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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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해수.

한 때 그녀는 유능한 상담사였다.

텔레비젼 상담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할 만큼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갔다.

하지만 자신이 출연한 프로그램에서 한 배우가 그녀와 출연 후 자살한 이후로 그녀의 삶은 곤두박질쳤다.그녀를 향한 악플, 직장에서의 권고사직, 절친했던 친구와의 멀어짐, 남편 태주와의 이별..

그녀는 억울하다. 이렇게 한 순간에 끝내기에는 억울하다. 그녀에겐 분명 그럴 수 밖에 없던 사연이 있는데 사람들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녀는 매일 편지를 쓴다.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자신은 방송에서야 알았다고. 만나면 알려주겠다고. 하지만 끝내 편지를 끝맺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그렇게 억울함과 외로움에 점철된 그녀의 삶에 한 고양이가 보여진다.

 

그 고양이는 동네 길고양이 . 그 고양이의 상태는 심각하다. 앙상한 체구, 온 몸에 상처가 있어 고통스러워하는 고양이를 빤히 쳐다보는 그녀에게 한 아이가 말을 건다. 초등학교 3학년 세이. 고양이의 이름은 '순무'라고 알려주며 고양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먹는 장소가 어디인지 알려준다. 그 첫 번째 만남 이후 고양이를 통한 만남이 이어진다. 날마다 상처가 더 심해지는 고양이를 구조해 동물병원에 데려가겠다는 그녀의 결심에 세이는 기꺼이 힘을 보태기로 한다.

 

소설은 그렇게 임혜수가 세이와 함께 고양이를 구조해 가는 과정을 천천히 서술한다. 고양이 순무를 치료하자는 뜻 하에 임해수는 세이와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진다. 그리고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는 순무를 어떻게든 잡기 위해 순무를 열심히 관찰하는 과정 속에서도 여전히 그녀의 편지쓰기는 계속된다.

 

상담사라는 직업의 특성만큼 임해수는 말이 많았다. 자신의 모든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고 치료할 수도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초등학생 세이와 고양이 순무는 말하기 보다는 관찰하고 듣기를 요구한다. 분명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는 세이이지만 함부로 자신을 내보이기를 경계하며 순무 또한 가까워져서 다가가려고 하면 야생성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그들과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조언자 또는 구원자 보다는 경청자가 되어야 한다. 주의깊게 보고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떤 판단도 없이 그저 그들의 삶을 자세하게 들어보고 이해하기를 요구받는다.

 

아니, 그 심정이야 나도 백번 이해는 가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속이야 상하겠지. 그런데 사람이 죽었잖아요.

그렇게 하는 게 그쪽한테 뭐가 좋겠어요.

 

이 남자는 자신이 뭘 안다고 생각하는 걸까.

자신이 하는 말은 뭐가 다르다고 여기는 걸까.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이 사건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남편 태주는 뭐라도 하라고 독촉하고 친구 수연은 유가족을 만나 사죄하라고 충고하고 그녀를 알아 본 사람들은 그냥 쥐죽은 듯이 있으라는 둥,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둥 온갖 훈수를 둔다. 선의라는 명목 속에 그들은 여러 말을 내뱉고 그녀를 판단한다.

 

아줌마, 근데요, 그럼 그냥 듣기만 할 수 있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요.

 

아이가 묻고 그녀가 답한다.

 

그럼. 그냥 듣기만 할 수 있지.

 

대화는 조금씩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 불신과 두려움 같은 것을 밀어내며 스스로 반경을 넓힌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녀는 아이의 마음속에 불이 켜진 것 같다고 느낀다.

 

반면 세이와 순무와의 만남은 느리다. 고양이 순무는 덫에 잘 잡히지 않고 세이 또한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녀가 자신의 문제에 개입하기를 피한다. 그저 그 느림 속에 해수는 그들의 삶을 여전히 관찰하고 들을 뿐이다. 하지만 이 지루할 수 있는 행위 앞에서 그녀는 바로 자기 자신을 보게 된다.

자신이 믿었던 말의 실체를.

