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에는 책들이 많다. 방의 3면이 책으로 가득 차 있다. 슬픈 사실은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이다. 내 방 안의 책장을 볼 때면 친정엄마는 내게 말씀하신다.

"이제 나이 들어서 뭔 책이냐. 학창시절에 공부를 그렇게나 하지."  

남편 또한 말한다.

"네가 좋아하는 책만 읽지 말고 아이들을 위한 육아책을 좀 읽어."

그런데 제일 슬펐던 건 시어머니의 혼잣말이었다. 예전 아이가 어렸을 때 책장이 거실에 있었다. 그 때 당시 나는 정치와 외교 분야 종류의 책들에 관심이 많았다. 한 때 정치를 비판하던 책들은 물론이고 국제정세와 같은 책들도 보곤 했다. 

쌍둥이 육아를 도와주러 오신 어머니는 못마땅한 눈길로 보시며 혼잣말을 하시던 걸 기억한다. 

"이제와서 무슨 쓸데없는 책들을 본다고..." 

내게 직접대고 하신 말씀도 아니고 또 시기도 오래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분명하게 기억하는 건 그 때 시어머니의 못마땅한 눈빛과 그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 때의 속상한 기분. 어머님이 나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이 아니기에 뭐라고 말 할 수 없어 속으로 삭혀야 했다.  꼭 두고두고 잊지 않아서 어머님께 보여주고 말겠다고 마음으로 다짐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이젠 사력을 다해야 기억이 나곤 한다. 

정보라 작가의 소설집 <너의 유토피아>에 나오는 단편 [그녀를 지키다]에서도 '절대 잊지 않는 건' 감정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절대 잊지 않습니다' 라고 다짐하지만 세월은 가만히 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잊지 않는 건 감정이라고 말한다. 

나도 절대 잊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떤 것은 잊게 되었다. 
내가 잃어버린 동지들의 모습이, 마음에 불로 새겨진 줄 알았던 그 소중한 이름들이 세월 속에 희마하게 바래다가 사라졌다. 
절대 잊지 않는 건 그 순간순간의 감정이었다. 
기억도 논리도 이성도 인간의 모든 지적 활동이 다 사라져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감정이다. 

정보라 / 그녀를 만나다 중에서  
그렇다. 내게도 그 시절 다른 디테일은 사라졌지만 잊히지 않는 건 억울한 감정이었다. 엄마가 되었다고, 이제 다 큰 성인이 되었다고 이런 책을 읽으면 안 된다는 말인가? 

한참 책을 읽던 나를 보는 친정엄마, 남편, 시어머니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 

하지만 세 명이 말한 의미는 똑같았다. 

"이제 책을 읽고 공부하기엔 이미 늦었다. 그러니 아이들 육아에나 충실해라." 

물론 지금으로선 생각할 수 없는 말이다. 현실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고 이제는 평생공부시대니까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시대이니까. 하지만 어르신들의 눈에는, 그리고 남편의 눈에는 아직도 미래를 꿈꾸고 있는 내가 못마땅했으리라. 

이제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사실.  세 사람의 공통적인 시각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책을 읽고 쓴다. 그러면 남편은 놀린다. 아직도 읽고 쓰기만 하느냐고.  그렇다면 정말 나는 미래가 없는 것일까? 
이제 꿈 같은 건 아직 살아갈 시기가 많은 아이들에게 넘겨야 하는 것일까? 

이주란 작가의 단편소설 <겨울정원>을 읽는다. 예순이 넘은 혜숙씨는 오인환씨와 만남을 가진다. 혜숙씨는 <샹그리라>라는 시를 들려준다. 

이주란 작가의 단편소설 <겨울정원>을 읽는다. 예순이 넘은 혜숙씨는 오인환씨와 만남을 가진다. 혜숙씨는 <샹그리라>라는 시를 들려준다. 

가지 않은 곳은 모두 미래다
그날 만나지 못했던 그 사람도
읽지 않은 그 책의 몇 페이지도 옛날이 아니다. 

가지 않은 곳, 만나지 못했던 사람, 읽지 못했던 책의 페이지들 모두 '미래'라고 말한다. 이 시에 의하면 '미래'는 사방에 넘쳐난다.  그렇다면 내 방 가득 채우고 있는 아직 읽지 못한 책들도 모두 미래인 것이다. 나는 끝난 게 아닌 미래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보다 더 빠른 나를 칭찬해야하려나^^. 

