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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미 시스터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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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수 작가의 소설 『헬프 미 시스터』는 플랫폼 기업에 연명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수경 가족의 이야기다.
동료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한 위기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후 회사를 퇴사한 수경, 회사도 때려치우고 전업투자자로 전향후 실적 없이 손해만 보는 무능력한 남편 우재, 잘못 투자해 집을 날린 후 딸 수경의 집에 얹혀 사는 수경의 부모 양찬식과 여숙, 그리고 부모의 부재로 작은 아빠인 우재의 집에 살고 있는 준후와 지후...
가족 구성원 모두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하루 하루를 버텨나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한 법. 그대로 손놓고 현실을 탓할 수만은 없다. 성폭행 미수로 남자들이 두렵지만 수경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찾아야만 한다. 우재 또한 언제까지 실적 없는 거래 화면만 바라볼 수만은 없다. 딸의 집에 있는 여숙과 양찬식 또한 뭐라도 해서 가정에 보탬이 되어야만 한다. 별다른 기술도 없고 당장 돈이 필요한 그들이 지금 찾을 수 있는 일은 바로 플랫폼 노동자였다. 대리기사, 음식배달, '헬프 미 시스터'에서 여성만을 상대하는 업무 도움 시스템까지... 플랫폼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이들 가족의 생존분투기가 눈물나게 그려진다.
이서수 작가의 작품 인물들의 삶은 결코 쉽지 않다. 작가의 데뷔작인 <당신의 4분33초>에서도, <미조의 시대>에서도 고달픈 시대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과장도 축소도 없이 현실을 그려낸다. 이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수경 가족이 처한 플랫폼 노동의 고달픈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고된 노동에 힘들어 할 여유도 없이 받아 오는 일을 수락하기 바쁜 그들의 현실을 보며 작은 앱이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꿔나갔는지 그려낸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이미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거야.
누가 돈을 버는지 알아?
없어.
고강도 노동을 하는 저소득 노동자와
빠른 배송으로 이익을 보는 소비자,
적자투성이 기업만 남을 뿐.
불합리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바뀐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이 일이라도 해야한다. 공평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거부하는 건 이 가족에게 사치다. 뭔가 해야 하는 그들에게는 비록 하루벌이지만 이 일이 간절하기만 하다.
가족 개개인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가족의 일상은 모두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있는 느낌이다. 모두가 불안하기만 하다. 수경은 여전히 성폭력 미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리숙한 우재도, 불안한 청춘 준후와 여자 친구 은지도 누군가가 툭 치기만 하면 추락할 것만 같다. 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는 현실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밖에 없다. 힘들지만 살아가는 것.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러면 자기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해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해야지.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살아갈 뿐이다. 수경과 여숙은 택배 배송에서 '헬프 미 시스터' 앱의 플랫폼 노동자로, 우재는 친구 상가 앞의 붕어빵 노점을 생각 중이고 양찬식은 다른 일거리를 궁리중이다. 변하지 않는 현실 속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들이 택한 건 바로 함께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는 것이다. 비록 아슬아슬하지만 무사하다는 것. 그것만큼 큰 기적이 없음을 감사한다는 것이다.
『헬프 미 시스터』는 플랫폼 속에 끊임없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당장 생계를 위해 나서야 하는 절박함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우리는 세상이 작은 앱 하나로 세상이 참 편리해졌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 고된 현실이 변종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 고된 노동 속에서 현실은 바뀌지 않지만 그래도 서로가 있기에 다시 힘을 내 보는 것. 이들이 다시 용기를 내 보기로 결심한 것도 결국 서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함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은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다시 시작하는 이들의 모습은 '이라는 박상영 작가의 추천사의 적확한 표현인 '볕들 날 없는 일상에서의 윤슬 한 조각'임을 보여준다. 결국 서로의 아픔을 함께 껴안고 살아가는 것. 그것만이 우리 삶의 윤슬, 따뜻한 빛이 되어 줄 수 있음을 말해준다. 플랫폼은 그걸 상업적으로 이용해 돈을 벌지만 개개인의 연대는 서로를 절벽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동아줄임을 말해주는 귀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