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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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2020; 한국어 번역본, 2021)

와... 이 책 미쳤다.
어떤 에세이도, 놀라운 석학의 책도, 심지어 내 기준 가독성 끝판왕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도, 이 책만큼 날 끌어당기지 못했다. LCK 최고의 서포터 케리아의 쓰레쉬에게 그랩을 당한것처럼, 이 책에 속절없이 끌려가서, 도대체 어떻게 끝나는지가 너무 알고싶어서 모든걸 제쳐두고 읽었다. 사적인 서점지기 지혜님이 4시간안에 이 책을 완독하셨단 말이 뭔지 실감났다.

자, 무슨 책인지 소개도 안하고 너무 호들갑부터 떤 것 같으니 돌아가보자. 아 근데 이 책은 내용이나 감상 설명하기가 스포없인 매우 힘든책이다. 마치 유주얼 서스펙트, 식스센스, 요즘 영화로는 나를 찾아줘, 서치 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읽어야 반전에 신선한 충격을 얻어맞을 거라서.

그래도 노력은 해보겠다. 심지어 책의 장르도 하나로 정하기 힘든 이 책은 일단은 에세이다. 저자인 룰루 밀러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고 세계의 질서, 삶의 의미에 대해 탐구하면서 마주치는 많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가 이런 탐구를 시작하게 된데는 어릴적 과학자인 아버지가 그녀에게 해준 청천벽력같은 말의 역할이 컸다. 한창 세상을 알아가고 질문많을 어린 저자가 인생의 의미를 물었을때 아버지는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우린 다 혼돈 속에 있어. 사실 넌 개미만큼도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까 너 하고싶은대로 살아˝ 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메세지는 뒷부분에 실려있었던 듯 하나 저자는 앞부분 ˝너는 중요하지 않아˝ 에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어른으로 살아오다 큰 이별을 겪은 뒤 삶의 의지를 상실한 어느 때, 물고기 분류학에 몸을 던진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알게된다. 그의 확신과 믿음의 원천을 알게되면 저자 자신의 삶을 살 이유도 알게되지 않을까 싶어 열심히 그의 저서와 회고록을 판다.

사실 그녀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연대기를 써나가는 첫 100 페이지는 평이하다. 그냥 평범한, 진화론을 따라간 생물학자의 삶이야기 같다. 하지만 이 책은 몇번의 변곡점을 거친다. ˝이게 왜 여기서 나와?˝ 를 몇번 거치고 마지막에 이르러 그녀가 마주한 세상을 이해하고 삶을 볼 관점은...... 좋은 의미로 멋지다.

이 책은 에세이라기엔 생물과학적 지식도, 사회과학적 지식도, 철학도, 종교도 가득가득 있다. 그 모든 지식이 향하는 방향은 궁극적으로 확신과 의심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놀랍게도 전부 실화인 과거와 현재의 지식들을 빌려 어떤 사실에 확신을 가지고 믿는것, 혹은 어떤 사실을 의심하고 다시 생각해보는 아주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솔직히 언젠가부터 책 한권읽고 내가 알고 믿어온 것이 뒤집히는 충격적 경험은 못할거라 생각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는 책이 아직도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왜 동네책방 사장님들과 북스타그래머분들 사이서 이 책이 핫한지 납득이 갔다.

속는셈치고 읽어보시라. 꼭 끝까지. 에필로그까지. 간만에 책읽다 반전영화에서 느낀 신선한 충격을 느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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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나를 닮은 첫 음악
권민경 외 지음 / 테오리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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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법, 나를 닮은 첫 음악 (권민경 외 9인, 2022)

나의 일상엔 예나제나 자체 BGM이 있었다. 어렸을땐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 라디오에서 나온 가요와 팝이, 지금은 멜론과 유튜브 플리에서 나오는 클래식과 연주곡, asmr이. 그런데 그중 나의 ‘첫 음악‘ 혹은 ‘나를 닮은‘ 음악을 하나 고르지는 못하겠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들이 들려주는 자신들의 첫 음악 이야기에 저절로 귀가 기울여졌다.

