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너머 자유 - 분열의 시대, 합의는 가능한가 김영란 판결 시리즈
김영란 지음 / 창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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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짓불을 들이대는 것 같다. 

기성 미디어는 물론 개별적으로 운영되는 많은 미디어들이 저마다 전짓불을 들고서 

'당신은 누구 편입니까'라고 묻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더욱 거세지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이 시대. 1인 미디어의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지 않는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글을 써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갈수록 드물어간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의 편'이 아니면 당할 공격들이 두렵기 떄문이다. 예전에는 전짓불과 같은 무기였다면 지금은 악성 댓글이나 사이버 공격으로 전짓불을 들이댄다. 그래서 언론의 통로는 넓어졌지만 목소리는 다양화되기는 커녕 묻혀지고 마는 시대이다. 

말하지 않으면 괜찮을까? 그렇지 않다. 말하지 않으면 당장 논쟁이나 싸움은 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속에 감추어진 불만은 더 쌓여갈 뿐이며 더 심한 분열을 쌓아갈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싸우기 싫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분열의 시대.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김영란 전 대법관은 치열하게 고민한다. 

법이 정치색을 떠나 편을 떠나 합의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김영란 전 대법관은 그 답을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철학에서 답을 찾고자 한다. 


그렇다면 존 롤스는 누구인가? 

저자는 존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 이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적 이성'에 의한 '중첩적 합의'로 

'합당한 다원주의 사회'를 위해

서로 다른 포괄적 신념체계를 주장하는 

민주시민들이 정치적 정의관에서

 합의를 이루는 사회 



어렵지만 두 가지 키워드에 주목한다. 


'합당한 다원주의' - 여러 생각과 방법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사회

'중첩적 합의' - 모두가 받아들이는 공통된 정치관 


이 '중첩적 합의'의 예로 저자는 미국의 노예제도 폐지론을 말한다. 

노예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긴 후 문제가 되어 남북전쟁으로 이어졌지만 이 노예제도 폐지를 결국 미국 모든 사회가 받아들이며 하나의 법으로 합의를 보는 과정을 '중첩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간주한다. 


『판결 너머 자유』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였던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 법들이 과연 다원주의에 맞게 또는 롤스의 자유주의 이론에 맞게 이 사회에 반영되는지를 저자는 검토한다. 


책에서는 여러 판례들이 소개된다. 전교조 법외노조 활동, 동성애 인정, 소수자의 기본권, 인공수정 자녀등 친권에 대한 개념,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성전환 허용 사례등 많은 논란을 주었으며 한국사의 한 획을 그은 사건들이다. 


이 중 몇 몇 사건들 중 인상 깊은 사례를 살펴본다. 


1. 인공수정 자녀와 혼외 자녀의 친생추정 문제


한국은 유교사상이 깊게 뿌리박힌 사회이다. 가부장 중심이었던 한국 사회는 호주제가 폐지된 지가 얼마되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핏줄을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는 가부장 우선주의 판결이 우세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피가 섞이지 않은 부자 관계를 끊을 수 있도록 할 것인가라는 쟁점이었다. 과학적으로는 혈연관계가 아닌 이 관계에서 대법관 별개의견에서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다. 


"사회적 친자 관계" 




아직까지 법원은 가부장적 가족 제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대법관들의 일부 반대의견에서는 '사회적 친자 관계'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표시한 법관도 있음을 밝힌다. 아직 롤스가 말한 '중첩적 합의'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법원에서  새로운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법적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음을 저자는 별개의견을 들어주며 설명해주며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느리지만 조금씩 진척되어 있음을 설명한다. 



2. 소수자들의 기본권

이 책에서는 주로 미성년자 자녀를 둔 부모들의 성전환 사례들을 소개한다. 

아버지가 엄마가 되고 엄마가 아빠가 되는 이 현실에서 성전환자의 기본권을 존중해야 하는가 아니면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는 미성년자 자녀들의 보호가 우선시되어야 하는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기본권도 중요하고 미성년자 자녀 보호 모두 중요하기 떄문이다. 


이 책에서는 '사회적 기본재' 를 강조한 롤스의 정의론을 주목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기본재란 무엇인가? 


'자존감의 사회적 기반들'로 그 태도를 뒷받침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회적 기반들 을 의미한다. 