소설 속에 수록된 이 시를 통해 내가 아직 이루지 못했던 것에 슬퍼하기보다 기뻐하는 걸 택하기로 한다. 아직 이루지 못해 끝난 게 아닌 내게 또 하나의 미래가 되었으니까. 나에게는 아직 살아가야 할 미래가 많이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메모>에서 정혜윤 피디는 친구의 친구였던 서울대공원에서 만난 장애를 가진 새 콘도르를 이야기한다. 

 목이 계속 기울어져 있어 날지 못하는 새.  새의 운명대로 살지 못하고 땅에서만 살아가야 하는 이 새의 이름은 '꼽추'였다.  늘 서울대공원에서 새 꼽추를 찾으며 지냈던 작가는 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꼽추를 애도하고 기억한다. 

어떻게 애도하냐고? 새에 대한 기록을 찾는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유범주 의 <새> 등 새가 어떻게 나는지를 쓴 책들을 찾아 기록하며 상상한다. 이 세상에서는 장애로 날지 못했지만 사후 세계에서는 한없이 날아오르기를 상상하고 기원하는 것. 그것이 저자가 콘도르 꼽추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저자의 애도는 또 다른  다짐으로 변한다.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다 살아보기로. 

우리는 아직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른다.
우리의 가능성을 알지도 못하고 바스러진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수많은 것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린다.
수많은 것들이 우리의 스러짐을 슬퍼한다.
수많은 것들이 우리가 해낼 수도 있었을 일을 아쉬워한다. 

정혜윤 / 아무튼 메모 

정혜윤 피디 또한 <겨울정원>에서 나온 '미래'의 개념과 맥락이 닿아 있다. 

우리가 아직 하지 못한 일들은 모두 가능성들이고 미래다. 
이 세상은 아직도 우리가 가 보지 못하고 해내지 못한 미래의 가능성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 그러므로 우리의 아직 살아가지 못한 오늘조차도 현재가 아니라 또 하나의 미래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있는 한 '미래'를 동시에 살아내고 있고 세상의 수많은 것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책 좀 그만 읽으라고 말하던 남편에게, 친정엄마에게, 시어머니에게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제 미래는 끝났다고요? 
아니요. 아직도 제 미래는 무궁무진하답니다. 
내가 살아있는 한, 내가 해내지 못한 일이 있는 한 제 미래는 언제나 넘쳐난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바로 미래를 살아내고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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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eung 2026-01-21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꿈꾸는자 꿈이 이루어 질 것이다. 언젠가는!
 

새해의 첫 달이 벌써 반절이 지나갔다. 새해 1월이 주는  좋은 혜택은 바로 시작하기 가장  좋은 달이다. 왜 시작하기 좋은 달일까? 영어로 새해가 New Year 이듯, 우리의 인생도 New 가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Old year의 삶을 벗고 New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 그래서 사람들은 안 읽던 독서를 시작하려고 하고 안 하던 운동을 계획한다. New life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헬스장이나 서점들이 가장 매출이 많은 달이 1월달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2월만 되면 사람들이 서점이든 헬스장이든 발길을 뚝 끊을까? 

그건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의 인생이 갑자기 New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year'는 'New'가 되었지만 우리의 인생은 어제와 별다른 하루 하루일 뿐이다. 새해는 자동으로 된다. 하지만 인생은 자동으로 new가 되지 않는다. 안 하던 독서가, 안 하던 운동이 1월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되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의 old한 행동은 웬만해선 바뀌기 힘들다. old life를 new life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 사이에 사람들은 좌절하기도 하고 또는 실망하며 new가 되는 걸 멈추고 다시 old로 돌아가고 만다. 


새해에 시작되는 많은 계획들. 물론 그 계획들은 new가 되기 위한 것들이다. 
잘 되기 위한 것들. 어떤 게 있을까?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박 콘텐츠가 나와서 수익화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출판사들은 만드는 책이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것이고 누군가는 원하던 취업을 하는 것이나 또는 바디프로필을 찍거나 여행을 하는 것들이 있다. 

계획을 왜 세울까? 그건 그래도 이 한 해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사람들은 인생이 new가 되길 바라며 계획을 세운다. 

동생과 통화를 했다. 서로 2026년 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막막하고 쉽지 않음을 이야기했다. 동생은 "언니, 기운 내.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그 말을 듣자 나 또한 한 마디한다. 