<제법, 나를 닮은 첫 음악> 은 테오리아의 ‘첫 경험‘ 시리즈 에세이 앤솔로지의 두번째 책이다. (첫번째는 첫 영화 이야기였던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 였다) 시인, 인디뮤지션, 북튜버, 그래픽 디자이너, 작가 등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연령대의 저자들이 자신의 인생노래, 혹은 아티스트에 대해 회고하며 쓴 글 모음이다.

10명의 사람이 다 다른 것처럼, 그들의 인생음악도 장르가 다 다르다. 그리고 그들이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방향도 다 다르다. 누군가는 노래가 나오던 매개체 그 자체 (테이프, 시디) 를 그리워 하고, 누군가는 음악이 나오던 특정 시간대 (주말의 명화 시그널송이 나오던 토요일밤) 를 그리워한다. 동시간을 살아낸 아티스트에 대한 동경 (보아)도, 수십년을 못보다 다시보게 된 아버지와의 추억의 노래와 그 추억의 힘 (내 사랑 내곁에) 도, 대학때 내 열정을 바친 동아리에 대한 사랑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도모두 첫 음악 이라는 주제로 모아진다.

책이 다 끝날때까지 내 첫 음악은 뭔가 계속 고민해보았다. 내가 만약 이 책의 꼭지를 맡게된다면 어떤곡, 어떤시간에 대해 쓸까. 다행인진 모르겠지만 여러시간, 여러곡이 떠오른다. 근데 일단 원고청탁을 받을만큼 유명인사가 아니니까 생각이나 해둬야겠다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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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에 서면 알게 된다.
나를 사람 구실하게 만들어준 멀쩡한 육체는, 타인의 정성과 수고가 만든 것이다!
- P27

지치거나 실망할 때에도그림은 ‘네가 보고 느끼고 만지는 것, 네가 살아가는세상, 그게 정말 진짜야? 그게 전부야 ?‘라고묻는 것만 같다. 
그림 속 세상에 푹빠졌다올 땐 그래,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어제의불쾌한 일이나 오늘의 하염없이 슬플만할 일도 슬그머니 희미해 진 다 - P173

 나는 내가 읽은 것을바탕으로 더듬더듬 썼다. 잔잔하게 망가져 있는 인간들이 사는 세계, 모두가 서로를 보호할 수 있는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좋다고 썼다. 슈퍼히어로에게 의지하는 세계보다.
내가 더듬거리며 써낸 세계가, 마음에 든다는 생각을 썼다.
아직은 여기까지밖에 못 썼다. 지금 쓴 게 전부다.
- P22

읽듯이 들으면 어떤 이야기는 홍미로운 구석이 있다. 내가 이미 아는 이야기라도 이야기하는상대방에 따라 달리 읽히는 것도 흥미롭다. 물론 상대방의 이야기가 늘 흥미진진한 것은 아니라 가끔 지루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왜 이 이야기가 지루한가에 대해서 궁리하곤 한다.
나의 문제인지, 상대방의 문제인지, 아니면 그 이야기 자체가문제인지 등등. 그러면 읽기에서 자연스럽게 쓰기로 진입하게 된다.
- P15

사일 모를 일이지.
한의사가 알려준 허리에 좋다는, 두 무릎을 세우고 천장을바로 보는 자세로 누워 생각했다. 진짜 사람 일 모를 일이야. 그즈음 매너리즘에 빠져서 정신적 요양이 필요하단 생각을 하기했지만, 진짜 요양을 하게 될 줄이야.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마침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내가 오늘도 술을 마시면, 좀 그렇지?‘ 여느 날 같았다면 좀 그렇지, 친구야. 그래도퐁당퐁당 하루는 걸러야 되지 않겠니‘라고 보냈을 텐데. 세상에, 친구야. 현대인의 건강 식재료 고구마를 들다가도 이렇게되는데, 사람 일 정말 모르는데, 술 하루 더 마시는 게 대수겠니, 하는 마음을 담아 소주병 들다가 허리만 다치지 말렴‘ 하고 보내자, 친구가 정말로 좋아했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종종 그렇게 보내줄 것을.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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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활 건강
김복희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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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건강˝ 을 주제로 해서 10인의 여성 시인들이 쓴 에세이 앤솔로지 (모음집).

