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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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표지의 그림부터가 심상찮다. 

절실하게 기도하는 듯한 수녀, 그리고 수녀를 가운데에 두고 왼편의 천사의 손에는 총을, 오른편 천사의 손에는 수술용 메스가 들려있다. 임성순 작가의 회사 3부작 『구원』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장편소설  『구원』 의 첫부분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모든 것은 선한 사람들에 의해 철저히 기만되고 왜곡되어 있다


니체의 말을 인용한 문장. 두 가지의 상반된 단어에 주목하게 된다. 


선한과 기만.  


선한과 기만은 어울리지 않는다.  선한 사람들이 기만되어 있다니.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소설 첫부분. 선한과 기만의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부조화처럼 상반되는 광경이 펼쳐진다. 


은혜가 넘쳐야 하는 성당 미사에서 죄임을 고백하는 박현석 베드로 신부. 

그리고 죽은 사람의 장기를 적출하는 의사 범준의 모습. 


한 사람은 사람의 영혼을 살리고 다른 사람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신성한 직업을 가진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박현석 베드로 신부는 15년 전 지옥과도 같은 곳에 돌아온 후 더 이상 신을 믿지 않는다. 신을 믿지 않음에도 여차저차 신부 생활을 이어왔으나 의도치 않은 루머에 휩쓸린 그는 자신을 해임시켜 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한다.  짐을 꾸려 나가려고 할 때 전화벨이 울린다. 자신의 교구에 자살을 시도했었던 여자 신도가 입원실에서 사라진 후 찾았다는 것. 그 현장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왜 가족에게 연락하지 않고 자신에게 연락하는 걸 의아해 하지만 박 신부는 소녀 신도를 찾았다는 곳으로 따라 간다. 

그가 도착한 곳은 폐원한 지방의 종합병원. 그는 그 곳에서  급습을 당하고 밀폐된 장소에 갇히게 된다. 눈을 떴을 때 그의 눈 앞에는 장기를 적출하는 의사 범준이 있다. 그리고 둘은 15년 전 지옥과도 같았던 그 곳에서의 인연이 그려진다. 


의사 최범준과 신부 박현석 신부. 


두 사람이 먼 빈민국에 있는 곳에 오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한 명은 의료혜택이 없는 국가에 순수하게 의료를 펼치기 위함이다.  국제의료단체에 자원하여 이 오지에서  그는 병원을 세우고 부족을 교육시켜 의료진으로 키우기 위해 교육한다. 


박 신부 또한 지원자가 없는 이 오지의 교구에 자원하여 성도들을 돌보며 미사를 강론한다. 그들이 베푸는 선의가 이 현장을 아름답게 가꾸어줄거라 두 사람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비록 이 나라는 소수 민족과 다수 민족간의 갈등이 항상 존재했지만 이들이 모두에게 베푸는 봉사와 선의는 두 민족의 갈등을 뛰어넘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를 전후, 그리고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앞에 상황은 급변한다. 


한때 동지였던 소수 민족과 다수 민족은 서로를 '쓰레기' 또는 '벌레'라고 부르기를 서슴치 않으며 살생을 서슴치 않는다. 한 때 자신들을 믿고 따랐음에도 현실 앞에서 외국인인 박 신부마저 죽이기를 겁내지 않는 그들의 앞에 신부는 좌절한다. 


 소설 『구원』 은 극단의 상황을 보여주며 읽는 이들을 끊임없이 몰아세운다. 


인간은 끝까지 정의로울 수 있는가? 인간은 끝까지 선을 지킬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소설 속 아수라장 현실 속에서 인간의 선의가 종이 한 장처럼 얼마나 가벼운지 보여준다. 




어제의 형제가 오늘의  쓰레기가 되고 벌레가 되는 이 현실 앞에 소설은 진지하게 묻는다. 

