승에 대해 궁금증을 키워 나간다.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모미크의 부모님, 끝내 실종된 안센 할아버지 등을 피해자가 아닌 어린 모미크의 시선으로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1장이 어린 관찰자 모미크의 이야기였다면 2장은 나치에게 살해당한 작가 부르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2장은 상상과 현실이 함께 써내려지고 환상과 은유가 많아 읽어 나가는데 어려움이 많은 부분이다. 모미크가 '저 멀리' 이야기를 재창조시키며 인간이 최후까지 어떤 가해를 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그 후의 삶 또한 과연 영위될 수 있을 것인지를 진지하게 묻는다.

3장은 피해자 안센 할아버지와 가해자 나르겔의 시점이 매우 독특하다. 살기 위해 소장 나르겔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와중에 서로의 마음이 열리며 나르겔 또한 평범한 가장이며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 일을 할 수 밖에 없음을 알려주는 나르겔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과연 이게 불의인 것을 앎에도 가장의 역할을 위해 이 불의에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정의를 위해 가정의 안위보다는 정의를 따라야만 하는가. 과연 나르겔의 행위는 정당화할 수 있는가. 결국 전쟁 속에 선과 악이 불분명해지며 가해자 역시 하나의 피해자일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는 최근 내가 읽은 책 중 결코 읽어 나가기 쉽지 않은 책이였다.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과 환상과 은유가 사실과 혼재되어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질 때도 많았다. 하지만 피해자 시선이 아닌 관찰자의 시선으로 생존자 그 후의 이야기까지 바라볼 수 있는 모습이 한국의 현 모습과 겹쳐지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끝났음에도 계속 진행되는 생존자의 고통이 담담하게 그려져서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환상과 은유 이야기와 백과 사전 등 다양한 형식의 이야기로 이 방대한 이야기를 꾸려나간 다비드 그로스만은 이 소설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쳐보인다. 전쟁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고통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생각하게 하는 긴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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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에게 웅진 모두의 그림책 30
전이수 지음 / 웅진주니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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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을 하자면 전이수 작가를 잘 알지 못했다. 그가 SBS 프로그램 <영재발굴단>에서 출연했다는 사실도, 그리고 어린 나이에 이미 다섯 권의 책을 출간한 동화작가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나의 무지 속에 시작된 이 작은 그림책 《소중한 사람에게》는 마흔이 넘은 아줌마를 울리게 될 줄 전혀 알지 못했다. 



형제 중 첫째이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글을 자라는 저자의 작품은 집 제주도의 자연 그대로의 삶의 행복을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행복이 드러난다. 이수 군이 그린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한 기계문명이 없다. 기타, 의자, 목공, 축구, 철봉, 그네 등 집 안에서, 또는 바깥에서 즐기는 외부 활동 그 자체이다. 단순하지만 소박하고 탐내지 않으며 그 자체로 만족하는 그림 속에 아이의 순수함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현재 만족하는 이에게 불평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전이수 작가의 글과 그림에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덜도 말고 더도 말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듬뿍 드러난다. 하늘이 있어, 바람이 있어, 꽃이 있어, 소나기가 있어 행복함을 표현하며 그 존재 자체만으로 자신이 행복해야 할 이유를 찾는다. 그 행복 때문일까? 전이수 작가의 그림은 밝은 색깔의 그림들이 많다. 



어른으로서 가장 부끄러웠던 그림은 핸드폰의 영상을 쳐다보고 있는 아이 얼굴이였다. 기쁨도, 슬픔도, 어느 감정도 없이 멍하니 앞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아이의 눈망울을 외로워 보인다고 말한다.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두 아이들에게 핸드폰 또는 텔레비전을 보여주는 나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동안 우리 아이들 또한 이 그림 속의 아이들처럼 멍하니 화면만 보고 있었을까? 

우리 아이들도 저렇게 슬픈 눈망울을 하고 있었을까? 

