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
고두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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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1]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우리가 잘 아는 시어가 있다
고두현 시인의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구를 더욱 음미하게 해 주는 책이다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에서는 제목 그대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시를 모아 그 시에 대한 배경을 함께 그려줌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시를 더 잘 음미할 수 있도록 시집이자 에세이다
시집에는 총 4종류의 사랑이 분류되어 있다


                       
유일한 사랑 & 영원한 사랑 
                       
격정적 사랑 & 비운의 사랑 
                       
금지된 사랑 & 위험한 사랑
                       
첫사랑 & 마지막 사랑 

영원한 사랑에서 가장 인상깊게 다가온 시는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요?>이다.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요
나날의 가장 행복한 순간까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칭찬에서 수줍어하듯 순수하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의 한평생 숨결과 미소와 눈물로써 당신을 사랑합니다
신의 부름 받더라도 죽어서 더욱 사랑하리다 

                                                (44p  일부)

 수줍은 소녀처럼 연인에게 자신의 들끓는 마음을 고백하는 사랑 고백의 시가 엘리자베스의 병과 주위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랑을 이룬 평생의 반려자 로버트 브라우닝의 주머니에 쪽지로 넣어 주었다는 시의 사연을 읽고 있노라면 부끄러워 연인 앞에서 차마 고백하지 못하고 조심스레 연인의 주머니에 넣으며 쑥스러워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죽는 날까지 아니 죽어서도 더욱 사랑한다던 한 여인의 고백이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그 사랑고백의 쪽지를 읽는 남성의 마음은 감동과 환희로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에 부러워진다

비극적인 사랑에서는 루와 릴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인상적이다. 정신적 계약결혼상태라 하더라도 이미 배우자가 있던 루를 사랑한 릴케, 릴케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루에게 바치는 시 [내 눈의 빛을 꺼주소서]는 자신의 신체를 가져간다 해도 다른 신체가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리라는 열렬한 고백이다.


내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 
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그들의 사랑이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사랑은 서로에게 삶을 살게 하는 삶의 동아줄이였을 것이다. 서로에게 살아가게 하는 의미이자 끝까지 버티게 해 주었기에 자신의 신체의 일부분이 없어진다고 하여도 다른 신체가 그 사랑을 고백하게 하였을 것이다. 
비록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 사랑을 결코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 지금의 우리에겐 이해못할 수 있지만 그들에겐 사랑이 이루어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닌 사랑하는 자체가 그들에게는 큰 의미였을 것이다.


시집 곳곳에 담긴 사진들이 시의 감상을 도와준다. 시를 읽고 보며 감상할 수 있도록 시인은 그림과 설명으로  사랑의 시로 우리의 마음을 간지럽힌다. 

정신적인 사랑보다 육체적인 사랑이 우선시되고 헤어짐이 일상화되며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문구로 현 시대의 사랑을 나타내는 요즘. 시인은 오랜 시인들의 여러 사랑을 이야기한다. 
영원한 사랑, 비운의 사랑, 금지된 사랑, 마지막 사랑... 각 시에 담긴 사연을 들어 우리가 잊고 있던 사랑의 순수함과 위대함을 보여준다. 

각 시에 담긴 사연들이 시의 글자를 더욱 빛나게 해 주고 문맥의 의미가 때론 처절하게 때론 사랑스럽게 떄론 안타깝게 각양각색의 의미로 다가온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자세히 보아야 에쁜 것처럼 오래 보아야 예쁜 것처럼 더욱 예쁘게 만들어준다. 
날씨가 추워지는 이 초겨울. 우리의 마음을 사랑으로 녹여주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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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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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 이후로 많은 사람들은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믿었다.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잡아갈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우리는 그런 우리의 믿음이 착각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검이 힘들게 구속한 이재용 부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러났고 유력 대선 후보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추행 사건은 무죄로 풀려났다. 온 국민들을 분노케 하였던 기득권들에 대한 재판은 온갖 구실을 이유로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친 법률가들의 속살을 파헤쳤던 김두식 교수는 『법률가들』을 통해 왜 그들이 지금의 특권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뿌리를 파헤치는 작품이다. 그 뿌리를 알기 위해 저자는 일제시대부터 그들의 계보를 추적해 나간다

