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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푸른 눈의 증인 - 폴 코트라이트 회고록
폴 코트라이트 지음, 최용주 옮김, 로빈 모이어 사진 / 한림출판사 / 2020년 5월
평점 :

5.18 민주화 항쟁의 푸른 눈의 증인을 생각할 때 우리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떠올린다.
영화 <택시 운전사>의 실제 모델이자 세계에 전두환 정부의 만행을 폭로했던 위르겐 힌츠펜터씨는 모든 광주인들에게 잊히지 않는 사람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유일한 푸른 눈의 증인인 위르겐 힌츠펜터씨에 뒤이어 또 다른 푸른 눈의 증인들이 광주의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취재기자가 아닌,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 체류 중 자신이 보고 겪고 들었던 5.18의 아픔을 꼭 증언해달라던 광주시민들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또 한 명의 증인 폴 코트라이트니씨는 회고록을 출간했다.
《5.18 푸른 눈의 증인》의 저자 폴 코트라이트니씨는 1980년 5.18 민주화항쟁 당시 나주의 나병환자시설인 호혜원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나병환자들을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받게 해 주는 일을 하는 저자는 두 명의 환자들의 안과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야만 했다. 한국말도 서툴어 의사 소통을 위해 늘 사전을 가방에 들고 다니는 저자는 병원행을 위해 광주를 경유해야만 했다.
그에게 비친 광주의 풍경은 그가 알던 곳이 아니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20대 청년을 구타하며 짓밟는 군인의 만행, 그리고 우체국에서 갑자기 일어난 최루탄 폭격에 놀라 도망가는 그를 붙잡고 한 할머니는 부탁을 한다.
우리는 여기를 알릴 방법이 없어.
자네는 봤지?
자네가 본 것을 다른 나라 사람에게 꼭 알려주게.
이제까지 출간된 많은 5.18 민주화항쟁 책들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또는 문인들의 시선에서 쓰여진 책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관찰자, 특히 한국말에 서툰 외국인의 입장에서 쓰여진 회고록이라 다른 관련 서적에 비해 이 항쟁의 원인보다 객관적인 상황에 집중한다. '전두환', '김대중 석방' '독재 타도'등의 편파적인 단어 속에 저자는 자신이 본 이 끔찍한 현실과 정치적인 표현을 금하는 평화봉사단원의 입장 속에 갈등한다. 조직의 규칙을 준수하고 침묵을 지킬 것인지, 이 부당한 상황에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것인지 어렵기만 하다.
《5.18 푸른 눈의 증인》의 저자는 초반 자신이 평화봉사단의 규칙을 어길까봐 갈등하는 만큼 이 항쟁에 한 발 멀찍이 떨어선 입장을 취한다. 저자의 입장만큼 초반에는 상황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치를 취하려는 태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악랄해져가는 군사정권의 만행 속에 더 이상 관찰자, 구경꾼이 될 수 없다고 결심한 저자는 구경꾼에서 증인이 되기를 자처하며 또다시 서울로 가기로 결심하는 위험한 모험을 감행한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나주 보건소에서 열심히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이 정권의 만행에 어이 없는 웃음을 지어보인 보건소 직원의 웃음을 오해한 저자의 울분에서 그의 감정의 변화는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웃음이 나오세요?
나는 당신 나라 국민인 할머니와 어린이가 죽는 것을 봤어요.
살해되는 것을요.
군인들이 수백 명의 사람들을 죽였다고요!
비록 한국 내부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외국인의 시선에서 쓰여진 광주의 모습이지만 저자가 그리는 그 모습만으로도 이 5.18 민주항쟁의 아픔은 충분히 느껴진다. 때로는 건조한 듯한 말투에서, 때로는 공포와 격분에 찬 저자의 글에서 느껴지는 그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도 군사정권에서 가한 만행은 읽는 이를 분노케 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이 진실을 세계에 알려달라고 부탁한 할머니와 나주 보건소장의 요청을 40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밝힌 저자가 야속하기만 하다. 물론 저자에게 이 진실이 또 하나의 공포이고 트라우마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10년 전이라도 아니 20년 전이라도 더 먼저 진실을 밝혀 주었다면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 정당한 심판을 받을 수 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깊게 남는다.
또 한 번의 5.18 기념일이 지났고 전두환은 다시 법정 위에 섰다.
또 한 번의 광주시민들의 아픔이 되새김질되고 전두환은 다시 뻔뻔하게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5.18을 검색하면서 저자 포 코트라이트와 이 민주항쟁을 함께 한 외국인이 한국에 자신이 헬기 사격을 봤노라고 증언하겠노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저자부터 또 다른 푸른 눈의 증인들이 법의 온전한 심판을 요구하며 진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증인들의 목소리에 법원은 답해야 한다. 이 한국정치는 답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