완전한 구원은 가능한가?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는 인간의 선의와 상황에 따라 총구를 겨누는 인간의 잔혹한 본성은 신마저도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신마저도 막을 수 없다면  인간의 희망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단지 내전 때문이 아니라 평화로운 사람들이 있는 조직, 성당에서도 교회에서도 회사나 조직에서도 언제든 사람은 총과 칼을 들 수 있다. 범준이 수술용 메스를 들어 환자를 살렸지만 죽음의 수술대에서는 사람을 죽여 장기를 적출하듯 언제나 선과 악을 행하는 사람의 본성. 각자의 상황에 자신들의 '선의'를 위해 타인에게 '악'을 행하는 인간의 모습은 결국 선과 악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소설 『구원』 은 끝까지 읽는 이를 몰아간다.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는 이 현실 속에서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는가? 


이 현실 속에서 우리는 지난 12월에 있었던 비상계엄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소년이 온다>를 이야기했다. 우리의 아픈 역사가 계엄을 다시는 불러 일으키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착각이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비상계엄을 거리낌없이 행할 수 있는 현실을 보며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가치가 얼마나 쉽게 버려질 수 있는지를 보았다.  이 비상계엄 또한 우리에게는 악의 행위처럼 보였지만 행하는 사람은 선의의 발로였다. 선과 악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소설 속에서 끝내 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답을 할 수 없음에 우리는 탄식해야 하는가? 

그럴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그것에서 우리는 항상 나 자신을 돌아보며 겸손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구원. 

참으로 묵직한 소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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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우리의 질문 - AI와 우리를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 13
미리엄 메켈.레아 슈타이나커 지음, 강민경 옮김 / 한빛비즈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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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역사와 원리,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고민 중인 사람에게는 꼭 읽어보면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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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우리의 질문 - AI와 우리를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 13
미리엄 메켈.레아 슈타이나커 지음, 강민경 옮김 / 한빛비즈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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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최근 오픈AI 에서 공개한 '챗GPT 지브리 프사' 가 유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SNS 프로필을 챗GPT 가 그려준 지브리 그림으로 바꾸었다. 텍스트를 넘어 그림마저 자유자재로 모방하는 AI의 기술에 놀라움을 표시하는 목소리와 한 개인의 평생동안 이루어놓은 업적이 AI에 의해 쉽게 침범해도 되는 게 옳은 것이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함께 나온다. 감탄과 경악이 함께 나온 이 목소리 속에 공통된 감정이 담겨 있다.

✔︎ AI는 과연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가?

✔︎ AI가 인간의 모든 영역을 대신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AI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다. 곧 잠식되고 말 것이라고 한숨을 내쉰다. 이러한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일까.

<에이다 러닝 ada Learning>의 CEO 인 미리암 메켈과 레아 슈타이나커 두 저자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올바른 질문'이라고 말한다. 『AI 시대, 우리의 질문』은 우리가 AI 시대를 살아가면서 반드시 넘어가야 할 질문 13가지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두 저자가 이야기하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 13가지'는 무엇일까?


먼저 두 저자는 AI의 역사에 이어 경제, 창작, 조작, 윤리, 정치 등 다방면에 관한 질문을 이야기한다.

책에서는 AI에 관한 역사를 소개하는 장면이 흥미롭다. 갑자기 불쑥 나타난 생성형 AI는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지만 두 저자는 결코 이 역사는 갑자기 발전된 게 아닌 오랫동안 침체기와 활성기를 반복하며 성장해온 역사임을 설명해준다.

단순 계산만 하던 컴퓨터에서 상징적 AI (Symbolic AI) 와 신경망에 집중하는 접근법 네트워킹 AI 로 나뉘었다가 데이터를 모아 집중적으로 훈련하면서 획기적인 성장을 거두게 된 역사는 AI를 어렴풋하게 알던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알게 해 준다.

✔︎ AI를 훈련시켜 온 역사 + AI 훈련법의 변화


이 13가지 질문 중 우리가 가장 관심있는 질문은 무엇일까?

현재 가장 뜨거운 감자인 '지브리 프사'열풍을 일으킨 '창작' 에 관한 질문이 될 수 밖에 없다.

두 저자는 친구와 친구의 아들 사이의 대화를 목격한다.

"왜 이걸 다 해야 해요? 어차피 AI 가 나보다 더 글을 잘 쓰고, 계산도 잘 하고, 조사도 잘 행.