저자는 법률가들의 계보를 제 4그룹으로 나누어 설명해 나간다
1법률가군 - 고등시험 사법과 합격자 
2법률가군 - 이류에서 일류로 편입된 사람들 
3법률가군 - 특별한 자격시험 없이 판검사에 임용된 행운의 사람들 
4법률가군 - 해방 이후 실시된 조선변호사 시험 합격자들 및 이법회의 존재 

1법률가군을 저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정의한다.  주로 재력이 있는 집안의 아이들이 경성 제국대학이나 일본 본토의 제국대학을 거쳐 일본 고등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엘리트들을 의미한다
독립운동이나 해방 등에는 관심이 없이 일제에 부역하며 일제의 구미에 맞는 재판을 하였던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과 가문의 영달만이였다

저자는 제1법률가군에서 독립가 집안에서 친일 검사가 나올 수 있었음을 강조한다. 독립운동가인 큰아버지 김응섭을 둔 집안에 친일검사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을 설명하며 친일과 반일 사이의 딜레마에 있던 그들의 고뇌와 선택을 집중하여 설명해나간다

2법률가군은 조선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 개업을 했던 인물들이다. 주로 고등고시 사법과 출신이 풍족한 집안의 출신이였다면 일반 독학자들에게 입신양면의 길을 열어 준 남겨진 관문은 조선변호사시험이였다. 1법률가군에 비해 친일 이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그들 중에 저자는 조선변호사시험 출신들의 아버지격인 허헌 변호사로부터 그 뿌리를 이야기해 나간다. 하지만 이들은 수시로 자신의 존속 자체를 위협받았다. 고등시험 사법과에  밀려나갔고 심지어 폐지가 예정된 상태이기도 했다
그저 고등고시 사법과 낙방을 위한 안전장치로 시험을 보는 수험생들도 있는가 하면 시험에 합격하고도 변호사 임용을 하지 못한 적도 많았다. 해방 후 그들에게 판검사 임용의 길이 열렸지만 좌익이나 중도성향의 변호사들에게는 그 기회의 문이 빨리 닫혔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해방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벼락처럼 찾아왔다
조선변호사시험 합격자들에게는 대규모 판검사 임용이라는 엄청난 기회의 문이 열렸다.
좌익이나 중도성향의 변호사들에게 그 문은 유난히 빨리 닫혔다
문이 열렸다는 기억을 간직하기도 어려울 만큼 짧은 순간이었다.


3법률가군은 벼락 같은 행운을 맞은 사람들로 식민지 시절 법원서기를 했다 해방 이후 판검사로 임용된 사람들을 말한다. 그 중 저자가 주목한 사람은 오제도 사상검사를 주목한다
빨갱이를 잡아넣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던 사상검사 오제도의 이력을 자세히 소개하며 여러모로 자격이 되지 않았던 오제도와 김치걸을 비교하며 제3법률가군이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의 한계를 설명해준다

저자가 설명해 나가는 법률가들의 계보가 일제시대의 친일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 지금의 잘못된 특권의식을 형성되었음을 말한다. 처음부터 그들에게는 정의와 질서의 수호가 아닌 식민지 시대의 그들의 신분상승이 주된 목적이였다.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그리고 미군정의 지배하에 좌익과 중도성향을 가진 자들은 권력에 의해 월북되거나 사상검사들에 의해 제거되어갔고 정권에 맞는 법률가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 계보가 그려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의 슬픈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법률가들의 특권의식의 뿌리를 찾기 위해 저자는 3년간의 탐정 생활을 했다고 고백한다. 역사 속에 사라져간 수많은 법률가들이 비록 일부분을 발췌한 샘플북에서도 생생하게 드러날 정도로 광범위하다

법률가들의 뿌리는 슬픈 우리 역사이자 식민지 시대가 만들어낸 잔재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가 만약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해 내었더라면 법률가들의 뿌리는 과연 지금과 달라졌을까라고 생각해본다
하지만 잘못된 역사의 산물이라고 하여도 저자는 결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조선정판사 사건을 예로 들며 강조한다. 권력의 비위에만 집중하며 초점수사를 하였던 법률가들, 과연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심판이 없는가라는 안타까움이 깊게 남는다





<위 내용은 출판사로부터 일부를 발췌한 가제본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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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윈터 에디션)
김신회 지음 / 놀(다산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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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알기 전까지 나는 만화 <보노보노> 알지 못했다. 그저 흔한 일본 만화겠거니라고 생각했고 에세이스트 김신회 작가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도 눈여겨 보지 않았었다
그렇게 나의 무관심 속에 잊혀져 무렵 동생의 강한 추천을 받게 되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좋게도 예쁜 윈터 에디션 디자인의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처럼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는 저자 김신회씨가 만화 [보노보노]에서 위로받았던 문장들을 중심으로 써내려간 에세이다



