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황가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2차 세계대전 때 한국은 일본 식민지로 위안부, 강제 징용, 마루타 등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어 왔다. 그리고 이 일본에 의해 유린되어온 수많은 피해자분들은 돌아가실 때까지 그들의 만행을 잊지 못한다. 잔혹한 만행으로 인한 후유증은 그분들 인생 마지막까지 괴롭혀왔고 그 후유증과 고통은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이다.
독일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유대인에게는 아마 가장 큰 후유증을 남긴 고통을 묻는다면 단연코 홀로코스터일 것이다. 그 지옥보다 더한 홀로코스터에서의 약몽은 아직도 생존자들을 괴롭게 한다.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는 이 홀로코스터가 유대인들에게 무슨 의미인지 진지하게 묻는 소설이다.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는 맨부커 수상 작가로 유명한 이스라엘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의 대표작이다. 보통 홀로코스터에 관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피해자 입장에서 쓰여진 소설이 많지만 저자는 관찰자 시선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아홉 살 모미크는 죽은 줄 알았던 안센 할아버지가 등장하며 부모님과 안센 할아버지 그리고 다른 어른들이 암묵 속에 말하지 않는 짐승에 대해 궁금증을 키워 나간다.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모미크의 부모님, 끝내 실종된 안센 할아버지 등을 피해자가 아닌 어린 모미크의 시선으로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1장이 어린 관찰자 모미크의 이야기였다면 2장은 나치에게 살해당한 작가 부르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2장은 상상과 현실이 함께 써내려지고 환상과 은유가 많아 읽어 나가는데 어려움이 많은 부분이다. 모미크가 '저 멀리' 이야기를 재창조시키며 인간이 최후까지 어떤 가해를 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그 후의 삶 또한 과연 영위될 수 있을 것인지를 진지하게 묻는다.
3장은 피해자 안센 할아버지와 가해자 나르겔의 시점이 매우 독특하다. 살기 위해 소장 나르겔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와중에 서로의 마음이 열리며 나르겔 또한 평범한 가장이며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 일을 할 수 밖에 없음을 알려주는 나르겔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과연 이게 불의인 것을 앎에도 가장의 역할을 위해 이 불의에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정의를 위해 가정의 안위보다는 정의를 따라야만 하는가. 과연 나르겔의 행위는 정당화할 수 있는가. 결국 전쟁 속에 선과 악이 불분명해지며 가해자 역시 하나의 피해자일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는 최근 내가 읽은 책 중 결코 읽어 나가기 쉽지 않은 책이였다.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과 환상과 은유가 사실과 혼재되어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질 때도 많았다. 하지만 피해자 시선이 아닌 관찰자의 시선으로 생존자 그 후의 이야기까지 바라볼 수 있는 모습이 한국의 현 모습과 겹쳐지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끝났음에도 계속 진행되는 생존자의 고통이 담담하게 그려져서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환상과 은유 이야기와 백과 사전 등 다양한 형식의 이야기로 이 방대한 이야기를 꾸려나간 다비드 그로스만은 이 소설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쳐보인다. 전쟁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고통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생각하게 하는 긴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