그럼 이걸 제가 왜 해야 해요?"

열 살짜리 아이의 질문은 현재 우리 모두의 질문이기도 하다.

AI가 한 개인의 평생 업적인 그림체도 모방해버리는데 과연 창작이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AI가 통,번역은 물론이고 글과 그림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데 우리가 계속 글을 쓰고 말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부모로서 아이를 공부시키지만 과연 이 공부가 AI 시대에 필요할까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두 저자는 AI의 원리와 발전 배경을 알게 되는데 핵심이 있다고 말한다.

✔️ 리믹스 문화 (REMIX CULTURE)

AI 는 놀라운 속도로 많은 양의 데이터를 흡수한다. 하지만 이 데이터는 언젠가는 고갈된다.

그 고갈되고 난 이후 다른 데이터가 부족해서 AI는 새로운 데이터가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데이터가 아닌 AI가 만들어낸 데이터로 학습하게 되는 리믹스 문화. 그렇게 되면 AI의 품질은 떨어지게 된다.

인간의 독창성은 이 때부터 시작된다.

💠 AI의 품질을 끌어올릴 수 있는 건 독창성과 창의성을 여전히 갖고 있는 인간에게 달려있다.

결국 AI에게 끌려가지 않고 이끌어가는 인간만이 AI를 넘어설 수 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인간의 독창성을 발휘해 나가야 한다.



『AI시대 우리의 질문』에서 또 하나 뺴 놓을 수 없는 질문은 바로 '윤리'이다.

다시 '지브리 프사' 열풍 속에서 한 사람의 창작을 무단으로 침범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아직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AI 훈련용으로 수많은 작품을 무단으로 침범해도 되는 것인가?

AI 훈련하기 위해 저작권 침범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 것인가?

그 문제에 우리는 아직까지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할리우드 작가들의 장기간 파업 및 여러 소설가들이 훈련용 사용 금지를 외치고 있지만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

또한 무작위적 훈련법으로 AI가 만들어내는 인종편견적인 데이터들을 과연 어디까지 인용할 것인가?

거짓뉴스와 딥페이크 등 AI는 수많은 윤리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AI 개발자들이 할 수 있는 건 간략한 답변 '저는 인간이 아닌 기계이므로 감정이 없습니다' 나 또는 답변을 회피하는 회피하기 전략이 전부이다.

회피하기 전략만으로 우리는 과연 윤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윤리적 기준을 어떻게 세워야 할 것인가?

저자들이 만들어낸 질문은 계속해서 다른 질문들을 만들어나가게 된다.

『AI시대 우리의 질문』 은 한참 챗GPT가 화제였던 1년 전 벌써 출간되었어야 할 책이다.

우리는 제대로 된 질문도 하지 않고 놀라워하며 한 사람의 역작을 AI의 힘을 빌려 남용하고 있다.

우리가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않으면 나와 우리의 콘텐츠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며 AI에게 얼마나 허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우리가 AI에 이끌려가지 않음을 알려준다.

『AI시대 우리의 질문』 는 AI 사용법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AI의 역사와 원리,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고민 중인 사람에게는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AI시대우리의질문 #AI윤리 #AI #인공지능 #AI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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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 - 포기하지 않으면 만나는 것들
김호연 지음 / 푸른숲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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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는 <불편한 편의점>으로 밀리언셀러 작가가 된 김호연 작가의 에세이다. 

김호연 작가. 우리는 그를 밀리언셀러라고 말한다.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이 사회에서, 더구나 소설의 쓸모가 적어지는 이 사회에서 밀리언셀러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그는 이번 에세이에서 그의 스페인 체류기를 이야기한다. 


먼저 우리는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 라는  책이 <불편한 편의점>을 쓰기 훨씬 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소설 <파우스터>를 펴냈지만 빠른 속도로 실패했음을 직감했으며 다시 그의 전 직장인 시나리오 작가로 생각을 하고 있던 시기였음을 밝힌다.  20년 차 전업 작가임에도 내일 앞을 모르는 삶은 그에게 중대한 질문을 던진다.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계속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돈벌이가 되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할 것인가? 