이 사회적 기반들이 없을 경우 성전환들에게는 '인간실존'의 문제와 직결되며 그들의 기본권이 침해된다. 그래서 예전에는 미성년자의 보호가 중요시되었지만 이제는 소수자들의 기본권 또한 중요시되고 있는 전원합의체가 있음을 저자는 설명한다. 




『판결 너머 자유』에  있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들을 읽다보면 비록 느리지만 법원이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법을 형성하기도 하고 해석해나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단지 문자 그대로의 해석이 아닌 변화되는 사회상을 반영하고자 하는 법원들의 고뇌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롤스가 말한 '합당한 다원주의'를 위한 '중첩적 합의'가 현실에서도 존재할 수 있을까. 

다수가 아니더라도 같은 편의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서로 합의를 하며 하나의 행복한 결론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묵직한 질문은 앞으로도 사법부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숙제라고 말한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중첩적 합의'가 사법부 혼자만의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사회의 분위기가 자유로운 토론과 열린 마음으로 대할 때 비로소 사법부도 반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아직도 우리가 갈 길이 멀지만 이 '중첩적 합의'를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 


『판결 너머 자유』는 비전공자인 내게 다소 어려운 책이었다. 나와 같은 비전문가에게 이 책에 소개된 판결문들을 중점으로 읽어도 저자가 말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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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해방 - 소용돌이치는 인생의 한가운데에서 마음의 고요를 얻는 법
곽정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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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화려한 방송인이라고만 생각했던 곽정은씨의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히 남녀 관계와 같은 상담서리라 생각했다. <마녀 사냥>의 그린라이트, <연애의 참견> 등에서 주로 조언자로 활동했었으니까. 그런데 『마음 해방』이라니? 더구나 명상 책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책에 순간 선입견이 들었다.  하지만 읽을수록 알게 되었다. 화려함 속에 감춰졌던 상처들과 그 속에서 저자의 고군분투가. 마침내 그 방법 중 하나로 찾게 된 명상의 여정이 어떻게 해방되었는지를 알게 되는 책이었다. 




『마음 해방』은 세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헤아림 - 알아차림 - 현존. 


1장. 헤아림의 문 너머. 

헤아림. 먼저 헤아림의 정의를 찾아본다. <참작>과 <하량>의 순화어라고 설명한다. 

참작. 이리저리 비추어 알맞게 고려하며 하량은 아랫사람의 심중을 살피어 알아줌을 뜻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을 이리저리 비추며 무엇의 심중을 살핀다는 뜻일까에 주목한다. 

바로 답은 '나'이다. 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나의 상처, 비하, 신념, 두려움 등등 나의 마음을 헤아리게 한다.  이 마음들이 나를 어떤 족쇄로 나를 옭아매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책에 저자가 소개한 여러 두려움 중 가장 익숙해서 잊고 있던 혹은 40대가 넘어가며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한 두려움을 살펴본다. 그건 바로 '늙어감'이라는 두려움이다. 


그런데 저자는 '늙어감'애 대한 두려움을 '탐욕'에 대한 해방으로 연결시킨다. 


늙어감과 탐욕이라는 해방이라는 조합이 낯설다. 왜 그럴까라는 의아함 속에 저자의 한 문장이 다가온다. 


자신의 노화를 기쁜 마음으로 태연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흰머리를 벌레보듯 정색하며 얼굴의 주름살을 증오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현실 속에는 강한 두려움이 있음을 이 문장을 통해 직면한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혐오로 바뀌는 것임을. 

두려움은 혐오을 낳고 혐오는 더 커진 두려움을 낳는다. 이 악순환 속에 늙어가는 내 몸을 용납하지 못한다. 


자신의 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워만 하는 우리의 마음을 이용하는 소비 자본주의. 

늙는 걸 범죄처럼 여기며 주름살과 흰머리를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하는 우리의 소비 문화는 늙어가는 우리를 더욱 죄인처럼 만들게 한다. 


자신을 다독여주기보다,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여지기 보다 더 두려워하고 혐오하게 하는 문화에 휩쓸려 여려 노화 방지 제품을 사 들이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그 동안 두려움이 너무 컸음을. 그래서 내 자신이 내 몸을 인정하지 못했음을 비로소 헤아리게 한다. 