상담자의 사연만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여러 조언을 해 주던 상담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알아가고 비로소 남의 말을 듣는다는 게 경청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경청해 준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다만 세이는 그녀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들어준다는 믿음 하에 그녀를 오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임해수도 끝까지 세이의 말을 들어준다. 그렇게 그들의 상담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된다. 그들의 비밀 상담이 첫 발을 내딘다.

 

경청 (傾聽) 의 뜻은 "귀를 기울여 듣는다"를 뜻한다.

귀를 기울여 듣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어떤 판단이나 편견도 배제한 채 온전히 그 사람만을 바라보고 들어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서 경청은 느릴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이 소설도 천천히 임해수가 세이와 고양이 순무를 보고 경청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알 수 있다. 경청하는 과정은 상대 뿐만 아니라 자신도 구원하는 과정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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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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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흔한 것은 삶이란 결국 허망한 것이라는 메시지다.

김영민 교수의 신작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이 질문에 가장 잘 마주하는 때는 언제일까? 아마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마주할 때가 아닐까? 앞만 보며 열심히 살아왔지만 불치병을 통보받거나 또는 가까운 지인의 투병이나 부고를 받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일시정지가 된다. 그리고 진지하게 묻게 된다.


"이제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온 것일까?"

"열심히 일한 대가가 결국 이 시한부 인생 뿐이라는 것인가?"


이 질문 속에 누구도 속 시원히 대답하지 못한다. 대답 없는 질문. 그 침묵 속에는 분노와 허망함이 찾아올 뿐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한때 직장 동료였던 지인의 부고를 받았을 때 그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갑작스런 부고에 장례식장에서 영정사진을 보며 질문했다. '왜 그렇게 즐기지도 못하고 일만 하다 사셨어요?'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인간을 허무에 빠뜨리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허무의 가장 큰 주범인 죽음, 노화, 치매, 노동 등등.. 여러 예술작품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어떻게 허무를 대해야할 것인가를 말한다. 저자는 독자들을 위로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영원한 것은 없으며 결국 삶 자체가 허무한 것임을. 죽음도 피할 수 없고 노년도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허무를 극복하기보다 허무를 인정하고 허무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부서진 성수대교는 말한다.

삶은 온전하지 않다고, 이 세상에 온전한 것은 없다고,

과거에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이 부서져버렸다고,

현재는 상처 없이 주어진 말끔한 시간이 아니라 

부서진 과거의 잔해라고.

그러나 그 현재에 누군가 살고 있다고,

폐허를 돌이킬 수는 없으나 폐허를 응시할 수는 있다고,

폐허를 응시했을 때 인간은 관성에서 벗어나 간신히 한 뼘 더 성장할지 모른다고,

성장이란 폐허 속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채 폐허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일이라고.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지난 날을 되돌아본다. 2022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 새 끝자락을 향해 있는 지금, 시간의 무상함을 느낀다. 누군가는 초조해하고 누군가는 설레여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이번에는 기필코 목표를 달성하겠노라고. 열심히 살겠노라고. 자본주의 사회 또한 우리를 채찍질한다. 열심히 일하라고. 뼈를 갈아도 성공할까말까하다고.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목표를 달성 못하면 삶이 무의미해져버리는 것일까?

일 또한 마찬가지다. 과학 기술이 진보했지만 과연 인간의 노동은 해방되었는가? 죽을 때까지 무거운 돌을 구르는 시시포스의 신화는 현대에서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절대로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노동은 우리를 허무하게만 만드는 존재인 것인가?

이 허무함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재즈는 즉흥이다.

재즈의 핵심은 악보에 집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즐기고 궤도를 이탈해가면서 즉흥 연주를 얼마나 유연하게 해내느냐에 있다.

삶도 소울 재즈라면,

미리 정해둔 목표 따위는 임시로 그어놓은 눈금에 불과하다.

관건은 정해둔 목표의 정복이 아니라,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자기 스타일을 갖는 것이다.

 

저자는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을 예로 든다. 삶의 의미를 목표가 아닌 순간 순간을 연주하는 소울 재즈.