"맨날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 

내 말을 듣자 동생은 웃음을 터뜨린다. 틀린 말이 아니니까.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말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중이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니 사람들은 기대를 하지만 정작 우리를 미치게 하고 실망시키는 것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이기도 때문이다. 

새해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의미가 인생이 바뀌는 긍정적인 것을 의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실망으로 바뀌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리고 뭐 바뀌지 않았다고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되고 오늘과 똑같은 내일이 되리라는 것을 체감할 뿐이다. 그래서 새해에 뺴곡히 쓰며 시작된 다이어리도 달이 바뀌면서 점점 드문드문 쓰게 되고 나중에는 잊힌 존재가 되는 것도 이 떄문이다. 

자동으로 리셋되지 않는 인생. 자동으로 new가 되지 않는 인생. 
결국 New year도 어제의 삶의 연장선일 뿐이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유명한 '투모로우 스피치' 가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내일과 내일은 하루와 하루이고 걸음과 걸음일 뿐이다. 
왕이 되기 위해 덩컨 왕을 죽였지만 그는 그로 인해 하루 하루를 불안과 두려움에 살아야 했다. 왕이 되기 위한 삶을 살았지만 왕이 되었다고 해서 그의 인생이 왕처럼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맥베스의 삶이 우리의 인생과 비슷하지 않을까? 
사람을 죽이거나 나쁜 짓을 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old year에 해 놓은 일들이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old에서 new로 바뀌지 않는다.  그저 old year의 연장선일 때가 오히려 되기 쉽다. 맥베스도 자신의 악행이 왕이 되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듯, 우리의 지난 삶들이 갑자기 확 바뀌는 마법 같은 일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슬프게도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기대를 해 보는 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만으로 새해를 계획해보고 변화를 꿈 꾸는 것이다.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인생. 
아마 이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끝까지 갖고 가는 명제일 것이다. 
추락만 하던 자산이 언제 흐름을 타고 떡상할지 모르고, 조회수가 1도 안 나오는 콘텐츠가 갑자기 알고리즘을 타서 유명세를 탈 지 모른다.  마이너적인 책을 주로 출간하는 '알마' 출판사도 출간한 외국 작가 라슬로 크러스너호르커이가 노벨문학상을 받음으로 갑자기 대박 출판사로 거듭났듯이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걸 좋게 바꿔주는 건 그래도 계속 해오는 것들 속에 있는 것 같다. 파란색만 그리고 있던 자산이 떡상하는 것도 자산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떡상하게 된다. 콘텐츠가 알고리즘을 타는 것도 계속 콘텐츠를 만들어야 가능하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책을 계속 써내려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될 지 모르게 만드는 것들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는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헤밍웨이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에서 홀로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은 84일째 아무것도 잡지 못한다. 하지만 노인은 오늘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하지만 누가 알겠어? 
어쩌면 오늘 운이 닥쳐올는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아닌가.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욱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 

노인의 마음은 한결같다. 비록 오늘도 운이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운이 찾아올 때 운을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 끊임없이 배를 타고 바다를 나가는 것. 
그것이 운을 찾기 위한 노인의 자세였다. 84일째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고 해서 포기하고 바다로 가지 않는다면 이젠 정말 아무것도 잡지 못하니까 말이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 
우리를 기대하게 하기도 하고 막막하게 만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이다.  그저 운이 찾아올 때 그 운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 노인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듯 우리도 우리의 준비를 해 나갈 뿐이다. 운이 온다면 더 좋고 운이 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만반의 준비를 끊임없이 해 나가는 것. 그래서 old한 인생이 new로 바뀔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늘의 인생을 잘 살고 또 내일의 인생을 잘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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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요즘 행복하지 않다.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일까? 내 집 마련을 못해서? 직장이 어려워서? 
물론 이것들도 포함이 된다. 그런데 나를 행복하지 않게 하는 건 바로 SNS이다.


정지우 작가의 <글쓰기로 독립하는 법>에서 작가는 SNS의 중요성에 대하여 거의 절반을 할애한다. SNS로 지금의 책을 써내려가고 새로운 커리어로 확장된 케이스이다보니 작가에게 SNS는 최고의 수단일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새 마음을 먹고 스레드와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하다. 좋아요가 10개도 되지 않는다. 알고리즘의 선택도 받지 못하고 이웃들의 선택도 받지 못하다. 처참한 조회수를 보면서 내 마음도 처참해진다. 결국 내 역량은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인가 싶어 우울해지곤 한다. 