2장. 알아차림의 문 너머. 

나의 두려움, 상처, 비난 등 나를 옭아매고 있는 걸 알았다면 이제는 그 다음 단계인 '알아차림'의 문을 연다. 


헤아림과 알아차림. 비슷한 듯 하다. 하지만 헤아림은 그 마음에 대한 것을 헤아려 짐작하지만 알아차림은 상황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마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원인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 것인지를 말해준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열망하는 것. 

내가 무의식적으로 남의 것을 탐하는 마음, 

내가 무의식적으로 집착하는 것. 

그러한 모든 것들이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폭식하게 되고 과소비하게 되는 습관을 알아차린다. 

내 마음이 어떤 욕망으로 작동되는지 알면 그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다. 

나를 다스리고 나를 위로하며 욕망으로 가지 않도록 내 마음을 다독여준다. 


매번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소비 지출 통제에 실패하며 욕망에 휘둘린다. 

이런 내 마음이 욕망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다독여줘야 할까? 

저자는 저자만의 따뜻한 단어를 제시해준다. 


 다정한 목격자. 



나는 내 삶의 다정한 목격자인가? 

나는 내 모든 것을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는가? 

나는 내 나이를, 내 삶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가? 


내가 내 삶에 다정한 목격자가 되어 바라볼 때 비로소 내가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으며 욕망으로부터 끊을 수 있다. 




3장. 현존의 문을 열다.

마지막 문은 '현존'의 문이다. 


현존. 지금 이 자리, 이 삶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게 해 준다. 


내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차린 후 내가 온전히 지금을 받아들이며 존재할 수 있는 현존은 가장 어려운 문이다. 


우리가 하는 무의식적인 생각, 상념, SNS, 온갖 문명은 우리를 현재 자리에서 자꾸 도망가게 한다. 


저자는 진지하게 묻는다. 

스마트폰이 보여주는 온갖 정보와 영상 그리고 넘쳐나는 뉴스에서 과연 우리는 얼마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이 행복인가. 

이것이 삶인가. 

지금 나는 내 삶에 온전히 존재하고 있는가. 


내 마음을 헤아리고 알아차린다해도 결국 현재에 온전히 살고 있지 못하다면 그건 무용지물이다. 

그러므로 애써 현재를 살아야 한다. 애써 현재 내 마음을 관찰하고 내 앞에 있는 대상에게 집중해야 한다. 




선입견으로 읽기 시작한 『마음 해방』은 읽는 동안 무한 위로를 받으며 마지막 장을 덮은 책이다. 

아마도 저자가 자신의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극복해나가는 여정을 써주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이 책에서 '다정한 목격자' 라는 한 단어를 소중하게 적용한다. 


내 삶의 다정한 목격자가 되어 내 현재를 뜨겁게 안아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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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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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작가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는 최근 배우 송중기 씨가 주연한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의 원작 소설이다. 2011년 출판되었던 오랜 소설이 영화화되며 새롭게 심폐 소생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영화화되었기 때문에 읽어봐야 할 가치가 있는 소설인가?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소설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은 작가 '조해진' 소설가 때문에 읽을 가치가 있다. 사람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진 소설가. 그것만으로도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 소설은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사연을 방송해 시청자들의 기부로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김 작가. 

그녀는 출연자들과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쓴다. 모든 사연들이 안타깝지만 더 마음이 가는 사연이 있다. 집 나간 어머니, 돌아가신 아버지, 가출한 동생, 열일곱의 나이에 오른쪽 뺨에 혹이 생겨 수술이 필요한 소녀 윤주. 김 작가는 윤주를 돕기 위해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몇 달 후에 있는 추석에 방송하자고 스태프를 설득한다. 


윤주를 도울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는 데 그 사이 전해진 뜻밖의 소식이 들려온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윤주의 혹이 신경섬유종이 아닌 악성 종양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윤주를 돕기 위해 방송 편성을 뒤로 밀려왔는데 자신의 결정으로 윤주의 혹이 악성으로 된 것만 같은 생각에 김 작가는 하던 프로그램을 그만두고 브뤼셀로 떠난다. 


브뤼셀로 가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로기완을 만났다』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로기완은 누구인가?  

