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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을 딛고 걸어갑니다 - 내가 만난 경력단절 여성 이야기
김정 지음 / 호밀밭 / 2021년 9월
평점 :

경력단절. 임신을 한 순간부터 여성들은 '경력단절'을 걱정한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마음을 굳게 먹지만 현실의 벽은 예상보다 훨씬 높고 단단하다. 견뎌내보려고 하지만 내치려고 하는 조직의 벽은 만만치 않다. 아이라도 아프면 당장 아이를 데리러 갈 수도 없는 현실, 여성에게 유난히 강요하는 돌봄노동.. 이 끝에서 결국 많은 사람들이 '경력단절'을 당한다.
『단절을 딛고 걸어갑니다』는 <딸, 엄마도 자라고 있어>의 저자 김정씨가 경력 단절을 딛고 걸어가는 서른 명의 여성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여러 사연 중 그들이 일을 놓아야 했던 절대적인 계기는 임신과 육아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말한다. 옛날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출산휴가 3개월, 최대 3년의 육아휴직 등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으니 아이 보면서 쉴 수 있으니 세상 좋아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안다. 법으로 정해진 휴가를 쓸 수 있는 직업은 공무원과 은행, 인력이 풍부한 대기업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장 사람 한 명만 결근해도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서는 임신을 하게 된 순간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는 사실을 당사자만 빼고 잘 알지 못한다.
나는 아무것도 시도해서는 안 되는 사람인가.
일주일에 한 번, 단 한 번의 외출도 허락되지 못하는가.
새로운 것을 꿈꾼다는 것은 엄마 된 사람으로서 무리인가.
그렇다면 내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시기는 언제인가.
영영 엄마라는 틀에 갇혀야 하는가.
다행히 나는 경력단절을 당하지 않고 회사에 파리목숨처럼 붙어있지만 서른 명의 여성들의 사연에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은 워킹맘이건 전업주부건 돌봄의 노동의 무게는 동일하다는 사실일 때문일 것이다.
특히 오랫동안 꿈꿔오던 소설 쓰기 강좌를 마음먹고 등록했지만 끊임없이 걸려오는 아이들의 전화, 도와주지 않는 남편, 아이의 병치레 등으로 지칠대로 지친 C씨의 마음은 작년 글쓰기 강좌를 들을 때의 내 모습을 연상하게 되어 공감이 많이 되었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주위 사람들은 말한다. "애 크고 나면 해.".. 하지만 아이들이 크면 클수록 일은 더욱 많아진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렇게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리고 어느 새 나이든 나의 모습만 보인다. 뭔가를 시도하기까지 백 번 천 번의 고민을 해야 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현실. 영영 엄마라는 틀에 갇혀야 하는가 자괴하는 C씨의 모습은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한 생명을 받아들이며 태아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응원하는 일,
아기가 무사히 세상의 빛을 보게 하는 일이
영락없는 민폐로 낙인찍혔다.
업무에 차질을 준다며 수많은 혐오가 무심하게 꽂혔다.
생명을 품어서 평소와 다른 신체조건을 가졌다는 사실이
비난의 이유가 되었다.
나는 뒤늦게 쌍둥이를 임신했다. 단태아도 아닌 쌍태아라는 사실을 안 순간 회사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그만두리라 생각했다. 육아를 돌봐줄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주위의 싸늘한 눈치를 보며 일을 해나갔다. 함께 일한 인정과 법적 규제상 해고도 하지 못하고 알아서 나가주길 바라는 회사의 입장은 이해가 가면서도 섭섭했다. 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내가 그만두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시간을 버텨나가는 나는 하루 하루가 가시밭길이었다.
"나는 자진퇴사자입니다"의 또 다른 C씨 또한 나와 같은 입장이었다. 임신한 순간 보직이 바뀌고 주변의 눈치밥을 먹고 결국 퇴사하기까지 그 모습이 겨우 버텨나가던 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법은 허울일 뿐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대책은 없다.
경력단절을 딛고 걸어가는 길이 결코 꽃길일리 없다. 수많은 무시와 거절을 감당하며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응원을 해 줘도 쉽지 않은 어려운 길이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길이다. 그러므로 더욱 많은 응원과 연대가 필요하다. 그래서 계약직 영양교사로 근무하는 K씨의 말은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말해주는 듯하다.
돌봄의 의무를 지닌 보호자,
조직을 구성하는 직장인,
발전을 위해 목표를 잃지 않는 개인.
모두 저에요.
이 증첩된 역할들마다 각기 응원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 책이 단절을 딛고 걸어가는 여성들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은 아쉽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를 모아 알리는 것으로 또 하나의 첫단추를 꿰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바라건대 이야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디딤돌을 만드는 역할로 한 발작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