이 조회수를 생각해보면 이 시대는 행복하기 어려운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내 행복이 남들의 조회수에 갈리니 말이다. 이제 100만 유튜버가 된 가수 강남도 매일 조회수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우리의 기분을 '내'가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정해주는 '조회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처참한 조회수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이걸 해? 말어? 

마음같아서는 당장 때려치고 싶다. 내 조회수를 보면 얼굴이 화끈거려 포기하고 싶다. 내가 이걸로 밥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굳이 해야 되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쓴 글 이곳저곳에 포기하지 않겠다고 쓴  이상 꾸역꾸역 써내려갈 수 밖에... 언젠가는 나도 전능하신 알고리즘님의 선택을 받아 떡상하게 될 날을 기대하며 해 나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폴인>이라는 구독서비스를 이용한다. 우연히 그 곳에서 프로게이머 이민형 선수의 인터뷰를 보았다. 2023,2024년 두 번이나 우승했음에도 주전에서 후보 선수로 밀려난 시절을 선수는 가장 힘들었던 시절로 이야기한다. 당연하다. 이제부터 본격 궤도에 올라섰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벤치로 강등되다니. 창피하고 억울할 것이다. 그 시절을 버티게 해 준 게 있냐는 제작진의 말에 그는 그만의 명언을 말해준다.  

"이것도 결국 좋은 서사가 될 거다." 


자신의 역경을 단지 하나의 실패로 간주하지 않는 것. 
오히려  "이런 시기, 위기가 있어야 서사가 재미있어지잖아요." 라고 말하는 이민형 선수는 자신의 실패를 큰 이야기 속의 하나의 에피소드, 기-승-전-결에서 가장 중요한 '전'부분의 한 에피소드로 간주하고 있다. 

자신의 삶의 결론은 이미 정해졌다. 우승하고 파이널MVP를 받는 것. 
단지 그 결론으로 다다르는 과정 안에 한 두개의 위기의 에피소드가 추가될 뿐이다. 그 에피소드들은 아슬아슬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해 주는 양념과도 같은 역할을 해 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은 더 재미있어진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는 그가 쓴 결말대로 우승과 파이널 MVP를 차지했다. 

이민형 선수를 보면서 생각했다.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따라서 삶의 희비가 바뀌어지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자신의 삶을 희극으로 삼느냐 아니면 비극으로 이야기하느냐. 그것에 인생의 승패가 좌우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는 슬프게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의 엄마'이다. 

엄마의 삶이 실패는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엄마는 온갖 고생 끝에 투병하는 자신의 삶을 불쌍하게 생각하신다. 왜 안 그렇겠는가. 가족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고생하셨는데 파킨슨병과 같은 무서운 병을 허락하셨다니. 평생 십일조를 내고 교회 청소를 하며 하나님을 섬겼는데 이런 무서운 병을 주시다니. 

그 이후 엄마의 서사는 더욱 슬퍼져갔다. 자신을 더욱 안스럽게 여기고 불쌍하게 생각하신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엄마는 자신의 불행 서사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차츰 악화되시는 엄마의 병세에 따라 엄마의 서사는 더욱 깊어져간다. 

하지만 더 들어가보니 나 역시 불행의 서사를 쓰고 있다. 이 글 맨 앞에 나는 행복하지 않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조회수가 낮아서, 알고리즘님의 간택을 받지 못해서 불행까지는 아니지만 처참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나 역시 나만의 비극 서사를 쓰고 있었다. 

정혜윤PD의 에세이 <책을 덮고 삶을 열다>에서 작가는 우리의 삶을 구하는 방식은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우리 인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는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이야기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야기하는 방식이 바뀌면 삶도 바뀐다.
이야기하는 동물로서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의 이야기를 찾는 것.
우리의 이야기를 남이 대신하지 않게 하는 것.
우리의 가장 멋진 점을 이야기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내 삶을 이야기하는 방식. 