이 질문 앞에 헤매이던 순간 그는 그의 운명을 바꿔 줄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발신자는 원주 토지문화재단의 K 사무국장. 

스페인과 한국의 레지던시 교환작가에 선정되어 스페인의 레지던시에서 3개월간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교환 작가 지원서의 내용을 되살린다. 그가 쓴 내용은 한 가지였다. 


<돈키호테>를 한국식으로 해석한 소설을 쓰고 싶다!


이 지원서가 받아들여졌으니 그의 스페인 여정은 <돈키호테>를 찾아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1605년에 발표한 소설로 전세계에 사랑받는 고전문학이 아닌가. 또한 돈키호테는 무모한 도전으로 유명한 인물이 아닌가.  세르반테스의 고국 스페인에서 김호연 작가가 만나는 돈키호테는 과연 어떤 여정을 미칠 것인가. 그는 그만의 돈키호테를 만나기 위해 스페인으로 여정을 떠난다.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 에서 작가는 스페인 곳곳을 누빈다. 미술관과 마요르 광장 등 여러 곳을 여행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가 만난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의 흔적들이다.  그래서 그가 가장 먼저 찾아 나선 곳은 스페인 광장의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이다. 부푼 기대를 안고 광장에 도착했건만 공사로 가로막힌 녹색 천막이었다.  출간된 소설 <파우스터>도 잘 안 되었는데 처음 만난 돈키호테마저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니 힘이 빠질 수 밖에 없다. 김호연 작가는 이 기분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설가로서의 길을 접느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스페인 체류는 하나의 가느다란 동아줄이었다.  하지만 초반부터 그의 기대처럼 여행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동상 하나 보는 것마저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에 그는 더욱 자신의 현실을 체감할 수 밖에 없다. 희망하지만 다다르기 힘든 현실. 꿈꾸지만 꿈꾸는 것도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현실이 더 커 보인다. 그렇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돈키호테는 도전의 아이콘이니까.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처럼 다음을 찾아 다시 떠나야 한다. 


<돈키호테>를 쓴 김호연 작가는 세르반테스 생가가 있는 '세르반테스 길'에서 그의 '돈키호테'를 발견해나간다. 



한순간의 실수로 도피 생활을 하게 되고 책을 냈지만 실패한 작가. 

레판토 해전의 참전으로 잃은 왼 손과 5년간의 포로 생활. 세금 징수원으로 살다 감옥에 가게 되고 그 감옥에서 <돈키호테>를 썼지만 위작들이 판을 쳐 돈벌이가 되지 못했다. 그의 작품을 지키기 위해 <돈키호테> 2편을 완성했지만 1년 뒤 세상을 떠난 불운의 아이콘이었다.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의 자화상이었다. 

그의 삶은 불가능의 연속이었으니까. 무모한 도전을 향해 가던 돈키호테처럼 세르반테스의 삶 또한 남들이 보기에 명예 회복이 불가능한 삶의 여정이었다. 


세르반테스의 삶에서 김호연 작가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돈키호테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지." 


김호연 작가에게 돈키호테는 바로 '소설로 먹고 사는 삶'이었다. 꿈을 가진 사람 모두에게는 그 과정 모두가 '돈키호테'이므로 어디에도 있고 꿈을 꾸지 않고 포기하는 사람에게는 '돈키호테'는 아무에도 없는 삶이었다. 


세 편의 작품에 연이어 실패하고 출간이 될 지 안 될지도 모르는 '한국판 돈키호테'에 관한 소설을 쓰기 위해 스페인에 와 있는 지금 그의 행동을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지금 나의 돈키호테적인 행동은 무엇인가? 


평생 읽고 쓰는 삶을 살기 위해, 일간 이슬아처럼 월간 윤종신처럼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이메일로 <데일리 사라>를 발행한다. 열심히 외쳐도 구독자 한 명 모으기 힘든 이 시점에 나는 또한 질문하게 된다. 

