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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인문학 - 동해·서해·남해·제주도에서 건져 올린 바닷물고기 이야기
김준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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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인간만큼 빚을 진 존재가 있을까? 인간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살아남기 위해 다른 생명들로 생명을 유지해왔다. 돼지, 닭, 오리, 물고기 등등. 그들도 한 생명이지만 우리는 식량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생명, 그 자체보다 하나의 수단이 되어버리면 그 존재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들을 하나의 존재로 받아들일 때 그들의 가치는 달라진다. 하나의 수단으로만 대할 때는 생계수단으로 어획에만 집중하지만 생명으로 인식할 때 우리는 지속가능한 밥상을 생각하게 된다. 《바다인문학》은 바로 우리나라의 바다 속의 생물, 물고기들을 생명으로 볼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인문학 책이다.
《바다인문학》의 저자 김준 작가는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으로 섬, 어촌, 문화 관련 정책을 연구하고 있으며 점점 파괴되어가는 바다 생태계를 바라보며 지속가능한 해양 생태계를 위해 이 책을 집필하였다.
이 책에는 동해, 서해, 남해, 제주도로 나뉘어 각 지방에서 많이 나오거나 또는 문화, 역사적 의의가 있는 물고기들을 주로 소개한다. 먼저 소개하는 곳은 동해, 그 중 명태이다. 생명 중 물고기만큼 여러 이름을 가진 존재가 있을까? 육식동물인 개나 소의 경우 어릴 때는 강아지, 송아지로만 불리웠다. 그 이외 주인에 의해 불리워진 이름이 아니고는 따로 정해진 명칭이 없다. 하지만 물고기는 다르다. 명태만 보다라도 봄에는 춘태, 겨울에는 동태, 동짓달 시장에 나오는 것은 동명태등 이름이 시기별로 다르다. 어디 그 뿐인가. 지역에 따라 명태를 부르는 명칭도 다르다. 하나의 사물에 계절별로, 가공 상태에 따라 지역, 크기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는 건 무엇 때문일까. 지금이야 우리는 명태를 단순하게 먹거리로만 보지만 옛 조상들은 먹거리 이전에 각 물고기의 특징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이름을 지어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케 한다.
그래서인지 이름에 담긴 의미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생물이 있다. 바로 '멸치'다.
<자산어보>에서 멸치를 '추어' 또는 '멸어'라고 하며 멸치라는 이름 자체에서 우리가 한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드러나는 이름이라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바다인문학》은 각 지역의 특산물, 또는 특식을 통해 어떻게 음식이 만들어졌는지 문화적인 배경 또한 설명해준다. 제주도에만 있는 갈치국의 경우 제주도 해녀들은 잡풀을 맥 물질을 해야 하기 때문에 육지 사람들보다 음식에 정성을 들일 여유가 없는 사정이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조리의 맛보다 원재료의 맛이 강조되는 갈치국이 제주도에만 있는 이유의 이면은 우리가 단지 맛있다는 미식만이 아닌 그들의 삶을 생각해봐야 함을 알게 해 준다.
전라도의 특산물인 홍어,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가을 전어 등등 물고기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인간이 결코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알게 해준다. 기후 위기로 사라져가는 해양 생태계, 우리나라에서 사라져가는 존재들. 그들의 소멸은 곧 우리의 소멸이기도 하다. 단지 먹거리로만 대할 때는 우리의 미식만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인식해야 할 첫 단추는 바로 그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닷물고기 뿐 아니라 각종 생물에 대한 생명 인식을 먼저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