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스트레인지 보이
이명희 지음 / 에트르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앞으로도 이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할 것이다.

임신 26주 5일 만에 1.03kg 아이 출산. 오른손을 못 쓰는 편마비와 오른다리 까치발 뇌성마비 판정.

2016년 12월 네 살 아이 원인불명의 뇌손상으로 사지마비와 시력 상실...

상상할 수 있을까? 태어나자마자 장애를 짊어진 아이의 무게만으로도 겨우 적응해 나가는데 신은 또 다른 장애를 주신다. 사지마비와 시력상실. 하루 아침에 달라진 아이의 모습에 온 가족은 넋을 잃는다.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여전히 한 생명이 살아있기에. 그 생명의 부모이기에.

『마이 스트레인지 부모』는 중증 장애아의 엄마로 살아내기 위한 자신의 모든 것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정답이 없는 삶. 어느 누구에게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이 막막함 속에서 아이와의 동반 자살, 죽음, 이혼, 도망 등 이 상황을 피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리라며 고뇌하던 그 시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매번 결정적인 순간 삶에 에 대한 미련이었다. 아... 그래도 나는 아직 살고 싶구나라는 걸 발견하며 다시 삶을 계속 이어간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살아본 적 없는 방식의 삶이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믿어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다.

 

아이가 없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있다. 바로 부모의 역할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 살의 엄마는 두 살의 아이가 다르다. 매번 커가며 발달해가는 아이의 상태에 맞춰 부모는 역할을 달리 해야한다. 그 역할은 매번 낯설고 새롭다. 같은 아이임에도 어제의 아이와 내일의 아이는 다르다.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어느 땐가 아이가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는 그런 기대라고나 할까?

하지만 중증장애아의 부모는 다르다. 장애는 그 아이의 일부분이다. 평생을 함께하며 평생을 돌보아야 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아이의 장애를 마주한다. 이 장애 앞에서 이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닐거야라는 자기 부정에서부터 회피부터 인정해나가기까지 그 시간은 어느 누구보다도 길고 느리게 흐르기만 한다.

그래도 삶은 살아가기 위한 방도로 유튜브를 찍고 수영을 배우고 클라리넷을 배우고 직업상담사 시험 도전하는 삶 속에 저자는 장애아 엄마의 삶에서 저자 이명희로서 숨을 쉰다. 매우 귀한 이 짜투리 시간들이 저자를 숨쉬게 한다. 다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매일 매일의 삶이 살아가는 것이라기보다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다짐하는 삶. 움직이지 못하는 몸에 힘을 주며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보는 게 안쓰럽지만 아이의 장애와 함께 하지 못하고 지켜봐야만 하는 고통.

그 안에서 저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하는 것 뿐이었다.

 

그래야만 네가 버틸 수 있다면, 그렇게 믿고 살면 된다고.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아이가 몸을 활처럼 뒤로 휘며

모든 것을 잃어가던 그 끔찍한 모습을 기억해주는 거라고.

그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을 혼자 다 겪어내고도

다시 네 곁에 살아 있는 그 아이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 아이의 모든 것을 완전히 사랑하는 것뿐이라고.

 

답이 없는 삶. 아이의 평생 보호자로 평생 돌봄을 해야 하는 삶 속에서 저자의 분투기. 글과 그림만으로 그 채워질 수 없는 고뇌를 알 수 없다. 차마 이 종이에 담을 수 없었을 그 마음을 여백을 헤아리고 짐작해보려 하지만 솔직하게 고백한다. 감히 저자를 이해한다고, 힘든 거 안다고 말할 수 없음을.

그저 저자가 지인들에게 힘들게 아이의 장애 이야기를 꺼냈을 때 담담하고 담백하게 그저 저자의 일상처럼 받아들였던 것처럼 이 책에 어떤 동정도 아닌 저자의 이야기로 읽어나가는 것 뿐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패자에겐 목표가, 승자에겐 체계가 있다 - P112

1등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목표 달성이 아니라 체계를갖추는 것이다.  - P1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과 루비
박연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곱 살 때 나는 '작은' 회사원 같았다.

하루하루가 길고 피로했다. 맡은 임무가 있었지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 소설들이 있다. 읽는독자들을 그 자리에 붙잡아두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

큰 사건도 없이 단지 소설 속 현장으로 데려가 독자들에게 자신의 일상을 보여준다.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소극장 연극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태연하게 연기를 하고 독자들은 가까이에서 인물들의 연기를 감상한다. 무대와 관람석에 경계가 없는 극장에서 보는 배우들의 연기는 생생하다. 박연준 시인의 소설 『여름과 루비』가 그렇다.