요즘은 한명이 자신을 둘러싼 일상과 생각을 깊고 자세하게 나누는 이야기들에 좀 지쳐있어서, 소설도 에세이도 앤솔로지를 선호하고 있다. 앤솔로지는 같은 주제에 대해 다른 저자들이 다른 시각과 문체로 써내려간 글 모음집이라 각 글이 짧지만 소재도 신선하고, 개성도 강할때가 많다.

이번의 주제는 말했듯이 ˝생활 건강˝. 처음엔 초록초록한 표지와 건강이란 단어를 보고 ‘시인들이 채식하고 운동하는 이야기인가‘ 했었다. 하지만 역시, 시인들은 자유로운 영혼들이다. 같은 단어를 듣고 그들이 자신의 생활건강을 쓰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채롭다.

어떤 저자는 자신을 건강하게 유지시켜준 어머니의 아침밥을 기억하며 고마워하고 (유계영), 어떤 저자는 자신의 애정어린 취미인 박물관 미술감상 예찬론을 펼친다 (주민현). 하지만 무엇보다도 흥미로웠던 글들은 사실 건강한 모습과 거리가 멀게 살고있는 저자들이 털털하게 건강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회서 말하는 ˝건강한 생활˝ 에서 오는 강박에 질문을 던지는 글들이었다 (성다영). N잡러를 하며 피폐해지다가 자신을 위한 결정을 하는 저자 (강혜빈)나 판데믹에 혼자놀기에 지친 집순이의 글 (이소호) 은 많은 청춘들이 공감할 것 같다.

200쪽 미만의 산문집이라 하루에 집히는만큼 가볍게 조금씩 읽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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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창비시선 450
유병록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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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아들을 먼저 떠나보냈다. 자기자신도 이제 40밖에 안 되었는데 아들을 잃었다면 그 아들은 얼마나 어렸을까. 실제 유병록 시인의 사연이다.

이 시집은 아들을 잃은 상실과 슬픔,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시인의 오만가지 감정이 담긴 시집이다. 염소를 기른다던가 바람으로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는다던가 하는 비유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우리가 쓰는 구어체, 일상서 쓰는 말들로 쓰여져있어 읽고 그 글을 이해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편집자도, 추천사를 써준 동료 시인도 말했듯이 잘 읽힌다고 잘 넘어가는 시집은 아니다. 아픔과 슬픔이 가공되지 않은채로 떡 하니 거의 모든 시에 있어서 한편에서 그 다음 한편으로 넘어갈때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다른이를 만나 식사하고 수다떨때 의식적으로 아픔을 건드리지 않으려 죽은이 빼고 무엇이든 얘기하지만 결국 돌아서서 기억나는건 죽은이 하나인 <말하지 않은 너의 얘기가 너무 소란스러워>, 자주가던 칼국수집이 폐업하게 되자 그 가게 사장님들을 생각하며 함께 속상해하고 ˝돌아가는 길엔 칼국수집을 애도하는˝ <지구따윈 망해도 좋지만> 같은 상실 후 일상속 툭 치고나오는 감정들. 가족을 잃지 않았더라도 이별, 아끼던 관계의 단절 등을 겪은 모든이들이 읽으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렇게 슬픔을 쏟는데만 그치지 않고 시인은 ˝아무 다짐도 하지말˝ 고 ˝봄에 그저 서로를 바라보자˝ 한다. 힘주지 말고 그저 바라보자고. 추천사의 시인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유병록 시인님은 단순히 자기가 아프다고 말하는게 아니라 그런 아픔을 나누며 비슷한 아픔을 가진 독자를 위해 ˝얼마나 진심으로 울어줄 수 있는지˝ 를 말하려고 한다 는 말을 했다. 큰 슬픔을 당한자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 말은 동일한 무게의 아픔을 건너온 사람이라던 말이 생각났다.

이 시집은 저번달에 ˝천상병 시 문학상˝ 을 받았다. 하지만 난 생각했다. 시인의 아들의 죽음에서 우러나온 한스러운 깊은 슬픔을 문학서 보편적으로 표현되는 상실의 술픔 이라고 얄팍하게 표기한게 얄궂다고. 큰 상을 받은건 영광이지만 시인님 감정 참 복잡하겠다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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