나의 행동이, 나의 꿈 또한 돈키호테적인 행동이 아닐까? 돈키호테처럼 너무 무모하고 이룰 수 없는 행동일까? 


이루어지지 않으면 과연 무모한 것일까? 


마드리드에서 알칼라 데 에나레스로 그리고 톨레도로 돈키호테의 여정을 쫓으며 그가 발견하는 건 바로 우리 모두가 삶 속에서 꿈을 찾아 가는 '로드 픽션'을 쓰는 여정이라는 것이다.  돈키호테가 산초와 함께 길을 떠나듯 우리 자신도 꿈과 희망이라는 여정 속에 있다는 것. 살아가는 한, 끝까지 그 자리에 내려오지 않는 한 우리의 로드 픽션은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김호연 작가는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통해 배운다. 


김호연 작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돈키호테에 관한 소설을 바로 쓰지 못했다. 대신 그전에 쓰고 있던 <불편한 편의점> 원고를 계속 써서 완성했고 첫번째 책 <망원동 브라더스>의 출판사 대표와 연락이 닿아 출간할 수 있었다. 계속 써내려갔기에 그는 밀리언셀러 작가라는 기록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후속작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를 완성하고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에세이까지도 내는 전업작가로서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책의 뒤표지에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돈키호테'가 있다. >


나는 나의 돈키호테의 여정을 자꾸 멈추게 하지 않나를 자꾸 돌아보게 한다. 내가 꿈꾸는 한 나의 돈키호테적인 행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김호연 작가가 스페인에서 작가만의 돈키호테를 만났듯, 나 또한 그의 소설 속에서 나의 돈키호테를 만난다. 나의 로드 픽션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내 삶 속에 돈키호테의 여정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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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차가운 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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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한강 작가의 『그대의 차가운 손』을 읽었을 때는 단순히 '손'에 대한 이미지에 관한 내용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나는 『그대의 차가운 손』에서 중요한 건 '손'이 아니었다. 바로 '차가움' 이었다. 


『그대의 차가운 손』은 작가인 '나'가 반신마비로 입원한 큰이모를 방문한 곳에서 우연히 한 전시회를 보게 된다. 그 전시회에서는 사람의 실제 육체를 딴 '라이프캐스팅'  석고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라이프캐스팅' 또는 '데드마스크'로 살아 있는 사람에게 석고를 부어 데드마스크를 떠내는 이 작업에 신기해하던 '나'는 초대받은 연극에서 같은 작가의 라이프캐스팅 제품을 보게 된다. 뒷풀이에서 그 작가를 만나 묻는다. 

왜 사람을 떠서 작품을 만들죠? 하지만 그는 대답 대신 나에게 모델이 되어 줄 수 있느냐는 요청 뿐이다. 그렇게 작은 해프닝으로 잊혀질 무렵 그 작가의 여동생이 뜬금없이 '나'에게 연락을 한다. 오빠가 실종되었어요. 오빠의 일기장을 줄 테니 오빠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구한다며 무작정 보내온 작가의 일기장. 호기심에 펼쳐본 일기장을 보며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먼저 손이라는 정의를 살펴봐야 한다.  『그대의 차가운 손』 에서 '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독자적으로 살아 있는 존재. '인체의 축소판'  생명의 대표적인 존재로 '손'이  대표된다. 


그렇다면 다시 제목을 다시 봐야 한다. 


손이 차갑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차가운 손'을 말하기 위해 장원형의 '손'의 모델 'L'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사람들은  L을 보면 고개를 젓는다.  100kg에 육박하는 거대한 체중에 작은 두상과 가녀린 팔의 부조화가 그녀를 더 기괴하게 만든다. 모든 남성들 그녀를 피한다. 심지어 그녀를 몰래 성폭행했던 엄마의 애인까지도. 

남의 배척과 무시에 익숙해있던 L은 모델이 되어 달라는 장원형의 작품에 응한다. 이유는 하나다.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그 이유 하나에서다. 자신의 손과 신체를 떠서 만든 껍집을 사랑하는 L. 하지만 이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다이어트를 하게 되고 끝없이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고자 그녀는 점점 자신을 파괴해간다. 