즉흥적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즐기는 소울 재즈처럼 우리 인생에 의도하지 않은 즉흥곡이 흘러나오면 그 즉흥곡에 맞춰 춤을 추라고. 그 순간을 즐기라고 말한다. 노동 또한 마찬가지다. 노동의 과정을 돈 벌기 위한 목표 지향적인 관점이 아닌 일상의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재디자인해보라고 말한다.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저서 <마흔에게> 에서 삶은 마라톤이 아닌 춤이라고 말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기가 아닌 춤을 추면서 기쁘게 내려오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목표를 향해 뛰는 선수가 아닌 하는 일상의 순간 순간을 춤을 추며 나아가야 한다고. 이 춤을 추며 나아갈 때 우리는 오늘의 허무를 이겨나갈 수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본다. 죽음은 인간을 가장 큰 허무함에 빠뜨린다. 왜 그럴까?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의 삶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시 묻는다. 과연 그럴까?


저자는 그림책 <할머니의 팡도르>를 응용한다. 죽음의 사신에게 자신이 따라가기 전 아이들에게 맛있는 크리스마스 빵을 만들어줘야 한다. 사신은 이걸 죽음을 미루기 위한 핑계로 생각하지만 정성껏 빵을 만든 후 할머니는 홀가분해하며 사신에게 이제 자신을 데려가라고 말한다. 의아해하는 죽음의 사신에게 할머니는 말한다.


"찰다(cialda) 속에 레시피를 숨겨두었으니 이제 비밀은 아이들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거예요. 이제 갈 시간이야."


비록 자신은 가지만 다음 세대에게 달콤함의 레시피를 남길 수 있다는 말. 그건 죽음 이후 몸은 떠나지만 그 이후에도 자신의 비밀을 간직한 또 다른 세대의 삶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이다. 나는 가지만 내 아이들이 삶을 살아간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우리의 삶은 다음 세대를 통해 영원할 수 있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는 저자다운 유머러스함으로 허무함을 대하는 여러 방법을 이야기해준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과 대답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삶이란 허무를 끌어안을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허무한가? 그렇다면 당신은 정상이다. 그러니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다.


"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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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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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를 잘 아는 독자라면 알 수 있다. 이슬아 작가는 소설도 이슬아답게 쓴다는 것을.

그렇다. 이슬아 작가의 첫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는 이슬아 작가다운 소설이다.

 

《가녀장의 시대》의 등장인물부터 모두 낯익다. 가녀장이자 낮잠 출판사의 대표 이슬아 작가, 이슬아 작가의 모부이자 낮잠 출판사의 직원인 복희와 웅이. 그리고 반려묘 숙희와 남희.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드는 이 소설은 작가의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캐릭터가 매우 생생하다.

 

업무 시간에는 대표와 직원 모드로, 업무 외 시간에는 모부 사이와 가녀장의 체제 사이를 오가는 낮잠 출판사. 그들의 일상이 시트콤처럼 각양각색으로 펼쳐진다. 이 소설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소설 속 자기 자신을 가정을 책임지는 대표와 작가로서의 위엄을 펼쳐지다가도 한순간에 자신을 무장해제시킨다는 점이다.

 

가령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쉴 새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

책이 나오는 인쇄기 앞에서 최고의 책을 만들기 위해 수십번 인쇄기를 돌려 원하는 색상을 출력하게 하는 열정.

아.. 역시 가녀장은 다르구나 하며 애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다가도 복희와 웅이에게 모든 일을 맡겨놓고 낮잠을 자는 이슬아 작가를 보며 복희와 웅이는 이슬아 작가의 전작이자 베스트셀러 에세이인 <부지런한 사랑>을 인용해 자기 자신을 스스럼없이 무장해제시킨다.

 

"쟤는 아침까지 자놓고 왜 점심에 또 잔대?"

"내 말이."

"은근 게을러."

"책 제목은 '부지런한 사랑'인데"

"지가 부지런하고 싶을 때만 부지런한 거지."