일곱 살 소녀 '여름'과 친구 '루비'의 길고 피로한 일곱살부터의 유년 시절이 팔딱팔딱 숨쉬는 소설이다.

일곱 살 아이 '여름'은 엄마가 없다.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고모 밑에서 사촌언니와 함께 자란다. 아빠는 있지만 왠지 아빠는 철이 없는 어린 아이같다. 아무리 고모라지만 남의 집에 있는 게 편할 리 없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눈치가 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어린 여자를 데려왔다. 이제 엄마라고 부르라고 한다. '여름'에게 새엄마가 생겼다. 새엄마가 생기며 작은 회사원의 생활을 하는 여름은 새로운 임무가 더 늘어만 간다. 이 피곤한 일곱 살 시절에 여름에게는 '비밀 친구'가 있다. 루비이다. 비밀리에 사귀는 친구. 루비에게는 자신의 고충을 말할 수 있다.

『여름과 루비』는 많은 사건이 없다. 단지 이들의 일상을 보여줄 뿐이다. 일곱 살 아이의 시점에서 어른들을 본다. 아빠의 재혼, 새엄마와의 갈등, 고모의 이면적인 모습 등이 비춰진다. 어른들은 아이가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함부로 말하기도 하고 '넌 몰라도 돼'라면서 회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름은 말한다. 모르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라고. 자신들이 알고 있다는 것도 모르면서 어른들은 아는 척을 한다.

아이들은 지혜를 갖고 태어난다.

지혜를 잃어버리는 건 늘 어른들 쪽이다.

시인의 첫 소설이라서일까. 『여름과 루비』는 시적인 문장의 향연이다. 휘몰아치는 전개가 없지만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일곱 살 아이가 독자인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말이 너무 아름답다. 유년 시절을 버텨나가는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하고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을 적확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유년이 시절이라는 것.

유년은 '시절'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다.

돌아온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 컸다고착각하는 틈을 비집고 돌아와 현재를 헤집어놓는다.

사랑에, 이별에, 지속되는 모든 생활에, 지리멸렬과 환멸로 치환되는

그 모든 숨에 유년이 박혀 있다.

 

어른들에 의해 규정되어지는 아이들의 세계. 아직 어리기에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이 받아들여져야 하는 아이들의 세계. 여름과 루비가 어쩔 수 없이 헤어지고 그 헤어짐의 무게를 감당하는 마지막은 먹먹하다 못해 아련하기까지 한다.

어른들은 모른다. 여름과 루비의 유년 시절이 지나갔으니 이들도 그냥 다 잊힐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년은 현재를 헤집어놓듯이 유년 시절의 무게를 짊어지고 언덕을 유년에서 홀로 언덕을 넘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생각한다. 내 아이의 눈에는 나의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아이들에게 유년은 어떤 시절로 기억되며 돌아올까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여름과 루비』는 흥미진진한 전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의 시선으로 따라가며 문장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욱 좋은 소설은 없다. 책 모든 문장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책. 이 책이 그렇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 전2권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요리는 화학입니다. 화학은 생명이지요.

모든 것을 바꾸는 여러분의 능력,

바로 자신을 바꾸는 능력도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 (Lessons In Chemistry)는 영어 원제 그대로 화학수업이다.

화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올리는 건 지겹고 어려운 화학 공식으로 가득찬 과학 공부를 떠올릴 수 있다. 우리의 삶과 아무런 관련도 없고 배워도 소용없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렇다.) 과연 그럴까?

정말 화학은 우리와 무관한 학문인걸까? 소설 『레슨 인 케미스트리』 의 소설을 읽어보면 화학에 매료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주인공 엘리자베스 죠트는 딸 매들린을 홀로 키우며 집에서 화학 연구를 하는 화학자이다. 어쩌다 그녀는 싱글맘으로 연구소가 아닌 집 주방에서 화학연구를 하며 살아갈까? 소설은 이 모든 일의 원인을 찾아 10년 전인 1952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의 참정권도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 심지어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도 없던 시대인 그 때로 말이다.

남자들로 가득찬 헤이스팅스 연구원, 그 곳에서 여성 화학자는 엘리자베스 죠트 단 한 명이다. 이 연구소에서 엘리자베스 죠트를 제외한 다른 여성들의 존재는 남성 화학자들의 조수나 보조일 뿐이다. 그러니 남성 화학자들의 눈에 엘리자베스 죠트 또한 자신들과 동등한 과학자로 인정해 줄 리 만무하다.