끊임없이 먹고 토하고 상처를 낸다. 그런 L 의 상태를 보며 장원형은 말한다. 


"손이 너무 차구나." 

차가워진다는 것. 그건 죽어간다는 의미였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하면서 떠오르는 질문은 한 가지였다. 


무엇이 손을 차갑게 만드는가? 

결국 무엇이 생명을 죽게 만드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장원형이 또 다른 여자 E를 만나면서 알게 된다. 공간 인테리어이자 어여쁜 얼굴과 화려한 매너. 

깔끔한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E의 외향은 화려하다. 모든 남성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남성과 관계를 하면서도 음부가 강간당하는 여자처럼 메말라 있는 여자였다. 


 '메마른 여자' 

'남의 취향에 사는 여자'  

'성관계에서조차 기본적인 성욕의 욕구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여자' 


그런 E를 보며 장원형은 유령같다고 느낀다. 화려하지만 기괴한 얼굴.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라고 느낀다. 

왜 그녀는 껍데기는 화려하지만 메말라 있는 그녀. 자신만의 영역에 단단한 껍데기를 둘러싸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상처가 드러나며 E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화려한 외모 속에, 깔끔한 매너 속에 숨겨져 있는 E의 본모습. 


생사를 넘나드는 다이어트를 하며 자신을 상처 내는 L, 

단단한 껍데기 속에서 자신을 꽁꽁 감추는 E. 


 두 여자의 모습은 영원하지 못한다. 아무리 실제 사람의 모습을 본뜬 들 실제 인물이 될 수 없다. 

말 그대로 '껍데기'이자 '데드 마스크'일 뿐이다. 단 한 번 살짝 내리쳐도 산산조각나버리는 것.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죽이고 껍데기를 택한다. '데드 마스크'와 같은 가면을 씀으로 점점 손이 차가워지며 자신은 잠식된다.  


E는 장원형에게 '껍데기'와 '껍질'의 차이를 아느냐고 묻는다. 

단단하게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는 분리할 수 있다. 하지만 껍질은 완전히 엉겨 있어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를 분리하기보다 자신의 안에 완전히 엉겨 있는 껍질만을 제거하려고만 한다. 

사과 껍질을 자꾸 벗기면 사과가 작아지듯, 자신의 본질인 껍질만을 벗겨 자신을 사라지게 하는 편을 택한다. 



껍데기는 조개나 게, 거북이처럼 단단한 걸 말해요. 하지만 껍질은 내용물에 완전히 엉겨 있죠.  사과나 배, 고양이와 개, 그리고 사람처럼. 그녀의 은밀한 시선이 탁자에 놓인 희 석고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저 딱딱한 물건은 껍데기였으며, 껍질은 그녀의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을.  


안타깝게도 소설 속에는 L과 E 외에도 많은 이들의 껍데기에 둘러싸여 있다. 


불행하지만 하회탈을 부착한 듯한 미소를 품고 있는 장원형의 어머니, 군대 시절 절단된 왼쪽 손가락을 가진 외삼촌. 



자신의 껍질을 자꾸 상하게 한 L 의 손은 차가워진다.  그리고 예전의 아름다운 손으로는 완전히 돌아가지 못한다. 

반면 E가 자신의 껍질을 장원형에게 드러내며 그 상처를 장원형이 감싸주며 그들이 다시 관계를 가질 때 장원형은 말한다. 


"따뜻해. 따뜻한 손이야." 


따뜻한 손. 


다시 생명을 되찾는 손이다. 자신의 껍질을 받아들임으로 그녀의 생명은 온기를 되찾는다. 


그리고 이 소설은 묻는다. 


당신의 껍데기는 무엇입니까? 

혹시 당신의 본질인 껍질은 자꾸 벗겨 당신을 해치고 있지 않나요? 


마지막으로 소설의 말미 두 사람의 실종으로 마무리되며 또 하나의 미스터리를 남긴다. 

하지만 나는 한강 작가의 또 다른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처럼 이 실종이 죽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두 사람이 껍데기 없이 진짜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믿는다. 

따뜻한 손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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