 

자신의 가사노동이 정당한 보수를 받으면서 새로운 삶을 사는 듯한 복희, 무거운 가부장을 내려놓고 직원이자 모부의 삶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웅이.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이 가족의 진짜 모습이 이러지 않을까 생각하게 할 만큼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가족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지만 은연중에 상처를 주기 쉽다. 상대방이 베푸는 호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서로를 섭섭하게 한다. 소설 속 낮잠출판사 또한 화기애애하지만 완벽할 수 없다. 각자의 일에 치중하다보면 상대방의 수고를 몰라줄 때도 있다. 이러한 경우 해결책은 출판사답게 책으로 서로의 마음을 위로한다. 책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말하고 당신이 있어 내가 있을 수 있다며 고마움을 전한다.

 

"티타네 할머니가 그러는데, 우리는 다들 몸 안에 성냥갑을 하나씩 품고 태어난대. 근데 혼자서는 성냥에 불을 댕길 수가 없대."

"기억나, 촛불이 결국 타인이라는 얘기였지?"

"응, 혼자서도 활활 잘 타오르는 사람은 드물어."

 

《가녀장의 시대》는 어떤 권위도 또는 위엄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서로의 모습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존중한다. 때로는 모부의 마음으로 걱정되기도 하지만 가녀장이기에 존중해주고 가녀장 또한 동등한 직원이자 모부로서의 생각과 사생활을 지켜나가며 아웅다웅 살아간다. 서로의 존재가 너무 당연하지만 때때로 이들이 영원할 수 없다는 자각 앞에 더욱 사랑하자고 다짐하는 이들의 모습은 애틋하기까지한다.

 

복희에게 아름다움이란 계절의 흐름,

맑은 날에나 궂은 날에나 자라기를 포기하지 않는 존재들.

웅이에게 아름다움이란 슬픔과 기쁨의 극치를 다 아는 가수의 목소리.

밥하고 글쓰는 두 여자.

슬아에게 아름다움이란 단정하고 힘있는 언어,

그리고 동료가 된 모부의 뒷모습.

지구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은 무엇보다 좋은 팀이 되고자 한다.

가족일수록 그래야 한다는 걸 잊지 않으면서.

 

소설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이 소설이 진행중임을 알 수 있다. 이슬아 작가는 여전히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복희는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고 웅이는 청소기를 밀며 청소를 하고 있겠지. 이슬아 작가답게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 역시 이슬아 작가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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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있으면 질문을 던지고 책을 읽으며 기다려라. 우리 뇌는 세상은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 답을 알려준다. - P30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씨앗들이 땅에 떨어지고, 꾸준히 시간이 흘러 거대한 숲이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작은 습관을 꾸준히쌓으면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내공이 생긴다. 이 내공으로운을 만들 수도 있다. - P32

당신은 알고 있다. 지금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뭔지. 그 일을 생각하며 ‘미리미리‘라고 외쳐라. 몸이 안 움직이고 게을러질 때 바로외쳐라, ‘미리미리.‘ 그리고 바로 행동에 옮겨라. - P37

하루에 100번 외친다는 것은 최소한 그 정도는 자신의 꿈을 생각한다는 의미다.
당신은 하루 동안 당신의 꿈을 얼마나 생각하는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내 꿈을, 내 목표를계속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나는 누구인지, 얼마짜리인지를 알아내고 내 몸값을 계속 올려야 한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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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런 책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알아보는 자에게는다음 책과 또 다음 책이 초롱불처럼 나타난다. - P303

"잘하고 싶은 일로 괴로우면 그나마 낫잖아." - P123

슬아는 문득 복희가 없는 미래를 생각한다. 복희를 그리워하며 멈춰 있을 자신의 모습이 꼭 기억나듯 그려진다. 이미 겪어본것처럼, 마치 오래전에 살아본 인생처럼 그 슬픔을 안다. 그는지금 이 시절을 꽉 쥐고 싶다. 그러나 현재는 언제나 손아귀에서쏙 빠져나가버린다. - P306

월화수목금토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월요일부터 다시해보기 위해서라고. 다시 잘해볼 기회를 주려고 월요일이 어김없이 돌아오는 거라고. 그러느라 복희는 창틀을 닦고, 웅이는바닥을 밀고, 슬아는 썼던 글을 고치고 또 새 글을 쓴다고. - P309

지구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은 무엇보다 좋은 팀이 되고자 한다. 가족일수록 그래야 한다는 걸 잊지 않으면서.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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