내가 어쩔 수 없다고 정당화하는 동안 아이들도 이 그림처럼 외로워하고 있었을까? 

왜 나는 아이들의 눈을 바라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이 아이의 그림이 하루 종일 내 마음에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이수 작가의 동물 그림들은 자연에서 자란 어린이가 자신의 놀이터인 자연이 사람들의 무관심속에 훼손되어 가는 아픔이 드러난다. 모든 것이 그의 놀이터이자 소중한 공간이 이수 작가에게 쓰레기가 점점 쌓이는 제주도의 모습은 자신의 모습만큼 아파하며 제발 소중히 다뤄달라고 울부짖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어른들은 편의와 욕심을 위해 이 소중한 공간을 훼손할 권리가 있을까? 미래의 어른인 아이들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어느 노력도 하지 않으며 지금의 편리함만 생각하는 어른들의 이기심은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내 귀에 소리가 들린다. 

바다가 슬퍼서 울고 있다.

새들이 서러워 울고 있다. 

당신에겐 들리지 않나요. 



이수 작가의 글과 그림은 한없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어린 아이의 순수함 속에 바라보는 세계의 모습은 깊고 크다. 

작가가 보는 세상의 눈은 약자들을 향해 있다. 코로나 속에서도 위험한 바깥에서 폐지로 가득한 수레를 힘겹게 밀고 가는 할아버지, 노키즈존으로 점점 소외되어 가는 아이들, 스스로 소중한 자연을 훼손하는 어른들 속에 눈이 멀어가는 북극 곰과 자연들..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길 소망하며 어른들에게 호소하는 저자의 글을 보며 당연한 그들의 권리인 것을 왜 우리는 이 어린이가 부탁하게까지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에 할 말을 잃게 한다. 


균형을 이루며 모두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길 원하는 그의 글과 그림 속에 내가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또 다시 찾게된다. 비록 나 혼자는 힘이 약하지만 너희들이 자라갈 사회가 조금이나마 따뜻한 곳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다짐해본다. 이수 작가와 그녀의 세 동생들, 그리고 내 두 아이들 모두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온기를 더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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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여자 -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을 위하여
줄리엔 반 룬 지음, 박종주 옮김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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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렵다. 그래서 철학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드물다. 작년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등 철학이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책이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하지만 이는 일상에서의 철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많은 철학자들이 남성이고 실생활과 멀다 보니 일상과 철학을 접목하기는 힘들다. 정말 여성을 위한 철학. 우리의 실생활과 접목할 만한 철학은 없을까? 호주의 작가이자 철학박사인 줄리엔 반 룬은 이 철학에서 소외되어 있는 여성들을 위한 "삶을 위한 생각" 생각하는 여자를 위한 대중철학 프로젝트로 현존하는 여성 사상가와 활동가들을 인터뷰하고 우리의 일상을 생각할 수 있는 《생각하는 여자》 책을 출간하였다. 


《생각하는 여자》는 저자 줄리엔 반 룬의 경험과 어울려 8명의 여성 활동가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영국으로 직접 가서 그들을 인터뷰한 책으로 여섯 가지 주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랑, 놀이, 일, 두려움, 경이, 우정등 모두 우리의 일상에 관한 주제이다. 



제1장 사랑의 부제는 내게 굉장히 도전적이였다. <어떤 사람으로, 어떤 사람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파트너와의 사이에 아이를 낳았으며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녀는 하지만 파트너와의 관계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지치는 일상사, 활력 없는 일상 속에서 그녀는 학장에게 호감을 갖는다. 


이 "사랑" 파트에서 저자가 만난 비평가이자 작가인 로라 키프니스는 가정, 결혼이라는 제도의 구속성을 강조한다. 결혼이 개인의 자유,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억제하며 파트너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도록 해 준다고 말한다. 


리는 모두 좋은 결혼은 노동을 필요로 한다.