그는 탈북민이다. 아빠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엄마와 함께 자란 로기완. 그는 중국에서 엄마와 함께 살다가 엄마의 사망 후 브로커의 도움으로 유럽으로 망명 온 탈북민의 사연이 시사잡지에 소개되었다. 김 작가는 왜 아무런 안면식도 없는 로기완을 만나려고 하는 것일까? 


바로 잡지에 실린, 그의 고백이 담긴 짧은 문장 때문이었다. 


감작가를 먼 브뤼셀까지 오게 한 로기완의 짧은 문장은 소설의 중반이 넘어가도록 잘 보여주지 않는다. 


로기완을 만나러 브뤼셀에 왔지만 로기완은 영국으로 건너가 만날 수 없다. 

하지만 로기완을 도와준 한국인 '박'을 만난다. 박은 로기완이 영국으로 떠나기 전 자신에게 준 일기장을 김 작가에게 권한다.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서 영국으로 떠나기까지의 여정이 담긴 로의 일기를 통해 김작가는 하나하나 그가 지나간 행적을 더듬으며 그의 마음을 떠올린다. 

그의 슬픔, 그의 고통, 그의 배고픔을 느끼려고 애를 쓴다. 


이 소설에서 김작가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어떻게 한 인간에게 깊이 공감하며 연민할 수 있는가.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로기완의 일기를 통해 그의 삶을 느끼며 과연 진심 어린 연민이 가능한가라는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고통까지 똑같이 느낄 수 없다. 

한 사람의 슬픔을 공감한다 하더라도 당사자만큼 느낄 수 없다. 



결국 완전한 공감에 이를 수 없다는 무력함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처럼 자신을 탓하며 더 깊은 늪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윤주의 슬픈 소식을 도저히 볼 수 없어 도망쳐온 김작가를 이 질문 속에서 구원해 준 건 그동안 꽁꽁 숨겨져온 로기완의 한 고백이었다. 


가장 힘든 상황 속에서도 로기완을 움직이게 했던 그 고백. 

그 고백은 김작가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로기완을 돕고 김작가를 도운 박을 위로하며 서로가 앞으로 한 발짝 앞으로 나가게 해 준다. 


로기완이 힘들 때마다 읊었던 그 고백처럼 살기 위해 또 한 번의 선택을 한다. 남에게는 어리석어 보이겠지만 생의 가장 끝자락에서 견뎌왔던 그의 고백대로 살기로 한 선택임을 소설은 알게 한다. 


 『로기완을 만났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소설이다. 

김작가는 윤주의 사연을 듣고 브뤼셀에서 박의 이야기를 듣고 로기완의 일기를 통해 로기완의 이야기를 듣는다. 김작가를 도운 박 또한 로기완의 행적을 쫓는 김작가와 함께 하며 침묵 속에 담긴 김작가의 상처를 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서로가 위로받는다. 


이 소설은 자신의 상처를 말함으로 위로받는 이야기가 아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자발적으로 들음으로 타인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상처를 위로받는 소설이다. 

김작가가 로기완의 고통을 느끼는 과정에서 위로를 받고 그런 김작가를 지켜보고 함께 해 줌으로 박은 오랜 상처와 죄책감으로부터 위로받는다. 한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자신을 구원함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기는 어려울지라도 우리에게는 끝까지 사랑하고 공감해야 할 이유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끝까지 사랑하고 위로하며 나아가야할 이유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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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밤 - 당신을 자유롭게 할 은유의 책 편지
은유 지음 / 창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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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해방시킬 때 나를 해방시킬 수 있음을 알려주는 독서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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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밤 - 당신을 자유롭게 할 은유의 책 편지
은유 지음 / 창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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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인구가 줄어드는 시대라고들 합니다. 

책을 읽는다고 하여도 성공을 위한 디딤돌로 책을 은 바읽습니다.  성공하려면 책과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하기에 사람들은 책을 읽습니다. 자기계발서나 투자법과 같은 재테크 서적은 베스트셀러를 차지합니다. 그야말로 유용한 책을 읽기에 사람들은 열심입니다. 


반면 누군가의 삶이나 이야기를 쓴 에세이나 소설 등은 무용한 책으로 비춰집니다. 왜 허구의 이야기를 읽어야 하냐고 묻습니다. 내 삶 살아가기도 바쁜데 왜 남의 이야기를 읽어야 하냐고 묻습니다. 실생활에 와 닿지 않은 이야기들은 시간 낭비처럼 느껴집니다. 