이민형 선수는 자신의 실패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거대한 희극 속의 하나의 에피소드라고 생각하며 서사를 만들어갔다. 음식의 맛을 더욱 감칠나게 하는 조미료와 같은 역할로 실패를 받아들였다. 그 방식대로 그의 삶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정혜윤PD는 우리의 이야기를 남이 대신하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남의 조회수에 연연한다면 그거야말로 남이 우리의 이야기를 대신 써내려가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나의 이야기를 이민형 선수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로 바꾸어보는 거 아닐까? 
직장 상사에게 혼나면 직장에서 고진감래하는 성장 드라마로 이야기를 말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 와 같은 만화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새해 거창한 목표 열 가지보다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할 방법 찾기. 
자신의 인생을 희극으로 바꿔 이야기하기. 그보다 더 거창한 목표가 있을까?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모두가 하루를 이민형 선수처럼 시작하길 바래본다. 
아니 2026년을 이민형 선수처럼 이 한 마디로 가득 차길 바래본다. 

이것도 결국 좋은 서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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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내
K.L. 슬레이터 지음, 박지선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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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판 이혼숙려캠프 같은 마라맛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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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내
K.L. 슬레이터 지음, 박지선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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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이 있다. 물을 칼로 베어도 금방 합쳐지듯, 부부 싸움도 금새 화해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 그 말도 옛말이 된지 오래다. 물은 칼로 베어지지 않듯, 부부 싸움도 자주 하게되면 너무 베어서 다시 붙어지지 않는다. K.L. 슬레이터의 심리스릴러 《남편과 아내》는 제목과 표지만큼 강렬하듯 부부 관계가 인생을 파탄으로 몰아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장편서스펜스 소설이다. 


이상한 밤이었다. 


소설은 여러 인물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소설의 첫 장을 여는 인물은 세라. 바로 이 심리스릴러 소설의 희생양이 되는 인물이다. 

술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데이트 상대가 나타나지 않았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사람과 마주친 이상한 밤. 

하지만 어떤가. 둘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그는 세라를 위해 뭔가를 약속해 주었다. 그걸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느 억센 손에 어딘가로 끌려가 목을 조이고 죽게 된다. 이 범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세라에게 없어진 독특한 무늬의 스카프 하나. 그 스카프를 찾아야 한다. 


《남편과 아내》 는 세라 그레이슨 실종 사건을 찾는 노팅엄셔 경찰과 함께 세 쌍의 부부들이 나온다. 


유방암 투병을 하고 있는 니콜라와 배관공사를 하는 남편 칼 밴스 부부 

니콜라의 자랑스러운 아들 파커와 부유한 인플루언서 루나 부부 

니콜라와 칼을 무시하는 루나의 부모님 조와 마리 부부. 


이 소설이 영리한 점은 초반 파커와 루나 부부의 문제점이 심각하다는 점을 아주 공들여서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이 자란 집안 환경, 루나의 집착과 질투, 파커의 바람기 등등. 각방 등,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처럼 파커와 루나 사이가 심상치 않다고 믿게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 《남편과 아내》 가 바로 파커와 루나의 이야기라고 철썩같이 믿게 한다. 아니 속게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이 진짜 빛을 발하는 부분은 파커와 루나 부부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이야기가 다른 부부의 이야기로 확장되면서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는 것처럼 과연 10년 아니 30년 넘게 맞대고 살아온 부부지만 과연 상대방을 제대로 알고 있나라는 의심에 빠지게 한다. 거만하지만 완벽한 조와 마리 부부조차 그들 사이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 되며 파커와 루나 사이로 좁혀졌던 범인의 범위가 모든 인물들로 확 넓혀진다. 모두에게 문제가 있고 모두에게 동기가 있다. 무엇보다 부부는 서로를 가장 잘 안다 하지만 눈 뜬 장님과도 같은 관계이다. 


장편서스펜스 《남편과 아내》 는 결국 책 속의 모든 등장인물의 이야기이자 모든 부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 또한 10년 넘게 부부생활을 하고 있고 남편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믿는다. 하지만 작가는 묻는다. 과연 그럴까? 

소설을 읽다보면 과연 남편은 나를, 나는 남편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직면하게 된다. 이 소설의 반전을 알게 된다면 누구도 자신의 배우자를 잘 안다고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부부 관계에 얽힌 증오와 배신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을 극한으로 치밀어 오르는 상태에서 마지막 승자는 가장 순수한 이들만이 남는다는 건 그래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리라.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고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우리가 함께 가야 할 길이 멀고 치유해야 할 상처가 가득하며

삶은 불확실한 일들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어떻게든 우리는 새로운 삶을 함께 일궈 나갈 것이고 살아남을 것이다. 


《남편과 아내》 는 마지막까지 힘을 빼지 않고 달려가는 소설이다. 강력한 반전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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