주변의 방해와 시기를 뒤로 하고 자신만의 연구에 몰두하는 엘리자베스 죠트. 그녀에게 운명의 만남이 다가온다. 헤이스팅스 연구원의 에이스이자 스타 과학자인 캘빈 에번스와의 만남이 그렇다. 물론 모든 드라마답게 이들의 만남이 시작부터 부드러울 리 없다. 엘리자베스가 자신이 쓰는 연구용 비커를 캘빈 에번스가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캘빈 에번스의 단독 연구실로 쳐들어간 우리의 주인공. 그녀는 당당하게 이 사실을 밝히고 자신의 비커를 되찾아온다. 사랑하는 주인공들에게는 우연이 찾아오는 법, 이들의 반갑지 않은 첫 만남에 우연이 이어지며 이들은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된다.

이 소설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일 리 없다. 이 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핑크빛 이야기일 리 없다. 저자는 주인공에게 캘빈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라는 고난을 선사한다. 그리고 연이어 찾아오는 불행의 파도. 아이를 원치 않았지만 캘빈이 죽은 뒤에야 알게 된 임신, 그리고 연구소에서의 해고.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더구나 여성이라면 남성의 들러리로나 간주되던 1952년에 말이다! 무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죠트가 이대로 포기할 리 없다. 끝없이 변화하는 화학 공식처럼 엘리자베스 또한 변화해나간다. 세상 공식이 통하지 않는 부모의 역할에 적응해 나가고 뺴앗긴 연구실 대신 자신의 집에서 자신만의 연구실을 만들어 나간다.

집에서 홀로 연구한다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경제를 무시할 수 없다. 우연한 기회에 딸 매들린의 친구 아버지에게 제안받은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로 일하게 되며 엘리자베스의 매력이 폭발한다. 잠들어 있던 여성 시청자들을 깨운다. 요리가 화학 시간이 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화학 공식처럼 여성들 또한 요리 뿐만 아닌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켜 가도록 요구한다.

화학은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룹니다.

그 말에 따르면 화학은 바로 삶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파이처럼 삶에는 튼튼한 토대가 필요합니다.

가정에서는 바로 여러분이 그 토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는 일에는 엄청난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이토록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주는데도

세상에서 가장 저평가되고 있지요.

 

소설은 엘리자베스를 단순한 요리 진행자로 한정지으려는 주변의 방해와 공작, 그리고 그 방해를 뚫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엘리자베스와 그녀를 돕는 여성들의 연대가 두 축을 이룬다. 물론 평탄할 수 없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나쁜 일을 겪을 수록 더 큰 전투력을 발휘한다.

 

나쁜 일을 겪었을 때 대처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뭔지 아니?

나쁜 일을 거꾸로 원동력으로 삼는 거야.

나쁜 일에 사로잡히는 걸 거부하렴.

맞서 싸우렴.

 

화학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화학 공식으로 단순한 재료가 맛있는 하나의 요리가 되는 것처럼 엘리자베스는 화학 공식을 요리 뿐만 아닌 자신의 삶에 대비시키도록 시청자들, 특히 엄마들에게 외친다. 그녀의 화학수업은 인생 수업이 되고 동기 부여의 시간이 된다. 그리고 이 움직임은 엘리자베스만 느끼지 못했을 뿐 거대한 변화가 되어 잠자고 있던 여자들의 욕망을 꺠운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 를 읽고 난 후 우리는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아니, 화학이 이렇게 흥미롭고 가슴이 뛰는 과목이었나? 정말 화학은 우리와 무관한 과목이었나?

아니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화학수업이었다. 정상성이 없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게 당연한 과목.그래서 화학은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수업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면 화학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인생을 바꾸는 과목으로, 변화가 필요할 때, 무기력이 느껴지고 포기하고 싶을 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 에서 엘리자베스 죠트의 화학 수업을 꼭 들어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유년이 시절이라는 것. 유년은 ‘시절(時節)‘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다. 돌아온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 컸다고 착각하는 틈을 비집고 돌아와 현재를 헤집어놓는다.
사랑에, 이별에, 지속되는 모든 생활에, 지리멸렬과 환멸로 치환되는 그 모든 숨에 유년이 박혀 있다. 붉음과 빛남을 흉내낸 인조보석처럼 박혀 있다. 어른의 행동? 그건 유년의 그림자, 유년의 오장육부에 지나지 않는다. - P80

무언가를 자랑하면 안 된다. 자랑하면 반드시 그 자랑거리가 없어지고 만다. 예외 없이 그렇다. - P132

 연기였다. 그래야내가 사랑받는 아이라는 걸 증명해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받음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일은 사랑받는 아이는 할 필요가 없는 일이란 걸 몰랐다.  - P1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