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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평점 :

나는 글쓰기에 욕심이 많다. 글쓰기를 잘하고 싶어 글쓰기에 관한 책을 사서 읽기도 하고 강좌도 수강하곤 한다.
때때로 블로그 이웃의 글을 보며 왜 나는 그들처럼 글을 멋있게 쓰지 못할까라는 자책감과 질투로 괴로워하기도 한다. 재능이 부족함을 알지만 갈망이 크기에 포기할 수 없는 그 괴로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그 목마름을 결코 알지 못한다. 나에게 『아파트먼트』는 평범이 끝내 넘지 못하는 한계, 그로 인해 주인공의 무너짐이 깊이 공감되는 이야기, 그런 소설이었다.
소설 속 배경은 1996년 1997년 그리고 그 후 세 분류로 나뉘어진다.
미국 명문대 컬럼비아 대학원생인 주인공 '나'와 빌리는 소설가 출신 실비아 교수의 수업을 듣는다.
아버지로부터 받는 학비와 용돈, 대고모님의 아파트 불법 전대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주인공 '나'와
칼리지 출신으로 자신을 두고 떠난 무책임한 아버지, 가난한 집안으로 비싼 뉴욕에서 머물 곳이 없어 아르바이트 하는 술집의 지하실에서 쪽잠을 자며 생활하는 빌리. 그들에게는 경제적인 차이 이외에도 또 다른 극명한 차이가 있다. 바로 글쓰기로서의 재능이다. 교열팀에서 아르바이트 한 이력으로 풍부한 이론을 가지고 있지만 작문의 한계가 있는 '나'에 비해 빌리는 빈약한 환경에서도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능 있는 학생이다.
첫 수업에 있는 작품 합평회에서 교수와 동료 수강생들은 '나'의 작품에 가혹한 평을 퍼붓는다. 쏟살같이 퍼붓는 비난 속에 유일하게 호평해 준 친구가 바로 '빌리'였고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빌리'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빌리의 재능을 알아 본 '나'는 빌리에게 하나 둘씩 호의를 베풀며 빌리가 머물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 또한 불법 세입자로 타인을 집에 들이면 안 되는 상황을 알면서도 빌리에게 자기의 아파트에 함께 지내기를 권유한다.
첫 부분인 1996년도에는 주인공 '나'가 빌리와 빌리의 재능에 빠져들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는 모습과 그들이 함께 다니는 모습이 소개된다. 잠자리를 내어주고 식사비용도 거의 부담하고 다른 외부 비용까지 내는 걸 마다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은 답답해 보일 수 있다. 빌리에게 퍼주는 듯한 '나'의 행동이 어리석어보이기도 하지만 이해가 되는 건 평범한 사람이 재능 있는 사람을 볼 때 느끼는 동경과 부러움이 때론 사람을 마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매혹적인 상대, 동경의 상대를 만날 때 뭐든 해 주고 싶은 마음. 그 사람과 가까이 있으면 자신도 뭔가 된 것 같은 그런 우월감.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주인공의 행동을 비난할 수 없었다.


주인공 '나'와 빌리의 우정이 돈독했던 1996년이라면 1997년에는 여행을 계기로 멀어지며 파국에 치닫는 둘의 관계가 그려진다. 한순간의 실수로 어긋나버린 빌리와 '나'의 관계, 예상치 못한 전개로 말미암아 이성을 잃게 되는 '나'의 행동이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기는 과정은 드라마에서 주로 2인자가 주인공, 1인자에게 느끼는 좌절과 절망감이 소설 속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결코 넘지 못하는 재능, 그 벽을 넘고 싶었기에 주인공은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기를 제안했고 자신의 좌절이 다다른 주인공은 결국 자신의 잘못으로 아파트를 잃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 준 계기도, 두 사람이 끝내 갈라서게 된 곳도 아파트먼트였다. 평범과 재능이 더욱 두드러졌던 곳. 어쩌면 그래서 두 사람의 이별은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아파트먼트는 더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다.
1996년과 1997년을 지나 서로 헤어진 후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게 된 다는 점이 인상깊다. 빌리와 있을 때는 알지 못했던 자신의 적성이 이제서야 보였다. 빌리와 함께일 때는 그저 빌리의 글쓰기를 닮고 싶었기에 자신의 일을 찾지 못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청춘이기에 더욱 갈망하고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청춘을 지나 욕심을 내려놓고 자신을 인정하는 과정은 결국 성숙해져간다는 뜻이리라.
이 소설이 왜 김연수 작가가 추천했는지 알 것 같다. 문하생으로서 두 소설가 지망생이 느끼는 청춘의 자화상을 아마 김연수 작가는 더욱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치열했던 청춘. 그 청춘이 지나간 자리가 유난히 여운이 깊은 소설 『아파트먼트』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