불륜을 장려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과 결혼에 대해 '상식'이나 '관례'의 이름으로 처음부터 모든 변화의 억압을 차단해 버리는 결혼에 대해 이야기한다. 달리 보면 로라 키프니스의 주제는 논쟁의 소지가 많을 수 있다. 하지만 결혼, 가정이라는 이름으로 행복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의 경우 결혼이 파트너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도구로 억제된다는 주장이 매우 인상깊었다. 결혼을 하면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은 노동이 가게 된다. 부인으로, 엄마로, 며느리로, 좋은 딸로 여성에게 많은 역할을 할 것을 강요하며 현모양처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미화한다. 여성의 자유보다는 의무가 강조되는 이 결혼이라는 굴레, 특히 사실혼이 인정되지 않고 혼인신고라는 법적체제만 인정받을 수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어쩌면 여성에게 더 가한 조건일 수 있다. 


일에 대한 철학은 <경이>의 부분과 접목해 볼 수 있다.  <어떻게 스스로를 팔지 않고 일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부제 앞에서  미국 철학교수인 낸시 홈스트롬은 자본주의가 여성의 일에 대한 영향을 먼저 이야기한다. 자본주의로 여성이 교육 혜택을 받게 되었고 여성에게 사회로 나갈 수 있는 일자리를 주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부 학계에 낸시 홈스트롬은 강하게 반발한다.  여성이 이득을 본 부분이 있지만 혜택은 불균등했으며 여성은 출산 및 양육 역할로 인해 불합리할 수 밖에 없음을 말한다. 여성이기에 더욱 '불안정한' 상황에 내몰리며 자신을 더 많이 소모해야 하는 여성의 역할에 대해 강조한다. 


슬프게도 '불안정한'은 여성과 노동에 대해 지금 필요한 모든 해설에서 여전히 중요한 용어다. 

<생각하는 여자> 135p 


<경이>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품이 왜 어린 소녀 앨리스로 설정되었는지 이야기한다. 호기심 많고 배우고 싶어하는 어린 소녀를 긍정적인 의미가 아닌 조롱하는 의미로 설정되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배움과 호기심이 억제당하고 침묵과 순종을 미덕으로 삼길 종용하던 성 바울의 가르침의 경험등이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남성의 역할은 동,서양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여성을 향한 억압은 동,서양 서로 차이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발언권이 강화되고 조금씩 나아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나아갈 길이 필요하며 우리에게 가해진 제약을 결코 어쩔 수 없다고 여기지 말길 강조하는 글 속에서 나는 최근 남편과의 다툼이 떠올랐다. 


글쓰기 수업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수업에 참가할 것을 원하는 내게 남편의 첫 마디는 


"요리를 배우는 것도 아니고 쓸모없는 글쓰기냐? 그럴 바에 집안 반찬을 하나 더 할 생각을 해라!" 


가정을 위한 배움보다 내 자신을 위한 배움에 관심을 가지는 나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고 나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몰아세웠다. 어쩌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호기심 많은 소녀를 조롱하는 것처럼 나 또한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 배우면 안 된다고 종용받았다. 시어머니, 친정 엄마 모두 이제 공부 그만하고 애들을 위한 기도를 하도록, 애들 육아에 신경쓸 것을 조언하셨다. 아직도 이 여성에 대한 배움이, 특히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위해 포기할 것을 강조받아서인지 이 <남성중심사회는 여성의 배움을 어떻게 여성의 배움을 억압했는가>라는 주제는 내게 많은 공감이 되었다. 


《생각하는 여자》는 실존하는 여성 활동가들의 철학이 있어 더욱 현실 밀접성을 갖는다. 물론 이 책이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과 두려움, 놀이, 우정 등 여성의 생활에 가장 큰 뼈대를 일으키는 생활을 주제로 한 여러 사유들은 여성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철학을 세워 갈 것을 권한다. 이제 우리는 일상에 더 많이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자. 그리고 우리들을 위한 또 하나의 철학을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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