은유 작가의 독서 에세이 『해방의 밤』은 일분일초가 바쁘며 시간의 가성비를 쫓는 이 시대와 맞지 않는 책일 수 있습니다. 은유 작가의 읽기는 집요하게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읽기입니다. 

내가 아닌 남을 이해하기 위해서, 무지의 상태에서 남을 함부로 판단하고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 은유 작가는 책을 읽어나갑니다. 서로를 이해해야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해방'될 수 있다고 말하니까요. 『해방의 밤』은 바로 그 작가의 열정이 담겨져 있는 책입니다. 


제목 『해방의 밤』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의 키워드는'해방'입니다. 

그렇다면 '해방'이 되면 가장 먼저 바뀌게 되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그건 바로 '정체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한민국이 45년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국민들은 식민지 백성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독립이 된 후 우리는 주권국가의 한 국민이라는 정체성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일제 통치에 지배적이던 시절 우리들은 해방이 되었음에도 식민지 시절의 습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주권국가의 국민이라는 라벨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방의 밤』 을 통해 버지니아 울프가 작가라는 자신의 직업만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왔던 걸 처음 알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저 또한 버지니아 울프가 자살로 삶을 마감한 비운의 작가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삶의 결말이 비록 자살로 끝났지만 그건 극히 일부분이고 그녀의 삶 대부분이 작가로 인정받은 삶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살이라는 하나의 사건에만 중심을 맞춘 채 한 사람의 삶을 '불행'이라는 라벨로 정의해 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일제에서 해방되었음에도 '식민지' 라벨을 쉽게 떼지 못했던 옛날의 우리모습처럼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우리의 무지대로 라벨을 붙이고 한 사람의 삶을 재단해왔습니다. 


한 사람을 단면만 아는 건 그 사람을 '해방'시키지 못합니다.  '엄마'라는 삶 단면만 강요하던 과거는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여자의 삶을 옥죄었듯이 우리는 한 사람을 전인격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포기하지 않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을 해방시킬 수 있고 똑바로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렇다면 질문해봅니다. 

어떻게 해방을 할 수 있나?  어떻게 나와 우리는 해방될 수 있나? 


저는 은유 작가가 책 속에서 인용한  김진영 선생님의 《아침의 피아노》의 문장에서 답을 찾습니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우리의 역사를 떠올려봅니다. 

광복이 되고 4.19 혁명, 1987년 6월 항쟁, 5.18 민주화 운동, 전태일 등등 우리 나라의 역사는 나만이 아닌 남을 위한 선의가 기폭제가 되어 움직여 왔습니다. 전태일 열사 또한 자신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박종철이라는 한 대학생의 고문치사에 분노하여 타자를 지키기 위할 때 비로소 역사는 움직여왔고 우리는 점점 민주주의로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나만 아니면 돼'처럼 나만을 지키려고 하는 이 때 우리는 더 많은 억압에 시달리게 됩니다. 더 많은 죽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나만을 바라보느라 세상의 많은 위험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은유 작가는 말해줍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질문하게 됩니다. 


남이 해방되지 못하는데 과연 나는 해방될 수 있는가?  


남이 해방되지 못하는 삶은 나의 삶까지 구속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목적이 있는 책읽기만 중요시 되는 이 시대, 소설이나 타인의 삶을 쓰여진 에세이는 과연 무용한 것인가? 과연 의미가 없는 것인가 생각해봅니다. 


은유 작가 또한 고민합니다. 여전히 어렵고 명확하게 답을 해 줄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워합니다. 


하지만 이런 글들을 읽어주고 쓰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 사회가 조금씩 움직여진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매우 더디고 때론 길을 잃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남을 해방시켜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해방'을 위한 읽기는 나만을 살리는 게 아닌 타인 또는 이 사회를 구할 수 있는 아주 위대한 첫걸음이기도 하다는 걸 말해줍니다. 이 시대야말로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보아주는 것. 그건 결코 무용하지 않다는 걸 말해주는 책이며 함께 헤쳐나가자며 내미는 작가의 초대장 같은 책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았으며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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