나처럼 보노보노를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을 위해 그리고 에세이의 내용을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 뒷면에 자세한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있어 보노보노를 몰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소심한 보노보노, 무덤덤한 보노보노의 아빠, 지루한 견디는 너부리 .. 단순해 보이는 만화에서 저자가 공감하고 위로받은 문장이 무엇일까 매우 궁금했다


누군가를 돕는 건 엄청 부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가 하는 일 중에 가장 부자연스러워.

그 부자연스러운 짓을

   부모가 되면 평생 해야만 하는 거야. 


내가 엄마가 되고 가장 힘들었던 위주의 삶에서 아이의 위주로 나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배고픈지 아픈 데는 없는지 모든 세세하게 챙겨주고 돌봐주는 .. 
엄마가 된다는 결국 자신을 내려놓고 아이를 위한, 남을 위한 삶으로 바뀌게 되는 전환점이였다
그리고 길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을 보노보노에서는 남을 돕는 부자연스러운 짓을 평생 해야만 하는 표현을 했다. 맞다. 아이를 돕는 , 가장 부자연스럽다. 모든 인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중심적이니까. 그런 삶을 벗어나 평생 부자연스러운 짓을 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부모의 길이였다
이만큼 부모에 대해 표현한 문장이 있을까? 만약 내가 부모가 아니였다면 결코 문장에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난 나야. 지금 이대로의 내가 좋다고. 
너는 지금 네 자신에게 불만이 있는 거야. 맞지? 
그러니까 뭐가 되고 싶다느니 하는 말을 하는 거라고.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홰내기에게 너부리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좋다고 말한다가수의 꿈에 부풀어 있는 홰내기는 너부리의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꿈이 없다는 건 왠지 삶을 포기한 것처럼 느껴지거나 패배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나 역시 그랬다꿈이 있으면 멋져 보였고 나이가 들어도 오랜 내 꿈을 포기하지 못해 끙끙거렸다그 꿈이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저자가 [보노보노]에서 공감한 문장은 꿈이 없는 자신의 모습도 수용하고 껴안는 삶이었다어른이 되는 건 포기도 알아가고 꿈이 없는 상태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꿈이 없다고 해서 결코 초라하지 않다고 말한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에서 저자가 공감하고 위로받는 건 결국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늘 재미를 추구하는 너부리나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너부리 등 평범한 걸 질색하고 특별함을 추구하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청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하지만 등을 긁어주는 행위만으로도 재미를 찾고 평범함을 기뻐하며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렵다"라는 걸 아는 야옹이형이나 보노보노의 아빠를 보며 어른이 된다는 건 결국  현실 속에서 행복을 찾아가며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의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보노보노] 좋아하게  같은 예감이 들었다그리고 수록된 보노보노의 문장으로  자신이 위로받고 있음을 느꼈다
이렇게 평범한 것도 결코 나쁘지 않음을 알려줘서 고맙다

내가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말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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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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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플>을 읽은 뒤로 내가 애정하는 작가 목록에 정세랑 작가가 추가되었다
50
명의 인물이 주인공이 되고 다른 인물들의 주변인물이 되는 촘촘한 이야기 구성으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하며 감탄하였던 믿고 읽을 수 있는 작가 정세랑 작가의 단편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가 출간되었고 감사하게도 사전서평단으로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옥상에서 만나요』와 『이혼 세일』 중 내가 읽은 작품은 『이혼일기』다
『이혼 세일』은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한 이재가 이혼을 하게 되며 자신의 물품을 처분하기 위해 판매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재의 이혼 소식은 친구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경윤은 자신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이재의 요리 솜씨를 부러워하고 민희는 이재의 패션 감각과 이재만의 분위기를 부러워하며 아이 둘을 키우며 매일 힘겨운 육아와의 전쟁을 치르는 지원은 아이가 없이 자유롭게 지내는 이재가 부럽기만 한다
모두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였던 이재의 이혼 소식과 이혼 세일을 접한 친구들의 반응과 이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짧은 단편 속에서 저자는 우리가 한 사람의 인생의 단편만으로 쉽게 예단하고 말하는 지 보여준다
친구들은 학창 시절을 지나 꽤 오랜 시간 걸어온 친구이기에 이재를 다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한 그들은 이재에게 쉽게 말을 건넨다

"
나 사는 꼴 보니 낳기 싫어졌니?" 
"
그래서 그렇게 상큼하게 이혼할 수 있었구나?"
"
여자한테 일이 최고다, 돈이 최고다, 그치?"

친한 사이일수록 우리는 "넌 내 손바닥 안에 있어." "내가 너를 모르냐?" 등등 서로를 잘 안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한 이불을 덮는 부부일지라도, 오랜 시간 함께 한 부모와 자식 간이라도 그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다 알기는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세월 속에서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한다. 그리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결론짓곤 한다

『이혼 세일』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내 경험이 떠올랐다. 6년 넘게 지낸 회사 동료 및 상사들의 나를 향한 거침없는 입담, 나를 다 안다고 자부하는 남편의 말 등등... 모두 나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쉽게 판단하고 말한다. 그리고 그건 상처가 되기도 하고 마음의 문을 닫게도 한다

이재의 새로운 출발에서 친구들은 이재의 앞날을 응원해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건 그저 그 사람의 인생을 지켜봐주며 응원해 주는 것이 아닐까
위로랍시고, 충고랍시고 그 사람을 위한답시고 건네는 말보다 우리에겐 그냥 바라만 봐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고 묵묵히 바라만 봐 주는 것

친구 경윤이 떠나는 이재에게 남긴 한 마디 

"
완성된 뇌가 내린 판단을 믿어. 믿고 가." 

우리는 서로를 전부 다 알 수 없다. 100% 아는 사이는 없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믿어주고 지켜봐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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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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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사회이다. 세월호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기점으로 오보 및 가짜뉴스는 이제 한국사회에서 놀랄 일도 아니다. 제대로 된 확인절차는 뒤쳐지고 오로지 내보내기 위함에만 급급한 언론이 되어버렸고 이제 청와대는 가짜뉴스와의 전쟁까지 선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짜뉴스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지, 저널리스트들이 가짜 뉴스를 생산하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치는지 프랑스의 거장 움베르트 에코는  우리에게 저널리즘의 민낯을 그의 마지막 유작 『 제0호』 를 통해 보여준다

소설 『제0호』 지방신문에서 간간히 글을 써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글쟁이 콜론나가 창간 신문을 준비하는 시메이 주필의 작품 대필을 의뢰받으면서 시작된다. 시메이 주필은 사주인  콤멘다토르 비메르카테의 신문 <0>라는 이름으로 만들게 될 창간 예비 판들의 제작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콜론나는 그의 곁에서 신문 창간을 맡는 일에 함께 참여하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널리즘을 다루는 소설답게 작가 움베르트 에코는 사건 하나 하나가 어떻게 기자들의 손에서 조작되고다듬어지며 가짜뉴스를 만들게 되는지를 익살스럽게 보여준다
예를 들면 <0>를 읽게 될 지역인 시칠리아의 메시아에서 벌어진 사고는 침묵하되 밀라노 옆에 있는 베르가모에서의 사고는 호들갑스럽게 보도해야 한다는 지침 및 정확한 출처는 밝히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인용하여 독자들의 판단의 기준을 흐리게 만드는 등의 모습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

신문사 사주인 콤멘다토르 비메르카테의 사업에 손실을 끼치는 뉴스는 철저하게 무시하고 사주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권력에 대하여는 언론을 이용해 사주의 수호신 노릇을 해야 할 것을 지시하는 모습 또한 웃픈 현 사회의 모습이다

"
뉴스들이 신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문이 뉴스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뉴스가 없는 상태에서 뉴스를 만들어 냈어요."  


거짓뉴스에 대한 책임을 피하면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가짜 언론인들의 모습을 움베르트 에코는 오히려 익살스럽게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거짓뉴스들이 읽는 독자들을 얼마나 우롱하는 행위인지 시메이 주필의 말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사건 하나 하나를 통해 정치에 대한 풍자와 저널리즘에 대한 각성을 이야기하는 움베르트 에코의 방식이 매우 놀랍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가짜뉴스가 어떤 방식으로 사건을 조롱하고 축소 확대시킬 수 있는지 이 소설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이야기에 빠져 읽어가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가짜 뉴스의 민낯을 알고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움베르트 에코의 마지막 유작 『제0호』, 어쩌면 이런 가짜 뉴스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작가가 이 작품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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